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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5회 믿음의 지혜
2022년 6월 19일 설교 - 로마서 강해 88

홍성필 목사
www.kirin.kr
kirinmission@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0장 5절~7절
“5.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6.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ローマ人への手紙10章5節~7節
“5.モーセは、律法による義について、「律法の掟を行う人は、その掟によって生きる」と書いています。
6.しかし、信仰による義はこう言います。「あなたは心の中で、『だれが天に上るのか』と言ってはならない。」それはキリストを引き降ろすことです。
7.また、「『だれが深みに下るのか』と言ってはならない。」それはキリストを死者の中から引き上げること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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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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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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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88번째 시간으로서 “믿음의 지혜” 信仰の知恵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조금 어려울 수도 있는 말씀입니다만, 역시 함께 살펴보면 전혀 어렵지 않고 오히려 주님의 말씀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으로 넘치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먼저 5절 말씀부터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10장 5절
“5.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5.モーセは、律法による義について、「律法の掟を行う人は、その掟によって生きる」と書いています。

여기에 보면 “모세가 기록하되”라고 되어 있어서, 구약성경 특히 모세가 쓴 모세오경에서 인용한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는데, 신학자들은 이를 레위기 18장 5절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18장 5절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あなたがたは、わたしの掟とわたしの定めを守りなさい。人がそれらを行うなら、それらによって生きる。わたしは主である。

레위기 본문에는 ‘의’라는 말씀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규례와 법도 즉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바로 의를 행하는 사람이라고 하겠지요. 그러면 그 사람은 살리라 하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을 행하는 사람이 의를 행하는 사람이요, 의를 행하는 사람은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를 뒤집어 보면 어떻게 됩니까.

율법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의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범하는 사람이 되고, 죄를 범하는 사람은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뜻이 됩니다.


로마서 3장을 봅니다.

로마서 3장 23절~24절
“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すべての人は罪を犯して、神の栄光を受けることができず、
神の恵みにより、キリスト・イエスによる贖いを通して、価なしに義と認められるからです。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일부 사람 또는 대다수의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명령하신 규례와 법도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율법을 완전히 지켜야 의를 행하는 것이 되어서 천국 백성이 될 텐데, 율법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을 어긴 죄인이 되어서 꼼짝없이 멸망을 당해야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우리를 구원할 방법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모든 형벌을 다 받아 주심으로 인해서 우리는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가 다 죄인이기에, 우리가 행한 것이라고는 죄 밖에 없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의를 행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절에 보시면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산다고 되어 있는데, <의를 행하는 사람>이란 곧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우리를 가리킨다고 하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 의로 산다고 합니다. 즉 우리는 우리 힘으로 의롭게 되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의롭게 해주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인해서 구원 받아 영생을 얻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까지는 되셨지요?

자, 그럼 다음 구절입니다. 오늘 본문 중에서 6절~7절까지를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10장 6절~7절
6.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6.しかし、信仰による義はこう言います。「あなたは心の中で、『だれが天に上るのか』と言ってはならない。」それはキリストを引き降ろすことです。
7.また、「『だれが深みに下るのか』と言ってはならない。」それはキリストを死者の中から引き上げることです。

이 구절은 역시 구약에서 인용된 말씀입니다. 신명기 30장을 인용한 말씀입니다만, 이 신명기 말씀은 다음 주에 살펴보기로 하고 오늘은 일단 로마서 본문에 집중을 하고자 합니다.

그 이유는 뭐냐 하면 오늘 6절~7절 말씀은 그 문장 구성은 신명기 구절을 따르고 있습니다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로마서에서만 볼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6절의 시작을 보시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즉, 예수님 십자가의 공로를 믿는 그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 하면 그런 말은 하늘에 계신 예수님을 모셔 내리려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7절에는 ‘무저갱’이라고 하는 말이 나옵니다. 이는 바닥이 없는 갱도, 즉 끝도 없이 깊은 곳을 말하는 단어인데, 이는 말하자면 사망이라고도 할 수 있고, 지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7절에서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6절과는 반대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는 것이라고 하지요.

이렇게 보면 참 어려운 말씀입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또는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행위”를 가리킨다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행위로 우리의 죄를 조금이라도 해결할 수 있습니까. 만약에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죄를 조금이라도 해결할 수 있었다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다른 방법도 있으셨다면, 왜 굳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그와 같은 끔찍한 고통을 당하셨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바로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구약시대에는 뛰어난 선지자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대표적으로 본다면 엘리야나 그의 제자 엘리사도 그렇고, 사무엘도 그렇고 이사야나 다니엘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선지자라 하더라도, 우리의 죄를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서 죽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가 뭐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 누구도 우리의 죄가 하나님의 독생자의 죽음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신약에 보시면 세례 요한이 등장합니다.

세례 요한은 그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예언된 선지자입니다. 누가복음 1장에 보시면 천사가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에게 나타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1장 13절~17절에 의하면 단순히 그의 출생만이 아니라 이름까지도 정해 주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에 알아본 바와 같이 그는 구약 말라기 4장 5절~6절에서도 예언된 바와 같이 메시야가 이 땅에 오기 전에 미리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엘리야라고 하는 사실을, 마태복음 11장 14절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어느 날부터 요단 강에서 물로 세례를 베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회개를 선포하게 되지요.

이는 단순히 그가 어느 날 문득, 아, 내가 세례를 베풀어야겠다 하고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알아본 세례 요한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요한복음 1장 33절 전반부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私自身もこの方を知りませんでした。しかし、水でバプテスマを授けるようにと私を遣わした方が、私に言われました。……

이 말씀으로 미루어 본다면 세례 요한은 분명 하나님 또는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세례를 베풀도록 명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광야에서 세례를 베푸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그에게 당신의 정체가 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의 대답이 흥미롭습니다.

요한복음 1장 21절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彼らはヨハネに尋ねた。「それでは、何者なのですか。あなたはエリヤですか。」ヨハネは「違います」と言った。「では、あの預言者ですか。」ヨハネは「違います」と答えた。


앞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그가 오리라고 예언된 엘리야라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자신이 엘리야도 아니고 선지자도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이에 대해서 신학자들은 여러 가지로 설명을 하면서, 사실 세례 요한도 자신이 성경에 예언되었던 엘리야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물음에 대해서 자신이 엘리야가 아니라고 한 이 대답은 틀린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여러 가지 근거를 제시를 하는 글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여기에 있어서 제 생각은 다릅니다.


이는 단순히 제 생각이 아니라 성경을 근거로 생각해보면 어떻게 되냐 하면, 세례 요한도 자기 자신이 다시 오리라고 예언된 엘리야라고 하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고 보아야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마태복음 11장 2절~5절
“2.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5.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さて、牢獄でキリストのみわざについて聞いたヨハネは、自分の弟子たちを通じて
イエスにこう言い送った。「おいでになるはずの方はあなたですか。それとも、別の方を待つべきでしょうか。」
イエスは彼らに答えられた。「あなたがたは行って、自分たちが見たり聞いたりしていることをヨハネに伝えなさい。
目の見えない者たちが見、足の不自由な者たちが歩き、ツァラアトに冒された者たちがきよめられ、耳の聞こえない者たちが聞き、死人たちが生き返り、貧しい者たちに福音が伝えられています。


이 기록을 본다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야인지 100프로 확신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세례 요한의 영적 능력이 떨어져서가 아닙니다.

누가복음 7장에 보시면 우리가 다 아는 세례 요한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7장 28절
“28.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시니”

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女から生まれた者の中で、ヨハネよりも偉大な者はだれもいません。しかし、神の国で一番小さい者でさえ、彼より偉大です。

여기서 세례 요한을 가리켜 큰 자라고 하셨는데, 그가 큰 자라고 하신 것은 단순히 그 당시 살아 있는 사람 중에 한한 말씀이 아니라, 천지가 만들어지고 사람이 생겨난 이래 지금까지를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는 구약에서 예언되었을 정도로 놀라운 선지자였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오실 구세주의 앞길을 예비하는 엘리야로서 다시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처럼 큰 선지자라 하더라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서 극히 작은 자라도 해도 요한보다는 크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당시 하나님 나라에 있는 극히 작은 자라 하더라도 다 알고 있었을 예수님의 십자가에 의한 구원사역에 대해서 그는 아직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엘리야나 다른 선지자뿐만이 아니라 세례 요한 정도 되는 선지자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계획을 모두 알지는 못했다고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생각해보세요. 아, 우리의 죄가 무거우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달라고 할 수 가 있었겠습니까. 아니요. 없습니다.

2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기도 응답으로 오신 것이 아니에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오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독단적인 계획에 따라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주신 크나큰 은혜로서 오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은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 이 또한 사람의 기도 응답으로서 부활하셨습니까.

성경을 보시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무덤에 모시게 되는데, 그 당시 상황을 보면 참 기가 막힙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훨씬 전부터,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반복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대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셨어요. 그렇다면 예수님의 그 말씀들을 들어왔던 제자들은 어떻게 했어야 했겠습니까.

그렇죠. 이제 예수님께서 미리 하셨던 말씀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니, 역시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믿고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자, 그럼 여기서 잠시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실제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다음,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믿었을까요?


마가복음 16장 9절~11절
“9.[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10.마리아가 가서 예수님과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11.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さて、週の初めの日の朝早く、よみがえったイエスは、最初にマグダラのマリアにご自分を現された。彼女は、かつて七つの悪霊をイエスに追い出してもらった人である。
マリアは、イエスと一緒にいた人たちが嘆き悲しんで泣いているところに行って、そのことを知らせた。
彼らは、イエスが生きていて彼女にご自分を現された、と聞いても信じなかった。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 그러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이 놀라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들이 어떻게 했대요? 부활을 기다린 그들이 할렐루야를 외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어요? 아니요. 그 소식을 듣고도 전혀 믿지 않았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어요. 그것은 바로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던 사람들이 없었을까요? 아니요. 있었습니다. 그럼 그게 누구였냐 하면, 마태복음 27장 62절~66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마태복음 27장 62절~66절
“62.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63.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64.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65.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66.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


마태복음 27장 62절~66절
明くる日、すなわち、備え日の翌日、祭司長たちとパリサイ人たちはピラトのところに集まって、
こう言った。「閣下。人を惑わすあの男がまだ生きていたとき、『わたしは三日後によみがえる』と言っていたのを、私たちは思い出しました。
ですから、三日目まで墓の番をするように命じてください。そうでないと弟子たちが来て、彼を盗み出し、『死人の中からよみがえった』と民に言うかもしれません。そうなると、この惑わしのほうが、前の惑わしよりもひどいものになります。」
ピラトは彼らに言った。「番兵を出してやろう。行って、できるだけしっかりと番をするがよい。」
そこで彼らは行って番兵たちとともに石に封印をし、墓の番をした。

참으로 어이없게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던 사람들은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주범인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사람들은 왜 부활을 기다리지 못했을까요.

아무리 뛰어난 선지자라 하더라도, 아무리 예수님과 가까웠던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 사람들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찌 부활의 의미를 알 수가 있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해주신 것은 그야말로 기쁨이었습니다. 넘치는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그 뿐만이 아니지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뿐이라면 의미가 없습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예수님의 부활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부활이야말로 우리의 죄가 사해지고 영생을 얻게 되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던 것이 뛰어난 선지자나 믿음이 좋은 사람들의 기도 응답이 아니었던 것처럼, 예수님의 부활도 역시 그들의 기도 응답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폭포수처럼 부어주시는 은혜와 용서라고 하는 축복의 결과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사람이 원한다고 해서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습니까. 아니요. 못합니다.


예전에 그런 예화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나이 많은 어머님이 임종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이 분은 교회에 오랫동안 다니신 믿음이 좋은 권사님이셨대요. 그런데 마침 그 때 목사님이 아니라 성당 사제가 찾아왔다고 해요.

가톨릭에는 병자성사라고 하는게 있다고 하거든요. 그래서 이 누워계신 어머님께 기도를 하고 나서는, “어머님의 죄가 용서를 받았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이 누워계신 권사님이 그 사제한테 말하기를 당신 손을 좀 보여달라고 하시더래요. 그래서 아, 마지막에 내 손을 잡으시려고 하는구나 하고 손을 내밀었더니만, 이 권사님이 사제의 손을 만지면서 그러시더래요.

“신부님, 저의 죄는 손에 못 자국이 있으신 분만 용서해 주실 수 있습니다.”

라고 하셨다는 말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요. 아무리 믿음이 좋고 신학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고 해도 어찌 사람의 죄를 사람이 해결해줄 수가 있습니까.

우리의 죄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로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분, 두 손에 못 자국이 있으신 예수님 뿐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하늘에 계시는 예수님을 이 땅으로 모셔올 수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넘치는 은혜로 말미암아 이 땅에 오셔서 천국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죄악 가운데에서 죽어갈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기쁨과 소망이라는 놀라운 선물을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해주심으로 인해서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것을 어떻게 사람이 원한다고 사람의 힘이나 행위로 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전적으로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축복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직도 자신의 힘으로 은혜를 받으려고 하십니까. 아직 자신의 힘으로 죄악에서 벗어나려고 하십니까.

이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을 받은 믿음의 의인이 가져서는 안 되는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인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신명기 30장 20절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あなたの神、主を愛し、御声に聞き従い、主にすがるためである。まことにこの方こそあなたのいのちであり、あなたの日々は長く続く。あなたは、主があなたの父祖、アブラハム、イサク、ヤコブに与えると誓われたその土地の上に住むことになる。

잠언 9장 10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主を恐れることは知恵の初め、聖なる方を知ることは悟ることである。


우리가 우리 힘으로 하려는 것은, 우리 힘으로 하늘에 계시는 예수님을 모셔오려고 하는 것이나, 우리 힘으로 죽으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일단은 네 힘으로 해 보다가, 도저히 안 되겠으면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성경은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아이고, 내 힘으로는 안 됩니다. 주님이 해주셔야 합니다. 이와 같은 고백으로 처음부터 주님을 의지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진정한 믿음의 지혜는 바로 하나님을 처음부터 의지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제부터 주님의 나라에 갈 때까지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께 감사하고, 주님과 기뻐하고, 그리고 주님과 동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승리하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성 찬】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イエスは彼らに言われた。「まことに、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人の子の肉を食べ、その血を飲まなければ、あなたがたのうちに、いのちはありません。
わたしの肉を食べ、わたしの血を飲む者は、永遠のいのちを持っています。わたしは終わりの日にその人をよみがえらせます。わたしの肉はまことの食べ物、わたしの血はまことの飲み物なのです。わたしの肉を食べ、わたしの血を飲む者は、わたしのうちにとどまり、わたしもその人のうちにとどまります。
生ける父がわたしを遣わし、わたしが父によって生きているように、わたしを食べる者も、わたしによって生きるのです。





구찬송가 281장 아무 흠도 없고

1. 아무 흠도 없고 거룩 거룩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임을 당했네
2. 이는 나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못 박히사 깨뜨리신 주님의 몸일세
3. 이는 나 위하여 형벌을 받으사 주가 친히 대신 흘린 주의 보혈일세
4. 이는 주가 지금 나에게 주시는 영생하는 양식이요 마시는 잔일세
5. 심히 사모하는 떠나셨던 주님 속히 세상 다시올 때 반가이 뵙겠네
6. 우리 그때까지 십자가를 지고 주의 자비함과 은혜 널리 전파하세


신유기도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しかし、彼は、私たちのそむきの罪のために刺し通され、私たちの咎のために砕かれた。彼への懲らしめが私たちに平安をもたらし、彼の打ち傷によって、私たちはいやされた。


“사랑하는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방황하며 살았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믿음으로 나왔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저를 씻어 주시옵소서. 저를 위하여 죽으시고 저를 위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 구주로 영접하였으니 오늘 이 시간부터 하나님은 제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 구주가 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영원이 주를 의지하고 살겠습니다. 저를 구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 本日来られた皆様をイエスの御名において歓迎いたします。
2. 教会のホームページ ・ フェイスブック ・ ポッドキャストにてメッセージの動画を配信しています。伝道用に活用してください。
3. 屋内外にかかわらずマスクの着用と三密を避けるようご協力をお願いします。
4. コロナ19ウイルスの終息と教会のリバイバルのためにお祈りください。


1. 오늘 오신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2. 교회 홈페이지 ・ 페이스북 ・ 팟캐스트, 팟빵에서 설교말씀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은혜 받으시고 전도용으로 활용해주시기 바랍니다.
3. 실내외를 불문하고 마스크 착용과 3밀을 피하도록 협조를 당부 드립니다.
4. 코로나 사태 종식과 교회 부흥을 위해 기도를 바랍니다.

Ikaho.jp
비자 수속 원활하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하루라도 빨리 끝나도록
코로나로 힘들어하고 있는 우리 이웃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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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ホームページを開設しました。http://isesaki.kiri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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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세계선교군마교회 홈페이지를 개설했습니다. http://isesaki.kirin.kr 입니다.


교회홈페이지


주 기 도 문
마태복음 6장 9절~13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主の祈り
マタイの福音書 6章9節~13節

天にまします我らの父よ。
ねがわくは御名〔みな〕をあがめさせたまえ。
御国〔みくに〕を来たらせたまえ。
みこころの天になるごとく、
地にもなさせたまえ。
我らの日用の糧〔かて〕を、今日〔きょう〕も与えたまえ。
我らに罪をおかす者を、我らがゆるすごとく、
我らの罪をもゆるしたまえ。
我らをこころみにあわせず、
悪より救いだしたまえ。
国と力と栄えとは、
限りなくなんじのものなればなり。
アーメン。


주 기 도 문
개역한글
마태복음 6장 9절~13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ちち みこ みたまの
おおみかみに
ときわに たえせず
みさかえあれ
みさかえあれ















6장
찬양 성부 성자 성령
삼위 일체 신께
영세 무궁하기까지
영광을 돌리세 영광을 돌리세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과, 보혜사 성령님이 함께 하시고, 내주하시고
충만하시고 운행하심이, 오늘 2022년 6월 셋째 주 주일예배에 모인 성도, 개인, 가정, 생활, 직장, 학교, 자녀 위에 영원토록 함께 계실지어다

願わくば、我らの主イエスキリストの恵み、
父なる神様の愛、聖霊の親しき交わりが、
今日2022年 6月 第3週 主日礼拝をささげた我ら一同、
個人、家庭、生活、職場、学校、子息たちと共に、限りなくあらんことを。


하나님께 감사의 박수로 영광을 돌리시겠습니다.

2022년 6월 셋째 주 주일예배

시편 115편 9절~11절

“9.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10.아론의 집이여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11.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詩篇 115篇 9節∼11節

9.イスラエルよ 主に信頼せよ。 主こそ助け また盾。
10.アロンの家よ 主に信頼せよ。 主こそ助け また盾。
11.主を恐れる者たちよ 主に信頼せよ。 主こそ助け また盾。




あめつち こぞりて
かしこみ たたえよ
みめぐみ あふるる
ちちみこ みたまを





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使徒(しと)信条(しんじょう)
我(われ)は天地(てんち)の造(つく)り主(ぬし)、全能(ぜんのう)の父(ちち)なる神(かみ)を信(しん)ず。
我(われ)はその独(ひと)り子(ご)、我(われ)らの主(しゅ)、イエス・キリストを信(しん)ず。
主(しゅ)は聖霊(せいれい)によりてやどり、おとめマリヤより生(うま)れ、
ポンテオ・ピラトのもとに苦(くる)しみを受(う)け、十字架(じゅうじか)につけられ、
死(し)にて葬(ほうむ)られ、陰府(よみ)にくだり、
三日目(みっかめ)に死人(しにん)のうちよりよみがえり、
天(てん)に昇(のぼ)り、全能(ぜんのう)の父(ちち)なる神(かみ)の右(みぎ)に座(ざ)したまえり。
かしこより来(き)たりて生(い)ける者(もの)と死(し)にたる者(もの)とを審(さば)きたまわん。
我(われ)は聖霊(せいれい)を信(しん)ず。
聖(せい)なる公同(こうどう)の教会(きょうかい)、聖徒(せいと)の交(まじ)わり、罪(つみ)の赦(ゆる)し、
からだのよみがえり、
永遠(とこしえ)の命(いのち)を信(しん)ず。アーメン






로마서 10장 5절~7절

“5.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6.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ローマ人への手紙10章5節~7節

“5.モーセは、律法による義について、「律法の掟を行う人は、その掟によって生きる」と書いています。
6.しかし、信仰による義はこう言います。「あなたは心の中で、『だれが天に上るのか』と言ってはならない。」それはキリストを引き降ろすことです。
7.また、「『だれが深みに下るのか』と言ってはならない。」それはキリストを死者の中から引き上げることです。”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88번째 시간으로서 “믿음의 지혜” 信仰の知恵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조금 어려울 수도 있는 말씀입니다만, 역시 함께 살펴보면 전혀 어렵지 않고 오히려 주님의 말씀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으로 넘치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먼저 5절 말씀부터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10장 5절
“5.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5.モーセは、律法による義について、「律法の掟を行う人は、その掟によって生きる」と書いています。

여기에 보면 “모세가 기록하되”라고 되어 있어서, 구약성경 특히 모세가 쓴 모세오경에서 인용한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는데, 신학자들은 이를 레위기 18장 5절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18장 5절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あなたがたは、わたしの掟とわたしの定めを守りなさい。人がそれらを行うなら、それらによって生きる。わたしは主である。

레위기 본문에는 ‘의’라는 말씀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규례와 법도 즉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바로 의를 행하는 사람이라고 하겠지요. 그러면 그 사람은 살리라 하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을 행하는 사람이 의를 행하는 사람이요, 의를 행하는 사람은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를 뒤집어 보면 어떻게 됩니까.

율법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의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범하는 사람이 되고, 죄를 범하는 사람은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뜻이 됩니다.


로마서 3장을 봅니다.

로마서 3장 23절~24절
“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すべての人は罪を犯して、神の栄光を受けることができず、
神の恵みにより、キリスト・イエスによる贖いを通して、価なしに義と認められるからです。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일부 사람 또는 대다수의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명령하신 규례와 법도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율법을 완전히 지켜야 의를 행하는 것이 되어서 천국 백성이 될 텐데, 율법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을 어긴 죄인이 되어서 꼼짝없이 멸망을 당해야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우리를 구원할 방법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모든 형벌을 다 받아 주심으로 인해서 우리는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가 다 죄인이기에, 우리가 행한 것이라고는 죄 밖에 없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의를 행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절에 보시면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산다고 되어 있는데, <의를 행하는 사람>이란 곧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우리를 가리킨다고 하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 의로 산다고 합니다. 즉 우리는 우리 힘으로 의롭게 되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의롭게 해주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인해서 구원 받아 영생을 얻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까지는 되셨지요?

자, 그럼 다음 구절입니다. 오늘 본문 중에서 6절~7절까지를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10장 6절~7절
6.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6.しかし、信仰による義はこう言います。「あなたは心の中で、『だれが天に上るのか』と言ってはならない。」それはキリストを引き降ろすことです。
7.また、「『だれが深みに下るのか』と言ってはならない。」それはキリストを死者の中から引き上げることです。

이 구절은 역시 구약에서 인용된 말씀입니다. 신명기 30장을 인용한 말씀입니다만, 이 신명기 말씀은 다음 주에 살펴보기로 하고 오늘은 일단 로마서 본문에 집중을 하고자 합니다.

그 이유는 뭐냐 하면 오늘 6절~7절 말씀은 그 문장 구성은 신명기 구절을 따르고 있습니다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로마서에서만 볼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6절의 시작을 보시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즉, 예수님 십자가의 공로를 믿는 그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 하면 그런 말은 하늘에 계신 예수님을 모셔 내리려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7절에는 ‘무저갱’이라고 하는 말이 나옵니다. 이는 바닥이 없는 갱도, 즉 끝도 없이 깊은 곳을 말하는 단어인데, 이는 말하자면 사망이라고도 할 수 있고, 지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7절에서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6절과는 반대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는 것이라고 하지요.

이렇게 보면 참 어려운 말씀입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또는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행위”를 가리킨다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행위로 우리의 죄를 조금이라도 해결할 수 있습니까. 만약에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죄를 조금이라도 해결할 수 있었다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다른 방법도 있으셨다면, 왜 굳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그와 같은 끔찍한 고통을 당하셨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바로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구약시대에는 뛰어난 선지자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대표적으로 본다면 엘리야나 그의 제자 엘리사도 그렇고, 사무엘도 그렇고 이사야나 다니엘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선지자라 하더라도, 우리의 죄를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서 죽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가 뭐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 누구도 우리의 죄가 하나님의 독생자의 죽음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신약에 보시면 세례 요한이 등장합니다.

세례 요한은 그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예언된 선지자입니다. 누가복음 1장에 보시면 천사가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에게 나타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1장 13절~17절에 의하면 단순히 그의 출생만이 아니라 이름까지도 정해 주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에 알아본 바와 같이 그는 구약 말라기 4장 5절~6절에서도 예언된 바와 같이 메시야가 이 땅에 오기 전에 미리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엘리야라고 하는 사실을, 마태복음 11장 14절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어느 날부터 요단 강에서 물로 세례를 베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회개를 선포하게 되지요.

이는 단순히 그가 어느 날 문득, 아, 내가 세례를 베풀어야겠다 하고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알아본 세례 요한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요한복음 1장 33절 전반부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私自身もこの方を知りませんでした。しかし、水でバプテスマを授けるようにと私を遣わした方が、私に言われました。……

이 말씀으로 미루어 본다면 세례 요한은 분명 하나님 또는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세례를 베풀도록 명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광야에서 세례를 베푸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그에게 당신의 정체가 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의 대답이 흥미롭습니다.

요한복음 1장 21절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彼らはヨハネに尋ねた。「それでは、何者なのですか。あなたはエリヤですか。」ヨハネは「違います」と言った。「では、あの預言者ですか。」ヨハネは「違います」と答えた。


앞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그가 오리라고 예언된 엘리야라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자신이 엘리야도 아니고 선지자도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이에 대해서 신학자들은 여러 가지로 설명을 하면서, 사실 세례 요한도 자신이 성경에 예언되었던 엘리야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물음에 대해서 자신이 엘리야가 아니라고 한 이 대답은 틀린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여러 가지 근거를 제시를 하는 글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여기에 있어서 제 생각은 다릅니다.


이는 단순히 제 생각이 아니라 성경을 근거로 생각해보면 어떻게 되냐 하면, 세례 요한도 자기 자신이 다시 오리라고 예언된 엘리야라고 하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고 보아야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마태복음 11장 2절~5절
“2.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5.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さて、牢獄でキリストのみわざについて聞いたヨハネは、自分の弟子たちを通じて
イエスにこう言い送った。「おいでになるはずの方はあなたですか。それとも、別の方を待つべきでしょうか。」
イエスは彼らに答えられた。「あなたがたは行って、自分たちが見たり聞いたりしていることをヨハネに伝えなさい。
目の見えない者たちが見、足の不自由な者たちが歩き、ツァラアトに冒された者たちがきよめられ、耳の聞こえない者たちが聞き、死人たちが生き返り、貧しい者たちに福音が伝えられています。


이 기록을 본다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야인지 100프로 확신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세례 요한의 영적 능력이 떨어져서가 아닙니다.

누가복음 7장에 보시면 우리가 다 아는 세례 요한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7장 28절
“28.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시니”

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女から生まれた者の中で、ヨハネよりも偉大な者はだれもいません。しかし、神の国で一番小さい者でさえ、彼より偉大です。

여기서 세례 요한을 가리켜 큰 자라고 하셨는데, 그가 큰 자라고 하신 것은 단순히 그 당시 살아 있는 사람 중에 한한 말씀이 아니라, 천지가 만들어지고 사람이 생겨난 이래 지금까지를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는 구약에서 예언되었을 정도로 놀라운 선지자였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오실 구세주의 앞길을 예비하는 엘리야로서 다시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처럼 큰 선지자라 하더라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서 극히 작은 자라도 해도 요한보다는 크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당시 하나님 나라에 있는 극히 작은 자라 하더라도 다 알고 있었을 예수님의 십자가에 의한 구원사역에 대해서 그는 아직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엘리야나 다른 선지자뿐만이 아니라 세례 요한 정도 되는 선지자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계획을 모두 알지는 못했다고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생각해보세요. 아, 우리의 죄가 무거우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달라고 할 수 가 있었겠습니까. 아니요. 없습니다.

2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기도 응답으로 오신 것이 아니에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오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독단적인 계획에 따라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주신 크나큰 은혜로서 오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은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 이 또한 사람의 기도 응답으로서 부활하셨습니까.

성경을 보시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무덤에 모시게 되는데, 그 당시 상황을 보면 참 기가 막힙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훨씬 전부터,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반복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대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셨어요. 그렇다면 예수님의 그 말씀들을 들어왔던 제자들은 어떻게 했어야 했겠습니까.

그렇죠. 이제 예수님께서 미리 하셨던 말씀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니, 역시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믿고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자, 그럼 여기서 잠시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실제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다음,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믿었을까요?


마가복음 16장 9절~11절
“9.[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10.마리아가 가서 예수님과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11.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さて、週の初めの日の朝早く、よみがえったイエスは、最初にマグダラのマリアにご自分を現された。彼女は、かつて七つの悪霊をイエスに追い出してもらった人である。
マリアは、イエスと一緒にいた人たちが嘆き悲しんで泣いているところに行って、そのことを知らせた。
彼らは、イエスが生きていて彼女にご自分を現された、と聞いても信じなかった。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 그러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이 놀라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들이 어떻게 했대요? 부활을 기다린 그들이 할렐루야를 외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어요? 아니요. 그 소식을 듣고도 전혀 믿지 않았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어요. 그것은 바로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던 사람들이 없었을까요? 아니요. 있었습니다. 그럼 그게 누구였냐 하면, 마태복음 27장 62절~66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마태복음 27장 62절~66절
“62.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63.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64.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65.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66.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


마태복음 27장 62절~66절
明くる日、すなわち、備え日の翌日、祭司長たちとパリサイ人たちはピラトのところに集まって、
こう言った。「閣下。人を惑わすあの男がまだ生きていたとき、『わたしは三日後によみがえる』と言っていたのを、私たちは思い出しました。
ですから、三日目まで墓の番をするように命じてください。そうでないと弟子たちが来て、彼を盗み出し、『死人の中からよみがえった』と民に言うかもしれません。そうなると、この惑わしのほうが、前の惑わしよりもひどいものになります。」
ピラトは彼らに言った。「番兵を出してやろう。行って、できるだけしっかりと番をするがよい。」
そこで彼らは行って番兵たちとともに石に封印をし、墓の番をした。

참으로 어이없게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던 사람들은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주범인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사람들은 왜 부활을 기다리지 못했을까요.

아무리 뛰어난 선지자라 하더라도, 아무리 예수님과 가까웠던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 사람들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찌 부활의 의미를 알 수가 있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해주신 것은 그야말로 기쁨이었습니다. 넘치는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그 뿐만이 아니지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뿐이라면 의미가 없습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예수님의 부활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부활이야말로 우리의 죄가 사해지고 영생을 얻게 되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던 것이 뛰어난 선지자나 믿음이 좋은 사람들의 기도 응답이 아니었던 것처럼, 예수님의 부활도 역시 그들의 기도 응답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폭포수처럼 부어주시는 은혜와 용서라고 하는 축복의 결과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사람이 원한다고 해서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습니까. 아니요. 못합니다.


예전에 그런 예화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나이 많은 어머님이 임종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이 분은 교회에 오랫동안 다니신 믿음이 좋은 권사님이셨대요. 그런데 마침 그 때 목사님이 아니라 성당 사제가 찾아왔다고 해요.

가톨릭에는 병자성사라고 하는게 있다고 하거든요. 그래서 이 누워계신 어머님께 기도를 하고 나서는, “어머님의 죄가 용서를 받았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이 누워계신 권사님이 그 사제한테 말하기를 당신 손을 좀 보여달라고 하시더래요. 그래서 아, 마지막에 내 손을 잡으시려고 하는구나 하고 손을 내밀었더니만, 이 권사님이 사제의 손을 만지면서 그러시더래요.

“신부님, 저의 죄는 손에 못 자국이 있으신 분만 용서해 주실 수 있습니다.”

라고 하셨다는 말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요. 아무리 믿음이 좋고 신학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고 해도 어찌 사람의 죄를 사람이 해결해줄 수가 있습니까.

우리의 죄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로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분, 두 손에 못 자국이 있으신 예수님 뿐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하늘에 계시는 예수님을 이 땅으로 모셔올 수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넘치는 은혜로 말미암아 이 땅에 오셔서 천국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죄악 가운데에서 죽어갈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기쁨과 소망이라는 놀라운 선물을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해주심으로 인해서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것을 어떻게 사람이 원한다고 사람의 힘이나 행위로 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전적으로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축복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직도 자신의 힘으로 은혜를 받으려고 하십니까. 아직 자신의 힘으로 죄악에서 벗어나려고 하십니까.

이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을 받은 믿음의 의인이 가져서는 안 되는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인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신명기 30장 20절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あなたの神、主を愛し、御声に聞き従い、主にすがるためである。まことにこの方こそあなたのいのちであり、あなたの日々は長く続く。あなたは、主があなたの父祖、アブラハム、イサク、ヤコブに与えると誓われたその土地の上に住むことになる。

잠언 9장 10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主を恐れることは知恵の初め、聖なる方を知ることは悟ることである。


우리가 우리 힘으로 하려는 것은, 우리 힘으로 하늘에 계시는 예수님을 모셔오려고 하는 것이나, 우리 힘으로 죽으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일단은 네 힘으로 해 보다가, 도저히 안 되겠으면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성경은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아이고, 내 힘으로는 안 됩니다. 주님이 해주셔야 합니다. 이와 같은 고백으로 처음부터 주님을 의지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진정한 믿음의 지혜는 바로 하나님을 처음부터 의지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제부터 주님의 나라에 갈 때까지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께 감사하고, 주님과 기뻐하고, 그리고 주님과 동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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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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