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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5회 [면류관 강해 제6회] 제사장 엘리와 두 아들들 (1) - 이루리라선교회 홍성필 목사
 

홍성필 목사
이루리라선교회
www.이루리라.com
mail@IRURIRA.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3장 12절~14절
“12.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13.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14.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셨더라”    


설교 동영상

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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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면류관 강해 6번째 시간으로서 “제사장 엘리와 두 아들들”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정보량이 많기 때문에 오늘과 다음 주로 두 번에 나누어서 살펴 보고자 합니다.

자, 오늘도 면류관 강해의 핵심구절인 요한계시록 3장 11절을 함께 읽고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1절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아멘.

자, 오늘 이 시간에는 사무엘 상에 있는 내용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거주하는 동안에 이른바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두 부류가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지난 주에 살펴보았던 삼손과 같은 사사가 있고 그리고 두 번째는 제사장이라고 할 수 있겠죠.


지난 주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사사의 역할은 재판을 하기도 하였으며, 무엇보다 군사 지도자적인 임무도 감당 했었습니다.

사사가 총 몇 명이었느냐에 대해서는 어떤 기준으로 구분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하겠습니다만, 이 점에 대해서 대체적으로는 보통 12명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각각 열 두 지파로 나뉘게 되는데 사사들을 보면 그 지파가 다양합니다.


첫 사사인 옷니엘은 유다 지파이고, 왼손잡이 에훗은 베냐민 지파, 드보라는 에브라임 지파, 기드온은 므낫세 지파, 돌라는 잇사갈 지파, 야일과 입다는 길르앗 지파, 엘론은 스불론 지파이고, 삼손은 단 지파입니다.

그리고 사사의 경우에는 이처럼 지파가 다양하다는 점으로 알 수 있듯이 그 지위가 세습되지 않는다는 점도 특징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니까 사사의 아들이 사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때그때 세워 주시는 사람이 사사로서의 직분을 감당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사사는 계속해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도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느 시기는 사사가 있었지만 또 어느 시기는 사사가 없기도 했었습니다.

이렇게 정리를 하자면 사사는 첫째로 그 역할은 재판이나 군사 지도자였고, 둘째로 출신 지파가 다양했으며, 셋째로 세습되지 않는다는 점, 넷째로는 부재기간이 존재했다는 점을 그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반면에 제사장은 어땠는가 하면 이는 첫째로, 그 이름으로 알 수 있듯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직분, 말하자면 예배를 드리는 일을 감당하기 위해 세움을 받은 직분입니다.


둘째로 제사장은 다른 지파가 아닌 오직 아론의 후손인 레위 지파 사람들 만이 선출되었으며, 셋째로 제사장 직분은 세습하는 것이 원칙이었고, 그리고 넷째로, 그렇다 보니 당연히 부재기간 즉 제사장이 없는 기간은 존재하지 않았고 항상 누군가가 이 제사장 직분을 맡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 사무엘상은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 사람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는데, 그 이름이 브닌나와 한나였다고 해요.


그 중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었는데 한나에게는 없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래도 무슨 문제가 되나 하겠습니다만, 당시에는 이를 두고 브닌나가 한나를 괴롭게 했나 봅니다.

이를 보면 아브라함의 아내 하갈과 사라가 생각나지 않습니까. 본래 하갈은 사라의 여종이었죠.

그런데 창세기 16장에 의하면 사라에게 아이가 생기지 않으니까 자신의 여종인 하갈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아이를 가지려고 했는데, 정작 하갈이 아이를 갖게 되자 자신의 주인이었던 사라를 멸시하게 되잖아요.


여종이었던 하갈도 아이가 생기게 되자 주인을 멸시했다고 하는데, 브닌나와 한나는 같은 정실이었으니 오죽했겠습니까.

그래서 한나는 성전에 올라갔을 때 하나님 앞에 괴로워 하면서 기도를 드리지요.

사무엘상 1장 10절~11절
“10.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참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겠습니까. 그런데 이를 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사장 엘리였던 것이지요.

다음 구절을 보시겠습니다.

사무엘상 1장 12절~16절
“12.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13.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14.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15.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16.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엘리는 한나가 입술만 움직이며 간절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술 취한 줄 알고 말하기를 술을 끊으라고 권면을 했다고 하지요.


그래요. 일부 신학자들에 의하면 포도주는 당시에 여러 종교행사와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술에 취해서 주정을 하는 사람을 목격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고, 그리고 또한 당시에는 큰 소리로 기도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한나는 입술만 움직이며 기도를 드렸다고 하기에, 이를 보고 한나가 술에 취했을 것이라고 오해를 할 만한 소지가 있었다고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엘리는 지금 일반인이 아니에요. 제사장입니다.

그리고 지금 거기는 하나님의 성전이에요. 그런 그가 누군가를 권면한다는 것은 제사장이니 만큼 그의 말에 무게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제사장으로서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지금 가슴이 아파 애통해 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는 성도에게 지금 뭐라고 있습니까.

사무엘상 1장 14절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이는 생명의 말씀사에서 나온 현대인의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판 사무엘상 1장 14절
"그녀를 꾸짖었다. '언제까지 술주정만 하고 있을 작정이오? 당장 술을 끊으시오!'"

엘리는 말합니다. 아니,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아직도 술주정을 하고 있는 거야? 당장 술 끊어! 이렇게 아주 심한 말로 꾸짖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었습니까.

만약에 정말 그랬다고 하더라도 꾸짖거나 하려면 무슨 확실한 근거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술주정을 할 정도였다면 무슨 술냄새를 풍긴다거나, 아니면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친다거나 뭐, 그런 것도 없는데도, 그냥 자기가 보기에 그런 것 같다는 이유 만으로 다짜고짜 술주정뱅이로 몰아가면서 성도에게 혼을 낸다면 되겠습니까.

이는 지극히 신중하지 못한 처신이라고 하겠지요. 그래도 명색이 제사장이라는 사람이 기도인지 술주정인지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영적으로 어두워졌을 뿐만 아니라, 이웃에 대한 사려 깊은 배려 또한 상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와 같은 모스은 이후에 나오는 엘리의 성격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좀 아쉬운 제사장 엘리입니다만, 그에게는 또 하나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두 아들이었지요.

엘리에게는 홉니와 비느하스라고 하는 두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엘리는 그가 술주정을 하고 있다고 착각한 한나가 낳은 아기 사무엘을 하나님의 전에 살면서 양육하게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어린 사무엘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게 오늘 본문이에요.

사무엘상 3장 12절~14절
“12.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13.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14.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셨더라”

여기서 특히 13절을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현대인의 성경판으로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다.

현대인의 성경판 사무엘상 3장 13절
“나는 엘리의 아들들이 행하는 악에 대해서 그 가족을 영원히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해 주었으나 그는 자기 아들들이 저주받을 짓을 계속하는 것을 보고도 그것을 제지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엘리 만이 아니라 엘리의 집 전체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엘리의 아들들이 악을 행하고 있었다는 것이 첫째 이유이고, 둘째는 이런 저주 받을 짓을 계속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도 아버지인 엘리는 이를 막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자, 그렇다면 엘리의 두 아들은 무슨 짓을 저질렀기에 하나님께서는 이토록 분을 내셨던 것일까요.



사무엘상 2장 12절~16절
“12.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13.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관습은 이러하니 곧 어떤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 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14.그것으로 냄비에나 솥에나 큰 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가지되 실로에서 그 곳에 온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 뿐 아니라
15.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날 것을 원하신다 하다가
16.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지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였으니”

이 부분은 조금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에 간단하게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첫째로, 레위기 7장 28절~34절에서 화목제를 드리는 규정에 있는데, 그 규정 의하면 제사를 드리려는 사람이 제물을 가져오면, 우선 기름은 제단 위에서 불살라서 하나님께 바칩니다. 그리고 가슴과 뒷다리만 제사장이 취하고 나머지는 제물을 가져온 사람에게 돌려주어야 하는데, 그들은 다른 부위도 내놓으라고 요구했습니다.

둘째로, 방금 말씀 드린 대로 제물을 바칠 때에는 우선 기름을 먼저 태워서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데, 기름을 태우기도 전에 먼저 고기를 내놓으라고 요구를 하기도 했으며, 셋째로는 삶은 고기가 아니라 자기 멋대로 고기를 구워 먹겠으니까 삶기 전에 날고기를 내놓으라고 하기도 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왜 그런 짓을 했다는 것입니까. 그 이유를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지요.

사무엘상 2장 17절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그렇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했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아니, 생각해보세요. 그들이 지금 일반 평민입니까. 아니에요. 제사장 집안입니다. 자기 아버지가 제사장이고 뿐만 아니라 사무엘상 1장 3절에 의하면 두 아들들도 제사장 직분을 감당했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런 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멸시해요? 이것이 어찌 용서 받을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그들의 죄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무엘상 2장 22절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의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예나 지금이나 교회가 부패하는 모습은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 지 모릅니다.

항상 세 가지 요소, 물질과 권위와 그리고 성적인 문제로 타락하지 않습니까. 율법으로 정해진 것 외에도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하나님 말씀보다도 자신들의 방식을 강요하고, 그리고 성적인 문란으로 인한 타락.


여기에는 믿음도 말씀도 행함도,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도 없습니다. 지금도 그와 같이 타락해 가는 교회가 수없이 많다고 하지 않습니까.

제사장이자 아버지인 엘리도 그의 두 아들이 어떤 짓을 하고 다니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2장 23절~24절
“23.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24.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


엘리는 그의 두 아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합니까. 그렇지 않지요.

그들 또한 제사장이자 레위 자손으로서 누구보다도 율법을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입장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탐욕에 물들어서 자신들의 지위를 악용하고, 뿐만 아니라 성적으로도 음란에 빠졌다고 한다면, 이는 제사장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이미 실격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라면 당장에 그 직분을 빼앗아서 더 이상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엄하게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앞서 한나에게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포도주에 취했다는 둥 술을 끊으라는 둥 하고 엄하게 질책을 했으면서, 정작 자기 아들들에 대해서는 어쩌면 이토록 관대한지 모릅니다.

그들도 자기 아버지의 성격을 충분히 알고 있었겠지요. 그러니 그 아버지의 말을 듣겠습니까. 아무리 권면을 해도 안 들어요. 하지만 거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두 아들이 아버지의 권면을 듣지 않았던 이유.

사무엘상 2장 25절 후반부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들을 죽이기로 마음을 굳혔기 때문에 그들은 더 이상 돌이키지 못했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자, 이 시점에서 오늘 본문 구절을 떠올려 보시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14절을 다시 한 번 보실까요.

사무엘상 3장 14절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셨더라”

참으로 무서운 말씀 아닙니까.

여기서 제물과 예물에 대해서 신학자들에 의하면 제물은 피흘림이 있는 제사이고 예물은 피흘림이 없는 제사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율법에서 정한 그 어떤 제사라 하더라도 엘리 집안에 대해서는 죄 사함을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두 아들에게 권면하는 엘리의 말에서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2장 25절 전반부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한국에서 예전에 그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는 영화화가 되기도 한 사건이었는데, 어떤 재판에서 판결에 불만을 가졌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어떻게 했냐 하면 그 판사 집까지 찾아가서 부상을 입히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니까 법원 쪽에서는 난리가 났겠지요. 판사회의가 열리고 이는 사법권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를 두고 어느 방송국에서 한 변호사한테 인터뷰를 했는데, 그 변호사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이 사건은 이미 게임이 끝난 사건이라는 거예요.


그 이유는 뭐냐 하면, 어떤 사람이 범죄를 저질러서 재판을 받게 된 경우에는 변호사가 판사한테 어떻게든 잘 설명을 해서 가능하다면 무죄판결을,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든 판사한테 좋은 인상을 심어줘서 죄를 가볍게 해야 할 텐데, 그 사건의 경우에는 판결을 받아야 할 판사를 공격해버렸으니 더 이상 어떻게 판사한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가 있겠냐는 거예요.

엘리의 두 아들에 대한 경우도 보세요.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대한 제사를 멸시했다고 기록하지 않습니까.


그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에서 음란한 죄를 범하고 탐욕을 채우는 죄를 일삼았다고 합니다.

만약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죄를 지었다면, 심판을 하시는 하나님께 잘 간구를 해서 용서를 받을 방법도 있겠습니다만, 정작 심판을 내리시는 하나님을 멸시했다고 하니 이를 어찌 용서받을 수 있겠냐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다시 사람을 보내어 엘리 집에 대하여 심판의 예언을 하십니다.

사무엘상 2장 34절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 둘이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결국 사무엘상 4장 11절에서 그들의 죽음은 현실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여러분,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렇게 죄를 반복해서 저지르고 말았을까요.

자신의 아버지 만이 아니라 그들도 역시 제사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아버지도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고 하고 그래도 왜 그들은 돌아서지 않았을까요.

한국이나 일본을 보더라도 형법에는 그런 조항이 있습니다. 어떠한 나쁜 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만 14세 미만은 처벌할 수가 없다는 조항이에요.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아직 세상적으로 보아 사리분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무엇이 옳고 무엇이 옳지 않은 지를 분간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엘리의 두 아들은 어떨까요. 설마 그들이 율법을 몰라서 그랬을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사장은 사사와 달리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집안입니다. 적어도 지식으로는 분명 율법을 알고 있었고, 그리고 자신들이 그 율법을 어기고 있다는 사실도 틀림없이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구약에 기록된 말씀, 제사를 소홀히 여기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지식도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레위기 10장 1절~2절
“1.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2.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하나님 앞에 분향하기 위해 사용한 불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왔다는 것만으로 불이 그들을 삼켜버렸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와 같은 지식이 엘리의 두 아들 홈니와 비느하스에게도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호와의 제사를 어떻게 했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멸시했습니다.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렇다면 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까요.

이는 분명합니다. 그 정도 어긴다고 벌을 받겠어? 우리는 제사장 집안이야. 대대로 내려온 명문 가문이라구. 그리고 우리에게는 구원의 확신이 있단 말이야.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들은 틀림없이 구원 받을 거라니까.


어쩌면 그들은 누구보다도 이와 같은 강한 믿음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구원의 면류관을 빼앗기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하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기록합니다.

야고보서 2장 14절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아무리 믿음이 있다 하더라도 그에 걸맞는 행함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고 성경은 기록하지 않습니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아무리 믿음이 있어 봤자 이는 공허한 믿음, 이는 자신을 결코 구원할 수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믿음이 있으십니까. 구원의 확신이 있으십니까. 좋습니다. 이는 대단히 값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이를 순종하는 마음으로 지키며 행할 때에 비로소 진정한 구원에 이른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에 대해서 살펴 보았고, 다음 주는 제사장 엘리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 예정입니다.


이제 진정한 믿음과 말씀과 그리고 이에 따르는 행함을 이루어 감으로 말미암아, 마지막 날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면류관을 끝까지 지키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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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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