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0회 문안하시는 주님
2023년 11월 26일 설교

홍성필 목사
기린선교회 www.3927.kr
kirinmission@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6장 13절~16절
“13.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14.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
15.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의 자매와 올름바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16.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16章 13節~16節
“13.主にあって選ばれた人ルフォスによろしく。また彼と私の母によろしく。
14.アシンクリト、フレゴン、ヘルメス、パトロバ、ヘルマス、および彼らとともにいる兄弟たちによろしく。
15.フィロロゴとユリア、ネレウスとその姉妹、またオリンパ、および彼らとともにいるすべての聖徒たちによろしく。
16.あなたがたは聖なる口づけをもって互いにあいさつを交わしなさい。すべてのキリストの教会が、あなたがたによろしくと言っています。”   


한국어 동영상


일본어 동영상

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한 달에 1,000원>
<물 한 그릇 선교후원>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KB 국민은행
079-21-0736-251
홍성필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159번째 시간으로서 “문안하시는 주님” 挨拶される主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주에는 5절부터 16절 중에서 보면 똑같이 문안인사를 하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12절과 13절 사이에서 나누어진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부터 먼저 살펴본 다음에 이 문안인사에 관한 대목을 정리를 하고, 그리고 이 문안인사에 대한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을 살펴볼까 합니다.

우선 지난 주에는 5절부터 12절까지에 있어서 바울이 각 사람에 대하여 상세한 설명을 하면서 그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잘 나타내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13절에서 16절에 보시면, 역시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등장하기는 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대부분 단순하게 이름이 나열되어 있고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앞부분에서는 하나하나 설명했는데 뒤에 가니까 귀찮아져서 그냥 이름만 적은 것일까요?

다른 주석서에 찾아보아도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습니다.

어떤 주석서에 보니까 앞에 나온 사람들은 바울과 비교적 가까웠던 사람들이라서 자세하게 썼는데, 13절 이후에 나온 사람들은 바울과 별로 친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냥 이름만 적었을 것이라고 되어 있는 책도 있었습니다.


아니, 그럼 생각해보세요.

앞쪽에 이름이 적힌 사람에 비해서 자기는 바울과 별로 친하지 않으니까 관심이 덜했기 때문에 이름이 뒤에 나오는 것도 서러웠을 텐데, 설명도 제대로 안 되어 있었다고 한다면, 그 사람 본인은 얼마나 서운했겠습니까.

그러나 아마도 어쩌면 이 로마서가 적히고 지금까지 약 2천년 동안 사람들에게 이와 같이 이해되지나 않았을까 합니다만, 오늘은 이 오해를 좀 풀어드릴까 합니다.

여기서 힌트가 되는 것이 바로 13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이 13절을 다시 한 번 보실까요?

로마서 16장 13절
“13.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16章 13節~16節
“13.主にあって選ばれた人ルフォスによろしく。また彼と私の母によろしく。

이 13절에서는 루포라는 사람과 그의 어머니가 등장하는데, 그의 어머니, 그러니까 루포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바울이 말하기를 자기 어머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렇다고 루포와 바울이 형제지간이라기 보다는 루포의 어머니는 자신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뜻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처럼 루포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상세한 설명이 있는 반면, 루포에 대해서는 별로 설명이 없어요.

그리고 14절 이후에는 대부분 이름만 나열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 13절에 나오는 루포와 그의 어머니가 바로 자세한 설명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왜 여기에 분기점이 생긴 것일까요.

지지난 주에 16장 3절에서 16절까지 내용 중에서 4명, 2쌍에 대해서 알아보자는 말씀을 드렸고, 그 때는 이 중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가 부부에 대해서 알아보았다면, 오늘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루포라고 하는 이름은 신구약을 통틀어서 딱 두 번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이 로마서 16장 13절인데, 나머지 하나는 마가복음 15장 21절입니다.


마가복음 15장 21절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兵士たちは、通りかかったクレネ人シモンという人に、イエスの十字架を無理やり背負わせた。彼はアレクサンドロとルフォスの父で、田舎から来ていた。

이 장면, 우리가 잘 아는 장면이지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데 갑자기 구레네에서 올라온 시몬이라는 사람한테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고 가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자, 그럼 여기서 본론과는 좀 관련이 없을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 문제를 내볼까요?

이 구레네 시몬은 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고 갔을까요.

이 점에 대해서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올라가시는데 머리는 가시관으로 피범벅이 되고 온몸은 채찍을 맞아서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기진맥진해서 이리 비틀 저리 비틀 거리면서 올라가시다가 도중에 쓰러지시죠.


그 모습을 본 로마 군인이 생각하기를 더 이상 십자가를 짊어질 수가 없을 것 같았는데, 마침 그 옆에 있었던 구레네 시몬한테 억지로 십자가를 짊어지라고 하잖아요?

예, 영화 같은 데에서 많이 나오는 장면입니다.


사실 <루포>라는 이름만 본다면 마가복음에만 등장합니다만, 구레네 시몬과 관련된 이 장면은 많은 사람들에게 상당히 인상 깊었나봐요.

마가복음 외에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도 이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번 보실까요?

마태복음 27장 32절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兵士たちが出て行くと、シモンという名のクレネ人に出会った。彼らはこの人に、イエスの十字架を無理やり背負わせた。

누가복음 23장 26절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彼らはイエスを引いて行く途中、田舎から出て来たシモンというクレネ人を捕まえ、この人に十字架を負わせてイエスの後(うしろ)から運ばせた。


좀 신기하지 않으세요?

앞서 살펴본 마가복음의 기록을 비롯해서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을 보시면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이 쓰러지거나 넘어지셔서 걸어갈 수가 없게 되자 그 옆에 있던 시몬이 십자가를 짊어지게 되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성경대로 본다면,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구레네라고 하는 시골에서 올라온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억지로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참고로 그러면 이 구레네라고 하는 곳이 시골이라고 하는데, 구레네가 어디길래 시골이라고 되어 있을까 하고 궁금하지 않습니까.

이 구레네라고 하는 곳은 영어발음으로는 싸이린이라고 하는데, 이곳은 북아프리카에 있는 리비아의 도시입니다.

그러면 거기서 예루살렘까지는 얼마나 되냐 하면, 인터넷으로 찍어보니까 자그마치 1800킬로나 됩니다.

그래서 걸어서 가게 되면 하루에 40킬로 정도 간다고 해도 45일 그러니까 한 달하고 보름이나 걸리는 거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시몬이라는 사람은 그러니까 유대인들의 큰 명절인 유월절을 지내기 위해서 그 먼 거리를 올라온 사람이었다는 것인데, 마침 십자가를 짊어지고 올라가는 예수님을 보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엉겁결에 그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다시 마가복음에 있는 구절을 살펴볼까요.


마가복음 15장 21절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兵士たちは、通りかかったクレネ人シモンという人に、イエスの十字架を無理やり背負わせた。彼はアレクサンドロとルフォスの父で、田舎から来ていた。


제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 보면 앞서 로마서에 있는 구절에서 이 마가복음 15장 21절을 가리키면서 물음표가 적혀 있어요.

그러니까 로마서 16장 13절에 나오는 <루포>와 이 마가복음 15장 21절에 등장하는 <루포>가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이 점에 대해서는 거의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 드릴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이 마가복음 15장 21절과 로마서 16장 13절에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우선 마가복음 15장 21절을 다시 한 번 보실 텐데, 이번에는 이 구절에서 다른 성경구절과 비교했을 때 좀 부자연스러운 점을 한 번 찾아봐 주시기 바랍니다.

마가복음 15장 21절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兵士たちは、通りかかったクレネ人シモンという人に、イエスの十字架を無理やり背負わせた。彼はアレクサンドロとルフォスの父で、田舎から来ていた。


자, 어디가 부자연스럽습니까.

기본적으로 성경에 있어서 어떤 인물을 소개할 때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역대상 4장 37절
“또 스마야의 오대 손 시므리의 현손 여다야의 증손 알론의 손자 시비의 아들은 시사이니”

シフイの子ジザ。シフイはアロンの子、アロンはエダヤの子、エダヤはシムリの子、シムリはシェマヤの子。


느헤미야 11장 15절
“레위 사람 중에는 스마야이니 그는 핫숩의 아들이요 아스리감의 손자요 하사뱌의 증손이요 분니의 현손이며”

レビ人のうちでは、ハシュブの子シェマヤ。ハシュブはアズリカムの子、アズリカムはハシャブヤの子、ハシャブヤはブンニの子である。

한국이나 일본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 보면 그 이름에 <성씨>가 있지요.

그래서 대충 어느 집안 사람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만, 당시 이스라엘은 성씨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보면 그 사람에 대한 소개를 할 때에는 그 사람의 아버지가 누구이고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가 누구이고……라는 식의 기록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조상에 대해서 소개하는 의미도 있습니다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 소개하려는 본인보다 조상이 더 유명하기 때문이라고 하겠지요.

그러니까 정작 그 사람을 모른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누구의 아들이고 누구의 손자이고 하면, 아하 누군가 했더니만 그 집안 아들이군! 하고 알아본다는 것이지요.


지금도 그런 경우 있잖아요.

아, 저 사람이 누구냐 하면, 누구누구의 아들이고, 누구누구의 손자야……라고 하는 경우라면 일반적으로 그 사람보다 그 사람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더 유명한 경우 아니겠어요?

그래서 성경에 보더라도 어떤 사람을 가리킬 때에는 누구의 아들이요, 누구의 손자다……라는 식으로 기록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마가복음 15장 21절은 어떻습니까.


마가복음 15장 21절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兵士たちは、通りかかったクレネ人シモンという人に、イエスの十字架を無理やり背負わせた。彼はアレクサンドロとルフォスの父で、田舎から来ていた。

이게 일반적이라면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들 알렉산더와 루포……이렇게 나가야 하는데, 오히려 반대입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을 소개하기 위해서 그의 아들 알렉산더와 루포를 인용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명확합니다.

그것은 바로 당시 마가복음을 읽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들의 아버지 시몬보다 그의 아들 알렉산더와 루포가 더 유명했기 때문인 것이지요.

그러니까 단지 구레네 시몬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잘 모를 수도 있었는데,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시몬이라고 하면, 아~~그 사람들의 아버지구나! 라고 알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여기서 알렉산더와 루포는 시몬의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이라고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에 보면 알렉산더와 시몬 이름이 없어요. 그래서 신학자들은 어쩌면 이 시점에서는 아버지 시몬과 큰아들 알렉산더는 일찍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까 하고 추정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까지 정리를 한 번 해볼까 합니다.

우선 구레네라고 하는, 저기 아프리카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 시몬은, 이유는 모르겠으나 어찌 되었든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보면 그의 아들 루포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유명한 인물이 되었어요.

이렇게 본다면 로마서 16장 13절에서 왜 루포는 그 이름만 열거되었을까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당시에 이 로마서를 읽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이 루포라고 하는 사람은 이미 유명인사였기 때문에 굳이 해설을 달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예를 들어서 한국사람한테 가수 조용필씨에 대해서 말하면서, 아 이 분은 <돌아와요 부산항에>부터 시작해서 이러이러한 히트곡이 있는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인데……라고 말하면 뭐라고 하겠어요.

아휴, 이미 다 알아요. 한국사람 중에서 조용필 모르는 사람 있어요? 라고 하지 않겠어요?

뭐, 이 점에 대해서는 세대마다 좀 다를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러나 당시 이 로마서를 읽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루포라는 인물은 달리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이미 유명인사였을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좀 설명이 필요했었나봐요.

그러니까, 아, 여러분이 다 알고 있는 사람인 루포 만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도 나에게 있어서는 대단히 중요한 분이라고 바울이 소개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14절 이후에 나오는 인물들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는 이유도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바울이 그 사람들에게 있어서 별로 관심이 없었거나, 아니면 별로 가깝지 않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비록 우리에게 있어서는 낯선 이름이라 하더라도, 당시 로마에서 이 서한을 읽고 있는 믿음의 형제 자매들에게 있어서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잘 알려진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셨나요?

자, 그럼 다음으로 문안인사의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에는 그저 아무런 의미없이 쓰여진 것은 없습니다.

다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말씀에 대하여 더욱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은 여기에 계속되는 문안을 그저 단순한 안부인사 정도만으로 넘어가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이 서한은 우리가 이미 알아본 바와 같이 자매 뵈뵈가 고린도에서 그 먼 로마까지 그 험난한 길을 위험을 무릅쓰고 가져가지 않았습니까.

말하자면 그것은 주님의 일을 위해 목숨을 건 도전이었을 것입니다.


이를 뒤집어본다면 이 로마서는 그와 같은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로마에 반드시 전달해야 했을 정도로 중요한 서한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는 단순한 짐작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로마서를 공부해온 우리는 이미 이 로마서가 신앙적으로도 얼마나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이처럼 중요한 서한, 그것도 자매 뵈뵈가 목숨을 걸고 험난한 길을 가면서 전해준 그 서한에, 단순한 안부인사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면, 이건 좀 너무하지 않겠습니까.


종이도 지금 같은 가벼운 것이 아니라 당시는 양피지에 적혀 있었기 때문에 부피도 컸을 뿐만 아니라 무게도 대단히 무거웠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뵈뵈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여 주기 위해서라도 정말 중요한 내용만 적으면 됐을 텐데, 굳이 한가하게 인사말까지도 적을 필요가 있었겠냐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세요. 이런 저도 조금 생각해보면 알 만한 일인데, 바울이라고 그 점을 몰랐겠습니까.


그리고 이는 나중에 공부할 예정인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바울은 지금 대단히 몸이 쇠약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쓰고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긴 문안인사까지를 굳이 기록했다고 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죠. 이 문안인사 대목은 도저히 뺄래야 뺄 수 없을 만큼 반드시 기록되어야 할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고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안인사가 적힌 부분은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고 보아야 할까요.

자, 우리 알기 쉽게 이 부분까지 좀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대한민국 청와대……지금은 대통령실인가요? 아무튼 거기서 일본에 있는 한국대사관으로 대단히 중요한 긴 공문이 도착했어요.

그리고 그 중요한 공문 마지막에 뭐라고 적혀 있냐 하면 군마현에 있는 이카호중앙교회 홍훈표 목사님한테 문안해주십시오……라고 적혀 있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그 공문을 받은 대사관에서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연히 교회로 연락을 하겠지요. 이카호중앙교회가 어디야? 하면서 연락처를 알아본 다음에 전화라도 한 통 걸어서 하는 말이, 지금 한국 대통령실에서 중요한 공문이 대사관으로 왔는데, 그 내용 중에 이카호중앙교회 홍훈표 목사님께 문안을 전해달라는 내용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라고 하지 않겠어요?

그러면 그 전화를 받은 목사님께서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수고하십쇼……라고 하고 그냥 끊어버리겠습니까?


그렇지는 않겠지요.

오히려 아니, 무슨 공문이길래 대통령실에서 온 공문 중에 나한테 문안한다고 했을까?

혹시 나도 그 내용을 좀 볼 수 있을까요? 라고 하지 않겠어요.

직장에서 보면 공문을 발송할 때 보면 수신란이 있고 그리고 참조란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공문 내용은 수신인만이 아니라 참조란에 적힌 사람들까지도 읽도록 하라는 내용인 것이지요.

이 로마서 16장에 적힌 문안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지금 뵈뵈가 목숨 걸고 가져가는 이 서한에 그저 한가롭게 형식적인 안부인사를 하기 위해 적은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에 적혀 있는 사람들에게 이 서한을 반드시 읽도록 하라는 요청이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여기에 기록된 사람들은 어떤 인물들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이제부터 로마교회를 굳건히 세워 나아갈 핵심인물이라고 하는, 말하자면 사도 바울이 주는 로마 교회의 직분 임명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기에 이름이 적힌 여러분들은 이 서한의 내용을 반드시 숙지해서 로마 교회를 굳건히 세워 나가야 한다면서 바울이 간절한 마음으로 당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이 로마서를 읽으면서 공부하고 있는 것, 이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이 로마서를 읽고 있는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주님께서 역시 우리에게도 문안하고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바울이 사력을 다해 이 로마서를 기록하고, 그리고 자매 뵈뵈가 목숨을 걸고 이 로마서를 가져간 이유는, 단순히 2천년 전에 로마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글을 전달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2천년이 지난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도 이 귀한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단순히 우리가 이 글을 읽고 아, 그렇구나……하고 끝나라고 문안했습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로마만이 아니라 다름아닌 바로 이 땅에도 주님의 교회가 굳건히 서기를 원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문안하십니다. 이는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서 주님의 일을 감당하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주님의 요청에 응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우리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시고 우리를 문안하시는 주님의 뜻을 따라, 주님의 말씀을 올바로 깨닫고서, 이 땅에 주님의 교회를 굳건히 세우고, 주님의 복음을 땅끝까지 널리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반응형
Posted by 홍성필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