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면류관 강해 4번째 시간으로서 “아름답고 광대한 축복”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자, 오늘도 면류관 강해의 핵심구절인 요한계시록 3장 11절을 함께 읽고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1절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아멘.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친히 모세에게 내리신 말씀이셨습니다.
당시 모세는 어떻게 지내고 있었습니까. 그는 태어나서 40년 동안 애굽에서 왕자로 자랐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사람을 해치게
되어 결국 광야로 돌아와 또 40년 동안 쓸쓸하게 보내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제 그의 나이 80세였습니다.
한편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400년 가까이 되는 동안 애굽에서 노예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 때까지를 한 번 간략하게 정리해보도록 할까요.
지난 주에 잠시 살펴보았던 아브라함의 손자이자 이삭의 아들 중 하나인 야곱이 있지요. 그의 아들인 요셉이 그의 형들에 의해
노예로서 애굽으로 팔려가게 됩니다. 그의 나이 열 일곱 살 때의 일이지요.
그리고는 노예로 살다가 그것도 모자라서 억울하게 옥살이까지 하게 됩니다. 그러나 애굽으로 팔려간 지 13년 만에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시자, 그는 애굽의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총리가 되어서 애굽을 다스리는 위치에 오르게 됩니다.
그로부터 7년 동안에는 풍년이 들더니 그 이후에는 극심한 흉년이 들어서 애굽 외에는 모두 아사 직전이 되지요. 그러나 애굽에는
요셉의 지혜 덕분에 식량이 넉넉했습니다.
이제 요셉은 그의 아버지 야곱과 일가족 모두를 애굽으로 불러들이게 되지요.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식량 걱정 없이, 뿐만
아니라 애굽의 총리 가족으로서 풍요로운 삶을 보내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그와 같이 좋은 환경 속에서 나날이 수가 늘어 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요셉을 비롯하여 그 세대 사람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고 새로운 지도자들이 등장하게 되자, 이제 그 사람들의
생각이 바뀝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네 나라에 수많은 이민족이 있게 된다면 전쟁이 일어났을 때 배신을 할 수 있다. 이대로 놔둘 수는 없다고 해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강제노역에 동원하기 시작하고, 점차 노예로서 고된 삶을 강요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이는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일은 이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내용이에요.
창세기 15장 13절~14절
“13.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하나님께서는 벌써 한참 전에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구체적으로 어느 나라라고까지는 언급하지 않으셨지만, 이 말씀에 의하면 이방
나라에서 400년 동안 이방 나라에 살면서 괴롭힘을 당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출애굽기 12장 40절입니다.
출애굽기 12장 40절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
이상하죠? 하나님께서는 400년 동안 이방 나라에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기록에 의하면 그것보다 30년이나 지났잖아요.
이 말씀을 보고 누구는 그렇게 말합니다. 아니, 400년이라고 하면 400년 만에 풀어 주시거나 하실 일이지, 왜 30년이나 더
괴롭힘을 당하게 내버려두신 거냐.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 그게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계산을 잘못하신 거냐. 뭐, 그러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지만 이는 성경을 오해했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이에요.
자, 지금 시리즈로 전해드리고 있는 말씀은 주제설교가 아니라 강해이기 때문에, 같이 공부하는 의미로 우리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방금 말씀드린 구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떻습니까.
창세기 15장 13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여기서는 400년 동안 이방 민족이 괴롭힐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출애굽기는 어떻습니까.
출애굽기 12장 40절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괴롭힘을 당한 기간이 아니라 단순히 거주한 기간을 가리키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 거주한 기간은 비록 430년이긴 하지만, 괴롭힘을 당하는 기간은 400년이 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야곱과 그의 가족들이 당시 총리였던 요셉의 부름을 받아 애굽에 들어갔을 때부터 노예로 살았던 것은 아니잖아요.
초반에는 안락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노예로서 살기 시작했다는 것인데, 성경에 의하면 구체적으로 노예로서
살았던 기간이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우선, 성경기록에 의하면 요셉이 나이 서른에 총리가 되고 7년 동안 풍년이 있은 다음에 7년 동안 가뭄이 들었다고 하지요.
창세기 45장 6절에 의하면 요셉이 가족들을 불러들인 것이 7년 풍년이 끝나고 흉년으로 접어들고는 2년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풍년부터 계산하면 9년 뒤인 셈이지요.
이를 근거로 단순계산을 한다면, 나이 서른에 총리가 되고 난 다음, 그의 가족들이 애굽으로 들어간 것은 9년 뒤이니까 요셉의 나이
39세 때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마지막인 50장 26절에 의하면 요셉이 110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요셉이 39세 때 야곱과 그의 가족이 애굽으로 들어왔고, 그가 110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면, 야곱과 그의 가족이 애굽으로
들어가서 총리로 있던 요셉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최소한 70년은 평안하게 살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출애굽기 12장 40절에 의하면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지 430년 만에 나왔다고 하니까,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살았던 전체 기간인 430년 중에서 요셉이 세상을 떠나기까지 70년을 뺀다면 360년이라는 기간이 나오죠?
그러니까 요셉이 세상을 떠난 다음 곧바로 그들의 노예생활이 시작했다고 해도 430년 빼기 70년이라고 한다면, 아무리 길어도
360년 동안 노예로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본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이 괴롭힘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400년 보다 무려 40년이나 그 기간을 줄여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360년이라고 하는 기간이 어디 짧습니까.
우리나라가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36년이라고 해도 대단히 긴 세월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들은 애굽에서 36년도 아닌 최대 360년 동안 노예살이를 하면서 괴롭힘을 당했다고 하니 얼마나 길었겠습니까.
혹시 여러분께서는 어렸을 때의 꿈을 이루셨습니까.
사실 꿈을 꾸는 데에 동서고금, 남녀노소, 그리고 빈부귀천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난 2024년 11월 15일자 신문에 보니까 올해 수능 응시자 중에서 83세 되는 할머니도 계셨다고 하고, 그리고 작년
2023년 2월에는 94세 되는 할아버지가 대학을 졸업하셨다고 합니다. 참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하지만 노예라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노예는 태어날 때 노예면 죽을 때까지 노예입니다. 노예는 꿈이 없습니다. 소망도 없습니다. 일거수일투족 자신이 무엇을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주인이 하라는 대로 해야만 해요. 자신을 위한 삶도 없습니다. 자신의 주인을 위해 태어나서, 평생동안 주인을 위해
살다가 가는 인생이 노예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자, 여기서도 잠깐 공부 좀 하고 갈까요.
과연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으로 보내셨던 것일까요. 그들이 미워서 그러셨을까요?
이번 말씀을 준비하면서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인구의 증가율을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그러자 대단히 흥미로운 사실을 알았어요.
한국이나 일본을 본다면 대략 100년 동안에 3배에서 4배 정도의 인구가 증가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100년에
4배라고 한다면 400년이면 16배잖아요? 이는 세계적으로 보아도 대략 추세가 비슷해요.
세계인구가 1600년에는 5억 정도였는데, 400년 뒤인 2024년대에는 80억이 되었으니 이것도 정확히 16배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인구는 대략 100년에 4배 정도, 400년이라면 16배 정도 증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점엔 대해서는 이해가 되셨지요?
그렇다면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의 증가속도를 보겠습니다.
창세기 46장 26절~27절
“26.야곱과 함께 애굽에 들어간 자는 야곱의 며느리들 외에 육십육 명이니 이는 다 야곱의 몸에서 태어난 자이며
27.애굽에서 요셉이 낳은 아들은 두 명이니 야곱의 집 사람으로 애굽에 이른 자가 모두 칠십 명이었더라”
여기에 보시면 며느리들을 제외한다고 하면 아이들까지 합한 숫자가 70명이라고 하지요?
그러니까 며느리까지 남녀노소 모두 합친 숫자를 본다면, 좋습니다. 반올림까지 한다고 치고 넉넉잡아서 약 100명이라고 해보죠.
자, 요셉이 애굽의 총리일 때, 처음에는 약 100명이 애굽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430년 뒤에 나올 때에는 인구가 얼마였다고
말씀드렸는지 기억하시나요?
출애굽기 12장 37절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서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자손들을 세어보니까 장정, 그러니까 성인 남성의 수가 60만명이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신학자들은
남녀노소를 다 합치면 대략 200만명 정도가 되었을 것이라고 추산을 해요.
그렇다면 이게 어떻게 됩니까. 처음에 애굽에 들어갈 때를 약 100명이었다고 한다면 나올 때는 몇 명이요? 예, 200만명이라고
한다면 430년 동안에 몇 배가 늘어난 거예요?
100명에서 200만명, 400년 사이에 2만배가 증가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평균이 400년 동안에 16배인데 이스라엘 자손들은 20배도 아니고 2만배가 증가했어요. 세상에 이렇게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경우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애굽이라는 환경에 둠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자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도록 역사하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도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약속을 이루신 결과입니다.
창세기 22장 17절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당시 아브라함은 아들 하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아들 하나가 아니야. 너의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게 해줄 거야.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까.
요즘 사람들은 뭐 이런 말을 별로 기뻐하지 않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시면 어떻습니까.
지금 밥 한끼 먹을 돈이 없어요. 아니면 한달 치 집세를 낼 돈이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의 재산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게 해줄게……. 이러면 당시 아브라함의 마음이
좀 와 닿지 않을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정도로 놀라운 말씀을 해 주셨던 것입니다.
자, 이제 그 수가 이제는 한 가정이 아니라 한 나라의 민족을 이룰 정도로 늘었어요.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시점에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그런데 모세를 부르실 때의 말씀을 우리는 주목을 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3장 8절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들로 하여금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꿈도 없고 희망도 없이, 남의 나라에서 노예로 살고 있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해방시켜 주실
뿐만 아니라,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는 마치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축복처럼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집도 없고 재산도 없고, 그리고 자유도 소망도 없이 종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한테, 최고로 좋은 집과 넉넉한 재산을
주시겠다는 것보다도 더욱 놀라운 일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들을 위해 축복을 예비해 놓으셨어요.
그리고 어떻게 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그들을 이끌어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나일 강을 피로 만들고, 개구리와 이와 파리를 통해서 재앙을 내리시고, 질병과 자연재해와 마지막에는
장자를 치시는 이적을 통해서 마침내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십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출애굽기 14장에 의하면 그들 앞에 놓인 홍해를 갈라 여성들과 아이들을 포함한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추격해오던 애굽의 최정예부대를 모두 전멸시키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여러분, 지금까지 장황하게 말씀드린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놀라운 땅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시려는 마음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요?
예, 그렇습니다. 모세가 태어나기 전, 아니, 야곱이나, 이삭도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미 그와 같은 놀랍고도 기쁜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거예요. 그리고 단순히 마음속으로 생각만 하고 계셨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 준비를 차곡차곡 진행하고 계셨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을 통해서만이 아니에요. 400년 동안 애굽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폭발적으로 늘리셨을 뿐만 아니라
모세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아무리 옥토였던 곳이라 하더라도 땅이라고 하는 것은 놔두면 폐허가 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그렇죠. 가나안 여섯 족속을 시켜서 그 땅을 부지런히 가꾸도록 만드셨던 것이지요.
가나안 사람들은 그 거기가 자기들을 위한 땅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시려고, 그들을 시켜서 열심히 가꾸게 하셨던 것 아니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수 백 년에 걸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줄 어마어마한 축복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철저하게 준비하셨어요. 이
축복의 주인은 이미 정해진 것이잖아요. 이 세상에서 바로 이스라엘 자손에게만 주어진 영광된 축복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면 이를 차지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성경은 무엇에 대한 책이라고 말씀드렸지요? 예, 순종에 대한 책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께 순종만 하면 이 모든 축복이 주어진다는 점은 이미 기정 사실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 바로 앞에까지 왔습니다.
민수기 13장 1절~2절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 그들의 조상의 가문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
하나님께서는 이제 가나안 땅으로 정탐을 보내도록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모세는 각 지파에서 한 사람 씩을 뽑아 총 열두명을 가나안
땅으로 정탐을 보냅니다.
이제 그들이 40일 동안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서 보고를 하는데, 그 땅이 어떻다고 합니까. 아주 황폐하고 쓸모없는 땅이래요?
아닙니다.
민수기 13장 25절~27절
“25.사십 일 동안 땅을 정탐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26.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보고하고 그 땅의 과일을 보이고
27.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그들은 말합니다. 정말 놀라운 땅, 정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아름답고 광대한 땅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는 하나님 말씀에 거짓이 없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에게 주실 축복이 정말로 놀랍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잖아요.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렇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당장 올라가서 그 축복을 차지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있지요.
민수기 13장 28절~33절
“28.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29.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30.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31.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2.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이는 뭐예요? 예, 거기 있는 이방민족이 너무 강해서 우리는 그 땅을 차지하지 못할 것 같다는 것입니다.
자, 지금 생각해보세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명료합니다. 너희들을 위해서 좋은 땅을 몇 백 년에 걸쳐 준비해 놨어. 너희도
가서 직접 봤지? 그러니까 이제 그 땅을 차지하면 돼.
하지만 이스라엘 자손들은 말합니다. 거기 있는 사람들이 너무 강해 보여서 저희는 차지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러고 있는 것이잖아요.
이를 보고 정탐꾼 중 두 명인 여호수아와 갈렙은 말합니다.
민수기 14장 6절~9절
“6.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7.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말합니다.
이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거기 있는 백성들을 보고 두려워하지 마. 우리가 봐야 할 것은 거기 사는 백성들이 아니라, 그
땅이 얼마나 아름답고 광대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된 땅이냐 하는 거야. 그 땅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시기로 했어. 그러니까
당장 올라가서 차지하자.
그러나 좌절과 절망감에 사로잡힌 그들은 듣지를 않습니다.
민수기 14장 1절~3절
“1.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2.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3.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이 모습을 보면 저는 물위를 걸었던 베드로가 생각납니다. 그는 예수님 말씀을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물위를 걸었습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폭풍이 몰아치는 물위를 걸어갔어요.
하지만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렇죠.
마태복음 14장 30절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베드로가 담대한 믿음을 가졌으면 예수님만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는 예수님이 아니라 바람을 보게 되자 두려움에
사로잡혀, 결국 물속으로 빠져갔다고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손가락으로 실험을 해보면 금방 압니다. 멀리 보면 자세히 보이더라도 손가락을 눈앞에 두고 가까이만 본다면 멀리
있는 모습이 흐려져서 안 보이게 돼요.
마치 그런 식이지요. 우리가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면 이길 수 있는데, 주님이 아니라 코앞에 있는 바람을 바라보고 현실을 바라보게
되자 무서워서 실족하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의 3절 가사가 어떻게 됩니까.
“주 안에 기쁨 누림으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우리가 주님께 초점을 맞추면 우리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찾아오고는, 세상과 내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만 보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이 아닌 코앞에 있는 현실에 초점을 맞추면 어떻게 되겠습니다.
그렇죠. 구속한 주님은 간곳없고 세상과 나만 보이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된다고요? 예, 그렇죠. 마치 바람을 보고 물속으로 빠져버린 베드로처럼 우리 또한 현실 앞에서 실족하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로 이런 격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눈앞에 있는 현실을 보니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이제
도망가고 싶어요.
그래서 뭐라고 해요? 예, 차라리 우리가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왜 우리가 그들한테 죽임을 당해야 하는가 하고 난리를
치지 않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민수기 14장 26절~33절
“26.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7.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28.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29.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30.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31.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32.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33.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너희들이 지금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뒤에 들어가게 된다고 말씀하시나요?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잘 보세요.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정성 들여서 너희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는데 이걸 못 받겠다고? 차라리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겠다고?
좋아. 너희들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해주마. 사리분별이 있는 성인들 중에서, 내 말을 믿은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는 광야에서 다
죽을 거야. 가나안 땅에는 절대로 못 들어가.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정성 들여 준비하신 놀라운 축복을 한순간에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나 보죠? 저희가 지금이라도 올라가서 가나안 땅을 차지하겠습니다!
하고 자기들 멋대로 쳐들어갔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되었겠어요.
민수기 14장 39절~45절
“39.모세가 이 말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알리매 백성이 크게 슬퍼하여
40.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산 꼭대기로 올라가며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가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곳으로 올라가리니
우리가 범죄하였음이니이다
41.모세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제 여호와의 명령을 범하느냐 이 일이 형통하지 못하리라
42.여호와께서 너희 중에 계시지 아니하니 올라가지 말라 너희의 대적 앞에서 패할까 하노라
43.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너희 앞에 있으니 너희가 그 칼에 망하리라 너희가 여호와를 배반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나
44.그들이 그래도 산 꼭대기로 올라갔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모세는 진영을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45.아말렉인과 산간지대에 거주하는 가나안인이 내려와 그들을 무찌르고 호르마까지 이르렀더라”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들을 위해 준비하신 값진 선물을 내던지셨어요. 너희들에게는 안 주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나중에 그
사실을 깨달았다 하더라도 이미 버스는 떠나간 다음이에요.
하나님으로부터 크나큰 축복을 받기로 되어 있던 그들은 순종을 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면서 한 사람
두 사람 쓰러지게 되고 그들의 흔적은 광야의 모래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축복을 예비해 놓고 계십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을지라도, 놀라운 면류관, 아름답고 광대한 축복을,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눈앞에 있는 어려움을 보고 주님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축복을 차지할 수 있겠습니까.
마태복음 24장 13절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우리가 순종을 버리면 이스라엘 자손들을 향한 축복의 약속을 버려 버리셨듯이 우리를 향한 축복도 버리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끝까지 주님을 믿고 견디게 된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 주신 축복을 모두 얻게 되시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주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과 순종을 가지고 끝까지 견딤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약속하신 면류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과도 같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아름답고 광대한 축복을 모두 받으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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