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3회 바벨탑 사건의 교훈 - 이루리라선교회
2024년 7월 21일 설교

홍성필 목사
이루리라선교회
www.IRURIRA.com
mail@IRURIRA.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22절~23절
“22.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설교 동영상

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한 달에 1,000원>
<물 한 그릇 선교후원>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KB 국민은행
079-21-0736-251
홍성필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복음서 강해 28번째 시간으로서 “바벨탑 사건의 교훈”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우선 제목 그대로 바벨탑에 대해서 잠시 살펴볼까 합니다.

신약성경, 그것도 복음서 강해인데 웬 바벨탑인가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잠시 좀 들어봐 주셨으면 합니다. 여러분께서도 바벨탑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 보셨으리라 여겨집니다만 역시 오늘도 어쩌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부분에 대해서 알아볼까 합니다.

그렇다고 제 상상으로 말씀을 드리려는 것이 아니라, 항상 그랬던 것처럼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성경적으로 살펴볼 예정입니다. 오늘은 이 바벨탑에 대한 말씀을 통해서 성경을 또 한 발자국 깊이 알아가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누군가가 여러분께 바벨탑에 대해서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예전에 어디서 보니까 어떤 사람은 바벨탑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한 번 들어보시고 이 분의 말씀이 맞는지 틀린지 한 번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바벨탑 사건은 사람의 욕심이 깊어져서 높은 탑을 세우려고 한 것이 바벨탑인데, 여기에 대해서 화가 나신 하나님이 탑을 헐어 버리시고는 사람들의 언어를 모두 다르게 하셨다.”

자, 맞습니까. 틀립니까.

우선 이를 알기 위해서는 바벨탑에 대한 내용이 적혀 이는 성경 본문을 살펴보아야 하겠지요.

상당히 규모가 큰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성경에 있는 내용은 의외로 그리 길지 않습니다.


창세기 11장 1절~9절
“1.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3.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6.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7.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9.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さて、全地は一つの話しことば、一つの共通のことばであった。
人々が東の方へ移動したとき、彼らはシンアルの地に平地を見つけて、そこに住んだ。
彼らは互いに言った。「さあ、れんがを作って、よく焼こう。」彼らは石の代わりにれんがを、漆喰の代わりに瀝青を用いた。
彼らは言った。「さあ、われわれは自分たちのために、町と、頂が天に届く塔を建てて、名をあげよう。われわれが地の全面に散らされるといけないから。」
そのとき主は、人間が建てた町と塔を見るために降りて来られた。
主は言われた。「見よ。彼らは一つの民で、みな同じ話しことばを持っている。このようなことをし始めたのなら、今や、彼らがしようと企てることで、不可能なことは何もない。
さあ、降りて行って、そこで彼らのことばを混乱させ、互いの話しことばが通じないようにしよう。」
主が彼らをそこから地の全面に散らされたので、彼らはその町を建てるのをやめた。
それゆえ、その町の名はバベルと呼ばれた。そこで主が全地の話しことばを混乱させ、そこから主が人々を地の全面に散らされたからである。


여기까지가 말하자면 바벨탑에 대한 전체 내용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해서 일단 사실관계부터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남기고 자신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성읍과 탑을 건설했다고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안 좋게 생각하시고는 언어를 서로 다르게 하셨다고 합니다.

핵심내용은 이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여기까지 내용에 대해서 보면 일단 바벨탑은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어요? 하나님께서 헐어 버리셨니까.

아니요. 그런 내용은 없습니다. 성경말씀에 의하면 말하자면 더 이상 건설되지는 않고 도중에 그냥 방치되었을 뿐이지요.

그렇다면 이 바벨탑 사건에 대한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전해주고 있는 것일까 하는 것이지요.

누구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천지에 흩어지라고 했는데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으니까 언어를 다르게 해서 흩어지도록 만들었다고 하는 것이에요.

이를 근거로 해서 드는 구절이 노아의 홍수 이후의 내용입니다.

창세기 9장 1절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세기 9장 7절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神はノアとその息子たちを祝福して、彼らに仰せられた。「生めよ。増えよ。地に満ちよ。

하나님께서는 땅에 충만하라, 땅에 가득하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한곳에 모여서 흩어지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화를 내어 사람들을 흩으셨다는 해석입니다.

그를 듯해 보이기는 합니다만,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좀 의문이 드는 곳이 있습니다.

우선, 흩어지지 않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악입니까. 한국을 비롯한 많은 농경사회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가족 사회였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처음에는 단순히 친인척이 아니라 씨족사회 부족사회로 이어져서 고대국가가 성립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서 제각각 살게 된다면 이는 국가도 없고 도시도 없겠지요.

그렇다면 국가를 이루는 것이 죄가 된다면 이 세상에서 죄를 안 짓고 있는 나라가 어디 있겠습니까.

여기서는 “땅에 충만하라, 땅에 가득하라”라고 하는 말씀이 명령인가 축복인가 하는 차원에서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만약에 이를 명령이라고 이해하게 된다면, 이 말씀을 거역하게 되면 벌을 받게 되겠지요.

하지만 이를 축복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면 어떻게 됩니까. 이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 중에서 우리가 필요한 만큼만 누리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마치 부페식당에 간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여기 있는 “음식을 다 먹어라”라는 말을 명령으로 듣는다면 그 식당에 있는 음식을 모두 먹지 않으면 벌을 받게 된다는 뜻이 되겠지만, 이를 축복으로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기에 있는 음식은 네가 먹고 싶은 만큼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는 뜻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거기 있는 음식을 반드시 다 먹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먹을 만큼만 먹으면 된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앞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땅에 충만하라, 땅에 가득하라”라고 하신 말씀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명령이 아니라, 이 땅 전부를 우리에게 주셨으니 네가 원하는 곳 어디에서 살아도 좋다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다른 부분에 대한 해석도 있지요?

창세기 11장 4절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彼らは言った。「さあ、われわれは自分たちのために、町と、頂が天に届く塔を建てて、名をあげよう。われわれが地の全面に散らされるといけないから。」

그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을 정도로 높은 탑을 건설하고자 한 것은 바로 사람의 탐욕 때문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글쎄요. 그렇다면 사람은 높은 탑이나 빌딩을 세우면 안 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높은 곳에 살면 안 된다는 것인가요.

한국에도 남산타워가 있잖아요. 그 높이가 239미터이고, 롯데타워는 123층에 높이는 555미터라고 합니다.

일본은 도쿄타워가 333미터, 도쿄 스카이트리는 634미터라고 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이와 같은 건축물은 물론 필요에 따라 건설된 것일 수도 있겠으나, 한편으로는 국위선양, 자기 나라나 지역의 이름을 높이기 위한 의미도 있는 것이 사실이잖아요.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은 하나님 앞에 죄악입니까. 당시 바벨탑 높이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정확하게 기록이 안 나와있습니다만, 설마 롯데타워나 600미터가 넘는 일본의 스카이트리보다 높았겠어요?

그러니까 단순히 높은 탑을 지었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 앞에 죄가 되었다고 하는 해석은 비약이 있고, 무엇보다 그렇다고 하는 내용이 성경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자,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되겠지요. 이 바벨탑 사건이 주는 가르침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 답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하면, 당연히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자, 여러분께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지금까지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보신 적은 없지 않을까 합니다. 자, 그럼 이번 기회에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바벨탑의 색깔에 대해서 생각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과연 바벨탑은 어떤 색깔을 하고 있었을까요.

사람들은 쉽게 생각합니다.

“그 때는 흙이나 돌로 지었을 테니 당연히 밤색이나 회색이었겠지 뭐.”

그래서 과거에 여러 유명한 화가들이 바벨탑을 그려왔는데, 그 그림들을 보면 대부분이 밤색이나 회색들입니다. 그러면서 서로 다투는 것은 뭐냐 하면 바벨탑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었냐 하는 것을 가지고 논쟁을 벌입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여러 바벨탑 그림들을 보면 어떤 것은 원기둥이나 원뿔 모양을 하고 있냐 하면 또 어떤 그림은 삼각이나 사각뿔 또는 기둥 모양을 하고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그림들을 보면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모양이 아니라 바로 색깔이야.” 라고 하는 것이지요.

성경 본문에 보시면 이 건설 공법에 대해서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창세기 11장 3절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彼らは互いに言った。「さあ、れんがを作って、よく焼こう。」彼らは石の代わりにれんがを、漆喰の代わりに瀝青を用いた。

자, 여기에 보세요. 바벨을 흙이나 돌로 지은 것이 아니라, 벽돌로 지었다고 되어 있잖아요. 그리고 그 다음,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당시에는 돌 만을 가지고 쌓으면 허물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진흙을 가지고 고정을 시켰었는데, 이 바벨탑 공법을 보면 진흙이 아니라 역청을 사용해서 지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우선 벽돌에 대해서 알아보죠. 단순한 돌이 아니라 벽돌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공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크기도 똑같이 맞출 필요가 있겠지요. 당연히 공정이 더 많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더욱 튼튼해지고 무엇보다 틈새를 줄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또한 이 역청이라고 하는 것은 외국 번역본에 보면 타르라고도 하고 아스팔트라고도 하는데, 타르든 아스팔트든 그 색깔이 어떻습니까. 그렇죠. 대단히 검은 색깔입니다.

그러니까 바벨탑은 돌이 아닌 가급적 촘촘하게 벽돌을 쌓으면서 시커먼 역청을, 그것도 이유는 나중에 말씀 드리겠습니다만, 아낌없이 이 역청을 사용했을 것으로 짐작이 되기 때문에, 그 색깔은 밤색이나 회색이 아니라 그 전체가 검은 색깔을 띠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그들은 왜 건물을 지으면서 역청을 사용했을까요. 우리가 이 말을 들으면 그냥 단순하게 뭐, 건물을 튼튼하게 지으려고 그랬겠지……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만약에 정말로 역청을 사용하는 것이 건물을 튼튼하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한다면, 다른 건물도 그런 식으로 지어진 것이 있어야 할 텐데, 이상하게도 성경에 의하면 어떤 건물을 지으면서 역청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유독 바벨탑을 짓는 과정에서 역청을 사용했을까요.

여기에 대한 힌트는 역시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 66권을 살펴보면 무엇을 만들기 위해서 역청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이 바벨탑 말고 딱 두 번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창세기 6장과 출애굽기 2장입니다.

먼저 창세기 6장부터 보시겠습니다.

창세기 6장 14절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あなたは自分のために、ゴフェルの木で箱舟を造りなさい。箱舟に部屋を作り、内と外にタールを塗りなさい。


이 기록은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방주를 만드는데 그 방 주 안팎에는 역청을 칠하라고 하셨잖아요.

이는 여담입니다만, 여기서도 알 수 있는 것은 뭐냐 하면 노아의 방주 색깔은 이 말씀에 의하면 어땠을 것 같으세요. 예, 그렇습니다. 역청을 모두 발랐기 때문에 아주 새까맸을 것입니다.

그리고 출애굽기에 보시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 있을 때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박해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딸을 낳으면 살려주지만 아들을 낳으면 죽이라고 명을 내리지요.

그런데 어떤 집에서 아들을 낳았는데, 차마 죽일 수 없어서 몰래 키웠습니다만, 이제 더 이상 숨겨 놓을 수 없어서 작은 배를 만들고는 거기에 아이를 태워서 떠내려 보냅니다.

그 아이가 누구예요? 그렇죠. 모세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기 모세를 태웠던 배를 어떻게 만들었다고 합니까.


출애굽기 2장 3절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しかし、それ以上隠しきれなくなり、その子のためにパピルスのかごを取り、それに瀝青と樹脂を塗って、その子を中に入れ、ナイル川の岸の葦の茂みの中に置いた。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을 칠했다고 하잖아요.

앞서 말씀 드렸듯이 성경에 의하면 무언가를 만들 때 역청을 사용했다는 기록은 바벨탑에 관한 기록 외에 딱 이 두 곳 뿐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알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방주를 만들면서 그 안과 밖에 역청을 칠하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모세를 태웠던 배에도 역청이 칠해져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역청이라고 하는 성분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으로 짐작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방수를 하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인터넷에 살펴보았더니 이 방수를 하기 위해서 역청을 사용하는 공법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흔히 사용되는 건설 공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비가 많이 오거나 하는 곳이면 이러한 방수처리를 위해 역청을 바르는 일도 필요하겠습니다만, 중동 이스라엘 쪽만 하더라도 비가 많이 내리는 곳이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보면 방수를 위해 역청을 사용해서 집을 지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당시 바벨탑이 있었던 곳은 지금의 이라크 쪽이라고 추정됩니다만, 지금도 거기는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비도 그리 많이 오지 않는 지역에서 왜 이 사람들은 번거롭게 벽돌까지 구워서 촘촘하게 쌓았을 뿐만 아니라 방수처리, 그것도 표면에 바를 정도가 아닌 진흙을 대신할 정도로 역청을 아주 덕지덕지 사용해가면서 그토록 철저한 방수처리를 한 바벨탑을 건설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여기에 대한 답을 조금 더 알아보기 위해 이 바벨탑의 말하자면 공사 책임자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이 지역을 다스리고 있던 사람은 누구였냐 하면 여기에 대한 기록이 역시 성경에 있습니다.

바로 앞 창세기 10장입니다.

창세기 10장 8절~12절
“8.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9.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10.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11.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12.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설하였으니 이는 큰 성읍이라”

クシュはニムロデを生んだ。ニムロデは地上で最初の勇士となった。
彼は主の前に力ある狩人であった。それゆえ、「主の前に力ある狩人ニムロデのように」と言われるようになった。
彼の王国の始まりは、バベル、ウルク、アッカド、カルネで、シンアルの地にあった。
その地から彼はアッシュルに進出し、ニネベ、レホボテ・イル、カルフ、
およびニネベとカルフの間のレセンを建てた。それは大きな町であった。


여기에 대단한 용사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의 이름은 ‘니므롯’이라고 합니다. ‘그의 나라’라고 하니까 아마도 그가 다스렸던 나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가 다스렸던 네 지역이 있는데 거기가 바로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라고 하잖아요.

그 나라들은 시날 땅에 있었다고 하는데, 시날 땅이라고 하는 곳은 앞서 말씀 드린 지금의 이라크가 있는 부근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비가 별로 안 내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지역을 다스리던 니므롯이라고 하는 사람은 철저한 방수처리를 한 바벨탑을 지으려고 했다는 것이 되는데, 그 이유가 이제 서서히 밝혀지게 됩니다.

창세기 10장 8절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는 구스였다고 하는데, 그의 족보를 좀 거슬러 올라볼까요?


창세기 10장 6절~8절
“6.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7.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8.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ハムの子らはクシュ、ミツライム、プテ、カナン。
クシュの子らはセバ、ハビラ、サブタ、ラアマ、サブテカ。ラアマの子らはシェバ、デダン。
クシュはニムロデを生んだ。ニムロデは地上で最初の勇士となった。

이 기록에 의하면 니므롯의 아버지는 구스이고, 구스의 아버지는 함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함의 아버지는 누구입니까.

창세기 10장 1절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これはノアの息子、セム、ハム、ヤフェテの歴史である。大洪水の後、彼らに息子たちが生まれた。

그렇죠. 바로 함의 아버지는 노아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노아의 아들은 함이고 함의 아들은 구스이고 구스의 아들이 니므롯이 되기 때문에, 노아는 니므롯의 증조할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니므롯은 증조할아버지 노아를 만날 수가 있었을까요? 예, 충분히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정확히 니므롯이 몇 살에 태어나서 몇 살까지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만, 니므롯과 같이 노아의 아들인 셈, 셈의 아들 아르박삿, 그리고 아르박삿의 아들이자 역시 노아의 증손주인 셀라를 기준으로 본다면, 창세기 9장 29절에 의하면 노아는 950세까지 살았는데, 성경에 기록된 나이를 바탕으로 본다면 노아의 증손주 셀라가 313세 때까지 노아가 살았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똑 같은 증손주라고 생각해봤을 때 니므롯도 대략 300세 정도까지 노아가 살았을 것이며, 니므롯도 당연히 노아의 말을 직접 들으면서 자랐을 것입니다.

비록 노아의 홍수는 그들이 태어나기 30~40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라고는 하지만, 세상에는 아직 홍수가 할퀴고 간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었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홍수를 직접 경험한 노아나 그의 아들이자 니므롯의 할아버지인 셈과 함과 야벳으로부터 몇 번이고 들어왔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들에게 있어서 노아의 홍수는 전설이나 신화가 아닌 마치 우리에게 있어서 일제시대나 한국전쟁처럼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인 사실로서 받아들였던 것이지요.

홍수가 일어나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창세기 7장 17절~24절
“17.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18.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19.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20.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
21.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22.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
23.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24.물이 백오십 일을 땅에 넘쳤더라”


大洪水は四十日間、地の上にあった。水かさが増して箱舟を押し上げたので、それは地から浮き上がった。
水がみなぎり、地の上に大いに増し、箱舟は水面を漂った。
水は地の上にますますみなぎり、天の下にある高い山々もすべておおわれた。
水は、その上さらに十五キュビト増し加わり、山々はおおわれた。
こうして、地の上を動き回るすべての肉なるものは、鳥も家畜も獣も地に群がるすべてのものも、またすべての人も死に絶えた。
いのちの息を吹き込まれたもので、乾いた地の上にいたものは、みな死んだ。
こうして、主は地の上の生けるものすべてを、人をはじめ、動物、這うもの、空の鳥に至るまで消し去られた。それらは地から消し去られ、ただノアと、彼とともに箱舟にいたものたちだけが残った。
水は百五十日間、地の上に増し続けた。


이와 같은 말을 그 때도 멀쩡하게 살아 계셨던 노아 증조할아버지나 자기 할아버지로부터 아주 생생하게 들어오지 않았겠습니까.

이런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던 그들은 또다시 홍수가 일어날까봐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그렇죠. 만약에 또다시 그와 같은 홍수가 닥쳐와서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긴다 하더라도 안 잠길 정도의 높은 탑, 아무리 오랫동안 물이 땅에 넘치더라도 전혀 물이 새지 않는 건물을 지으려 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지요.

바로 그와 같은 이유 때문에 벽돌로 촘촘하게 쌓아 올릴 뿐만 아니라 역청까지도 써가면서 철저하게, 그야말로 집요하리 만큼 방수처리를 하면서 바벨을 건설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일본의 어느 총리가 당시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하는 자리에서 일본을 무슨 불침항모,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으로 만들겠다는 말을 했다고 해서 비난을 받았었는데, 니므롯의 이 발상은 바벨탑을 그야말로 가라앉지 않는 노아의 방주, 불침방주로 만들어버리겠다는 계획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참 대단하다면 대단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요,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하나님께서는 왜 이 땅을 홍수로 심판하셨습니까.

창세기 6장 5절~7절
“5.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主は、地上に人の悪が増大し、その心に図ることがみな、いつも悪に傾くのをご覧になった。
それで主は、地上に人を造ったことを悔やみ、心を痛められた。
そして主は言われた。「わたしが創造した人を地の面から消し去ろう。人をはじめ、家畜や這うもの、空の鳥に至るまで。わたしは、これらを造ったことを悔やむ。」


하나님께서는 다름 아닌 사람의 죄악으로 인해서 홍수로 심판하신 것이잖아요.

자, 그렇다면 이에 대해서 사람들이 지나치리 만큼 방수처리를 한 탑을 건설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신들의 힘으로 무력화 시키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만약에 바벨탑이 완성되었다고 가정을 해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들은 이제 아무리 죄를 지어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심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죄를 짓지 않으면 되는 것인데, 그들은 자신들이 죄를 짓더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자신들의 힘으로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나 다름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여기서 또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물로 심판을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던가요?


창세기 9장 11절~16절
“11.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12.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13.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14.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15.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16.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わたしは、わたしの契約をあなたがたとの間に立てる。すべての肉なるものが、再び、大洪水の大水によって断ち切られることはない。大洪水が再び起こって地を滅ぼすようなことはない。」
さらに神は仰せられた。「わたしとあなたがたとの間に、また、あなたがたとともにいるすべての生き物との間に、代々にわたり永遠にわたしが与えるその契約のしるしは、これである。
わたしは雲の中に、わたしの虹を立てる。それが、わたしと地との間の契約のしるしである。
わたしが地の上に雲を起こすとき、虹が雲の中に現れる。
そのとき、わたしは、わたしとあなたがたとの間、すべての肉なる生き物との間の、わたしの契約を思い起こす。大水は、再び、すべての肉なるものを滅ぼす大洪水となることはない。
虹が雲の中にあるとき、わたしはそれを見て、神と、すべての生き物、地上のすべての肉なるものとの間の永遠の契約を思い起こそう。」


창세기 2장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창세기 2장 5절~6절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地にはまだ、野の灌木もなく、野の草も生えていなかった。神である主が、地の上に雨を降らせていなかったからである。また、大地を耕す人もまだいなかった。
ただ、豊かな水が地から湧き上がり、大地の全面を潤していた。

그러니까 노아의 홍수가 일어나기 전에는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안개가 땅에서 올라와 습기가 땅을 촉촉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더니 온 땅이 멸망하고 말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사람들이 이제 비가 내리기 시작하기만 하면 또다시 멸망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얼마나 두려워 했겠어요.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움 속에 사는 것을 원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 그렇죠. 걱정하지 마. 내가 더 이상 물로 심판을 하지는 않을 거야. 그 증거로 무지개를 내가 보여 줄게. 비가 내릴 때 이 무지개를 보면 내가 한 약속을 기억하고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잖아요. 참 얼마나 자비로운 하나님이십니까.

그러나 아마도 니므롯은 이 하나님의 자비로운 약속을 기억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완전 방수처리 된 높은 바벨탑을 쌓아 올리려고 했던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바벨탑을 다 완성해 놨는데 이제 아무리 죄를 지어도 하나님이 물로 심판을 하지 않으세요.

그렇게 되면 그들은 분명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아하, 우리가 이처럼 완벽하게 대비를 해 놨으니 하나님도 더 이상 물로 심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이겼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일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들 사이에 있어서는 이제 아무리 죄를 짓는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힘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막아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마음 놓고 죄를 지어도 된다……라고 하는 잘못된 생각들이 독버섯처럼 퍼져 나가게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점을 우려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창세기 11장 6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主は言われた。「見よ。彼らは一つの民で、みな同じ話しことばを持っている。このようなことをし始めたのなら、今や、彼らがしようと企てることで、不可能なことは何もない。


이 말씀은 여기서 이 바벨 건설을 중단시키지 않으면 사람들의 죄가 겉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그들로 하여금 더 이상 이런 잘못된 인식이 자리잡기 전에,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이 바벨 건설을 중단시켜야 한다.

그런 뜻으로 우리가 이해를 하게 된다면, 이 바벨 사건에 대한 맥락이 모두 이어지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지금은 그런 일을 하면 큰일 나지만 저희 때까지만 하더라도 학교에서 잘못하면 선생님이 몽둥이로 엉덩이를 맞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걸 맞으면 정말 얼마나 아픈지 몰라요.

자, 그렇다면 선생님으로부터 엉덩이를 맞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 잘못하지 않으면 될 것 아니에요. 아무리 엄한 선생님이라 하더라도 아무런 이유 없이 아이들을 때리지는 않았습니다. 다 뭔가 잘못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몽둥이로 맞지 않으려면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면 되는데, 자신들이 엉덩이를 맞는 것은 저 몽둥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몽둥이를 감춰버리거나 엉덩이에 두꺼운 걸레라도 넣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실 이런 일은 실제로 있었다고 해요. 그러면 학생들이 나쁜 짓을 했는데 선생님이 몽둥이가 없어졌다고 해서 혼이 안 나겠습니까. 아니면 몽둥이를 때리는데 엉덩이에 걸레가 들어있다고 하면 그걸 선생님이 그걸 모르시겠습니까.

제가 들은 바에 의하면 과거에 어떤 학생들이 실제로 그렇게 했더니만 평소보다도 혼이 더 많이 났다는 거예요. 아주 힘들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 힘으로 아무리 노력을 해봐야 우리에게 닥친 심판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심판을 누가 하십니까.

요한복음 5장 22절~23절
“22.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また、父はだれをもさばかず、すべてのさばきを子に委ねられました。
それは、すべての人が、父を敬うのと同じように、子を敬うようになるためです。子を敬わない者は、子を遣わされた父も敬いません。


심판은 우리 힘으로 막을 수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의지해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행전 4장 11절~12절
“11.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あなたがた家を建てる者たちに捨てられた石、それが要の石となった』というのは、この方のことです。
この方以外には、だれによっても救いはありません。天の下でこの御名のほかに、私たちが救われるべき名は人間に与えられていないからです。」

그렇습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로 이끄실 분은 오로지 예수님이십니다. 그 외에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의 구원이시요, 우리의 길이시요, 우리의 진리시요, 우리의 생명이신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언제까지 우리 스스로의 힘이나 지혜를 의지하시겠습니까.

야고보서 4장 14절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あなたがたには、明日のことは分かりません。あなたがたのいのちとは、どのようなものでしょうか。あなたがたは、しばらくの間現れて、それで消えてしまう霧です。

아무리 학식이 많고 아무리 권세를 누린다 하더라도 주님 앞에서 우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온전히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그래야 길이 열립니다.

이제 우리의 힘이 아닌 주님을 믿고 주님을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마지막 날에 심판을 면하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구원을 얻게 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반응형
Posted by 홍성필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