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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8.05 미련함 속에 피어나는 능력의 꽃
  2. 2021.08.05 빛으로 오신 예수님
  3. 2021.08.05 요한 3서 2절
  4. 2021.08.05 성경 타이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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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련함 속에 피어나는 능력의 꽃 ♬
2007년 9월 2일 글들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오래 전 성가대를 섬길 당시 주보에 실었던 글들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선교후원
KB 국민은행 079-21-0736-251 홍성필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지난 7월 20일 의료봉사를 위해 아프간을 방문한 교인들이 납치되었다는 발표가 내외신을 통해 전세계에 보도되었으며, 25일에는 배형규 목사님이, 31일에는 심성민 형제님이 희생되었다는 발표가 있었을 때, 단순한 슬픔을 넘어서 하늘을 우러러 “그들이, 아니, 우리가 도대체 무슨 죽을 죄를 지었기에,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주님의 종이, 그리고 귀한 형제가 이국 땅에서 피를 흘려야 합니까” 하는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러는 사이에도 국내외에서는 ‘해외선교’라는 단어 앞에 ‘무리한’, ‘성과위주’, ‘교세과시’, ‘캠코더’ 등의 수식어를 붙여가며 온갖 기사와 댓글로 가득 찼습니다. 그들이 아프간으로 건너간 것은 교회에서 억지로 보낸 것도 아니며, 다녀 온다고 대단한 특혜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도무지 예상할 수 없는 지경의 고난이 이어지며 어려움을 당하기에 이르고, 주위를 돌아보아도 비난과 비판이 난무하면, 주님에 대한 믿음도 말씀도 우리 머리에서 떠나 어느새 주님을 원망하고 탄식하며 괴로움에 주체할 수 없게 되고 맙니다.
지난 31일자로 KBS 인터넷에는 다음과 같은 표제가 실렸습니다.
- “인질 모두 석방” 피랍 43일 종료. -
이 제목을 보는 순간 머리 속에 성경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출 12:41)
애굽을 탈출한 그들은 기쁨도 잠시였으며 이윽고 눈앞에 펼쳐진 홍해와 뒤쫓아오는 애굽 군대를 사이에 두고 실의에 빠지고는 또다시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 시점에 만약 손자나 제갈공명, 이순신 장군, 아이젠하워, 맥아더 장군과도 같은 뛰어난 전술가들이 한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무리 훌륭한 전술을 구사했다 하더라도 ‘유대인 100% 생존, 애굽 군대 100% 전멸’이라는 결과를 내놓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역사적 자료에 의하면 젊은 시절 모세는 바로의 군대를 이끌고 여러 국가를 점령했을 정도로 뛰어난 전술가요 용사였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나, 그가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택한 방법은 이 세상 모든 지혜를 다 버리고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주신 전술은 매우 명료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 14:14)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 다가올 때 이를 해결할 분은 오로지 하나님뿐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을 구원한 것은 인간들이 보기에 지혜롭게 여기는 전략전술이 아니라 믿지 않는 자들이 보기에 미련하기 짝이 없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였습니다.
유대인들이 400년 넘도록 애굽에 살면서 핍박을 받을 때, 애굽인들로부터 그들이 받은 모욕은 어떠했을까요.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너희 하나 구원하지 못하는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 하는 말들을 수도 없이 들었을 것입니다. 아프간에서 피랍생활을 하던 그들을 향해 이와 같은 댓글들은 인터넷에 넘쳐났으며, 그들이 이제 탈레반들로부터 석방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또 다른 비난들은 쏟아집니다. 마치 애굽을 탈출한 그들 앞에 펼쳐진 홍해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정말 무엇인지 알 수 없으며, 이 때문에 교회 내에서도 현재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나오고 있으나, 이번 일을 그저 어떤 한 교회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닌, 주님을 믿은 사람 모두에게 주어진 시련으로 받아들이고, 무엇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짧은 지혜나 판단력을 의지하기 보다는,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 아무리 미련한 방법일지 모르나 주님을 향한 기도로써 어려움 가운데에 역사하시는 주님을 의지할 때에 홍해를 가르고 애굽 군대를 물리치셨던 하나님의 능력이 꽃을 피울 것이라 믿습니다.

← ♬ 빛으로 오신 예수님 ♬

♬ 등불을 들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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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으로 오신 예수님 ♬
2007년 08월 26일 글들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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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성가대를 섬길 당시 주보에 실었던 글들입니다

요한복음 12장 46절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선교후원
KB 국민은행 079-21-0736-251 홍성필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나 성경말씀이 매우 비과학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분들 중에는 세계적인 석학들도 많으며, 그 중에는 의사나 화학자, 물리학자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과학’이란 다시 말해서 ‘사람이 이해하고 납득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아무리 합리적이고 진리라고 해도 ‘아직 사람이 이해하는 방법을 사람 스스로가 밝혀내지 못한 것’은 과학의 범주에서 벗어납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우리가 20세기에 와서야 밝혀낸 것들이 이미 수 천년 전에 적힌 성경에는 나와 있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성경말씀 중에 나오는 ‘빛’에 대한 내용을 과학적으로 대조해보면 흥미로운 점이 많이 있습니다.
첫째로, 현대 과학에서는 ‘빛’을 다른 물체와는 사뭇 다르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대부분 ‘물질’과 ‘파장’으로 정확하게 분류가 됩니다. 물질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도 만질 수 있는 것, 그리고 파장이란 소리나 전파처럼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도 만질 수 없으나 분명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학적으로 ‘빛’은 이 두 가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물질적인 성질’과 ‘파장적인 성질’을 모두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이 점은 예수님께서 ‘인성’과 ‘신성’을 모두 지니고 계시다는 점과 일치합니다.
둘째로, 빛은 속도가 항상 동일합니다. 이를 학술용어로는 ‘광속불변의 법칙’이라고 하는데,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빛의 속도는 초속 약 30만km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예컨대 시속 100km를 달리고 있는 자동차를 오토바이를 타고 시속 80km로 달리면서 본다면 자동차는 20km(100-80)로 달리는 것처럼 보일 것이며, 만약 반대방향을 달리면서 본다면 자동차는 180km(100+80)로 달리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초속 약 30만km로 날아가는 빛을 같은 방향으로 가령 초속 20만km로 달리며 보아도 역시 빛은 30만km로 날아가는 것처럼 보이며, 반대방향으로 달리면서 빛을 바라보아도 50만km가 아니라 여전히 30만km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을 떠올리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빛은 우리에게 무한한 에너지로 아무런 대가 없이 내리쬐고 있습니다. 열역학 이론에 따르면 예를 들어 10이라는 에너지로는 10 이상이 되는 힘을 만들어 낼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이 이론을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태양에너지의 활용입니다. 태양은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애를 써서 에너지를 만들어내지 않더라도 아무런 대가 없이 쏟아지는 빛을 에너지로서 활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나 자신을 현재보다 더 큰 에너지로 만들 수는 없으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주신 예수님만 믿고 의지한다면 얼마든지 더 큰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물로 세상을 멸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시면서 그 징표로서 빛의 결정체인 ‘무지개’를 보여주시며 평안을 약속해주셨습니다. 만약 그와 같은 약속이 없었더라면 사람들은 비가 내리는 날마다 “또 멸망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불안에 떨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심판과 멸망에 대한 불안에 떨고 있는 우리에게 평안과 구원의 약속을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다른 동물들에 비해 우수하다고는 하나, 어둠 속에서도 앞을 보며 초원을 달리는 짐승들이나 초음파로 앞을 볼 수 있는 동물들과는 달리 우리는 빛이 없으면 한치 앞도 볼 수 없습니다. 사람의 눈은 빛이 존재하고, 그 빛이 어떤 물체를 비추면 거기서 반사되어오는 빛을 보고 물체의 형태와 색채를 알 수 있는 매우 원시적인 시각기관을 가졌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서는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라고 하자 “우리도 맹인인가” 하고 묻는 바리새인을 향해,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빛이 없어 보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빛이신 예수님께서 오셨으므로 볼 수 있게 되었으나, 그 동안 빛 없이 세상을 보며, 마치 자신들은 세상을 올바로 보고 있는 줄 알았던 바리새인들에게는 오히려 빛이 옴으로써 맹인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자신들은 맹인이 아니며, 이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하지 않더라도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하므로 예수님께서는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였다고 하여 과학으로 하나님을 부정하려 해도 오히려 과학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우리는 빛으로 오신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통해 모든 것을 바라볼 때, 비로소 진정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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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3서 2절

글들서재 2021. 8. 5.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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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 3서 2절 ♬
2007년 08월 19일 글들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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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성가대를 섬길 당시 주보에 실었던 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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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순복음교회에 처음 다니기 시작한 것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였으니 참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우리 교회에 다니게 되면 초신자라도 자연스레 듣게 되는 성경구절 중 하나가 있다면 바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라는 요한 3서 2절 말씀입니다. 어른이라도 성경에 어느 정도 익숙하지 않으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저 글귀를, 더구나 어린 나이에는 알아듣기 힘들었겠지요. 그러던 중 점차 성경구절도 배우게 되자 저 말씀에 대한 호기심이 커져갔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 목사님께서 큰 은혜를 받으신 말씀이라고 하니 분명 성경에서도 대단한 장면에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마치 셰익스피어나 유명한 영화처럼 무슨 드라마틱한 장면에 나오는 말씀인줄 알았는데, 막상 성경을 찾아보니 요한 3서는 전체가 15절밖에 안 되는 짧은 글이었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구절은 거창한 장면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서두에 나오는, 말 그대로 ‘안부’였습니다. 그토록 기대하고 가슴 뛰며 찾아보았는데 고작 “잘 지내니? 건강해라”는 식의 안부인사일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분명 목사님께서는 저 구절을 주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아들이셨다고 했지만, 아무리 자세히 읽어봐도 사도 요한이 가이오라는 사람에게 보내는 짤막한 편지였으며, 문제의 구절도 분명 안부를 묻는 내용이지 그 이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그 동안 순진하게 아무런 의심 없이 믿어왔던 모든 내용들에 대한 의문이 조금씩 부풀어져 갔습니다. 예컨대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는 사실을 저 자신은 의심한 적이 없었으나, 생각해보면 교과서에 실려있고 학교에서 배웠기에 믿어왔을 뿐, 그 사람을 만나본 적도 없으며 사진을 본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보다도 한참 옛날인 2000년 전에 그것도 외국에 어느 한 사람이 와서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는데, 문제는 나를 위해서 그와 같은 고초를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가는 의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창세기 1창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에서부터 요한계시록 22장 21절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에 이르기까지 모든 내용이 허구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와 같은 성경보다는 우주의 시작이 빅뱅이라는 대폭발에서 비롯되었고 인류는 원숭이처럼 생긴 유인원에서 시작하여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되어왔다는 말이 훨씬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들려왔습니다. 또한 기독교도 수 많은 종교 중 하나이며, 인간이라는 나약한 존재가 의지할 곳이 없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사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다니던 교회에 새롭게 부임해오신 목사님께서 제게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기도는 대부분이 방언이라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그 때 이른바 성령세례를 받게 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러자 매우 이상한 일이 생기더군요. 목사님이 예배를 마치시고 돌아간 후에 제가 통곡을 하고 있었는데 그 때 통곡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시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으며,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위해 부활하신 이 사실이 너무나 감사해서”였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이제 예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이 아니라 ‘알게’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성경에 적힌 내용은 그저 옛날 전설이나 단순한 편지가 아니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은 “나를 위해서”, 홍수 때 노아와 그의 자손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 남은 것도 “나를 위해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은 것도 “나를 위해서”, 모세가 수많은 유대민족을 이끌고 나왔을 때 홍해가 갈라진 것도 40년이나 광야를 헤맨 것도 “나를 위해서”, 다윗이 골리앗과 싸워 이긴 것도 “나를 위해서”, 욥이 모진 고생을 하고 요나가 큰 물고기한테 먹힌 것도 “나를 위해서”……. 알고 보니 신약뿐만이 아니라 그 복잡하고 지루하고 따분한 구약까지도 모든 내용이 “나를 위해서” “나 보라고” 적혀 있는 말씀들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아, 이럴 줄이야. 왜 이런 사실을 그 동안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을까.”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목사님들도 전도사님들도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주신 편지이다.”라고 하시는 말씀을 그 때까지도 수없이 들어왔으나 단지 제가 못 알아듣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문득 다음 구절이 떠오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지 아닌지를 묻는 질문을 던집니다. 예수님은 동전을 가져와보라고 하시고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그것이 가이사에게 바칠 돈이라고 생각하면 가이사에게 바치고, 하나님께 바칠 돈이라고 생각하면 하나님께 바치라는 뜻이겠지요.
예수님은 지금 요한 3서를 들고 이렇게 말씀하실지도 모릅니다.
“가이오에게로의 말씀은 가이오에게, 너에게로의 말씀은 너에게 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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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타이핑

글들서재 2021. 8. 5.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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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타이핑 ♬
2007년 08월 12일 글들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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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도 이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려고 하는데, 가지고 다니기에는 너무 무겁고, 얇은 성경을 들고 다니자니 글씨가 작아서 불편하고, 직장에서 읽으려니 눈치 보이고, 차를 탔을 때 읽으려고 하면 사람들이 많아 꺼낼 수 조차 없고, 차 안이 한산할 때에는 차가 너무 흔들리고, 차 안이 한산하고 안 흔들릴 때는 항상 조명이 어두운 밤이고, 차 안이 한산하고 안 흔들리고 대낮일 때는 몇 정거장 못 가서 내릴 때이고, 집에서 읽으려고 하면 잊고 있던 해야 할 일이 생각나고, 집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해야 할 일도 없을 때에는 배가 고파지고, 집에서 해야 할 일도 없고 배도 부르면 즐겨보는 드라마가 시작할 시간이고, 집에서 해야 할 일도 없고 배도 부르고 즐겨보는 드라마도 안 할 때에는 잠이 오고, 집에서 해야 할 일도 없고 배도 부르고 즐겨보는 드라마도 안 하고 잠도 안 올 때에는 전화가 걸려오고, 집에서 해야 할 일도 없고 배도 부르고 즐겨보는 드라마도 안 하고 잠도 안 오고 걸려오는 전화도 없을 때 드디어 마음 먹고 읽으려 하면 그 많던 성경책이 어디 갔는지 안 보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보다도 필사를 하는 것이 더욱 은혜가 된다는 사실을 알지만, 막상 써보려고 해도 손이 아프고, 타이핑을 치려 해도 오타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조차 힘든 일입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좋은 곳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CTM 성경타자통독’이라고 하는 인터넷 사이트인데, 이곳은 CTM(컴퓨터전문인선교회)에서 운영하는 사이트 중 하나로서, 현재 40만이 넘는 회원이 등록되어 있는 곳입니다. 이 사이트는 인터넷이 연결되는 컴퓨터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지 성경을 타이핑으로 입력할 수 있으며, 오타가 있을 때에는 정확하게 지적해주고, 기록이 항상 저장 되며 다른 회원들과 비교할 수 있으므로 선한 의미에서 경쟁심도 생기게 됩니다. 현재 기록으로는 총 29독이나 하신 분도 계시더군요. 물론 우리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개역개정 성경도 지원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사모하는 우리에게 있어서 성경에 대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이 기회에 타이핑으로 성경통독에 도전해보시기 바랍니다.
CTM 성경타자통독 : http://www.ctmbible.net

 

♬ 요한 3서 2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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