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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8회 [면류관 강해 제9회] 사울이 버린 것 (1) - 이루리라선교회 홍성필 목사
 

홍성필 목사
이루리라선교회
www.이루리라.com
mail@IRURIRA.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13장 8절~12절
“8.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9.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10.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11.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2.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설교 동영상

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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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국민은행 079-21-0736-251  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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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면류관 강해 9번째 시간으로서 “사울이 버린 것”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번에도 좀 정보량이 많아서 이번주와 다음주로 나누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자, 오늘도 면류관 강해의 핵심구절인 요한계시록 3장 11절을 함께 읽고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1절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아멘.

자, 이번 시간에는 지난 주에 이어서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사울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지난 주에 알아본 바와 같이 그는 그 자신의 노력 없이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초대 왕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의 인생은 어떠한 인생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그렇죠. 그것은 바로 나를 높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평생동안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중에는 스포츠에 관심이 있는 분들도 많지 않을까 합니다만, 예를 들어서 어떤 프로야구 구단에 있어서 제일 높은 사람은 누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어떤 분들은 그 팀의 감독이라고 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감독에게는 선수들을 훈련 시키고 누구를 시합에 내보낼 것이며, 어떤 작전을 써서 경기를 펼칠 것인지를 결정하는 등 그 팀을 운영하는 데에 있어서 실무적인 권한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감독보다 더 높은 사람이 있지요. 그게 누구냐 하면 그것은 바로 구단주, 오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너는 대부분 그 구단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 사장이 맡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구단에 따라서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오너가 회사 사장이든 개인이든 간에 그는 구단의 소유주라고 할 수 있어요. 구단에서 제일 높은 사람은 얼핏 보기에는 감독처럼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사실 알고 보면 진짜 높은 사람은 바로 오너, 그러니까 구단주인 것이지요.

그렇게 본다면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감독도 결국 오너 밑에 있는, 말하자면 월급쟁이 사장, 아니, 월급쟁이 감독인 셈입니다.


선수들 앞에서는 아무리 큰 소리를 치는 감독이라 하더라도 오너 앞에 서게 되면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리고 아무리 잘생기고 멋지고 선수들에게 인기가 많은 감독이라 하더라도 팀의 성적이 부진한 경우에는 오너 말 한 마디에 언제든지 경질이 될 수도 있는 존재에 불과한 것이지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간단히 말해서 그 팀의 소유자는 감독이 아니라 오너이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오너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팀을 이기게 하기 위해서 감독에게 팀을 맡긴 것이고, 감독은 열심히 팀을 이끌어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이 그 임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감독이 선수들에 대한 훈련이나 아니면 경기에서 이길 생각을 하지 않고, 자신이 감독이라고 하는 것을 내세워가면서, 맨날 목에 힘을 주고 잘난 척만 하고 다닌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는 어렵지 않습니다. 무슨 감독을 맡길 만한 사람이 그 사람 뿐인가요.

아무리 인내심이 강한 오너라 하더라도 그 감독을 잘라 버리고 다른 감독을 앉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께서는 혹시 사무엘이 사울을 처음 봤을 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사무엘상 9장 17절
“사무엘이 사울을 볼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다스리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가리켜 사무엘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사울이 그의 백성을 다스리리라”라고 말씀하셨나요?

아닙니다.

“사울이 ‘내 백성’을 다스리리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보면 어떻게 됩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구단이라고 하고 하나님을 구단주라고 한다면 사울 왕은 감독이라는 것이 됩니다.

구단의 소유주는 감독이 아니라 구단주인 것처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자손은 사울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인 것이 되잖아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앉힌 이유는 구단주의 뜻에 합당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사울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 백성의 소유주 되신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었던 것이지요.

자, 그럼 순종을 하려면 무엇을 알아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알아야 하는 것이잖아요.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이미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사무엘상 9장 16절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되었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았노라 하셨더니”


그렇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사명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고 그들의 숙적이자 당시에도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있던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구원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울에게 주어진 지상명령이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울이 즉위한 후 그의 인생을 바꾼 세 번의 전투 역시 블레셋 군대와의 전투 때였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울은 하나님께 대하여 크게 두 번의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첫번째 실수는 사무엘상 13장에 등장합니다.

이제 사울은 블레셋 군대와 전투를 시작하려고 해요. 13장 2절에 의하면 사울은 정예부대 3,000명을 택해서, 그 중 2,000명은 자기와 함께 있게 하고 나머지 1,000명은 자기 아들 요나단을 따르도록 했습니다.

이제 사울이 길갈에 있는데 블레셋 군대는 수없이 많아서 그와 함께 했던 백성들은 불안해했다고 해요.


자,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다음 구절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8절~12절까지를 한 번 보실까요.

사무엘상 13장 8절~12절
“8.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9.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10.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11.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2.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그러니까 7일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사무엘이 오지 않으니까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졌다고 해요.

이를 알아보기 위해 사무엘상 10장 8절을 봅니다.


사무엘상 10장 8절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네가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 동안 기다리라”

여기서 보면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자신이 번제와 화목제를 드릴 것이니까 너는 먼저 길갈로 가서 7일 동안 기다리라고 명합니다.

물론 이 두 구절을 보면 장소가 똑같이 ‘길갈’로 되어 있긴 합니다만, 10장 8절에서 7일 동안 기다리라고 말한 때가 13장 8절이다, 라고 하기에는 그 사이가 너무나 벌어져 있어요.

그래서 대다수 신학자들이 생각하기에는 당시 사무엘 선지자는 거사를 도모하기 전에 사울 왕에게 7일을 기다리도록 하라는 명령을 종종 내리지 않았을까 하고 추정을 합니다.

따라서 문맥상으로 볼 때 13장 8절에서도 역시 그 이전에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길갈에 가서 7일 동안 기다리라고 명령을 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지요.

이제 7일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사무엘은 오지 않아요.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시간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는 부분입니다.


구약시대에도 비록 지금처럼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분명 시간이라는 개념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의 말에 있어서는 시간에 대한 언급이 없이 단순히 7일 동안 기다리라는 것이었잖아요.

자, 여러분께서는 오늘이 7일째가 되는 날이에요. 그렇다면 언제까지 기다리시겠습니까.

기본적으로 이스라엘을 보면 그 날의 끝은 해가 저무는 시간까지인 것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도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해가 진 때까지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거든요.


하지만 당시 사울에 대한 장면을 보면 아직 해가 저물었다는 기록이 없어요.

다만 사무엘이 약속한 7일째가 되었는데도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니 이제 사울과 함께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흩어져요.


본래 사울과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 2,000명이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15절에 보면 그 수가 600명까지 줄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니 사울은 불안하고 초조하죠. 가만히 있다가는 블레셋이 쳐들어와서 전쟁도 못해보고 도망가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일이 이 지경에 되자 누구보다도 불안해진 사울은 어떻게 합니까.

사무엘상 13장 9절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사울은 말합니다.

“야, 안 되겠다. 사무엘을 기다리다 다 죽겠어. 제물을 이리로 가져와. 내가 제사를 드릴게.”

사실 왕이 이렇게 말을 하는데 안 된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사울은 사무엘을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 멋대로 제사를 드려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자, 여기까지 보고 우선 사울이 어디서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잘못으로 그는 율법을 어겼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제사장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 중에서 어느 지파 사람들만 할 수 있었습니까.

예, 그것은 바로 레위 지파 사람들 뿐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지파 사람들은 제사는커녕 하나님 성전에 있는 기물들을 만질 수 조차 없었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사울 왕은 무슨 지파 사람입니까.

사무엘상 9장 1절에 의하면 그는 베냐민 지파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울은 제아무리 왕이었다 하더라도 그가 직접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율법을 범하는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한편 사무엘은 어떻습니까.

사무엘상 1장 1절에 의하면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를 가리켜 에브라임 사람이라고 합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에게는 애굽에서 총리로 있을 때 낳은 두 아들이 있었는데 이는 므낫세와 에브라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기록만을 보면 마치 사무엘이 에브라임 지파처럼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역대상 6장 34절 이후에 보시면 사무엘의 족보가 나오는데, 사무엘에서 그의 아버지 엘가나, 그리고 그 위로 계속해서 올라가면 38절에서는 야곱의 아들 레위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러고보니 사무엘상 1장 1절에서는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에 대해서 ‘에브라임 사람’이라고 했을 뿐 ‘에브라임 지파’라고는 하지 않았잖아요.

그러니까 사무엘 집안은 비록 그 가족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거주했었지만, 족보상으로 본다면 사무엘은 분명 레위 지파 사람, 그러니까 하나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사울의 두 번째 잘못으로, 그는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사무엘은 분명히 7일을 기다리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사울은 분명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무엘은 그냥 몇 월 몇 일에 제사를 드리겠다고 하면 됐지, 왜 굳이 기다리라고 했던 것일까요.

여기서 우리는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두 가지의 기다림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출애굽기 24장 12절~18절
“12.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네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13.모세가 그의 부하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 모세가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며
14.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라 아론과 훌이 너희와 함께 하리니 무릇 일이 있는 자는 그들에게로 나아갈지니라 하고
15.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16.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리더니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17.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18.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셨는데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남겨둔 채 여호수아와 함께 산을 오릅니다.

이제 아마도 어느 정도 올라가서 6일 정도 기다리니까 7일째가 되어서 모세를 부르셨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40일 동안 모세는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고 하지요.

40일이 지나자 산밑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출애굽기 32장 1절~6절
“1.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2.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3.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4.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5.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6.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모세가 한 달이 넘도록 안 내려오자 이스라엘 자손들은 우상을 만들어 거기에 제사를 드리며 숭배를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좀 의문이 들지 않습니까.


자, 이스라엘 자손들은 산 아래에 있어요.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과 산에 있어요. 그러면 누구 하나가 빠졌죠? 예, 바로 여호수아입니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모세가 산에 오르기 전까지는 모세와 함께 산 중턱 부근에 함께 있었잖아요.

그렇다면 모세가 산에 오른 다음에 여호수아는 다시 아래로 내려왔을까요?

자, 여기서 출애굽기 32장을 봅니다.


출애굽기 32장 15절~17절
“15.모세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두 증거판이 그의 손에 있고 그 판의 양면 이쪽 저쪽에 글자가 있으니
16.그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
17.여호수아가 백성들의 요란한 소리를 듣고 모세에게 말하되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나이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돌판, 십계명이 새겨진 증거판을 들고 내려오는데 도중에 여호수아를 만나요.

그런데 그가 하는 말이, 저기 백성들한테서 요란한 소리가 나는데 무슨 싸우는 소리가 난다고 합니다.

사실 이는 싸우는 소리가 아니라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서 난리를 치는 소리였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호수아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어요.

이는 무엇을 뜻합니까. 그렇죠. 모세가 올라간 뒤 산밑으로 내려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모세와 함께 오르지도 못한 여호수아는 산 중턱에서 모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며칠 동안이나요?


예, 40일 동안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결과적으로 40일을 기다린 것이지, 아니, 생각해 보세요.

애초에 모세가 산에 올라갈 때 40일 있다가 내려오겠다고 말하지도 않았어요. 그 이유는 모세도 40일이나 걸릴 거라는 사실을 몰랐거든요.

그러니까 여호수아는 언제 올지도 모르는 모세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 먹을 것은요. 모세야 하나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배고픈 줄도 몰랐겠지요. 하지만 여호수아는 어떻습니까.

풀한포기 나지 않는 광야에 있는 산 중턱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몇 날 며칠동안 홀로 있으면서 모세를 기다렸을 여호수아.

이에 반해 끝까지 모세를 기다리지 못하고 하나님을 버리고는 우상을 섬기며 난리를 치던 이스라엘 자손들.

이 두 기다림이 너무나도 대조되지 않습니까.


결국 기다림을 참지 못해 하나님을 버렸던 아론이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엄하게 질책을 받았으나, 끝까지 인내하고 견딘 여호수아는 장차 모세의 뒤를 이어 큰 종으로 쓰임을 받게 되고, 마침내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어서 가나안 땅 정복을 성공적으로 이루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무엘이 번제와 화목제를 위해 기다리게 한 것. 이는 단순히 그가 게으름을 피운 것이 아닌, 그 기다림도 또한 번제와 화목제 때 바쳐지는 다른 제물 못지않게 하나님께 바쳐지는 귀한 제물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도 이를 기다리지 못한 사울이 자기 멋대로 제사를 드리자 곧바로 나타난 사무엘은 그를 엄하게 꾸짖습니다.

사무엘상 13장 13절~14절
“13.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14.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아무리 왕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명령이신 율법을 어기게 된다면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또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기다리는 인내심을 가졌었더라면, 그가 면류관을 빼앗기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영광된 이스라엘의 왕위는 사울의 가문에 영원히 이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다리는 인내심을 가지지 못했던 사울은, 이제 그에게 주어졌던 면류관이 빼앗기고 그 나라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게 될 것이라는 무서운 예언을 듣게 되는 것이지요.

사실 지금이라도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더라면 어쩌면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사울의 입에서 용서와 회개가 나오는 일은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은 ‘사울이 버린 것’이라는 것 중 첫번째 시간으로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내용 중에서 사울이 버린 것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기다림’이었습니다.


‘기다림’을 버리지만 않았더라면 그는 영광된 이름으로 성경에 기록되었을 것이지만, ‘기다림’을 버렸기 때문에 그는 결국 실패한 왕으로 남게 되고 말았던 것이지요.

이제 우리는 믿음 안에서 기다리는 지혜를 가져야 할 줄 믿습니다.

이사야 59장 1절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힘이 부족해서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요, 귀가 어두워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못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을 때에 우리에게 넘치는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때로는 우리로부터 ‘기다림’이라는 귀한 제물을 받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그 어떤 제물보다 값진 제물인 ‘기다림’이라는 제물을 주님 앞에 거룩하게 드림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약속된 면류관, 우리에게 약속된 축복을 모두 받으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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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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