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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2회 [면류관 강해 제13회] 종과 주인과 예수님 - 이루리라선교회 홍성필 목사
 

홍성필 목사
이루리라선교회
www.이루리라.com
mail@IRURIRA.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 50절~51절
“50.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설교 동영상

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십일조, 감사헌금, 개척후원, 선교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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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국민은행 079-21-0736-251  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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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면류관 강해 13번째 시간으로서 “종과 주인과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자, 오늘도 면류관 강해의 핵심구절인 요한계시록 3장 11절을 함께 읽고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1절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아멘.

지난 주 면류관 강해 12번째 시간까지는 아담과 하와부터 시작해서 주로 구약에 기록된 내용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아직까지도 다루어야 할 구절이 있기는 합니다만, 세부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차후에 검토해보기로 하고 오늘부터는 신약으로 넘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두 가지 비유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만, 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내용이리라 여겨집니다.

먼저 첫번째 비유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4장 45절~51절입니다.
마태복음 24장 45절~51절
“45.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46.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47.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48.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자, 여기서 우선 이 상황을 보다 자세하게 알기 위해서 공동번역 성경을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공동번역판 마태복음 24장 45절
“어떤 주인이 한 종에게 다른 종들을 다스리며 제때에 양식을 공급할 책임을 맡기고 떠났다면 어떻게 하여야 그 종이 과연 충성스럽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어떤 주인이 먼 길을 떠나게 되는데 그 때 자신이 데리고 있는 한 종에게 일을 맡기기를, 다른 종들을 잘 관리하고 그들이 먹을 양식에 대해서도 베풀도록 책임을 맡겼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어요. 어떻게 하긴요. 여기 답이 다 나와 있잖아요. 그들이 일을 잘 하도록 관리를 하고 때가 되면 양식을 주고 해서 주인이 자기에게 맡긴 소임을 다하는 것이 충성되고 슬기로운 일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종은 어떻게 했냐 하면 어차피 주인은 멀리 떠났으니 나에게 주어진 권한을 나를 위해 내 마음대로 쓰겠다고 하면서, 같이 있는 종들을 때리고 그리고 술친구들과 흥청망청 지냈다는 것이에요.

그러고 있었더니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날, 생각지도 못한 시간에 주인이 와서 그런 광경을 보았다면 가만히 있겠습니까.

주인은 그 종을 엄하게 때리고 엄벌에 처해서 결국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음은 마태복음 25장 14절~30절까지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조금 길지만 읽어 드리겠습니다.


마태복음 25장 14절~30절
“14.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20.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이 말씀도 배경은 앞서 전해드린 비유와 내용이 비슷합니다.

주인이 먼 길을 떠나려고 해요. 그래서 종들을 불러서는 각각 재능에 따라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그리고 한 달란트 씩 맡기고 떠났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단순히 돈을 똑같이 맡긴 것이 아니라 ‘재능대로’, 그러니까 그 종이 가진 능력에 따라서 맡겼다고 하는데 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는 단순히 가지고 있기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네 능력에 따라 이를 활용하라고 하신 것이 바로 그 의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먼저 ‘달란트’라고 하는 단위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자면, 구약에서는 이를 무게 단위로 사용했었지만 신약에서는 화폐 단위로 계산을 했습니다.


그래서 한 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이라고 하는데, 1데나리온이 당시 노동자 하루 일당이었다고 합니다.

지금 하루 일당을 단순하게 계산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 10만원으로 본다면 어떻게 됩니까. 1 데나리온이 10만원이면, 6000데나리온은 6억원이 되지요. 말하자면 6억원이 한 달란트에요.

그러니까 주인은 종들에게 각각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와 한 달란트씩 맡겼다고 하셨잖아요. 이를 환산해본다면 종들에게 각각 30억원, 12억원, 그리고 6억원씩을 맡기고 떠났다는 것이 되지요.


여기서 30억원 맡은 종은 열심히 사업을 해서 30억원을 남기고, 12억원을 맡은 종도 열심히 장사를 해서 12억원을 남겼어요. 그런데 6억원을 맡은 종은 땅을 파고는 그 돈을 묻어 두었다는 것이지요.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서 결산을 하게 되는데 30억원으로 60억원을 만든 종과 12억원으로 24억원을 만든 종에게 주인은 칭찬을 합니다.


그런데 6억원을 땅에 묻어 놨다가 준 종에 대해서는 엄하게 꾸짖어요.

네가 일을 하기 싫다면 차라리 그 돈을 취리하는 자들, 쉽게 말하자면 은행에 맡겼다면 그 이자라도 찾았을 것 아니냐.

그런데 땅에 묻어 놨었다는 것은 너에게 그 돈을 맡긴 내 뜻을 완전히 저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주인은 그에게 말하기를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하지요.

결국 이 종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 나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두 비유에 대해서 일단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첫번째 비유와 두번째 비유에 있어서 공통점을 살펴보면 어떨까요.

우선 주인이 종에게 해야 할 일을 맡기고 떠납니다. 그러다가 주인이 돌아온 뒤에,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은 종은 벌을 받게 되는데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선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한 가지를 확인하고 넘어가도록 할게요.

두 비유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점 중 하나는 그 대상과 배경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시점이 언제인가 하는 점부터 알아보아야 하겠는데 이는 마태복음 24장 3절부터 25장 마지막인 46절까지 이어지는 말씀 중에 등장하는 내용이에요.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시게 되었냐 하면, 이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하신 것이지요.

그 질문을 알아볼까요?


마태복음 24장 3절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곳이 감람산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기도를 하신 곳 ‘겟세마네’와 같은 곳으로 신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이 감람산에 대해서 성경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이 곳이 어떤 곳이며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었는지를 알 수가 있어요.

누가복음 22장 39절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요한복음 18장 2절
“그 곳은 가끔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

이 기록에 의하면 감람산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만 가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이전에도 제자들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자들과 모임을 가지셨던 곳이 감람산이었어요.

그리고 또한 그 곳은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감람산에서 기도를 하신 후에 바로 그 곳에서 체포를 당하게 되시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구절이 성경에 있습니다.

누가복음 22장 6절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당시 예수님을 잡으려던 제사장들은 백성들을 두려워했습니다. 많은 백성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을 잡으려 했다가는 물리적 충돌이 일어날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이 없을 때 예수님을 잡으려고 했었는데, 이에 대해서 유다는 그럼 무리가 없을 때가 언제 어디일까 하고 생각한 끝에 바로 그 곳, 바로 감람산을 택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실 때에 감람산에 계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대상이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라는 점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이지요.


다음으로 배경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와 같은 비유를 말씀하신 배경은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하신 것인데, 그 질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 일어날 징조’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여러분, 구약은 그 한자 뜻이 무엇입니까. 예, 구약. 그러니까 오래된 약속이라는 뜻이고, 그렇다면 신약은? 예, 그렇죠. 새로운 약속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구약, 오래된 약속은 어떤 약속이고 신약, 새로운 약속은 어떤 약속입니까.


사실 교회에 오래 다니고 직분을 받았다는 분들도 이렇게 질문을 드리면, 이에 대해서 명확하게 대답을 하실 수 있는 분들이 의외로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그럼 대답하실 수 있으세요? 구약은 어떤 약속이고 신약은 어떤 약속입니까.

그것은 바로 구약은 메시야가 오신다는 약속이고, 그러면 신약은? 메시야가? 그렇죠. 다시 오신다는 약속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니까 이 비유에서도 주인이 떠났다고 다시 온다는 말씀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즉 요한계시록 1장 7절 기록처럼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때에 대한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인이 다시 돌아왔을 때 벌을 받게 된 이 종은 어떻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까.

마태복음 24장 51절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마태복음 25장 30절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이 두 종은 둘 다 똑 같은 결과를 맞이합니다.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이 부분은 원문인 헬라어 성경을 보더라도 토시하나 안 틀리고 똑같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부터 종과 주인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서 차례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종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자, 이 시점에서 여러분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돌아온 주인으로부터 벌을 받아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 이 종은, 장차 예수님이 다시 오셨을 때 벌을 받게 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이 사람은 구원 받은 사람일까요? 아닐까요.

누구는 그럴지도 모르지요. 예수님이 온 다음이라도 회개하면 되는 것 아니냐.

여러분, 만일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도 그 말씀을 하셨겠지요.


하지만 그가 벌을 받게 된 것은 이미 주인이 와서 판결을 내린 다음입니다.

생각해보세요. 판결이 내리기 전이라면 회개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미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모든 것을 보셨어요.

그러면 그에게 그 때까지 회개하고 뉘우칠 시간이 없었나요?

아닙니다. 주인은 오랜 후에 돌아왔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그에게는 그만큼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악한 종은 결국 주인이 올 때까지 모든 기회를 다 잃어버리고, 끝내는 주인으로부터 심판을 받게 되어, 결국 구원을 받지 못하고 쫓겨나 버리고 말았지 않습니까.

다음으로 주인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주인은 자신이 떠나기 전에 본래 악한 종이라는 사실을 알고 직분을 맡겼을까요?

사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우선 다른 종들을 관리하게 한다고 했는데, 이는 상당한 권력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종이 집을 비운 동안 만약에 다른 주인 가족들이 있었거나 했다면 그가 다른 종들을 때리거나 술친구들과 흥청망청 놀아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니까 이를 보더라도 주인이 그 종에게 일을 맡겼다는 것은 그 집을 다스리는 전권을 부여했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런 막강한 권한을 아무 종한테 맡겼겠냐 하는 것이지요. 아마도 그 종은 그 집에 오래 있었고 그리고 주인으로부터 두터운 신임도 받고 있던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비유에 나오는 종도 보세요. 아무리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까지는 안되었다 하더라도 한 달란트 즉 주인 돈 6억원이나 되는 재산에 대해서 관리를 맡게 되었다고 한다면 이게 보통 지위입니까.

회사에서 본다면 이는 직원급이 아니라 임원급, 전무나 상무까지는 안 된다 하더라도 그래도 이사정도는 되는 정도의 직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인은 결코 능력이 없는 사람, 실력이 없는 사람한테 일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다른 종들을 관리하라고 한다거나 아니면 6억원이나 되는 재산을 맡길 정도라면 그야말로 핵심인물이라고 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장차 그 회사의 모든 것을 맡길 수도 있는 후계자 후보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니까 주인은 분명 충실하게 맡은 바 소임을 다 하고 큰 성과를 남길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인물을 선정해서 그와 같은 큰 권한을 부여했었다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어땠습니까.

그렇죠. 주인이 돌아와서 보니까 자신의 기대와는 다르게 형편없는 꼴이 되고 말았잖아요. 그러니 주인은 그 종에게 엄한 심판을 내렸다고 우리는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에 대해서 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내용을 되새겨 본다면 주인은 종에게 기대를 하고 일을 맡겼습니다만, 종은 불순종했기 때문에 결국 구원을 받지 못하고 버림을 당했다고 이해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무슨 뜻으로 이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구원의 취소가 없다. 구원을 받는 사람은 처음부터 구원을 받기로 되어 있는 것이요, 결과적으로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은 본래부터 구원을 받지 못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이는 앞뒤가 맞지 않게 됩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구원 받지 못할 죄인들을 앞에 두고 말씀을 하셨다면 그나마 이해가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비유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에요.

쉽게 말하자면 그런 것이지요. 너희들이 지금 내 제자라고 할지라도 똑바로 하지 않는다면, 장차 내가 다시 올 때 심판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지금 말씀하고 계신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주인의 집을 하나님의 전이라고 생각해보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우선 여기서 ‘종’이라고 되어 있는 부분에 대해서 어쩌면 좀 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자, 주인과 종의 관계를 한 번 생각해보세요.

아무리 종이 출세를 한다 하더라도 주인이 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믿음이 좋고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이 될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얼마나 사랑해 주셨냐 하면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죄인이었던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해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그 놀라운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순종하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잃어버리고는, 자기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면서 살아가게 된다면, 마지막 날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심판을 받아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해주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우리는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그날은 생각하지 않은 때, 알지 못하는 시간에 임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마태복음 24장 42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그렇습니다. 항상 깨어 있으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렇다고 설마 밤에 잠을 자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주님이 언제 오시더라도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아침이든 밤이든 추울 때든 더울 때는, 언제 주님이 오신다 하더라도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주님으로부터 받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의 면류관, 영광된 면류관을 모두 받으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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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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