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복음서 강해 39번째 시간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욕구 법칙”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염려를 합니다. 돈 문제, 건강 문제, 학교 문제, 직장 문제, 이성 문제, 부모 또는 자녀 문제
등등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사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우리의 삶 속에는 온통 문제 투성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자, 그렇다면 우리 앞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냥 문제를 끌어 안고 살아요?
물론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은 간에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은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이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은 이론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미국 심리학자인 매슬로가 주장한 욕구단계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사람의 욕구를 피라미드 모양으로 정리해 놓은 것이라고 하는데, 삼각형 제일 밑에는 생리적 욕구가 있고, 그 위에 안전의
욕구, 그 위에 애정과 소속의 욕구, 그 위에 명예의 욕구, 그리고 제일 위에 자아실현의 욕구가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은 시간관계상 생략하기로 하겠습니다만, 이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 되어야지만 그
위에 있는 욕구를 충족하고자 한다는 것이에요.
말하자면 생리적 욕구,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의식주 같은 기본적인 요구가 충족 되어야지만 그 위에 있는 안전의 욕구를 충족하려고
하고, 이것이 충족되면 또 한 단계 위에 있는 애정과 소속의 욕구로 올라간다는 주장입니다.
그것이 충족되면 그 위에 있는 명예의 욕구, 그리고 가장 상위에 있는 자아실현의 욕구로 올라간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자아실현의 욕구란 무엇입니까.
이는 자신의 인생을 통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인가,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라고 하는 것을 모색하고 실현해 나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저도 예전에 대학진학을 준비하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 여기에 대해서도 다룬 적이 있습니다만, 이 자아실현이라고 하는 욕구는 다른
욕구들과 비교해서 조금 특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욕구는 비교적 단시간에 충족시킬 수 있어요.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르다면 뭔가를 먹거나 마시면 그 욕구는 충족되는 것이잖아요.
돈이 부족해요? 물론 조금씩 벌 수도 있겠지만, 까짓거 로또 한 번 당첨 되거나 누군가가 도와 주면 되는 것이잖아요.
하지만 이 자아실현의 욕구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일생을 통해서 성취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뭐 이렇게 가르치기도 했었습니다.
이와 같은 욕구단계설이라고 하는 것이, 참 그럴 듯하게 들리기도 합니다만, 그런데 잠깐만요.
이 주장대로라고 한다면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안전의 욕구도 없고 애정에 대한 욕구도 없다는 것이
되잖아요.
쉽게 말해서 사람이 일단 배가 부르고 등이 따스워야 안전에 대한 욕구도 챙기고, 그리고 안전이 확보 되어야지만 애정도 하고 명예를
얻고자 하기도 하고, 이게 다 충족 되어야지만 마지막에 가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시면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일단 배를 채울 걱정부터 하라고 말씀하시나요?
오늘 본문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마태복음 6장 31절~33절
“31.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앞서 살펴본 욕구단계절에 의하면 일단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말하자면 생리적인 욕구에 대한 염려를 먼저
해야 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채워져야지만 더 윗단계로 올라갈 수 있으니까 일단 의식주 걱정, 돈 걱정, 먹고 살 걱정부터 먼저 하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아니다. 순서가 잘못되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걱정, 먹고 살 걱정은 나중에 해? 아니야, 그런 걱정은 아예 할 필요가 없어.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란 말이야.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말씀,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신실하시고 경건하신 여러분께서는 차마 입밖으로 말씀은 안 하시겠지만,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이고, 참으로 세상 물정을 모르셔도 한참 모르시네.
아니, 내가 가만히 있으면 누가 밥 먹여줘?
믿음도 좋고 신앙도 좋고 하나님도 좋고, 예수님도 좋고 성경도 좋고 복음도 좋고 다 좋지만, 아니 일단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야.
지금 무슨 배고프고 춥고 굶어 죽게 생겼는데 무슨 하나님 나라고 하나님의 의 타령이냐.
뭐, 솔직히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주님께 이런 식으로, 말하자면 투정을 부리면, 주님께서는 뭐라고 하세요?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보실까요.
마태복음 6장 31절~33절
“31.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걱정은 이방인, 그러니까 믿음이 없는 사람이나 하는 걱정이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이방인은 왜 그런 걱정을 하는 것일까요.
이유는 다음에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그런 걱정을 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는 이미 다 알고 계시다고 하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으세요. 그러니까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은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렇다면 단순히 하나님이 알고 계시기만 하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실제로 우리에게 주어져야지만 의미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이를 우리가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까.
마태복음 6장 33절 전반부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자, 여기서 일단 우리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가 잘 아는 주기도문에 보시면 참고가 됩니다.
마태복음 6장 10절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시기를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는 어떤 나라이기에 그 나라가 임하시기를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성경에 보시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이사야 11장 6절~8절
“6.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참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입니까.
육식동물이 초식동물과 어우러져 놀아요,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서로를 위하고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젖 먹는 아이가 독사 구멍에서 장난을 친다고 하니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는 단순히 무슨 동물의 왕국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땅에서도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 아니, 강한 나라와 약한 나라가 서로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이 아니라 서로 함께 어우러져 사는
세상,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 아니겠습니까.
자, 그렇다면 여기에는 무엇이 없습니까. 그것은 바로 탐욕이 없는 세상인 것입니다.
앞서 매슬로의 욕구단계설로 본다면, 아니, 무슨 의식주 욕구가 해결되면 그 윗단계로 넘어가요?
지금 인간세상을 보십시오. 넘어가긴 뭐가 넘어갑니까.
돈이 곧 안전이요, 돈이 곧 애정이요 돈이 곧 명예이자 돈이 곧 자아실현 아닙니까.
그런데 무슨 돈이 최하위 욕구예요. 오히려 최상위 욕구, 아니 욕구의 처음과 나중이 온통 이 돈에 대한 욕구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돈을 좋아하는 사람들, 돈을 많이 축적하려는 사람들을 싸잡아서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꼭 돈 많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나쁜 사람들이라고는 할 수 없잖아요.
돈이 많건 적건 간에 많은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도 자신의 힘이 닿는 데까지 그저 돈과 재산을 축적합니다.
요즘에는 서울에 집 한 채 마련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하는데 얼마전에 인터넷 자료에 의하면 이 좁은 땅덩어리에 집이 10채
이상을 가진 사람이 3만 7천명이라고 합니다.
저 같은 사람한테서 보면 그 정도면 평생 먹고 살 만큼 넉넉한 돈과 재산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돈을 모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왜 그런 것일까요.
이유야 여러 가지 있겠습니다만, 그 근본에는 바로 <불안함>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아무리 돈과 재산을 모아도 불안한 거예요. 왜냐하면 세상에는 <이 정도 돈이 있으면 아무런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기준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예, 마치 소금물을 마시듯이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욕구, 탐욕이라는 이름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끊임없이 부를 축적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탐욕이라고 하는 시커먼 웅덩이 속만 바라보던 눈을 들어 고개를 돌려 보면 어떻습니까.
주위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애정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우리가 존중해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이 세상은 어떻습니까.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애정을 위해, 명예를 위해, 그리고 자아실현을 위해 우선 무엇을 하라? 예, 의식주 문제부터 해결하라는
것이 세상 생각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하늘은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생각, 즉 하나님의 의로 통치되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는 것은 어려운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판단할 때에 하나님 기준에서 판단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 기준에서 판단할 것인가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A인 것 같은데, 내가 배부르기 위해서 내가 이익을 보기 위해서는 B를 선택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다 B를 선택합니다. 바로 그 때 우리는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10절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여기서의 ‘사람들’이라고 하는 말씀에는 ‘나’라는 존재도 역시 포함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사람들’이라는 단어를 ‘나’로 바꾸어 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제 내가 나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나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나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여러분, 하나님의 의와 내 의 사이에서 망설이게 되었을 때에는, 어느 쪽은 선택해요?
예, 그렇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의를, 하나님의 기쁨을 선택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하나님의 의를 선택해야 합니까. 우리가 무슨 욕심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에요?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욕구를
가지면 안 됩니까.
아니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욕심을 가지십시오. 욕구를 가지십시오. 그러나 작은 욕심이나 욕구가 아닌 큰 욕심과 욕구를 가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따라 선택을 하게 된다면, 우리가 가난하게 산대요? 우리가 손해를 보게 된다고 말씀하십니까.
아닙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간구하고 하나님의 의를 따라 살아가게 된다면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해 주신다고 하시지
않습니까.
‘이 모든 것’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앞서 그 매슬로의 욕구단계설에 나오는 모든 욕구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서 욕구의 법칙은 무엇보다 돈과 재산을 모아야 하고, 그래야 다른 욕구들이 하나씩 채워지고,
마지막에 가서야 자아실현, 자신의 삶에 있어서 진정한 의미를 찾게 된다고 하는데, 하나님 나라에 있어서 욕구의 법칙은 그게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시기를 기도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의에 따라 살아가게 된다면 이 모든 욕구를
우리에게 채워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일본에 있을 때 보면 밀크보이라고 하는 개그 만담 콤비가 있습니다만, 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 중에 ‘시리얼’을 주제로 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 중에 보면 한 사람이 그래요.
자기 엄마가 좋아하는 아침식사가 있는데 그 이름이 생각 안 난다고 해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달고 빠삭빠삭 하고 우유를 부어서 먹는 거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상대방이 아, 그건 시리얼이네. 틀림없어 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다른 한쪽이 말하기를, 자기도 시리얼인 줄 알았는데 자기 엄마가 말하기를, 나중에 자기가 죽기 직전에 먹을 마지막 식사로도
그걸 먹고 싶다고 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상대방이 뭐라 그러냐 하면, 그럼 시리얼이 아니겠네. 인생 마지막 식사로 시리얼이 좋을 리 있겠어? 그러면서 하는 말이,
시리얼은 아직 수명에 여유가 있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거야.
라고 하는 것이에요.
제가 이렇게 말하면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만, 실제로는 상당히 재미있는 내용입니다.
생각해보면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더구나 믿음이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도 어느 쪽이 올바른 선택인지, 어느 쪽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택인지 알지요. 왜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람에게, 더 구체적으로는 나에게 기쁨이 되는 쪽을 선택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 수명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있는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그 날까지 아직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잘 아는 말씀 있잖아요.
누가복음 12장 15절~21절
“15.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자신의 수명에 아직 여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든, 그리고 때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으고 부를 축적하려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오늘 너의 수명이 끝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하는 것이지요.
주님은 언제 다시 오신대요?
누가복음 12장 40절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요한계시록 22장 7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22장 20절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예, 주님은 언제 오시는가 하면, 그것은 바로, 생각하지 않은 때에 오신다고 하십니다. 속히 오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무엇을 하고 있으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하시는 것이지요.
이제부터 우리는 언제 어느 때에 내 수명이 다 하게 되더라도, 그리고 언제 어느 때에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 하더라도, 내 욕구와
내 이익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께 드리는 기쁨을 구하는, 하나님 나라의 법칙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누르고 흔들어 넘치는 축복을 받으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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