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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06.23 [설교동영상/본문] 제398회 영광에 이르는 길
제398회 영광에 이르는 길
2023년 6월 18일 설교 - 로마서 강해 139

홍성필 목사
www.kirinmission.com
kirinmission@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5장 2절
“2.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15章 2節
“2.私たちは一人ひとり、霊的な成長のため、益となることを図って隣人を喜ばせるべき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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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한 달에 1,000원>
<물 한 그릇 선교후원>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KB 국민은행
079-21-0736-251
홍성필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139번째 시간으로서 “영광에 이르는 길” 栄光に至る道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짧은 구절이긴 한데, 대단히 추상적인 단어가 등장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을 대할 때를 보면, 뭐, 그냥 좋은 말이지 뭐……라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쳐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성경의 본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넘어가게 돼요.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결국 성경을 아무리 수 십 번 읽었다 하더라도 제대로 내용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이라고 하는 말씀은 그냥 기분에 따라서 대충 쓰여진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로 적힌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구절을 한 번 읽는다 하더라도, 그 말씀에 담겨진 뜻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를 해야 한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우선 오늘은 본문에 나오는 단어부터 정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15장 2절
“2.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2.私たちは一人ひとり、霊的な成長のため、益となることを図って隣人を喜ばせるべきです。

여기에 보면, 우리 각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정리해 놓았는데, 그것은 바로, 이웃을 기쁘게 하는 것, 선을 이루는 것, 그리고 덕을 세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궁금증이 바로, 어떻게 해야 이웃을 기쁘게 하는 것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선을 이루는 것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인지……에 대해서 알아야만 하겠지요.

오늘은 우선 이 부분에 대해서 하나씩 정리해 나아가면서, 이 말씀에 담긴 주님의 은혜를 모두 받으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중에서 보면, 지금까지 함께 공부해 오신 분들께서는 조금 익숙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덕을 세우다>라는 부분입니다. 霊的な成長


로마서 14장 19절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ですから、私たちは、平和に役立つことと、お互いの霊的成長に役立つことを追い求めましょう。

여기서 <덕을 세우다>라는 말씀의 뜻을 뭐라고 설명해드렸는지 기억하시나요?

이는 다른 번역본에 따르면 영적인 성장이라는 뜻으로 되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원어의 1차적인 뜻은 바로 <집을 짓다, 건설하다> 라는 뜻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함께 집을 짓는 것처럼, 서로 힘을 합쳐서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을 감당해 나아가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덕을 세우기 위해서, 즉 우리가 힘을 합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면, 오늘 본문에서는 바로 선을 이루는 것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선을 이룬다고 한다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인지 막연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를 다른 번역본에서 보면 상대방에게 이득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조금은 더 알기 쉽지 않겠습니까. 단순히 선을 이룬다, 착한 일을 한다, 만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이득이 되게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상대방이 좋아해요? 싫어해요? 예, 좋아하지요. 그것이 바로 <이웃을 기쁘게 한다>는 것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 말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뒤에서부터 해석을 해가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를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이렇게 말씀 드릴 수가 있겠지요.

우선 본문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로마서 15장 2절
“2.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2.私たちは一人ひとり、霊的な成長のため、益となることを図って隣人を喜ばせるべきです。

이는 다른 말로 하자면 이렇게 되겠지요.

우리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이웃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이득이 되게 해야 하고, 그럼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 지금으로 본다면 누가 이런 일을 하고 있을까요.

교회나 종교단체? 봉사단체?

물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한다는 점만 본다면 교회나 선교단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를 조금 더 바꾸어 본다면 다음과 같이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우선 상대방을 기쁘게 하고, 상대방에게 이득이 되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서 자신들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해 나아가는 것.

이런 일을 누가 하고 있습니까. 사실 알고 보면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하고 있는 일들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회사라고 할 수 있겠지요. 회사는 무엇을 하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입니까. 그것은 바로 돈을 벌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지요. 이는 대단히 명확합니다. 그래서 회사를 예로 들면 알기 쉽습니다.


그러니까, 회사는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결국은 돈을 벌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 만든 조직이기 때문에, 이 목적에서 벗어나는 일을 하게 되면, 이는 제대로 회사가 기능을 할 수 없게 되겠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돈을 벌겠습니다. 그 수단은 다양합니다. 제조업도 있을 것이요, 운송업, 서비스 업 등 회사에서 하는 일들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궁극적으로는 <고객 만족>이 최우선목표가 되어야 하겠지요.

그 이유는 뭐냐 하면, 돈을 번다고 해서 자기들이 돈을 찍어낼 수야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돈을 번다는 것은, 좀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돈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몰래 훔쳐온다거나 속여서 빼앗는다거나 하면 범죄가 되잖아요.

이와 같은 범죄가 아니라 정당하게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돈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로 <고객이 만족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그럼 언제 고객이 만족하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고객에게 이득이 발생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떤 회사가 어떤 제품을 만들었어요. 가격이 1만원이에요.

그것을 보고 고객이 생각하기를 내가 이 제품을 1만원 내고 구입하는 것이 자신에게 손해라고 생각되면 절대로 돈을 내지 않겠지요.

하지만 그 돈을 내고 구입하는 것이 자기한테 이익이라고 판단되면 그 때에 비로소 1만원을 내는 것이잖아요.

그렇게 되면 고객은 비록 1만원을 내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얻어진 결과로 이득을 보았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리고 회사 쪽에서는 그 수익으로 회사를 운영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본다면 이 로마서 15장 2절 하나만으로도 제대로 우리가 이해를 하게 된다면 훌륭한 회사를 경영하기 위한 기본 철학이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성경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버릴 데가 없습니다.

예전에 어느 기독교 방송에서 보니까 성경을 하루에 몇 번이나 읽는다는 사람이 나온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성경이라고 하는 책은 단순히 몇 번 읽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그것이 아니라 한 번 읽는다 하더라도, 단 한 구절을 읽는다 하더라도, 그 말씀을 온전히 내가 이해했을 때 크나큰 깨우침을 얻을 수 있는 것이요, 주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지혜와 은혜를 받는 것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이처럼 세상적으로도 충분히 이해가 될 수 있는 이 말씀이지만, 이 말씀은 단순히 회사를 운영하는 방법에 대한 말씀이 아니지요.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많든 적든 그래도 어느 정도 되는 자본금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이웃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돈을 써야 한다는 것이냐 하는 문제지요.

여러분께서는 여러분의 이웃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단, 돈이나 선물을 한다거나 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상대방이 기뻐하기 위해서는 만족을 해야 한다는 것이잖아요. 그렇다면 어떻게 만족을 하냐 하면, 자기가 이익이 된다고 생각했을 때 만족을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내가 돈도 안 쓰고, 선물도 안 하고 그러는데도 어떻게 상대방을 만족시킬 수가 있을까요.

지난 주에 제가 드렸던 말씀,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자기 자랑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씀 드렸지요. 돈 자랑, 가족 자랑, 집안 자랑 등등 이런 자랑들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이유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하시나요? 그것은 바로 열등감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절망>이라고 했습니다만, 저는 현대사회에 있어서 죽음에 이르는 병은 <열등감>이 아닐까 합니다.

열등감이 뭐예요? 예, 자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부족하다는 것이지요. 돈도 그렇고 가족도 그렇고 집안도 그렇고, 어디 그 뿐인가요. 학력이나 외모에 대해서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그 점이 아닙니다. 더 심각한 점은 뭐냐 하면, 사실 알고 보면 그 사람은 그와 같은 점에 대해서 그다지 부족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그렇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바로 그와 같은 사람들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것,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돈도 안 들이고 어떻게 그와 같은 사람들의 자존심을 살릴 수 있겠습니까.

그렇죠. 그것은 바로 우리의 <입> 그러니까 말로 살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말은 무엇으로 합니까. 입이 있다고 하지만 입만으로는 말을 할 수가 없지요. 이 말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혀가 필요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보시면 이 <혀>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말씀이 있는지 모릅니다.

잠언 15장 4절
“온순한 혀는 곧 생명 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穏やかな舌はいのちの木。舌のねじれは霊の破れ。

잠언 17장 4절
“악을 행하는 자는 사악한 입술이 하는 말을 잘 듣고 거짓말을 하는 자는 악한 혀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느니라”

悪を行う者は邪悪な唇に聞き入り、偽り者は破滅の舌に耳を傾ける。


잠언 21장 23절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

自分の口と舌を守る者は、自分自身を守って苦難にあわない。

잠언 25장 15절
“오래 참으면 관원도 설득할 수 있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

忍耐強く説けば、首領も納得する。柔らかな舌は骨を砕く。

잠언 25장 23절
“북풍이 비를 일으킴 같이 참소하는 혀는 사람의 얼굴에 분을 일으키느니라”

北風は大雨を起こし、陰口をたたく舌は怒り顔を生む。

이처럼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에는 상상도 못할 능력이 있습니다. 이 짧고 부드러운 혀로 사람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입힐 수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안 좋은 말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에베소서 4장 29절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悪いことばを、いっさい口から出してはいけません。むしろ、必要なときに、人の成長に役立つことばを語り、聞く人に恵みを与えなさい。

사실 알고 보면 우리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상대방에게 만족을 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상대방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일,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일이지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세요. 누군가가 내 자존심을 세워주는 말을 많이 해줘요. 그러면 얼마나 나한테 힘이 생깁니까. 돈 한푼 안 들이고 내 삶에 있어서 무엇인가 할 수 있겠다는 그와 같은 소망을 갖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우리 이웃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데에 있어서 가장 좋은 것이 우리의 말과 행동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일을 잘 하지 못합니다. 왜냐 하면 그렇게 하면 내가 손해를 보는 것 같기 때문인 것이죠.

정치인들 보세요. 맨날 여당이 야당을 야당이 여당을 비판합니다. 그 이유는 상대방을 비판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이를 뒤집어 본다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바로 상대방을 칭찬하게 되면 자신들에게 손해가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정치인들이 그런다고 해도 우리까지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우리 한 번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좁은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저쪽에서 어떤 사람이 앞을 안 보고 폰을 보면서 걸어오고 있어요. 저는 앞을 보고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지금 누가 잘못하고 있는 거예요? 예, 길에서는 앞을 보고 걸어가야 하잖아요. 그런데 앞은 안 보고 폰만 보고 걸어가고 있다면 되겠습니까. 분명 그 사람이 잘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제 조금씩 두 사람의 거리가 좁아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예, 알고 있습니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다르겠지요? 힘없는 나이 어린 애들이나 힘이 없는 여성이라면 뭐라도 한 마디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건장한 사람이라면 아무 말 없이 길을 내주거나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모든 조건을 다 제거한 상태에서 단순히 A와 B가 반대쪽에서 걸어오고 있었어요. 그렇다면 어느 쪽이 길을 내주게 될까요.

우선 지금의 저라면 제가 먼저 길을 내줄 것 같으십니까. 아니면 상대방한테 먼저 길을 비키라고 할 것 같습니까.

저는 무조건 길을 먼저 양보하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일단 멈춰 서서 상대방이 판단해서 오른쪽으로든 왼쪽으로든 지나가도록 합니다.

그 이유는 왜일까요. 제가 목사라서? 제가 착한 사람이라서? 아니에요. 그것은 제게는 지켜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이거든요.

제가 만약에 그 사람의 앞길을 막아서고, “야, 네가 뭔데 내 앞길을 막아? 건방지게 말이야. 어서 비키지 못해?” 라고 해보세요. 물론 그런 말을 듣고 상대방이 비킬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어떻습니까. 그 사람이 “뭐 어째고 어째? 네가 비켜” 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거기서 험악한 분위기가 되겠지요? 그리고 싸움이 일어났다고 생각해보세요. 경우에 따라서는 경찰이 올 수도 있고, 일이 복잡하게 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잘못하면 비자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그리고 선교활동에 있어서 걸림돌이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저만이 아니라 저희 가족도 지켜야 하고 그래야 하잖아요.

만약에 제게 지킬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한다면, 거기서 제 자존심을 내세울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서 그래, 경찰에 잡혀가든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하게 된다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더 큰 것을 지키기 위해서 그 작은 것 정도를 양보해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지켜야 할 것이 없나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11절 후반부에서 12절 전반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디모데후서 2장 11절 후반부에서 12절 전반부
11.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私たちが、キリストとともに死んだのなら、キリストとともに生きるようになる。
耐え忍んでいるなら、キリストとともに王となる。……

여러분, 우리가 가는 길이 그냥 평범한 길 같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주님의 나라에서 왕이 되는 길을 가고 있는 중이에요.

왕이라고 해서 이 세상의 권력 같은 것이 아닙니다. 한국의 대통령이라고 해봐야 5년밖에 못 합니다. 일본에서는 가장 오래 총리를 해본 사람도 다 해봐야 8년도 안 됩니다.

한국에 5년 대통령이라고 해봐야 대단한 것 같습니까. 장관 하나 임명하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못 하고 청문회를 거쳐야 합니다. 임기 중이라 하더라도 잘못이 드러나면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일본의 총리도 국회에서 맨날 질문공세에 시달리고, 뭐 하나 실수라도 한다면 여기저기서 비판 받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이 세상에서 절대권력을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다고 해봐야 100년도 못합니다. 그 다음에는 다 버리고 떠나야 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의 운명인 것이지요.

하지만 주님의 나라에서 왕 노릇 한다는 것은 그 정도가 아닙니다.

주님과 함께 주님의 품에서 크나큰 기쁨과 놀라운 영광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 우리가 왕위에 오르는 대관식을 하기 위해서 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자동차를 타고 간다면 신호위반을 하겠습니까. 속도위반을 할까요? 그랬다가 잘못하면 큰 것을 잃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오히려 내가 지금 작은 것을 양보하고 차라리 우리 이웃을 기쁘게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우리 이웃이 기쁨을 얻고, 뿐만 아니라 주님에 대해서도 크나큰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15장 2절
“2.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2.私たちは一人ひとり、霊的な成長のため、益となることを図って隣人を喜ばせるべきです。

이제 우리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웃을 높여주며 기쁨을 주는 선을 행하는 실천을 통해서, 주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능히 감당함으로 말미암아, 장차 주님으로부터 크나큰 영광을 받으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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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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