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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3회 바라보아야 할 주님
2023년 1월 1 송구영신 예배 설교 - 로마서 강해 115
홍성필 목사
www.kirinmission.com
kirinmission@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3절
“3. 내게 주신 恩惠로 말미암아 너희 各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以上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各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分量대로 智慧롭게 생각하라”


ローマ人への手紙12章3節
“3.私は、自分に与えられた恵みによって、あなたがた一人ひとりに言います。思うべき限度を超えて思い上がってはいけません。むしろ、神が各自に分け与えてくださった信仰の量りに応じて、慎み深く考えなさ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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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한 달에 1,000원>
<물 한 그릇 선교후원>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KB 국민은행
079-21-0736-251
홍성필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2023년 송구영신예배를 맞이해서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115번째로 “바라보아야 할 주님” 見つめるべき主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제 2023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참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되돌아보면 참 감회가 새롭지 않습니까. 저는 정말 참 그렇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삶이었습니다만, 그래도 지금까지 여러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뭐, 저만 그런 것은 아니잖아요. 여러분도 다 마찬가지라 여겨집니다.

때로는 정말 힘겨워서 답이 보이지 않다가도 어떻게든 견뎌내면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이 모두가 다 주님의 은혜라고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2023년 새해를 맞이해서 첫 예배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12장 3절
“3. 내게 주신 恩惠로 말미암아 너희 各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以上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各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分量대로 智慧롭게 생각하라”

ローマ人への手紙12章3節
3. 私は、自分に与えられた恵みによって、あなたがた一人ひとりに言います。思うべき限度を超えて思い上がってはいけません。むしろ、神が各自に分け与えてくださった信仰の量りに応じて、慎み深く考えなさい。

이 말씀도 현대인의 성경판으로 한 번 보실까요?

현대인의 성경판 로마서 12장 3절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여러분 각 사람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마땅히 생각해야 하고 이상의 생각을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에 따라 분수에 맞게 생각하십시오.”

우선 바울은 참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신약성경에 보시면, 어떤 책은 저자가 분명한 것도 있습니다만, 또 어떤 책은 저자가 불분명한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명확한 경우만 보더라도 신약성경의 절반 가까이를 바울이 기록했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주님으로부터 크나큰 은혜를 받았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바울이 오늘 무슨 말을 하냐 하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항상 작은 생각에 갇혀 있으라는 말씀인가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복습하는 의미로 11장에 있던 말씀을 다시 살펴보기로 합니다.

로마서 11장 20절 후반부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思い上がることなく、むしろ恐れなさい。

이 말씀은 무슨 뜻이었습니까. 이것은 바로 교만하지 말라는 뜻이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말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좁은 생각, 작은 생각에 갇혀 있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라는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분량에 맞는 생각을 가지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에 대해서 한 번 오늘은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어떤 학생이 이제 학교를 졸업하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자신이 원하는 직장에 취직을 했다고 해보겠습니다.

이 청년은 꿈이 있었습니다. 그는 단순한 회사원으로 시시한 회사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이 회사를 세계적인 회사로 키우고 싶었고, 이를 위해서 자신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야말로 큰 꿈을 가지고 그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어요.

이게 잘못인가요? 아니요. 잘못은커녕 대단히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하겠지요.

그렇다면 자신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청년은 생각했습니다. 그래. 이 회사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야겠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잖아요. 그래야 이 회사를 키울 수 있잖아요.

그래서 부장님한테 말을 합니다. 부장님, 제가 이번에 있을 임원회의에 참석하겠습니다. 그러면 부장님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오. 그래, 잘 생각했어. 참석하게……그러겠습니까


물론 회사에서 그 사람을 뽑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적어도 회사에서 월급을 주면서 일을 시키려고 했다면 그 사람에 대한 성장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아직 신입사원이잖아요. 아무리 열정이 넘친다고 해도, 그리고 잠재적인 능력이 있다고는 해도, 그건 일을 조금씩 배워가면서 할 수 있는 일이지, 어떻게 하루 이틀만에 할 수 있겠습니까.

부장님은 말합니다. 아니, 무슨 소리야. 임원회의라면 적어도 이사 이상, 상무, 전무, 그리고 대표이사가 참석하는 자리인데, 부장 과장은 고사하고 아직 입사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입사원이 어떻게 참석을 한다는 거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고, 이번 임원회의에서 쓸 자료나 복사해와.

그럼 이 말을 들은 신입사원은 생각합니다. 아니, 내가 이깟 복사나 하려고 지금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했다는 거야? 나는 정말 큰 꿈이 있고 능력도 있는데, 이 회사는 나를 인정해주지 않아. 아무래도 내가 회사를 잘못 선택한 것 같아……


만약에 이런 고민을 한다면 그것이 맞습니까. 아니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분명 장래가 유망합니다. 능력도 있어요. 하지만 그 진가를 발휘하려면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전문지식도 더 배워야 합니다. 자기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알고 있는 것보다 알아야 하는 일들이 더 많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에게는 어떤 자세가 바람직하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나를 뽑아준 직장을 믿고, 아무리 작고 하찮아 보이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 일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 한다면 분명 놀라운 성장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요. 뭐 사람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직장이라 하더라도 결국 그 조직은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가 다 옳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그 능력이 부족하십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장 25절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神の愚かさは人よりも賢く、神の弱さは人よりも強いからです。


이 세상에서 아무리 두뇌가 명석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을 따라갈 수가 없고, 이 세상에서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이사야 41장 4절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だれが、最初から代々の人々に呼びかけてこれらをなし、これらを行ったのか。主であるわたしだ。わたしは初めであり、また終わりとともにある。わたしがそれだ。

이 세상 모든 일을 시작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요, 행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요, 마침내 이루시는 이도 하나님이신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미국의 신용카드 회사를 보면 처음에는 이용 가능한 금액이 상당히 적습니다. 아니, 돈을 쓰겠다고 하는데도 처음에는 그 한도를 아주 조금밖에 안 줍니다. 하지만 카드를 쓰고 그 돈을 성실하게 갚잖아요? 그러면 이제 조금씩 그 한도액을 늘려 주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보면 허황된 꿈을 꾸는 사람들을 봅니다. 뭐, 여러 견해를 가지신 분들이 계실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이 정치인들을 보면 정말 자신의 분량을 잘못 판단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을 보면 대부분이 다 비슷합니다. 후보들이 서로 돌아가면서 교회나 성당을 비롯한 종교시설을 찾습니다. 자신의 종교와는 다른 종교시설도 찾아 갑니다.

예전에 그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들으신 적이 있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죄를 하나도 범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절대로 범하지 말아야 할 죄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제가 목사로서 다시 한번, 아니, 이후에도 수십 번이라도 말씀을 드릴 것입니다. 절대로 우상숭배만은 하지 마시기를 간절히 당부 드립니다.

무슨 선거든지 간에 많은 곳을 찾아가야지요. 그게 잘못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거기서 무엇을 합니까. 우상들한테 예를 표하고 때로는 그 우상들한테 절까지도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누구는 그렇게 말할지도 몰라요. 겉으로는 절을 하지만, 마음은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면 문제가 없지 않냐고 할지 모릅니다.

이런 말이 다 왜 나오는 거예요? 그것은 바로 성경을 잘 알지 못해서입니다. 구약 다니엘서에 보면, 왕이 오로지 자기가 세운 금으로 만든 우상한테만 절을 하라고 명을 내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안 그러면 죽인다고까지 해요.

그러면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면서 겉으로는 우상들한테 절을 했나요? 아닙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라도 우상한테 절을 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습니까.


다니엘 3장 17절~18절
“17.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もし、そうなれば、私たちが仕える神は、火の燃える炉から私たちを救い出すことができます。王よ、あなたの手からでも救い出します。
しかし、たとえそうでなくても、王よ、ご承知ください。私たちはあなたの神々には仕えず、あなたが建てた金の像を拝むこともしません。」

만약에 겉으로는 우상에게 절을 할지라도 마음으로 섬기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이 사람들은 왜 이런 무모한 짓을 한 것입니까.

이 다니엘의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シャデラク、メシャク、アベデ・ネゴ)가 이처럼 죽을 각오를 하면서까지도 우상에게 절을 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사람을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나 특히 한국의 수많은 정치인들을 보세요. 겉으로는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여러 종교시설에 가서는 그 우상한테 절을 하고, 누구는 거기서 지어주는 이름까지 받아오기도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교회에 오기도 합니다. 그러면 큰 교회를 가요, 아니면 작은 교회를 가요. 예, 큰 교회를 갑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어요. 설마 큰 교회만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에요? 그게 아니지요. 그럼 큰 교회만 찾아가는 이유가 뭐냐 하면, 거기에 누가 있다? 예, 사람들, 특별히 유권자가 많이 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이게 다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한테 잘 보이려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들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사실을 부족한 저도 아는데, 주님이 그 마음을 모르시겠습니까.

물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당선되었다고 해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차별해서는 절대로 안 되지요. 이는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우리 이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섬겨야, 그래야 우리가 복음을 전할 기회도 얻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 이웃을 섬긴다는 것과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섬기는 일은 분명히 다른 일입니다.

유권자들의 한 표를 구걸하기 위해서 우상한테 절을 한다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 유권자들 뿐입니까. 그 자리에 주님도 계시다는 사실을 왜 알지 못하냐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모르지만 여러분도 다 아시는 바와 같이 한국 대통령들 보면, 물론 그 권좌에 앉아 있을 때는 좋지만, 거기서 내려와서 보면 대부분이 기구한 삶을 살다가 갑니다.

자기 자신이나 아니면 자기 주변 사람들이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평탄치 않은 여생을 살다 가는 모습을 보면, 그 이유는 어쩌면 자신의 믿음을 끝까지 지키지 못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어떤 강연을 했을 때의 일인데, 거기서 어떤 일본 사람이 저에게 하는 말이, 왜 한국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면 잡혀가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 분한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정치인이 나쁜 짓을 저지르고도 잡혀가지 않는 일본이 저는 더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해드리니까 웃더라고요.


뭐, 말은 그렇게 했습니다만, 그런 말을 외국 사람한테 들으니까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다 이게 무엇 때문이요? 예,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오로지 사람을 바라보고 사람 식으로 생각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시편 57편 2절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私は いと高き方 神を呼び求めます。 私のために すべてを成し遂げてくださる神を。

잠언 16장 9절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人は心に自分の道を思い巡らす。しかし、主が人の歩みを確かにされる。

우리가 아무리 잘난 척을 해봤자 이루는 것은 내 힘이 아닙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오로지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고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까. 사람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갈라디아서 1장 10절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今、私は人々に取り入ろうとしているのでしょうか。神に取り入ろうとしているのでしょうか。あるいは、人々を喜ばせようと努めているのでしょうか。もし今なお人々を喜ばせようとしているのなら、私はキリストのしもべではありません。

이 말씀은 하나님께만 좋게 하고 우리 이웃 사람들한테는 좋게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생각을 앞세울 것이냐, 아니면 사람의 생각을 우선시할 것이냐 하는 말씀이에요.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 생각, 하나님 방법, 예수님 방법을 우선시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2023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2023년도 우리를 지켜보실 것입니다. 우리를 바라보고 계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사람을 바라보고 사람의 생각을 앞세우는 것이 아닌,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사랑하며, 그리고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우리 이웃을 사랑하면서, 믿음과 말씀과 행함으로 말미암아, 주님으로부터 크나큰 축복을 받으시는 새해 2023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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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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