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면류관 강해 12번째 시간으로서 “사울의 구원 문제”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자, 오늘도 면류관 강해의 핵심구절인 요한계시록 3장 11절을 함께 읽고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1절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아멘.
지금까지 사울 왕에 대해서 지금까지 네 번에 걸쳐서 살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사울이 얻은 것, 두번째는 사울이 버린 것, 세번째는 아말렉의 죄악, 그리고 네번째는 사울의 죄책이라는 제목으로 사울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아말렉에 대해서도 공부를 했지요.
하지만 이렇게 네 번씩이나 걸쳐서 살펴본 이유는 사실 오늘 전해드리고자 하는 말씀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와 같은 사전설명 없이 갑자기 오늘 다루어야 할 말씀만 전해드리게 되면 정확하게 이해할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부득이하게 조금 길어졌지만 네 번에 걸쳐서 살펴보았던 것입니다.
자, 이제 면류관 강해에 있어서 사울에 관한 내용은 오늘이 핵심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울은 구원을 받았는가. 끝까지 면류관을 지킬 수 있었는가. 더 쉽게 말씀 드리자면 사울은 천국에 갈 수 있었는가에
관한 내용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사울은 하나님 앞에 큰 실수를 하게 되어서 어떻게 됩니까.
사무엘상 15장 26절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그렇죠. 하나님으로부터 해고통보, 요즘 우리가 알기 쉽게 말을 한다면 파면선고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울을 택하시고 왕으로서 높이셨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사무엘상 11장 6절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의 노가 크게 일어나”
암몬 사람들이 쳐들어온다는 말을 사울이 들었더니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이 그와 함께 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버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린 그 원인은 단순히 하나님의 변덕이 아닙니다.
원인은 하나님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울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자 어떻게 됩니까.
사무엘상 16장 14절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셨더니 그 빈 자리를 악령이 꿰어 찼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울에게서 떠난 하나님의 영은 어디로 가셨습니까.
사무엘상 16장 13절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사무엘에게 명을 내려서 새로운 왕을 찾아 그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다윗이었던
것이지요.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더니 이제 다윗이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었다고 합니다. 이 기록은 앞서 사울이 기름 부음을
받았을 때와 똑같지 않습니까.
이제 사울에게서 하나님의 영은 떠나 다윗에게로 옮겨지고 사울은 악령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영이 떠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 특징을 사울에게서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걷잡을 수 없는 증오심이 일어납니다.
우선 사울이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 하는 말을 들어 보십시오.
사무엘상 20장 30절
“사울이 요나단에게 화를 내며 그에게 이르되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 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
개역개정 성경을 보시면 그래도 좀 점잖은 표현을 사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참고로 생명의 말씀사에서 나온 현대인의 성경을
보실까요?
조금 듣기에 불편하신 부분이 있더라도 양해를 바랍니다. 어디까지나 성경 본문이니까요.
현대인의 성경판 사무엘상 20장 30절
“그러자 사울은 노발 대발하며 소리쳤다. '이 미친 놈아! 네가 네 자신의 수치와 네 어미의 수치도 모르고 천한 이새의 아들 쪽을
택한 것을 내가 모를 줄 아느냐?”
이것을 보십시오. 아무리 아버지가 자기 자식에게 하는 말이라 하더라도, 이게 왕이라는 사람이 차마 입에 담을 만한 소리입니까.
그리고 사울은 다윗도 공격합니다.
사무엘상 18장 10절~11절
“10.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그가 집 안에서 정신 없이 떠들어대므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그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11.그가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고 사울이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그의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
다윗은 사무엘상 17장에서 블레셋 군대의 용사 골리앗을 물리치지요.
이 공로로 인하여 사울은 그를 등용하게 되는데, 사울에게 들러붙은 악령이 보기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다윗이 이쁘게
보였겠습니까. 도리어 어떻게든 죽이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사울은 남은 평생동안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니고, 반면에 다윗은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십 여년 동안 도망자
신세가 되고 맙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영이 떠나게 되면 하나님께서 응답을 하지 않으십니다.
사무엘상 28장 6절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무한테나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에게만 응답하시는 것이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미 버리신 사울에게 응답하실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셋째로 하나님의 영이 떠난 사람의 특징은 바로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사무엘상 28장 20절
“사울이 갑자기 땅에 완전히 엎드러지니 이는 사무엘의 말로 말미암아 심히 두려워함이요 또 그의 기력이 다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루
밤낮을 음식을 먹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은 강하고 담대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던 사울의 모습을 보십시오.
왕으로 뽑혔음에도 처음에는 소심해서 짐보따리들 사이에 숨었던 사울은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더니 이스라엘 군대 33만을 이끌어 암몬
군대를 전멸시키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떠나게 되면 이제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마는 것입니다.
이 두려움은 창세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2장 25절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그들에게 축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비록 육적으로는 벌거벗었을지라도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해주시기 때문에 영적으로는 강하고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고 난 다음의 아담을 보십시오.
창세기 3장 7절~10절
“7.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어버린 아담은 말합니다. 자기 자신이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다고 하잖아요.
자, 생각해보십시오. 아니, 본문을 잘 보십시오. 지금 이 말을 할 때 아담은 벗었습니까. 입었습니까.
7절에 보시면 그들, 그러니까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치마로 삼았다잖아요.
이 기록에 의하면 그들은 대단히 엉성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몸은 가리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말하기를 자신들은
벗었기에 두려워하여 숨었다고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말씀을 보시면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실 때에는 아무리 육적으로 벌거벗고 있다 하더라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내가 육적으로 가진 것이 없더라도 영적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만군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해
주시는데 무슨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떠나시게 된다면 아무리 육적으로 옷을 입고 있었다 하더라도, 아니, 천하에 부러울 것 없는 왕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그는 영적으로 벌거벗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완전히 무장해제가 되어서 그만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고 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핵심내용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할 차례입니다.
사울은 블레셋 군대와의 전투 중에 길보아 산에서 사망을 하게 됩니다만, 그렇다면 사울은 죽은 뒤에 천국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자면 좀 안된 말씀입니다만 사울이 천국에 들어갔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절망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천국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인데, 앞서 사무엘상 15장 26절에 의하면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사무엘은
분명히 사울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을 버렸다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버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수 있겠습니까.
누구는 또 그렇게 말합니다.
사울이 사무엘과 함께 있게 될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사울도 천국에 갔을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는 어떻게 나오는 주장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응답하지 않으니까 사울은 이제 무당을 시켜서 이미 세상을 떠난 사무엘의
영을 불어와서 물으려고 해요.
그런데 사무엘상 28장 19절에 의하면, 그 때 나타난 영이 말하기를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이를 근거로 해서 사울도 구원을 받았을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누가복음 23장 43절에서 회심한 강도에게 오늘 낙원에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나 여기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습니다.
우선 무당이 세상을 떠난 사무엘의 영을 불러 올 수가 있냐고 하는 문제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의 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자랐고, 그리고 한평생을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았던 사무엘의 구원에 대해서
의심하는 분은 안 계시겠지요.
저 또한 사무엘이 천국에 갔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자, 그렇다면 천국 하나님 나라에 간 사무엘의 영을 한낱 무당이 불러올 수 있겠습니까.
간혹 무슨 전설이나 설화에 보면 죽은 사람의 영이 살아 있는 사람 앞에 나타났다고 하는 말도 있습니다만, 성경에는 그와 같은
내용이 어디 하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사랑했지만 아브라함이 세상을 떠난 다음 그의 영이 이삭이나 야곱에게 나타났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잖아요.
그리고 성경기록을 자세히 보면 사울이 사무엘의 영이라고 하는 그 모습을 직접 본 것도 아닙니다.
사무엘상 28장 13절~14절
“13.왕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하니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영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하는지라
14.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그의 모양이 어떠하냐 하니 그가 이르되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하더라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 줄 알고 그의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니라”
무당이 말하기를 한 영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고 사울에게 말하자, 어떻게 생긴 영이냐고 물어요. 그러자 무당이 말하기를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겉옷을 입었다고 말합니다. 그랬더니 사울은 이 말을 듣고 그 영을 사무엘인 줄 알았다고 하잖아요.
여기서 ‘알았다’는 뜻의 히브리어 ‘야다’라는 말은, ‘사무엘이라는 사실을 알아보았다’는 것이 아니라 ‘사무엘인 것으로
이해했다’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울은 그저 무당이 말한 겉옷을 걸친 노인의 영을 사무엘인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아니 백만분의 하나, 그 형상이 진짜 사무엘처럼 하고 있었다고 칩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천국에 있는 사무엘의 영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면 모를까 땅에서 올라와요? 이는 하나부터 열까지 말이
안되는 주장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영은 무엇이겠습니까. 예, 그렇죠. 이는 의심의 여지 없이 바로 악한 마귀 사탄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마귀가 제일 속이기 쉬운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사울이 자기를 사무엘로 생각했다는 것을 눈치채자 마치 자기가 정말 사무엘인 것처럼 사울한테 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내일 사울이 자기와 함께 있겠다고 말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그렇죠. 악한 마귀가 있는 곳은 지옥이니 사울은
죽은 뒤에도 구원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결국 사울은 그 악한 영이 예언한 대로 그 다음 날 전쟁터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와 같은 근거로 인해서 안타깝게도
그는 천국 백성이 될 수는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신학자들 사이에도 대체적으로 이론이 없어요.
자, 그렇다면 여기서부터 중요한 부분입니다. 사울의 구원은 취소된 것인가요? 아니면 처음부터 구원을 받지 못했던 것일까요.
다시 말해서 사울이 처음에는 구원을 받아 천국백성이 되었을 수도 있었지만 나중에 하나님을 저버림으로써 구원이 취소된 것일까요?
아니면 사울은 본래부터 구원받지 못했던 사람이었던 것일까요.
구원의 취소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한 번 구원을 받으면 그 구원이 취소되는 경우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울은 비록
왕이 되긴 했으나 애초에 구원을 받지 못했던 사람이라고 규정을 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보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앞서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택하시고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셨습니다. 그럼으로 인해서 암몬 사람들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사울이 첫번째 실수를 저질렀을 때 사무엘은 뭐라고 하면서 그를 꾸짖습니까.
사무엘상 13장 13절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이 말은 무엇입니까.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켰더라면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백성입니까. 이 세상 수많은 백성들 중에서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잖아요. 그런데 그와 같은 백성들의
왕, 그것도 영원히 이어질 왕의 나라를 세우는데 구원받지 못한 왕을 세운다?
사무엘상 15장 11절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하나님께서는 애초에 구원하실 생각도 없었던 사울에 대해 후회를 하시고, 사무엘은 처음부터 버림 당할 것으로 예정되어 있던 사울을
위해 근심하여 온 밤을 하나님께 기도하며 부르짖었다?
이와 같은 논리가 어떻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이는 그 과정을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결과만 보고자 하는 데에서 비롯한 오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말하자면 그런 것이죠.
예를 들어서 대통령 선거를 보았을 때, 선거 기간에는 입다물고 가만히 있다가 결과가 나온 다음에 A가 당선이 되면, 이번
선거에서는 당연히 A가 당선될 수 밖에 없었다고 하고, 또 A가 떨어지게 되면 뭐라고 해요? 예, 자기는 A가 떨어질 것이라는
일은 벌써 예상하고 있었다. 뭐 이렇게 주장하는 정치평론가들 많잖아요?
마치 그런 식으로, 그 과정은 생각하지 않고, 아무리 도중까지는 순종하는 삶을 살다가도 마지막에 하나님을 버림으로 인해서
결과적으로 구원받지 못하게 되었다면, 아, 그 사람은 원래 처음부터 구원 받지 못하는 사람이었어.
그리고 반대로, 과정은 아무리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삶을 살다가도 나중에 회개해서 하나님을 영접하여 구원을 받게 되면,
아, 그 사람은 원래부터 구원받기로 되어있던 사람이었어.
이런 주장이야말로 마치 3류 정치평론가들과 같은 논리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를 요약하자면 사울은 분명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시고 왕으로 세우셨으며 하나님의 영이 함께 했으나, 나중에 그가 하나님을
버림으로 인해서 그는 끝까지 구원을 지키지 못했기에 멸망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지만 우리의 구원, 우리에게 주어진 면류관을 끝까지 지킬 수가 있을까요.
요한계시록 2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4절~5절
“4.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이 말씀은 주님이 에베소 교회에 대해서 질책하고 계시는 말씀인데 그 이유가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여러분도 교회에 다니면서 ‘처음 사랑 회복’ ‘첫 사랑 회복’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많이 들어봤어요.
하지만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오랫동안 좀 석연찮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교회에 가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쯤이었는데, 그 때는 무슨 대단한 감동을 받아서 교회에 가기 시작한
것도 아니거든요. 솔직히 일요일에 그냥 친구들이랑 어울리고 싶어서 간 거죠.
그랬던 나에게 무슨 믿음에 대한 처음 사랑이 있을까, 이는 나한테는 해당되지 않는 말씀인 것일까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데 말이에요. 잘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더라니까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어서 처음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처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을 때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언제입니까.
내가 간절하게 주님께 기도를 드렸더니 주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해 주셨어요.
내가 정말 어려움에 처해서 더 이상 앞길이 안보였을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길을 열어 주시고 인도해 주셨어요.
이 얼마나 감격적인 순간입니까. 여러분께서는 그와 같은 경험이 없으십니까? 없기는 왜 없어요. 잘 생각해보세요. 그래도 생각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지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는 것일 뿐인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사울에게 했던 사무엘의 말을 들어보면 어떻습니까.
사무엘상 15장 17절~19절
“17.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18.또 여호와께서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19.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사무엘은 말합니다. 당신이 스스로 별볼일 없는 존재로 생각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일으켜서 왕으로 세우시지 않았습니까.
그 때의 그 감격, 그 감사, 그 은혜를 기억했었더라면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했을 것을, 당신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을 이제
잊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요?
사무엘상 13장 14절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예, 이제 더 이상 당신은 하나님의 종이 될 자격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이 될 자격도 없으며, 그 영광의 촛대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다른 사람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게 누구라고요? 그렇죠. 이스라엘의 왕위는 이제 사울에게서 빼앗아 다윗에게로 옮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우리를 도와 주시고, 우리가 길을 잃고 헤맬 때에 우리를 인도해주시고, 그리고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우리를 건져내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법학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을 수가 없다”는 격언이 있어요.
이는 아무리 내 소유물이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지키지 못하면 그 소유권이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가버리게 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믿음에 있어서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면류관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한 번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넋 놓고 자기 멋대로 살다가는
마지막에 모든 것을 다 빼앗겨 버리게 된다고 성경은 반복해서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 면류관 강해의 핵심구절을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읽어보도록 할까요.
요한계시록 3장 11절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1절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제 우리를 구원해주신 하나님, 우리에게 면류관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더 이상 구원 위에 잠자는 자가 아니라,
지금 당장 깨어나서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 우리에게 주어진 면류관을 굳게 잡아 끝까지 지켜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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