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의 들보

글들서재 2021. 8. 1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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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자신의 들보 ♬
2010년 07월 18일 글들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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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성가대를 섬길 당시 주보에 실었던 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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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 국민은행 079-21-0736-251 홍성필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시야를 넓힌다는 것이 좋은 일입니다. 이를 위해 학생들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도 여러 곳을 여행하며 또는 다양한 책을 통해 견문을 넓히기도 합니다. 시야를 넓히는 일이 좋은 이유를 굳이 든다면 그 중 하나는 편협한 생각이 아닌 여러 지식을 통해 많은 것을 익혀 삶의 폭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이를 적극적인 유익함이라고 한다면 다른 한 편으로는 소극적인 유익함도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뉴스만을 본다면 정말 안 좋은 모습들도 많습니다. 국회에서의 난투극, 뇌물을 주고 받는 공직자들, 원산지를 위조하는 판매업자들, 그리고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사건 사고들을 보면 참으로 문제가 많은 나라처럼 보이고 “도대체 이런 나라가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하는 생각마저 들며 월드컵과 올림픽 때마다 싹트려는 애국심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나 시야를 외국으로 돌려보면 대만에서도 일본, 멕시코, 이탈리아, 러시아, 터키 등 의외로 많은 나라에서 일어났으며, 뇌물이나 원산지 위조도 역시 많습니다. 이웃나라 일본만을 보아도 공직자들이 뇌물을 주고 받는 일이 얼마나 많으면 ‘汚職(오쇼쿠)’라는, 이런 행위를 나타내는 단어가 있을 정도이며, 매년 12월에 그 해를 나타내는 한자 한 글자를 공모를 통해 선정하는데 지난 2008년에는 연이은 식품표시 위조사건으로 한자가 ‘僞(거짓 위)’가 선정되었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다른 나라 사람들도 하고 있다고 해서 좋지 못한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는 일은 아니겠으나, 이와 같은 사실을 알면 우리나라만의 국한된 일이 아니기에 다소 넓은 아량을 가지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변을 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나 자신이 의로워서 남들이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도 누군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눅 6:42)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내 눈 속에서 들보를 빼는 일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2008년 3월 12일자 미주 크리스찬 투데이(이단 시비가 있는 ‘기독일보’ 아님)에 실린 ‘예수님 수난의 의학적 증거는’이라는 기사는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실 때 패티볼룸(patibulum)을 지고 올라가셨다고 하는데, 이는 십자가의 ‘가로 들보’라고 합니다.
성경을 살펴봅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34)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요 19:17)
이를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그리고 이렇게 강권합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빌 2:13~14)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영광된 자리를 버리시고 미천한 인간들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르는 길 또한 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야말로 내 눈에서 들보를 빼는 일일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낮추고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게 함으로 말미암아 나 자신의 들보를 빼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 인생의 궁극적 목표 ♬

♬ 땅끝을 향하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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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7월 11일 글들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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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항구를 떠나 성공적인 항해를 하기 위해서는 경로와 튼튼한 장비, 충분한 식량 등 갖추어야 할 필요한 것들은 많겠으나 무엇보다도 행선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다른 조건들이 아무리 완벽하다 할지라도 의미 있는 항해는 되지 못할 것입니다.
현실적인 인생 목표를 설정할 나이가 된 성인남녀들의 목표를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요. 큰 집과 훌륭한 자녀 교육, 멋진 자동차, 남부럽지 않은 사회적 지위, 안락한 노후를 위한 넉넉한 자금 마련 등을 들 수도 있겠으나, 주님의 사랑 안에 있는 우리는 분명 세상 사람들의 꿈과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출애굽기 12장 37절에 의하면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나 된다고 기록하는데, 당시 그처럼 수많은 군중들에게는 경로도 튼튼한 장비도 충분한 식량도 없었으며, 그들에게는 오직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행선지가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출 3:8)
학계에서는 당시 애굽을 탈출한 총 인구가 200만명 가량이었다고 하며,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 15: 13~14)는 하나님의 약속은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출 12:35~36), “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출 12: 38),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출 12:40)에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모세의 지도 아래 성공적인 탈출을 하지만, “그들이 애굽으로부터 가지고 나온 발교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웠으니 이는 그들이 애굽에서 쫓겨나므로 지체할 수 없었음이며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하였음이었더라”(출 12:39)는 기록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준비성 없이 서둘러 나와야 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분명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오기는 했으나 그들 앞에는 애굽 군대의 추격과 식량문제 등이 기다리고 있었으며 결코 평탄한 길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들을 하나님께서는 홍해의 기적과 만나와 물을 주시면서 해결해주시며, 광야 생활 40년 동안 의복이 해어지지 않았으며 발이 부르트지도 않았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신 8:4)
우리의 인생행로는 분명 우리 스스로가 살아가는 길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 안에 있는 우리는 일거수일투족을 하나님이 사랑과 은혜 가운데에서 이끄시는 줄을 믿습니다.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는 이스라엘 민족들을 끝까지 버리지 않으신 것은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심으로 말미암아 뜻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목적이 있으셨다는 점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우리는 인생의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성경에서 찾아보았습니다. 고린도후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 5:20)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목도하면서도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에게 끊임없이 불만을 토로하며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고난과 시련을 자초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를 아무런 목적 없이 지으심을 받지 않았으며, 우리를 통해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분명하고도 치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를 성취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리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주님의 계획에 부합하는 목표설정으로 성공적인 인생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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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7월 04일 글들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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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암 환자입니다. 색전술과 항암치료를 두 번했습니다. 결과가 좋다고 했는데 갑자기 뼈로 전이가 되었습니다. 머리뼈, 갈비뼈, 척추, 골반뼈 등 무섭습니다. 다른 장기로 전이된 것 보다는 다행이라고 하지만 척추 신경을 암이 건드렸는지 다리가 저리고 아픕니다. 다들 힘드시겠지만 기도해 주세요. 10살과 7살 아들을 둔 아빠예요. 희망과 용기를 주시고 암과 함께 살아도 좋습니다. 완치가 안 되어도 좋습니다. 고통스럽지만 않게 생명을 연장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해 주세요. 도와주세요.
- 아직도 젊은 나이입니다. 하셔야 할 일도 많은데 루게릭병이라는 진단을 1차 받았습니다. 확인검사 차 정밀검사를 받으러 왔습니다. 아직 나오지 않은 결과가 자꾸 두렵습니다. 부디 좋은 결과 나오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지금과 같은 결과라 해도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게 해 주세요, 기도해 주세요
-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응급구조사입니다. 한 환자 한 환자에게 최선을 다해 처치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임할 수 있게 해주세요.
- 주님, 점심 먹는 대신 기도하러 왔습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한 이후 주신 가장 큰 특권은 기도인데 어려움이 있어야 비로소 기도를 합니다. 기도 하옵는 것은 일 계속 다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낮아질 수 있는 기회 주신 것 감사하며 깊이깊이 낮아지게 해 주십시오. 낮아짐의 은혜를 누리게 해주옵소서. 무엇이 진정한 낮아짐인지 배우고 깨달아 가는 5개월의 직장생활이 되게 해 주시고 지켜 주세요.
- 근심하지 말라 하신 주님 주님의 은총 속에서 이 시간 수술 받고 있습니다. 주님의 그 뜨거운 손길로 역사하시어 완치되리라 저희가 믿사오며, 아직도 주님의 일꾼으로 할일 많은 주님의 제자, 주님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주님 곁으로 이끄시리라 굳건히 믿사오니, 주님, 수술 잘 되어 완치 되게 하옵소서 주님이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주여, 모든 것을 주님께 맡깁니다. 주를 믿고 근심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채워 주소서.
- 엄마가 복막염으로 응급실에 오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하루속히 회복 하길 기도 드려요. 점점 약해지는 엄마를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파요 주님……. 나태해지고 약해진 믿음이 예전처럼 주님께 열심히 기도 드리는 주님의 딸이 되길 기원합니다. 주님이 제 안에 계심을 믿습니다,
- 폐, 가슴, 난소, 등뼈가 안 좋다고 합니다. 조직 검사합니다 너무나 지은 죄가 많아서 자격도 없는데 이렇게 왔습니다.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저를 받아주세요. 하나님, 저의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 오늘도 주님 전에 나왔습니다. 병든 몸을 이끌고 주님께 이제야 나왔습니다. 위암수술을 받습니다. 다른 장기로 전이 되지 않았길 빕니다. 제발 살려 주세요. 불쌍히 여겨 주세요.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이 있습니다. 좋은 남편으로 좋은 아빠로 생활하지 못했는데 기회를 한번만 더 주세요. 주님 지켜주세요. 살려주세요.
- 중환자실에서 생명과 싸우고 있는 아이의 엄마입니다. 어렵고 큰 수술을 했습니다, 이식 밖에 길이 없다는 진단을 받고 생명을 연장하러 입원했었는데, 다행히 수술할 수 있음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죄 많은 엄마이기에 자식이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길 간절히 부탁 드립니다.

이상은 어느 한 병원에 위치한 교회 주보에 실린 글들입니다.
나는 과연 이토록 간절한 기도를 드려본 것이 언제였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 계신 분들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을 더욱 사모하는 마음의 회복을 위해 간절한 기도를 일깨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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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6월 27일 글들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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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밤 늦도록 환호성과 아쉬움이 섞인 탄성이 교차하는 날이었습니다. 잠시 바깥으로 나가보았더니,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동네 곳곳은 마치 초저녁인 것처럼 여기저기에 모여서 하나같이 큰 텔레비전으로 축구중계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월드컵에 대한 응원열기는 특히 2002년 이후 특히 뜨거워진 것 같습니다. 직장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빨간 티셔츠를 비롯하여 응원도구를 파는 곳도 많았으나, 머리에 빨간 뿔이 달린 머리띠를 보고는 하나님을 믿은 한 사람으로서 마음 한 구석이 마음에 걸린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이를 과연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라는 응원단 이름을 놓고 특히 교계에서 여러 반대의견이 많았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일부에서는 이와 같은 이름에 비판을 하기도 하고, 응원단 이름을 바꾸도록 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며, 나아가 새로운 이름을 가진 응원단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잠시 ‘축구’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평소 국내 프로축구에 관심이 없었던 대다수 국민들이라도 월드컵 국가대표만은 열광적으로 응원합니다. 여기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으며 ‘오프사이드’가 무엇인지, 콜 킥과 코너 킥이 무엇인지 등 축구 규칙을 알고 있는지의 여부도 불문하고 모두가 열광적으로 응원합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스포츠임에도 불구하고 열광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요즘 과연 교회에서는 이토록 열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들의 이익이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이 거의 없는 축구에 뜨겁도록 성원을 보내고 감격하는데, 최근 교회에서는 이와 같은 뜨거운 열정을 찾아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구원이 축구공의 향방보다 못해서일까요? 그럴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며 교회를 섬기면서도 우리의 열정은 한 낯 축구 열기보다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성수주일을 하면서도, 그리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면서도 주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은 사라지고 그저 단순한 일과 중 하나가 되어버린다면 이는 너무나 부족한 제사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주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주님에 대한 첫사랑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성경을 살펴봅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눅 21:1~4)
성경에는 부자들과 가난한 과부에 대한 정확한 묘사가 없으나, 적어도 믿음에 대한 열정은 부자들보다 가난한 과부가 더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신학자들에 의하면 당시에는 지폐가 없었으므로 헌금함에 헌금을 할 때에는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고 하며, 어떤 부자들은 일부러 잔돈으로 바꾸어 남들한테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들리도록 과시를 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 가난한 과부가 헌금을 했을 때에는 고작 동전 두 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을 뿐이었을 것입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다음 성경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 6:5)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자들’에 대해 매우 엄히 꾸짖고 계십니다. 특히 마태복음 6장에서는 기도만이 아니라 회당과 거리에서 자신의 믿음을 과시하는 행위나 구제 등에 대해서도 ‘남에게 보이기 위한 행위’에 대하여 반복해서 경계하고 계십니다.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만을 위한 경기가 아니라, 온 힘과 열정을 다해 승부에 임하며, 이를 보는 국민들이 열광하고 찬사를 보냅니다. ‘붉은 악마’든 ‘푸른 천사’든 문제가 안 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믿음’이 아닌 성령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끓어오르는 열정으로 주님을 찬양하고 교회를 섬길 때에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는 이들은 이로 말미암아 주님을 갈망하고 의지하고 주님의 사랑에 열광할 것입니다.
아무리 소리가 요란하고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소리라 하더라도 이것이 부자가 단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헌금이라면 하나님은 기쁘게 받지 않으실 것이며, 오히려 가난한 과부가 드린 고작 동전 두 개의 작은 소리라도 주님의 마음을 움직이며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믿음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드려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정과 감사로 충만한 두 렙돈의 믿음과 두 렙돈의 찬양을 드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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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6월 20일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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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 (Abraham Maslow)는 인간의 자아실현이론을 주장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욕구는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애정의 욕구, 존경의 욕구, 그리고 자아실현의 욕구와 같이 5단계로 이루어지며 하위 욕구가 충족되면 상위에 있는 욕구를 향해 가는 피라미드 형태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합니다. 즉, 생리적 요구가 충족된 후에야 안전의 욕구를 지향하게 되며, 안전에 대한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는 애정이나 존경의 욕구가 생길 수 없고, 신변 안전이 확보된 후에는 이제 애정 친화에 대한 욕구, 그리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기 원하는 욕구, 마지막으로 자아 실현을 위한 욕구를 향한다는 것입니다.
일견 타당성이 있는 것도 같지만 제게는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특히 마지막 단계인 ‘자아실현’고 하면 왠지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렇다면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킨 사람이란 누구일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정치적으로 정점에 오른 사람이라면 자신의 자아실현을 충족했다고 스스로 생각할까. 거대한 재벌기업을 일으켰다면 역시 그도 자아실현을 이루었다고 만족할까 하는 점입니다. 즉, 그와 같은 일을 이루면 이 생을 마치는 순간에 자신은 모든 욕구를 충족시켰다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으나 역시 이 점이 의심스럽습니다. 인간의 욕구란 다른 말로 하자면 채울 수 없는 허기와 목마름이나 다름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물가의 여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3~14)
과연 이 물은 무엇일까요. 성경은 이 점에 대해 기록합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7:37~39)
주님의 말씀처럼 이 세상에 있는 물을 아무리 마시더라도 다시 목마르게 되며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불 붓기나 다름 없으나 성령님을 우리 안에 모시게 된다면 이는 세상 그 무엇보다 우리에게 기쁨을 안겨주게 될 것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성령님을 우리 안에 모신다면 아무리 눈 앞에 모든 것이 절망적이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으로 인해 이 세상의 그 어느 욕구에 대한 충족보다도 크나큰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여느 우물물을 탐하기보다 주님께서 주시는 생수의 강으로 말미암아 기쁨으로 충만한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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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을 앓아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고 불과 10년 전에는 공상과학 수준의 일들이 지금은 당연시되고 있는 세상이지만 그만큼 사회에서 발생되는 정신적 질환 또한 증가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오랫동안 찬양대를 섬기다가 현재는 일산 오차르교회에서 사역하고 있으며 극동방송 홍보대사이자 ‘유정현의 내 영혼의 클래식’ 진행자인 유정현 전도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서울예고와 서울음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탁월한 음악성과 출중한 외모를 본다면 그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어 보이지만, 그는 지금까지 매우 극복하기 힘든 심한 우울증을 세 번이나 앓았다고 합니다. 생각건대 팔이나 다리를 다쳤다면 이를 보는 사람도 그 불편함이나 아픔을 쉽게 이해할 수는 있겠으나 마음의 질병 중 대표적인 우울증은 겉으로 들어나지 않기에 대응이 매우 어려우며, 심해지는 경우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에 유명 연예인 남매가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나 원인은 아무래도 우울증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울증은 현대인이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마음의 질병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전도사님의 간증에 의하면 우울증이 마음의 슬픔에서 비롯된 적도 있으나 이른바 ‘1등 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세상’ 때문에 온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성경에도 우울증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비도 마르게도 내리게도 하고 죽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렸으며 마침내는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의 대결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한 그였으나 사신을 통해 “너를 죽이겠다”는 이세벨의 말 한 마디를 듣자 예전의 그 모습과는 상상도 못하는 행동을 옮깁니다.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왕상 19:3~4)
이 문맥만을 본다면 믿음이 적거나 힘이 없는 무력한 한 인물의 기록처럼 보이지만 이는 분명 엘리야의 행동입니다. 우울증이 한 번 다가오면 아무리 당당하고 대담한 믿음의 사람이라도 이처럼 나약해지고 만다는 모습을 성경은 보여주고 계십니다.
거울을 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과거 삶을 돌아본다면 콤플렉스를 느낄 수 있는 소지는 하나 둘이 아닙니다. 현대인이 이력서를 쓸 때 가장 큰 부담을 느끼는 것은 학력이라고 하며, 지인들을 만났을 때에는 연봉의 차이로 콤플렉스를 느낀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를 살펴봅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아이를 가진 다말, 술집 기생 라합, 이방 여성인 룻, 다윗의 외도와 간접살인의 결과로 태어난 솔로몬……. 이렇게만 보아도 콤플렉스를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또한 성경은 예수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기록합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눅 4:2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마 8:20)
사람은 자신의 고향을 마음의 안식처로 삼지만 예수님은 고향에서도 배척 당하셨으며 이 세상에는 어디 하나 안식할 곳이 없으셨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 53:4)
주님은 단지 십자가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주님의 출생과 삶 전체를 통해 우리가 겪어야 할 어려움을 모두 겪으시고 우리의 불안과 고통과 슬픔과 좌절이라는 이름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우리보다 앞서 당하셨으며, 이미 우리가 당할 모든 아픔을 십자가의 제사로 말미암아 해방시켜주셨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도 우리가 평안을 누리고 우리가 어떠한 혜택을 받는다면 이는 분명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희생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학생시절 학비 걱정 없이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도, 하루 끼니를 굶지 않았던 것도 부모님의 사랑과 희생이며, 나아가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주님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과 예수님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것입니다.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시 118:21)
마음의 질병에서 해방되고 주님의 품 안에서 감사함으로 평안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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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타이핑 1독을 끝내고 다시 치기 시작한 지도 몇 달이 지났건만 게으름의 소치로 아직 창세기를 못 끝내고 있습니다. 정신 없던 몇 일이 지나고 어제는 모처럼 진도를 나가야겠기에 46절까지 있는 창세기 27장을 거의 다 마칠 무렵 시스템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혹시나 하고 다시 들어가보자 역시나 자료가 저장이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속이 상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무슨 뜻이라도 있겠지 하며 다시 음미하며 찍어보기로 했습니다. 내용은 이삭이 나이 들어 에서에게 축복을 해주려고 했으나 이를 야곱이 가로채는 대목입니다.
이른바 야곱이라고 하면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애를 쓰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만, 이 구절을 보면 조금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이삭이 그가 사랑하는 아들 에서에게 축복을 해주겠노라며 사냥을 하고 별미를 만들어 오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를 엿들은 리브가는 그녀가 사랑하는 야곱이 에서를 대신하여 축복 받기를 원합니다. 이 ‘축복 가로채기 작전’을 들은 야곱은 분연히 떨쳐 일어서는 것이 아니라 주저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야곱이 그 어머니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형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의 눈에 속이는 자로 보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창 27:11~12)
그러나 어머니 리브가는 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창 27:13)
마침내 축복을 빼앗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는 사실을 알자 리브가는 자신의 외삼촌 라반에게로 피신하도록 합니다. 창세기 25장 27절에는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집을 나간 후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그의 삶은 ‘조용한 사람’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 보이며, 그러한 생을 보낸 데에는 아무래도 리브가의 영향이 적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축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쟁취하는 것이다”는 생각이 강하게 그의 안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얍복 강가에서 천사와 겨루기까지 했는지도 모릅니다.
야곱은 분명 축복을 받았으며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에서의 하나님이 아닌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나님 스스로도 말씀하실 정도로 축복된 자였습니다(출 3:6). 그렇다면 그 축복은 과연 그의 부친 이삭을 속여 받은 축복 때문이었을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얍복 나루에서 천사와 밤새도록 씨름을 했기 때문이었을까요.
이삭과 야곱이 태어나기 전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창 24:23)
뿐만 아니라 말라기에도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말 1:2~3)
자신의 지혜로 축복을 쟁취해서 야곱을 사랑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사람(호세아서에는 12:4에는 ‘천사’로 기록)과 겨루어 이겼기에 사랑하시는 것도 아닌, 태어나기 전부터 사랑하셨다고 한다면 그 기준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여기에 대한 답을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9:16)
이 말씀대로라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인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으로부터 우리가 긍휼히 여김을 받는 자가 될까요. 이 질문에 대한 해답 또한 성경은 기록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
우리가 나 자신과 우리 이웃을 긍휼히 여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아 축복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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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들서재 2021. 8. 10.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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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5월 16일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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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성가대를 섬길 당시 주보에 실었던 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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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님의 말씀 중에 성경을 축소하는 것에 대한 경계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예로 드신 것 중 하나가 베스트셀러인 ‘긍정의 힘’이었습니다. 저도 지인으로부터 받은 적이 있어 예전에 도중까지 읽었던 책이었는데, 그와 같은 것이 성경을 축소한 것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 우리를 위해 독생자의 희생까지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내어주시면서까지 우리의 구원을 바라시는 비할 데 없는 하나님의 사랑……. 이 모든 것은 영원불변할 하나님의 마음일 것입니다. 우리가 굶주릴 때나 질병에 시달릴 때, 어려움에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때 주님은 우리를 인도해주시며 환란에서 우리를 건져주시는 하나님. 하지만 이 축복은 영원히 우리 안에 머물며 교회생활을 하기만 하면 우리에게 얻어질 은혜는 아니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를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4~5)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 3:11)
즉, 우리에게 있었던 촛대는 옮겨질 수도 있는 것이며, 우리의 면류관도 누군가가 빼앗을 수도 있다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이는 우리의 방만한 태도를 경계하는 말씀과도 같습니다. 아무리 크나큰 축복을 우리에게 주셨고 한없는 은혜를 입었으며 놀라운 주님의 역사를 체험했다 하더라도 문제는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까지 이를 지킬 수 있는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렸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침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
성경은 우리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전 6:1)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이며, 자신이 받은 달란트 대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를 넓히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의 맡은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 3:12)
주님께서 주신 축복을 놓치지 않으며 마지막 날에 면류관을 받는 그 날까지 승리하고 또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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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들서재 2021. 8. 10.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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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5월 02일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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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생을 마치고 주님 앞에 나아갔을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듣고 싶은 말씀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는 막연한 ‘꿈’이나 ‘희망사항’이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 모두의 인생관과도 직결되는 문제일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달란트 비유’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주인이 타국으로 간 동안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깁니다. 주인은 각각 그 재능대로 다섯, 둘, 그리고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것으로 장사를 하여 배로 늘렸으나 한 달란트를 받은 자는 이를 땅에 묻어두었습니다. 주인이 돌아온 후 앞의 두 종에 대해서는 칭찬을 하시고 마지막 종에게는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게 됩니다.
널리 알려진 이 비유를 자세히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먼저 14~15절에서는 주인이 종들에게 ‘각각 재능대로’ ‘자기 소유’를 맡겼으며, 숫자상으로는 열 달란트와 네 달란트와 같이 차이는 많으나 모두 두 배씩 그 소유를 늘렸다는 것을 보시고 칭찬의 말씀이 똑같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
궁극적으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마지막 날에 주님으로부터 듣기를 원하는 말씀 중 이보다 더한 칭찬이 어디 있을까요. 이를 위해 우리는 몇 가지를 다시금 되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우리 중에는 모두 달란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마 25:26)
이 말씀에 의하면 주인 곧 하나님께서는 심은 데서 거두시는 분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모두 마지막 날의 결산 (마 25:19 참조) 날에 우리에게 그 성과를 살피실 것이며, 그 이유는 분명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달란트를 늘리는 일은 ‘선택’이 아닌 ‘의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둘째로 그 달란트는 우리의 능력으로 얻어진 것이 아닌 하나님의 소유라는 점입니다. 만일 우리가 가진 달란트가 스스로의 힘으로 갖게 되었다면 우리는 이를 쓰던 안 쓰던 우리 마음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우리가 가진 달란트의 주인은 우리가 아닌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도 우리의 능력으로 태어난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달란트를 우리 자신의 것으로 잘못 아는 경우가 있습니다. 먼저 우리의 육신을 살펴보더라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우리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할 때 머리카락을 1cm도, 손톱을 1mm도 늘릴 수 없습니다. 이 점을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 마음에 ‘겸손’이 싹틀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였을 때 비로소 주님은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는 말씀으로 우리를 맞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마지막 결산의 날, 주님으로부터 ‘충성된 종’으로 칭찬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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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4월 18일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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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친숙한 전래동화 중에 ‘혹부리영감’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착한 혹부리영감은 도깨비들을 만나 노래를 부르고 그 노래가 어디서 나오는지를 묻자 바로 자신이 가진 혹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듣고 도깨비는 넉넉한 재물을 주며 혹을 떼여줍니다. 이 말을 들은 심술쟁이 부자 혹부리영감이 자신도 혹을 떼고 재물도 얻겠다면서 이를 따라 하다가 오히려 혹을 붙이는 격이 되고 맙니다. 물론 이 설화는 성경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성경에도 혹을 떼려다가 오히려 붙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고 하셨으나 자신이 지혜롭게 될 줄 알고 이를 어긴 결과 에덴에서 추방당했고 아브라함도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창 15:4)”는 말씀이 있었음에도 사람의 생각으로 하갈과 동침하여 결국 사라와 하갈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으며,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28)고 하셨으나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 11:4)면서 교만과 불순종의 상징 ‘바벨탑’을 세우려 하다가 끝내는 분열하여 온 지면에 흩어지게 됩니다(창 11:8). 뿐만이 아닙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분명 그를 사랑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으로 인생을 헤쳐나가려는 삶을 보낸 끝에, 노년에 자신의 생을 돌아보며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 47:9)고 고백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성경은 다른 모습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요셉은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애굽으로 팔려가 친위대장 보디발 집으로 갔을 때나, 보디발의 아내가 저지른 술수에 빠져 옥에 갇혔을 때나,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요셉의 행동 뒤에 항상 따라다니는 말씀으로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창 39: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창 39:23)고 성경이 기록한 그는 나중에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또한 에스더서를 보면 하만이 자신에게 꿇어 절하지 않는 모르드개와 그 민족 유다인들을 모두 멸절시키려던 차에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에 4:14)는 모르드개의 말을 듣고 순종하여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는 각오로 금식하며 오직 하나님의 방법을 택한 에스더는 마침내 유다 민족을 구하게 되고, 모르드개를 처벌하여 매달려던 나무에 하만 자신이 매달리게 됩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잠 16:2~3)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잠 16:5)
우리의 삶에서 그저 필요할 때나 가끔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성경은 말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행사를 모두 맡길 때에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함께 하신 것처럼 우리와도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신 30:20)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렘 17:7)
요셉과 함께하신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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