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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1회 세 과부 이야기
20207월 5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5장 13절 신약 260페이지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ローマ人への手紙 15章 13節
“どうか、希望の神が、信仰によるすべての喜びと平安であなたがたを満たし、聖霊の力によって希望にあふれさせてくださいますよう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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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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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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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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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세 과부 이야기” 三人のやもめの話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여성의 권리도 과거와 비교해 본다면 아직도 여전히 부족한 부분도 적지 않겠습니다만, 그래도 상당부분 개선되어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여성의 권리가 그나마 개선되기 시작한 것은 역사적으로 본다면 사실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참정권, 그러니까 여성이 투표를 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하는 것은 지금으로 본다면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사실 이 여성의 참정권, 투표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세계적으로 인정되기 시작한 것은 대략 1900년도 들어서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아직 100년 정도밖에 안 된 제도인 것이지요.

그러니 지금부터 2000년 전이었다면 오죽했겠습니까. 여성의 권리라고 하는 것은 상당부분 제한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도 아직 혼인을 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혼인을 한 여성은 그나마 괜찮았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은 남성들의 관심을 받으면서 존중될 수도 있고, 결혼을 한다면 그 남편을 힘입어서 사회적으로도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과부, 즉 혼인을 하였으나 젊은 나이에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났을 경우에는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와 같은 경우에는 십중팔구 나이가 아직 어린 아이가 있기 마련입니다.

남편이 있어야 직업을 통해서 수익을 얻어 양육을 할 수 있을 텐데, 여성의 몸으로서 당시에는 할 수 있는 일들이 극히 드물었습니다. 그러니 집안 상황이 넉넉할 수가 없었지요.


오늘은 성경에 나오는 세 명의 과부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만, 여기서는 남성이다 여성이다 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약자라고 하는 입장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사회적인 약자의 대표적인 존재는 바로 남편이 없고 아이만 있는 과부, 그리고 부모가 없는 미성년자인 고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고아와 과부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셨습니다만, 이는 남녀노소를 떠나 다름아닌 사회적인 약자에 대해서 하신 말씀이라고 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 살펴볼 세 명의 과부, 다시 말해서 세 명의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성경 말씀을 살펴봄으로 인해서, 이 말씀 속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를 모두 받으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먼저 살펴볼 첫 번째 과부 이야기는 열왕기상 17장 8절~16절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성경으로 구약성경 545페이지입니다. 조금 길지만 봉독해 드리겠습니다.

열왕기상 17장 8절~16절
8.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9.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10.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11.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12.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13.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14.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5.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16.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すると、彼に次のような主のことばがあった。
「さあ、シドンのツァレファテに行き、そこに住め。見よ。わたしはそこの一人のやもめに命じて、あなたを養うようにしている。」
彼はツァレファテへ出て行った。その町の門に着くと、ちょうどそこに、薪を拾い集めている一人のやもめがいた。そこで、エリヤは彼女 に声をかけて言った。「水差しにほんの少しの水を持って来て、私に飲ませてください。」
彼女が取りに行こうとすると、エリヤは彼女を呼んで言った。「一口のパンも持って来てください。」
彼女は答えた。「あなたの神、主は生きておられます。私には焼いたパンはありません。ただ、かめの中に一握 りの粉と、壺の中にほんの少しの油があるだけです。ご覧 のとおり、二、三本の薪を集め、帰って行って、私と息子のためにそれを調理し、それを食べて死のうとしているのです。」
エリヤは彼女 に言った。「恐れてはいけません。行って、あなたが言ったようにしなさい。しかし、まず私のためにそれで小さなパン菓子を作り、私のところに持って来 なさい。その後で、あなたとあなたの子どものために作りなさい。
イスラエルの神、主が、こう言われるからです。『主が地の上に雨を降らせる日まで、そのかめの粉は尽きず、その壺の油はなくならない。』」
彼女は行って、エリヤのことばのとおりにした。彼女と彼、および彼女の家族も、長い間それを食べた。
エリヤを通して言われた主のことばのとおり、かめの粉は尽きず、壺の油はなくならなかった。

엘리야라고 하면 구약을 대표하는 선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한 선지자라 하더라도 엘리야만큼 놀라운 기적들을 많이 행한 선지자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사르밧이라고 하는 지역으로 엘리야를 보내십니다. 거기는 사실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방지역이었습니다. 엘리야로서 본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지역으로 보내신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의외였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합니다.

당시 그 지역은 혹독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먹을 것도 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사회적으로 보아서 제일 저변에 있었다고 할 수 있는 약자인 과부라고 하면 이는 두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었을 것입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엘리야가 그 지역에 갔더니 어떤 과부가 나뭇가지들을 줍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그 과부를 보고 먹을 것을 달라고 합니다. 많이 바라는 것도 아니에요. 물 한 잔과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서 가져오라고 하는 것이지요.

평소라면 대단한 부탁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만 당시에는 식량이 부족했습니다. 거기다가 이 사람은 과부였지요. 이 과부가 하는 말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열왕기상 17장 12절을 다시 볼까요?


열왕기상 17장 12절
“12.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彼女は答えた。「あなたの神、主は生きておられます。私には焼いたパンはありません。ただ、かめの中に一握 りの粉と、壺の中にほんの少しの油があるだけです。ご覧 のとおり、二、三本の薪を集め、帰って行って、私と息子のためにそれを調理し、それを食べて死のうとしているのです。」

그 사람은 지금 가난해서 어려워할 정도가 아닙니다. 이제 마지막 남은 한 끼 식사가 있는데, 이것을 먹고 난 다음에는 이제 더 이상 식량을 얻을 방법이 없어요. 그러니까 볼품없는 식량이라 하더라도 배를 한 번 채워보고, 그리고 그 다음에 아들과 함께 죽어버리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과부를 보고 엘리야가 뭐라고 합니까.

다음 구절, 13절~14절을 살펴봅니다.


열왕기상 17장 13절~14절
13.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14.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エリヤは彼女 に言った。「恐れてはいけません。行って、あなたが言ったようにしなさい。しかし、まず私のためにそれで小さなパン菓子を作り、私のところに持って来 なさい。その後で、あなたとあなたの子どものために作りなさい。
イスラエルの神、主が、こう言われるからです。『主が地の上に雨を降らせる日まで、そのかめの粉は尽きず、その壺の油はなくならない。』」

이를 좀 알기 쉽게 말하자면, 어느 과부가 지금 먹을 것이 떨어져서 컵라면 하나밖에 없어요. 이제 이걸 아들과 나눠먹고 죽어버릴 생각입니다. 자신은 이미 아들과 함께 죽을 각오를 했습니다. 이 세상에 이처럼 절망적인 상황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디서 온 누군지도 모르는 사림이, 지금 그 마지막 식사, 자기와 자기 아들이 먹고 죽으려고 했던, 말하자면 컵라면 하나를 내놓으라는 거예요. 그렇게만 한다면 이 가뭄이 끝나는 날까지 너희 집에 식량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처럼 절망적인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컵라면 하나 남았는데, 그걸 하나 내 놓으래요. 저 같으면요? 아니, 벼룩의 간을 빼먹어도 유분수지 무슨 헛소리냐고, 저리 꺼지라고 그랬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이 과부는 놀라운 행동을 합니다. 정말 그 마지막 남은 식량을 엘리야를 위해서 바쳤다는 것이에요. 그러자 정말로 엘리야가 했던 말처럼 식량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다음에는 두 번째 과부입니다. 이는 열왕기하 4장 1절~7절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성경으로 구약성경 565페이지입니다.

열왕기하 4장 1절~7절
1.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하니
2.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 그가 이르되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니
3.이르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4.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하니라
5.여인이 물러가서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6.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7.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말하니 그가 이르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

預言者の仲間の妻の一人がエリシャに叫 んで言った。「あなたのしもべである私の夫が死にました。ご存じのように、あなたのしもべは主を恐れていました。ところが、債権者が来 て、私の二人の子どもを自分の奴隷にしようとしています。」
エリシャは彼女に言った。「何をしてあげようか。私に話しなさい。あなたには、家の中に何があるのか。」彼女 は答えた。「はしためには、家の中に何もありません。ただ、油の壺一つしかありません。」

すると、彼は言った。「外に行って、近所の皆から、器を借りて来なさい。空の器を。それも、一つや二つではいけません。
家に入ったら、あなたと子どもたちの背後の戸を閉めなさい。そしてすべての器に油を注ぎ入れなさい。いっぱいになったものは、わきに置きなさい。」
そこで、彼女は彼のもとから去って行き、彼女と子どもたちが入った背後の戸を閉めた。そして、子どもたちが次々と自分のところに持って来 る器に油を注ぎ入れた。
器がどれもいっぱいになったので、彼女は子どもの一人に言った。「もっと器を持って来なさい。」その子どもが彼女 に、「もう器はありません」と言うと、油は止まった。
彼女が神の人に知らせに行くと、彼は言った。「行ってその油を売り、あなたの負債を払いなさい。その残りで、あなたと子どもたちは暮らしていけます。」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엘리사는 엘리야의 제자입니다. 이름이 비슷하기는 하지만 친족관계는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와 엘리사와의 두 관계는 상당히 특이한 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선지자의 제자가 곧 선지자라는 점입니다. 엘리야는 엘리사를 제자로 삼습니다만, 이 엘리야는 얼마나 대단한 선지자였냐 하면, 아무리 뛰어난 선지자나 왕이라 하더라도 이 땅에서 한 번 죽고 난 다음에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만, 구약에 보면 에녹과 엘리야만이 죽지 않고 그대로 하늘로 올라갔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간 다음에는 이 엘리사가 역시 놀라운 기적들을 많이 행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적 중 하나가 바로 이 본문 말씀입니다.


오늘 두 번째 등장인물인 과부가 엘리사에게 호소를 합니다. 남편이 있었다가 죽었다고 하는데, 그러면 당연히 가정 형편이 어려워집니다. 남편이 죽기 전에 빚을 졌는지, 아니면 죽고 난 다음에 빚을 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빚을 지게 되었는데, 이를 갚으라고 사람들이 왔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갚을 돈이 없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들이 자기 두 아들을 종으로 데려가겠다고 한다는 것이지요.

남편이 죽은 것만으로도 힘든 상황인데 거기다가 두 아들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했습니다. 완전히 절망 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엘리사가 여인에게 묻습니다. 너희 집에 뭐가 있느냐. 그러자 기름 한 그릇이 있다고 하지요.

지금 이 이야기의 흐름에 본다면서 그 기름으로 나한테 떡을 만들어서 가져오라고 할 만도 한데, 엘리사는 조금 특이한 말을 합니다. 지금 당장 이웃들한테 가서 빈 그릇을 빌리라고 합니다. 뭐 한 두 개 정도가 아니라 빌릴 수 있는 대로 빌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빈 그릇에다가 기름을 부어보래요. 그래서 하나하나 빈 그릇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기름을 부어갔더니, 어떻게 됐냐 하면 그 빌려온 그릇 모두에 기름이 다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지요. 기쁨에 찬 과부가 엘리사에게 이 일을 말하자, 엘리사는 담담하게 그 기름을 팔아서 빚을 갚고, 그리고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을 하라고 일러줍니다.

참으로 은혜가 넘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 그리고 마지막 과부입니다. 이번에는 신약으로 한 번 넘어와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21장 1절~4절입니다.
1.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2.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3.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イエスは目を上げて、金持ちたちが献金箱に献金を投げ入れているのを見ておられた。
そして、ある貧しいやもめが、そこにレプタ銅貨を二枚投げ入れるのを見て、
こう言われた。「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この貧しいやもめは、だれよりも多くを投げ入れました。
あの人たちはみな、あり余る中から献金として投げ入れたのに、この人は乏しい中から、持っていた生きる手立てのすべてを投げ入れたのですから。」

이 유명한 두 렙돈 이야기는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오늘은 누가복음 쪽을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미리 말씀을 드립니다만, 대체적으로 교회에서 이 구절을 말씀 드리면, 들으시는 분들이 좀 긴장을 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인상을 찌푸리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 그게 이상하다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과부가 넉넉하지 않은 가운데에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생활비를 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돈이 넉넉하건 궁핍하건 간에 돈을 많이 내야 천국에 갈 수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종교 지도자들이 부끄러운 말씀입니다만 의외로 많이 계십니다. 하지만 이는 올바른 이해가 아닙니다.


2000년 전 이스라엘에는 모든 화폐가 동전이었습니다. 지폐가 아니었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으면 소리가 납니다. 많이 넣게 되면 와르르 하고 소리가 났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 소리만 들으면 누가 돈을 많이 넣었고 누가 적게 넣는지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니까 그 중에 어떤 사람들은 화폐 동전을 일부러 적은 액수로 바꾸어서, 다시 말해서 같은 액수라도 동전 개수를 늘려서 붓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2천년 전 교회에서는 부자들이 헌금을 할 때 막 요란한 소리가 납니다. 그러면 주변에서는 와, 누가 이렇게 헌금을 많이 해? 하고 돌아보는 사람들도 있었겠지요. 그런 상황에서 어쩌면 헌금을 적게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눈치가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아, 내가 이렇게 적게 헌금을 하면, 사람들은 나를 보고 가난하다고 흉 볼 거야. 놀릴지도 몰라. 하나님은 저렇게 많이 헌금하는 사람들만 좋아하고, 나처럼 적게 헌금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으실 거야.

당시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어려운 사람들이 이와 같은 생각을 가져도 이상할 것이 없었겠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과부는 두 렙돈(レプタ)이라고 하는 돈을 헌금함에 넣었습니다.

이 두 렙돈이 그러면 어느 정도 되는 돈이었는지에 대해서 잠시 알아보려고 합니다.

당시 화폐 중에서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단위라고 한다면, 데나리온을 꼽을 수가 있겠습니다만, 이 데나리온은 당시 일용직 노동자의 하루 일당이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1 렙돈은 어느 정도인가 하면 데나리온의 128분의 1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두 렙돈은 한 데나리온의 64분의 1이 되겠지요. 일용직 노동자의 일당을 넉넉잡아 편의상 100,000원이라고 한다면 두 렙돈은 얼마가 되냐 하면 100,000원 나누기 64를 하면 (156엔) 반올림 해서 1,563원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이 1563원이라고 하는 금액이 이 과부의 생활비 전부였다고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당시 과부의 생활 형편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말씀에서의 핵심은 무엇이냐 하면, 헌금을 많이 내는 사람만 하나님께서 좋아하시고 적게 내는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많게 내든 적게 내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오늘 살펴본 세 명의 과부 이야기. 어떠십니까.

첫 번째 과부는 마지막 남은 식량, 그야말로 컵라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을 아들과 나눠먹고 죽어버리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당시 이 과부 입장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참으로 막막하고 죽음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는 절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순간에 엘리야는 마지막 남은 그 작은 떡 하나를 바치라고 합니다. 그것은, 그 보잘 것 없는 세상적인 떡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하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だれも二人の主人に仕えることはできません。一方を憎んで他方を愛することになるか、一方を重んじて他方を軽んじることになります。あなたがたは神と富とに仕えることはできません。

여기서의 재물은 단순히 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방법, 인간적인 방법, 말하자면 육적인 방법이라고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방법과 육적인 방법은 동시에 가질 수가 없습니다.

로마서 6장 5절~6절
“5.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肉に従う者は肉に属することを考えますが、御霊に従う者は御霊に属することを考えます。
肉の思いは死ですが、御霊の思いはいのちと平安です。

첫 번째 과부는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육적인 생각, 작은 떡 하나를 움켜쥐고 그것을 먹고 아들과 죽을 것인지, 아니면 그 육적인 생각을 버리고 영의 생각,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망을 잡을 것인지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이 선택 앞에서 첫 번째 과부는 담대하게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소망으로 본인과 아들, 그 가정에 기쁨과 평안이 임하게 된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과부는 남편도 잃고 이제 두 아들마저도 종으로 빼앗길 위기에 처했습니다. 돈도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이제 온 가정이 풍비박산 날 위기에 처해졌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의외의 명을 내립니다. 이웃집에서 빈 그릇들을 빌려오라고 시켰습니다. 여러 분, 이게 그리 쉬울 것 같으십니까.

당시는 지금보다도 서로의 사정을 모두가 다 알고 있었습니다. 요즘도 도시는 좀 그렇겠지만, 지방이나 시골에서 오래 살게 되면 서로의 형편들은 그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도 다 알게 된다고 하지요. 아마도 분명 이 과부가 사는 동네에서 이 과부의 형편, 대단히 가난하다는 사실은 그 주변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거기다가 매일 같이 빚쟁이들이 찾아와서 돈을 갚으라고 윽박지릅니다. 이제 끝내는 두 아들을 노예로 끌고 가겠다고 난리를 쳐요. 그런 상황에서 지금 이웃한테 기름을 담을 빈 그릇을 빌려오라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웃들한테 그릇을 빌리러 가면, 이웃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아이구, 담을 기름도 식량도 없으면서 그릇을 빌려다가 뭘 하려고 그러느냐. 그렇게 놀리지 않겠습니까. 아마도 이 과부의 자존심은 대단히 상했을 것입니다.

당시 기름이라고 한다면 대단히 가치가 있는 물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과부 집에는 빈 그릇도 없는 형편입니다. 이제 빈 그릇을 빌려와야 합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하는 말이 독특합니다. 그 빌려온 빈 그릇에 네가 가지고 있는 기름을 부으면 모든 그릇에 기름이 가득 찬다고 합니다.

참 믿기 어려운 말씀이지요. 그렇다면 이 과부는 어떻게 했을까요.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가 하라고 했으니까 안 할 수는 없겠지요. 이제 이 과부는 이웃한테서 크고 작은 그릇들을 빌려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흥미로운 것은 이 과부가 그릇을 얼마나 빌려왔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점입니다. 집안 가득 찰 정도로 빌려왔는지, 아니면 두 세 개만 빌려왔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점은 빌려온 그릇에 기름을 다 붓고 나니까 더 이상 기름이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 과부가 빈 그릇을 빌려 왔다면 그것은 믿음이 있는 것이요, 엘리사가 그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져오지 않았다면 믿음이 없었다는 뜻이 되겠지요.

그리고 또한 빈 그릇을 가져왔다고 해도 많이 가져왔을 수도 있고 적게 가져왔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빌려온 그릇의 개수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이 과부가 가졌던 소망을 뜻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니까 가져왔을 텐데 그 믿음에 소망이 많았다면, 그 빈 그릇에 모두 기름으로 가득 채워주실 것이라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 자존심은 생각하지 않고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집안 가득히 그릇을 빌려왔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소망이 없었다면 그저 높은 사람이 하는 말이니까 듣는 시늉만 해서 그릇을 서너 개 가져오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기름을 따르고 있는데, 그릇이 막 차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놀라서 그릇을 더 가져오라고 했는데, 추가로 더 빌려올 시간이 없습니다. 빌려온 그릇이 이게 다라고 하자 거기서 기름이 딱 멈췄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만약에 빈 그릇을 많이 빌려왔었다면, 다시 말해서 애초에 하나님께 큰 소망을 두었더라면 그 과부는 넉넉히 찬 기름을 보고 감사와 찬송을 하나님께 돌릴 수 있었겠지만, 하나님께 작은 소망만을 두고 그릇 서너 개만 빌려왔었다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 앞에서 땅을 치고 후회했을지도 모르는 노릇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과부, 그녀는 생활비가 두 렙돈 밖에 없었습니다. 주머니에 1560원밖에 안 들어있어요. 이걸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적으로 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놀라운 선택을 했습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기로 작정했던 것입니다.

동전 두 개를 넣으면 주변에서 놀릴지도 모릅니다. 멸시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께 바칠 힘도 능력도 없는 상황에서 내가 바칠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아차리시고 이 과부를 칭찬하셨던 것입니다.

에이, 무슨 칭찬만 하고 어떤 축복을 받았는지는 안 적혀 있잖아? 하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여러분, 예수님께서 칭찬을 하셨는데 아무런 축복이 없으셨겠습니까. 우리가 우리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칭찬 받는 일만 골라서 하십시오. 그렇게만 하신다면 우리 인생에 놀라운 변화, 하나님의 축복으로 가득 찬 인생이 되신다는 것을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고 무슨 돈만 많이 바치면 하나님께서 좋아하실 것 같으십니까. 예전에 제가 다니던 어떤 교회에서 보면, 자기가 헌금 많이 한다고 목에 힘주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이사야 1장 11절~13절
“11.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あなたがたの多くのいけにえは、わたしにとって何になろう。──主は言われる──わたしは、雄羊の全焼のささげ物や、肥えた家畜の脂肪に飽きた。雄牛 、子羊、雄やぎの血も喜ばない。
あなたがたは、わたしに会いに出て来るが、だれが、わたしの庭を踏みつけよとあなたがたに求めたのか。
もう、むなしいささげ物を携えて来るな。香の煙、それはわたしの忌み嫌 うもの。新月の祭り、安息日、会合の召集──わたしは、不義と、きよめの集会に耐えられない。

우리는 헛된 재물을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담아서, 정성을 담아서, 사람마다 자신이 가진 것이 재물이면 재물로 섬기고, 가진 것이 시간이면 시간으로 섬기고, 그리고 봉사로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길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소망입니다. 이것이 바로 엘리야에 바친 작은 떡이요, 이웃한테서 빌려온 빈 그릇들이요, 하나님께 바친 두 렙돈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15장 13절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ローマ人への手紙 15章 13節

“どうか、希望の神が、信仰によるすべての喜びと平安であなたがたを満たし、聖霊の力によって希望にあふれさせてくださいますように。”

이 세상의 모든 절망은 주님 안에서 소망으로 바뀔 수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주님을 의지할 때 아무리 캄캄한 절망이라 하더라도 놀라운 소망으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 육적인 소망이 아닌 영적인 소망을 두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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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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