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면류관 강해 7번째 시간으로서 “제사장 엘리와 두 아들들” 그 두 번째 시간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자, 오늘도 면류관 강해의 핵심구절인 요한계시록 3장 11절을 함께 읽고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1절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아멘.
지난 시간에는 엘리의 두 아들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만, 오늘은 그의 아버지 엘리 제사장에 대해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것처럼 사사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직무 수행에 있어서는 제사장적인 역할이
강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무엘을 주셨는데, 한나는 자신의 서원대로 아들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그렇다고 무슨 가축처럼
죽여서 제물로 바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전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한 것이지요.
그래서 사무엘은 제사장 엘리 밑에서 자라면서 하나님 섬기는 직분을 감당하게 됩니다.
한편 엘리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지난 주에 살펴본 것처럼 그들에게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잘못을 하나님께서는
일차적으로 두 아들에게 돌리기 보다는 그들의 아버지인 엘리에게 있다고 지적하십니다.
사무엘상 2장 27절에서 36절에 보시면 이름도 밝히지 않은 하나님의 사람이 불현듯 나타나서 엘리를 책망합니다.
우선 이 말씀을 조금씩 살펴볼까요?
먼저 사무엘상 2장 27절에서 29절까지 보시겠습니다.
사무엘상 2장 27절~29절
“27.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조상의 집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아니하였느냐
28.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내가 그를 택하여 내 제사장으로 삼아 그가 내 제단에 올라 분향하며 내 앞에서 에봇을 입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자손이 드리는 모든 화제를 내가 네 조상의 집에 주지 아니하였느냐
29.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노예로 살아가고 있던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어 내어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모세의 형인 아론을
제사장으로 삼아 대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직분을 감당하게 한 것이지요.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을 점령하여 땅을 분배할 때를 보시면, 다른 지파 사람들과 달리 레위 지파 사람들은
나누어 받은 분깃이 없습니다. 말하자면 땅을 분배 받지 못했어요.
그렇다면 그것은 안 좋은 것이냐 하면,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지파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자신들이 분배 받은 땅에서 열심히 땀 흘리며 일을 해야 했습니다만, 레위 지파 사람들은 세상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전을 섬기는 일에만 전념을 하면서 사람들이 가지고 온 제물 중에 일부를 하나님께 바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일정부분을 자신들이 취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남들은 하나님도 섬기고 세상일도 해야 했지만, 그들은 온전히 하나님 일만 하면 되는 그와 같은 직분이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축복이겠습니까.
아론의 자손들은 이처럼 은혜를 입은 집안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하나님 일을 하는 데에 정진해야 하잖아요.
그러나 이 하나님의 사람이 하는 말씀에 의하면 그들 즉 엘리 집안 사람들은 어떤 일을 저질렀다고 하십니까.
우선 그들은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과 예물을 밟았다고 합니다.
이는 지난 주에 살펴본 바와 같이 그들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제물이나 예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자신들이 멋대로 취하거나
다루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다음으로 엘리에게 말합니다.
너는 네 아들들을 하나님보다 중히 여겨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치는 예물 중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하나님께 드리기보다도 자신들이
취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무슨 말씀입니까. 네 두 아들들이 한 짓은 잘못했지만 그 이유는 엘리 제사장 네가 하나님보다도 네 아들들을 더 소중하게 여긴
까닭이 아니냐. 1차적인 문제는 두 아들이 아니라 너한테 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시겠다고 하십니까.
사무엘상 2장 30절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집에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겠다고 했으나 이제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겠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는 내가 존중히 여기지만 나를 멸시하는 자는 내가 멸시하기 때문이라고 하세요.
그러면서 이제 엘리 제사장 집안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상 2장 31절~36절
“31.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
32.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내리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원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
33.내 제단에서 내가 끊어 버리지 아니할 네 사람이 네 눈을 쇠잔하게 하고 네 마음을 슬프게 할 것이요 네 집에서 출산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
34.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 둘이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35.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36.그리고 네 집에 남은 사람이 각기 와서 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를 위하여 그에게 엎드려 이르되 청하노니 내게 제사장의 직분
하나를 맡겨 내게 떡 조각을 먹게 하소서 하리라 하셨다 하니라”
이 말씀에 의하면, 우선 엘리 집안 사람들의 수명을 단축시키겠다고 하십니다. 다른 집안에는 축복이 임해도 너희 집안에는 환난이
닥칠 것이고 영원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오래 살았다 하더라도 눈이 어두워지고 마음이 슬퍼진다고 하세요.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씀이세요?
너희 자손들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들이 젊어서 죽을 것이고, 어쩌다가 오래 산다 하더라도 건강이 나쁘고 슬픈 일들만 있을
것이라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이게 다 누구 때문이라고요? 예, 바로 제사장 엘리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당시 상황으로 보았을 때 이와 같은 말씀은 쉽게 믿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나 봅니다.
어쩌면 그들의 집은 크고 재물도 많고 그리고 건강한 사람들도 많아서, 에이, 아무리 그래도 설마 우리 집안에 그런 일이 일어
나겠어?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말한 일이 틀림없이 일어나는데, 네 두 아들이 같은 날에 죽게 되는 것이 바로 그 증거라고 하세요.
그리고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너 대신 충실한 제사장을 세울 것이니 너희 집안 사람들은 그 사람한테 가서 푼돈으로
허드렛일을 구걸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절망스러운 저주입니까.
이런 말을 들었으면 어떻게 해야 해요. 아이구 하나님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제부터 이놈의 자식들부터 엄하게 가르쳐서
바로잡게 하든지, 그래도 안 된다면 당장에 그 직분을 빼앗아버리겠습니다. 이렇게 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런 무서운 말씀을 듣고도 제사장 엘리가 회개 했다거나 용서를 구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어요.
성경에 보면 어떤 사람이나 어떤 나라를 심판하려고 하실 때에는 일반적으로 한 번만 경고하지 않으십니다. 어서 돌아오라, 제발
돌아오라,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간곡하게 말씀하십니다.
엘리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셔도 안 들으니까 이제 어린 사무엘을 통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사무엘상 3장 11절~14절
“11.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12.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13.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14.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셨더라”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엘리의 집에 내리겠다고 한 심판을 이룰 것이다. 이는 그 자신도 알고 있는 죄악 때문이다. 자기
아들들이 저지르고 있는 죄를 금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시지요.
자, 엘리에게는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엘리는 이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을 듣고 뭐라고 말했습니까.
사무엘상 3장 18절
“사무엘이 그것을 그에게 자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그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니라”
어린 사무엘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엘리는 “하나님께서 선하신 대로 할 것이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잘 하실
것이다”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에요.
여러분께서 들으시기에는 어떻습니까. 대단히 믿음이 좋은 사람의 말처럼 들리시나요?
여러분, 지금은 무엇이 필요할 때였습니까. 그렇죠. 회개가 필요했습니다. 용서를 구하는 간절한 기도가 필요했던 것이지요.
지금이라도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이렇게 눈물로 기도를 드렸더라면 상황은 바뀌었을 지 모르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역시 이번에도 그의 입에서 회개나 용서를 구하는 기도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무지해서 였을까요. 아니면 자존심 때문이었을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설마 그럴 리야 있겠는가 하는 방심
때문이었을까요.
엘리 제사장은 이번에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실로 끔찍했지요.
사무엘상 4장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천적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블레셋과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지난 주에 사사라고 하는 사람의 중요한 역할이 무엇이라고 말씀 드렸습니까. 그것은 바로 군사 지도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전쟁이 벌어졌다면 당연히 그 선두에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어야 했습니다만, 엘리의 모습은 전쟁터에 없었습니다.
사무엘상 4장 15절에 의하면 당시 그의 나이가 98세였다고 하는데, 고령이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18절의 기록처럼 몸집이
무거워였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본래부터 군사지도자 적인 역할을 감당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찌 되었든 그는
전쟁터에 나가지 않고 동네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은 민족, 선민이었다면 한낱 이방인들에게 질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4장 2절에 의하면 그 때까지 사망한 이스라엘 군인이 4천명이나 되었다고
하니 이게 보통 일입니까.
이제 그들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사실 전쟁에 패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만 합니까.
여호수아 7장에서 전쟁에 패배한 여호수아와 장로들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패배의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승리할 수 있는지를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블레셋 군에게 패배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기서 결정적인 판단착오를 합니다.
그들은 승리하기 위해서 실로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전쟁터에 가지고 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전쟁에 졌을 때 언약궤를 가져오면 승리한다는 일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기보다도 자신들의 지혜를 믿었습니다. 즉,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도 자신들의 생각을 의지했던
것이지요.
이제 하나님이 오셨는데 어찌 전쟁에서 질 수가 있겠습니까. 언약궤가 전쟁터 진영으로 들어오자 이스라엘 군대는 승리를 확신하면서
환호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조금 길지만 읽어 드리겠습니다.
사무엘상 4장 6절~11절
“6.블레셋 사람이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히브리 진영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찌 됨이냐 하다가 여호와의 궤가 진영에
들어온 줄을 깨달은지라
7.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이르되 신이 진영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이르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날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8.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9.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되지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10.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11.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이스라엘 진영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 블레셋 사람들은 이제 자신들이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낀
나머지 오히려 더욱 힘을 내어 싸우게 되었고, 10절에 의하면 이스라엘 군대는 사기가 오른 블레셋 군대에게 대패하여 희생자가
3만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아니, 이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언약궤가 오기 전에는 이스라엘의 희생자가 4천명이었는데, 언약궤가 오니까 승리하기는
커녕 희생자가 일곱 배 이상이나 늘어난 3만명이었다고 하잖아요.
어디 그 뿐인가요. 하나님의 언약궤는 빼앗기고 말았고 하나님의 사람이 예언했던 것과 같이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같은
날 전장터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어떻습니까. 괜히 언약궤를 가져온 바람에 그들은 승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처참하게 패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빼앗긴 언약궤가 가짜였습니까. 아닙니다. 빼앗긴 언약궤는 블레셋 진영으로 운반된 뒤에도 이적을 나타냈습니다. 그
언약궤는 분명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진정한 언약궤였던 것이지요.
그러면 왜 이스라엘 군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지고 말았던 것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은 언약궤를 통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단순히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하나님의 언약궤를
싸구려 우상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예를 들어 성경책을 아무리 비싼 재료로 만들었다고 해도 그건 그냥 책에 불과합니다. 그 책 자체에는 어떠한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성경책은 어디에 가치가 있습니까.
그렇지요. 그 책에 적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왔을 때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지, 읽지도 않는 성경책을
가방에 넣고 다닌다거나 차에 싣고 다니면서 성경책이 자신을 지켜준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성경의 능력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경책을 싸구려 우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목걸이 같은 것도 마찬가지지요. 그런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십자가 목걸이나 장식을 하고 다니거나, 아니면 집 같은 데에 걸어 두면서, 그것을 볼 때마다 예수님의 십자가,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 살아나 주신 예수님을 묵상하게 된다면 이는 은혜롭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를 무슨 마치 싸구려 부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십자가 목걸이가 나를 지켜줄 것이다? 십자가를 걸어 놓으면 우리 집에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고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다닌다거나 십자가를 걸어놓게게 된다면 이는 그야말로 주님의 십자가를 우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와 같은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던 것입니다만, 이에 대해서 미리 사전에 만류해야 할 사람이 있지 않았습니까.
당시에는 그 역할을 누가 했어야 했습니까.
그렇죠. 사사이자 제사장이었던 엘리가 그와 같은 지도력을 발휘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엘리는 분명 자신이 책임 지고 관리했을 언약궤를 가지고 나가는 것에 대해서 제지하지도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를 결정한 이스라엘 장로들은 애초에 엘리에게 의견을 묻지도 않았어요.
이를 보더라도 엘리의 지도력이 얼마나 땅에 떨어졌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제 이스라엘이 패하고 하나님의 언약궤가 블레셋의 손에 넘어갔고 자신의 두 아들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엘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무엘상 4장 18절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
엘리는 자신의 두 아들이 죽었고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들은 엘리는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제사장 엘리, 그의 아들들이 저지르는 잘못을 막기는커녕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데이
여념이 없었던 제사장 엘리, 이제 그와 그 두 아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고, 그에게 주어졌던 면류관은 빼앗겼으며 그 집안에
주어졌던 촛대는 옮긴 바가 되어 이스라엘의 지도자 자리는 이제 엘리의 자손이 아닌 사무엘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 일반 성도도 아닌 제사장이나 사사라고 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큰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까. 누가 보더라도 그 사람의
구원은 약속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엘리나 그 두 아들들이 결국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 죽게
되었는데, 그 후에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영광의 면류관을 받았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 과연
성경적입니까.
오히려 성경은 우리가 받은 면류관을 빼앗기지 말도록 경고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촛대를 옮길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13절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제 우리 모두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견디며 감당함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기쁨의 면류관, 영광된
면류관, 그리고 생명의 면류관을 모두 받으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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