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0회 경계해야 할 우상
2023년 9월 17일 설교

홍성필 목사
www.3927.kr
kirinmission@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5장 17절~19절
“17.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18.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19.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ローマ人への手紙 15章 17節~19節
“17.ですから、神への奉仕について、私はキリスト・イエスにあって誇りを持っています。
18.私は、異邦人を従順にするため、キリストが私を用いて成し遂げてくださったこと以外に、何かをあえて話そうとは思いません。キリストは、ことばと行いにより、
19.また、しるしと不思議を行う力と、神の御霊の力によって、それらを成し遂げてくださいました。こうして、私はエルサレムから始めて、イルリコに至るまでを巡り、キリストの福音をくまなく伝え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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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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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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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149번째 시간으로서 “경계해야 할 우상” 警戒すべき偶像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보문 중에서 17절 첫부분에 보시면 “그러므로(ですから)”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앞구절인 15절과 16절의 문맥을 따라 “그렇기 때문에”라고 하는 뜻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복습하는 의미에서 이 부분을 다시 한 번 살피보겠습니다.



로마서 15장 15절~16절
“15.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16.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ただ、あなたがたにもう一度思い起こしてもらうために、私は所々かなり大胆に書きました。私は、神が与えてくださった恵みのゆえに、
異邦人のためにキリスト・イエスに仕える者となったからです。私は神の福音をもって、祭司の務めを果たしています。それは異邦人が、聖霊によって聖なるものとされた、神に喜ばれるささげ物となるためです。


이 구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로 말미암아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직분을 행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니까 17절에서 <그러므로(ですから)> 라고 하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 그러니까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하는 직분을 받았기 때문에……라고 이해해야 하겠지요.

자, 그렇다면 17절에 보시면 그 받은 은혜로 말미맘아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자랑할 일이 있다고 합니다.

그 자랑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바울은 자신이 받은 은혜, 그러니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하나님이 자신을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결과 주님의 능력이 임하게 되어서 많은 지역에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읽기에 따라서는 어떻게 이해될 수 있냐 하면, 내가 한 일들은 모두 주님이 나를 통해서 하신 일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하는 행위는 모두 주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 일이다……라는 식으로도 들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실 이게 틀린 말은 아니지요. 사도 바울은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후 주님께서 주신 사명,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를 잘못 받아들이면 적지 않게 곤란한 일이 되고 맙니다.

구약에 나오는 솔로몬에 대해서 잠시 살펴볼까 합니다.

솔로몬은 누구입니까. 그는 이스라엘 2대 왕이었던 다윗의 아들이자 이스라엘 3대 왕이었습니다.

솔로몬의 태생을 본다면 남들보다 떳떳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아버지는 다윗이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누구냐 하면, 밧세바였습니다.

그러면 밧세바가 누구입니까. 사무엘하 11장에 의하면, 다윗이 목욕하고 있는 밧세바를 멀리서 훔쳐보고 반해서 그를 불러다가 불륜을 저지른 다음에, 그의 남편이자 자신의 충신인 우리아를 일부러 전쟁터에서 죽이도록 만들지 않았습니까.

이 일로 인해서 사무엘하 12장에 의하면 다윗과 밧세바 사이의 부정한 관계로 태어난 아이는 죽게 되고, 그 다음으로 태어난 아이가 솔로몬이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 솔로몬은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솔로몬이라는 이름, 혹시 누가 지었는지 아십니까.

역대하 22장 9절
“9.보라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그는 온순한 사람이라 내가 그로 주변 모든 대적에게서 평온을 얻게 하리라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그의 생전에 평안과 안일함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見よ、あなたに一人の男の子が生まれる。彼は穏やかな人となり、わたしは周りのすべての敵から守って彼に安息を与える。彼の名がソロモンと呼ばれるのはそのためである。彼の世に、わたしはイスラエルに平和と平穏を与える。

이 솔로몬이라는 이름은 그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지어주셨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러니 그 사랑이 얼마나 특별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는 크나큰 축복을 받은 왕이기도 했습니다.


열왕기상 3장 12절~13절
“12.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13.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見よ、わたしはあなたが言ったとおりにする。見よ。わたしはあなたに、知恵と判断の心を与える。あなたより前に、あなたのような者はなく、あなたの後に、あなたのような者は起こらない。
そのうえ、あなたが願わなかったもの、富と誉れもあなたに与える。あなたが生きているかぎり、王たちの中であなたに並ぶ者は一人もいな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놀라운 지혜를 부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전무후무한 부귀와 영광을 그에게 채워 주십니다. 열왕기상 10장에 보시면 그가 누렸던 축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지금 21세기에 살고 있는 그 어느 강대국의 통치자라 하더라도 그만한 영화를 누리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축복을 누리면 정말 하루에 수십 번 하나님께 감사해도 모자랄 판인데, 그는 하나님의 그 크나큰 사랑에 제대로 보답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잘못은 여러 가지 있습니다만, 오늘은 아직 그 죄악이 시작하기 전의 시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성전 건축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성전건축에 있어서는 애초에 다윗 왕이 계획하고 있었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아닌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하도록 합니다.

이에 따라 이른바 제1성전이라고도 불리는 하나님의 성전은 솔로몬 왕 때 완성하게 됩니다.

이제 성전이 완성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왕이었다면 그 때 하나님께는 어떠한 기도를 드리겠습니까. 무엇보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기도로 채워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열왕기상 8장에 나오는 솔로몬의 기도를 들어보면, 적지 않게 좀 거슬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열왕기상 8장 13절
“13.내가 참으로 주를 위하여 계실 성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로소이다 하고”

私は、あなたの御住まいである家を、確かに建てました。御座がとこしえに据えられる場所を。」


열왕기상 8장 20절~21절
“20.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도다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내 아버지 다윗을 이어서 일어나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21.내가 또 그 곳에 우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그들과 세우신 바 여호와의 언약을 넣은 궤를 위하여 한 처소를 설치하였노라”

主はお告げになった約束を果たされたので、私は主の約束どおりに父ダビデに代わって立ち、イスラエルの王座に就いた。そしてイスラエルの神、主の御名のためにこの家を建て、
主の契約が納められている箱のために、そこに場所を設けた。その契約は、主が私たちの先祖をエジプトの地から導き出されたときに、彼らと結ばれたものである。」


열왕기상 8장 41절~45절
“41.또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 곧 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42.그들이 주의 크신 이름과 주의 능한 손과 주의 펴신 팔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43.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이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시오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44.주의 백성이 그들의 적국과 더불어 싸우고자 하여 주께서 보내신 길로 나갈 때에 그들이 주께서 택하신 성읍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이 있는 쪽을 향하여 여호와께 기도하거든
45.주는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아보옵소서


열왕기상 8장 41절~45절
同様に、あなたの民イスラエルの者でない異国人についても、その人があなたの御名のゆえに、遠方の地から来て、
彼らが、あなたの大いなる御名と力強い御手と伸ばされた御腕について聞き、やって来てこの宮に向かって祈るなら、
あなたご自身が、あなたの御座が据えられた場所である天でこれを聞き、その異国人があなたに向かって願うことをすべて、かなえてください。そうすれば、地上のあらゆる民が御名を知り、あなたの民イスラエルと同じようにあなたを恐れるようになり、私が建てたこの宮で御名が呼び求められ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を知るでしょう。
あなたの民が敵との戦いのために出て行くとき、遣わされる道で、あなたがお選びになった都、私が御名のために建てた宮に向かって主に祈るなら、
天で彼らの祈りと願いを聞いて、彼らの言い分を聞き入れてやってください。


열왕기상 8장 48절~50절
“48.자기를 사로잡아 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주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 곧 주께서 택하신 성읍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 있는 쪽을 향하여 주께 기도하거든
49.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아보시오며
50.주께 범죄한 백성을 용서하시며 주께 범한 그 모든 허물을 사하시고 그들을 사로잡아 간 자 앞에서 그들로 불쌍히 여김을 얻게 하사 그 사람들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게 하옵소서”


捕らわれて行った敵国で、心のすべて、たましいのすべてをもって、あなたに立ち返り、あなたが彼らの先祖にお与えになった彼らの地、あなたがお選びになったこの都、私が御名のために建てたこの宮に向かって、あなたに祈るなら、
あなたの御座が据えられた場所である天で、彼らの祈りと願いを聞き、彼らの訴えをかなえて、
あなたの前に罪ある者となったあなたの民を赦し、あなたに背いた、彼らのすべての背きを赦し、彼らを捕らえて行った者たちの前で彼らをあわれみ、その者たちがあなたの民をあわれむようにしてください。


여러분께서는 좀 어떠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좀 성격이 유별나서 그런지 적지 않게 거슬리는 부분이 있어요.

그게 어디냐 하면 좀 부분적으로 발췌하면 다음 구절입니다.

열왕기상 8장 13절
“13.내가 참으로 주를 위하여 계실 성전을 건축하였사오니”

私は、あなたの御住まいである家を、確かに建てました。

열왕기상 8장 20절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私は主の約束どおりに……イスラエルの神、主の御名のためにこの家を建て、

열왕기상 8장 21절
“내가 또 그 곳에…… 여호와의 언약을 넣은 궤를 위하여 한 처소를 설치하였노라”

(スキップ)

열왕기상 8장 43절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私が建てたこの宮で御名が呼び求められ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を知るでしょう。

열왕기상 8장 44절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이 있는 쪽을 향하여 여호와께 기도하거든”

私が御名のために建てた宮に向かって主に祈るなら、

열왕기상 8장 48절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 있는 쪽을 향하여 주께 기도하거든”

私が御名のために建てたこの宮に向かって、あなたに祈るなら、

이런 말들을 들으면 여러분께서는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무슨 정치인이 선거에 출마해서 자기 성과를 미화하고 자화자찬을 늘어놓고 있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으십니까.

이 말들에서는 그 어디에도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은혜와 찬양을 찾아볼 수가 없고, 그저 싸구려 정치꾼들이나 하는 선거유세를 떠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셨을까요? 아니, 사람인 저도 적지 않게 거슬리는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모르셨겠습니까.

이 솔로몬의 기도에 대해서 다음 장인 열왕기상 9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한 번 들어보십시오.

열왕기상 9장 4절~9절
“4.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5.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네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6.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7.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8.이 성전이 높을지라도 지나가는 자마다 놀라며 비웃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성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9.대답하기를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따라가서 그를 경배하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심이라 하리라 하셨더라”


열왕기상 9장 4절~9절
もしあなたが、あなたの父ダビデが歩んだように、全き心と正直さをもってわたしの前に歩み、わたしがあなたに命じたことすべてをそのまま実行し、わたしの掟と定めを守るなら、
わたしが、あなたの父ダビデに『あなたには、イスラエルの王座から人が断たれることはない』と約束したとおり、あなたの王国の王座をイスラエルの上にとこしえに立たせよう。
もし、あなたがたとあなたがたの子孫が、わたしに背を向けて離れ、あなたがたの前に置いたわたしの命令とわたしの掟を守らずに、行ってほかの神々に仕え、それを拝むなら、
わたしは彼らに与えた地の面からイスラエルを断ち切り、わたしがわたしの名のために聖別した宮をわたしの前から投げ捨てる。イスラエルは、すべての民の間で物笑いの種となり、嘲りの的となる。
この宮は廃墟となり、そのそばを通り過ぎる者はみな驚き恐れてささやき、『何のために、主はこの地とこの宮に、このような仕打ちをされたのだろう』と言う。
人々は、『彼らは、エジプトの地から自分たちの先祖を導き出した彼らの神、主を捨ててほかの神々に頼り、それを拝み、それに仕えた。そのため主はこのすべてのわざわいを彼らに下されたのだ』と言う。」


이 말씀이 축복 기도처럼 들리시나요? 이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의 표정을 한 번 떠올려보세요.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표정을 짓고 계실까요? 아니요. 오히려 완전히 굳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 말씀의 주된 내용은 뭐겠습니까.

너, 내 말 안 들으면 알아서 해. 네가 지었다고 하는 그 성전, 아무리 크고 대단할 지라도 내가 완전히 박살내 버릴 거야……. 그 말씀 아니겠습니까.

결국 솔로몬이 죽은 다음 그 죄악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갈라지게 되고, 그리고 마침내 최후를 맞이하는 날이 오게 됩니다.


열왕기하 25장 8절~9절
“8.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열아홉째 해 오월 칠일에 바벨론 왕의 신복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9.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第五の月の七日、バビロンの王ネブカドネツァル王の第十九年のこと、バビロンの王の家来、親衛隊の長ネブザルアダンがエルサレムに来て、
主の宮と王宮とエルサレムのすべての家を焼き、そのおもだった建物をことごとく火で焼いた。


나라가 이 지경까지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감사가 사라지고 찬양이 사라지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이름이 사라진 그 빈 자리를 더러운 우상들이 차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더러운 우상 중의 가장 조심해야 할 우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바로 <내가><(私は、私が)>라고 하는 우상인 것입니다. 나 자신이 우상이 되는 것을 성경은 무엇이라고 하냐 하면 바로 <교만>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거만, 교만, 오만, 자만 ……이것이야말로 가장 우리가 경계해야 할 우상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슨 간증을 하라고 하면 이게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지, 자기를 높이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가는 경우가 있어요.

예를 들어서 제 간증을 한 번 들어보십시오. 제가 이 로마서 강해를 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지혜로 말미암아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린다면, 물론 여러분께서는 은혜로 받아들여 주실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만약에 제가 여러분이었다면, 적지 않게 좀 마음이 불편했을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지금 내가 전하고 있는 말씀은 모두가 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니까, 여기에 반박을 하거나 토를 달지 말라는 것이잖아요. 이건 무슨 뜻이 됩니까. 그렇습니다. 내가 예수님이 되겠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감히 그렇게 말씀 드릴 자신이 없어요.

물론 저는 간증은 있습니다. 제가 수십년 동안 신학을 공부해온 것도 아니고, 아직 목사 안수를 받은 지 10년도 안 되는 상황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여러 가지로 많이 부족하다 보니까, 사실 막상 이 로마서 강해를 시작하고 난 다음에는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주제설교 같은 경우를 보면 그냥 말씀을 전하기 좋은 구절을 구약이고 신약이고 간에 거기서 고를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강해는 차례차례로 해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슨 몇 장 전체를 그 주의 본문 말씀으로 삼기도 그렇죠. 이왕 강해를 한다면 가능한 한 세부적으로 나누어서 꼼꼼하게 다루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야, 이거 다음 주는 이 구절로 어떻게 말씀을 전해야 하나 하고 막막할 때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말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이 떠오르고 해서 지금까지 올 수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저는 어디까지 저 개인적으로 생각하기를, 아, 정말 그때 그때마다 주님이 지혜로 채워 주신다는 것을, 이는 과장이 아니라 진심으로 느낍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간증이자 감사예요. 이를 만약에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면서, 이는 하나님께서 저한테 주신 말씀 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라고 한다면 이는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제가 예수님이 되겠다는 말이나 다름 없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주님이 지혜나 말씀을 주셨다고 하는 확신은 있습니다만, 그래도 제가 부족해서 제대로 여러분께 전해드리지 못할 수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제가 전도를 나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를 갈 때의 제가 방문하는 곳 한곳 한곳 모두 주님께서 가라고 하시니까 간다고, 저는 믿고 있어요. 그렇다고 무슨 꿈이나 환상을 보고 가는 것이 아니에요.

제가 이것저것 알아보고 해서 가는 것이지만, 그 발길 하나하나에도 주님이 간섭해주시고 인도해 주신다고 믿기 때문에 가는 것이지요.

그러면 제가 간다고 다 반겨 주시나요? 저는 전도를 가면 안에 들어가서 오래 있지 않습니다. 괜히 일 하시는 데에 방해가 될지 모르니까, 간단한 인사를 하고 전도지를 드리고 나와요. 그러면 어디는요, 정말 제가 더 황송할 정도로 반갑게 맞이해주시는 곳이 있나 하면, 어디는 또 제 표정을 보는 순간 쌔 해지는 곳도 있고, 또 어디는 아주 알기 쉽게 오지 말라는 곳도 있습니다.

지난 주에도 새로운 곳 일곱 곳을 방문했습니다만, 그 중에서 세 곳은 아예 오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제가 가는 곳이 주님께서 인도해 주신 곳이라고 한다면, 저더러 오지 말라고 하는 것은, 이는 저를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거절하는 것이 되잖아요. 그럼 제가 가만히 있어야 돼요?

아니면 제가, 아니, 이 보세요. 제가 지금 주님이 보내서 온 건데, 저를 거절한다는 게 말이 돼요? 이러면 당신 벌 받습니다! 뭐 이렇게 한 마디라도 하고 와야 되는 건가요?

아니에요. 그건 아니지요. 오지 말라고 하면 저는 아 예, 알겠습니다. 하고 조용히 나옵니다. 그리고 거기는 더 이상 방문하지는 않지요.


제가 인터넷으로도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서 전세계 수많은 분들께 전도 메일을 보내 드립니다. 그러면 보내지 말라는 사람도 있어요. 가끔은 심한 말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거 참 그런 거친 말을 하는 사람들 보면, 어떤 때는 꽤 유명한 대학 교수님이라는 분들도 계세요.

아무튼 그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안 좋죠. 저는 메일을 보낼 때 보면, 그래도 제가 보내는 메일을 받는 분들에 대해서는 주님이 아직 관심을 가지고 계신 증거다, 라고 생각하고 메일을 보내 드립니다만, 그래도 그 마음을 상대방에게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만약에 그 사실을 강요하게 된다면 이는 전도를 내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지요. 특별히 이 전도나 선교라고 하는 것은 성령님께서 하신다고 믿기 때문에, 우리는 억지나 강요가 아닌 은혜로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가끔 보면 전도 간증이라고 하면서 누구를 끈질기게 전도해서 교회에 나오게 했다는 말씀을 듣기도 합니다만, 성경 어디를 보더라도 싫다는 사람한테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교회로 데려오라는 말씀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거든요.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바울의 고백에서 본다면, 보기에 따라서는 자신의 성과를 과시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사실 알고 보면 얼마나 겸손하고 진정한 전도 방법인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 다시 한 번 보실까요?

로마서 15장 17절~19절
“17.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18.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19.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ローマ人への手紙 15章 17節~19節
“17.ですから、神への奉仕について、私はキリスト・イエスにあって誇りを持っています。
18.私は、異邦人を従順にするため、キリストが私を用いて成し遂げてくださったこと以外に、何かをあえて話そうとは思いません。キリストは、ことばと行いにより、
19.また、しるしと不思議を行う力と、神の御霊の力によって、それらを成し遂げてくださいました。こうして、私はエルサレムから始めて、イルリコに至るまでを巡り、キリストの福音をくまなく伝えました。”


여기서 일루리곤(イルリコ)이라고 하는 곳은 바울이 전도한 지역 중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곳으로서, 지금의 알바니아라고 해서 이태리 반도 동쪽을 가리킵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자신은 주님이 자기를 통하여 역사히신 것 외에는 말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모든 일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결과 두루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지금까지 수많은 선교사가 있었다고는 하나, 이 사도 바울만큼 놀랍고도 역사적인 성과를 가져온 선교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이 말씀을 유심히 보면, 여기에는 흔히 선교사들이 내세우기 쉬운 성과, 자기가 개척한 교회가 몇 개다, 성도 수가 몇 명이다, 헌금액이 얼마다 하는 그런 말이 일체 없습니다. 오로지 주님께 순종하면서 그 일을 감당했다는 감사의 마음만이 느껴지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까. 이 말씀에 의한다면 이는 주님이 우리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대로 해야 하겠지요.


그러면 주님은 지금 무엇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까.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은 중요합니다.

창세기 15장 6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アブラムは主を信じた。それで、それが彼の義と認められた。

아브라함은 그가 믿었기 때문에 그 믿음이라고 하는 토대 위에 하나님의 역사를 쌓아 올릴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무엇보다 말씀이 있어야 해요. 성경 말씀이 우리 안에 있어야지만 합니다. 그래야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행함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도 모르면서 기도나 금식만 백날 해봐야 힘만 들고 배만 고픕니다.

진정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오로지 성경을 통해서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만약에 성경이 없다면 그 빈 자리를 누가 채웁니까.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우상이 뭐라고 말씀 드렸습니까. 그렇죠. “내가”라고 하는 이 더럽고 지저분한 우상이 그 빈 자리를 채우게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3장 15절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라”

耳を傾けて聞け。高ぶるな。主が語られたからだ。



에베소서 4장 21절~24절
“21.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ただし、本当にあなたがたがキリストについて聞き、キリストにあって教えられているとすれば、です。真理はイエスにあるのですから。
その教えとは、あなたがたの以前の生活について言えば、人を欺く情欲によって腐敗していく古い人を、あなたがたが脱ぎ捨てること、
また、あなたがたが霊と心において新しくされ続け、
真理に基づく義と聖をもって、神にかたどり造られた新しい人を着ることでした。


이제 가장 경계해야 할 우상, <내가><(私は、私が)>라고 하는 우상, 거만, 교만, 오만, 자만이라는 우상에서 벗어나서, 오로지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새 사람을 입고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깨달아 그 말씀에 순종하며 복음을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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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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