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응답을 받으려면” 答えを得るためには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기도하고 응답 받으신 적 있으십니까. 이러이러한 어려움을 겪었는데 기도를 드리니까 문제도 해결되고 건강도 회복되고
그러셨습니까.
예, 아멘.
사실 이 질문은 그냥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나가는 말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절실하지요. 오히려 교회에 오래 다녔는데,
기도를 해도 응답을 한 번도 안 받았다? 이건 정말 심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어려움이 닥칠 때 기도를
안 드린다고 하는 것은, 이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실까요?
요한복음 16장 24절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今まで、あなたがたは、わたしの名によって何も求めたことがありません。求めなさい。そうすれば受けます。あなたがたの喜
びが満ちあふれるようになるためです。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하면 받는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은혜로운 말씀이십니까.
그런데 말이에요. 자, 그렇다면 다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께서 기도하신 것, 100프로 모두 응답을 받으셨나요? 이것이
필요합니다. 저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해주세요. 저것을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를 드리면 모두 들어주셨나요?
이게 참 어렵습니다. 어떤 것은 들어주시기도 하는데, 어떤 것은 안 들어주시기도 하는 것 같아요.
어찌 보면 참 이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무엇이든 들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안 들어주시는
기도가 있느냐 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성경말씀에 대해서 궁금증이 생기면 사람 생각에 치우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성경에 있어서의 모든 정답은 우리
사람의 생각, 무슨 유명한 신학자나 목회자의 주장이나 해석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 자체에 있다고 우리는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마태복음을 한 번 보실까요? 마태복음 6장 31절~33절입니다.
마태복음 6장 31절~33절
“31.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ですから、何を食べようか、何を飲もうか、何を着ようかと言って、心配しなくてよいのです。
これらのものはすべて、異邦人が切に求めているものです。あなたがたにこれらのものすべてが必要であることは、あなたがたの天の父が知っておられます。
まず神の国と神の義を求めなさい。そうすれば、これらのものはすべて、それに加えて与えられます。
이 두 말씀을 모두 예수님께서 하셨습니다. 앞서 요한복음에 보니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우리가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 보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덜어주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신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구해야 하는 것일까요. 어떻게 구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는데 그것이 무슨
뜻일까요. 이것만 알면 우리가 드리는 모든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이것을 잘 모르겠어요.
오늘은 이 말씀의 참 뜻을 깨닫고 우리 기도의 응답을 모두 받을 수 있게 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느 회사에 한 직원이 있었습니다. 뭐, 편의상 제가 홍 가니까 홍 대리라고 하지요. 이 홍 대리는 본래부터 좀 사장님한테 불만이
많았습니다. 자기가 기안서를 올리면 결제를 잘 안 해줘요. 그런데 같은 회사 동료 직원인 김 대리는 결제만 올렸다 하면 곧바로 사인을
받아옵니다. 예산도 얼마나 많이 쓰는지 몰라요. 그래도 펑펑 회사에서 지원을 해줍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아하, 이 사장님이
차별을 하고 있구나. 사장님은 김대리만 편애를 하고 나는 미워하나 보다……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그냥 참고 있었더니, 안되겠어요. 한 번 제대로 사장님과 말을 해봐야겠어요. 그래서 이 홍 대리는 그 날도 평소처럼 결제서류를
딱 손에 들고서는 단단히 마음을 먹고 사장실 문을 두드렸습니다.
“똑똑.”
“예, 들어오세요.”
“실례하겠습니다. 저 사장님, 오늘은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음? 그래? 어서 말을 해보게나.”
그러자 이 홍 대리는 말을 합니다.
“사장님은 아무래도 직원들을 차별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장님은 놀라시죠.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우리 직원들을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는데 그래?”
홍 대리는 말을 계속합니다.
“그렇다면 제 동료 김 대리는 맨날 결제를 올리면 사인을 해주시면서 제가 올리는 결제에는 언제나 사인을 안 해주십니다. 그 이유는
사장님이 김 대리만 편애하고 저는 미워하기 때문 아닌가요?”
그러자 사장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봐. 그건 자네가 모르고 하는 소리야. 우리 회사가 아무리 넉넉하다고는 하지만, 내가 미워하는 직원한테까지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주면서 데리고 있겠나? 내가 자네를 미워 한다구? 자네가 우리 회사에 지원하고 면접보고 그랬잖아? 그 때 누가 면접을 봤어? 나야.
그리고 누가 자네를 뽑았는지 알아? 내가 뽑았어. 물론 더욱 훌륭한 지원자들도 많았지, 하지만 나는 자네가 마음에 들었어. 그래서
내가 뽑은 거야. 그리고 지금 자네가 있는 부서가 얼마나 중요한 부서인지 알아? 내가 자네를 미워했다면 어떻게 그런 중요한 일을
자네한테 맡길 수가 있겠는가.”
이 말을 듣자, 우리의 홍 대리. 표정이 밝아집니다. 아, 그래. 사장님이 나를 차별한다는 것은 오해였구나. 사장님은 나도
아껴주시는구나. 김 대리만 사랑하시는 게 아니라 나도 사랑해주시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니 얼마나 마음이 가벼워졌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제 환한 표정을 지으면서 손에 든 결제판을 내보입니다.
“사장님, 그렇다면 오늘은 제가 올리는 결제에 사인을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래? 그럼 어디 봅시다”
그런데 우리의 홍 대리가 내민 결제판을 본 사장님. 깊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잠시 후 사장님이 고개를 들면서 한 말씀 합니다.
“자네, 이게 뭔가?”
그랬더니 자신감을 얻은 홍 대리. 당당하게 말을 합니다.
“지난 번에 김 대리가 사장님한테 결제를 받은 안건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사장님은 김 대리가 미국과 유럽 각지를 방문하도록 한 달
동안 출장을 허락하셨다는 말씀 들었습니다. 당연히 출장비에는 비행기표와 숙박비, 식비, 그리고 출장수당까지 나옵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사장님, 다시 한 번 묻습니다.
“이봐, 홍 대리. 그러니까 이게 뭐냐니까.”
“예, 제주도 3박 4일 출장 계획서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이 내용이 무슨 뜻이냐 하는 걸세.”
우리의 홍대리는 당당하게 말합니다.
“모든 직원들을 차별하지 않고 공평하게 대하신다는 사장님은, 김 대리한테 한 달 동안 미국과 유럽 출장을 보내주실 정도로 통이 크신
분이시니, 저한테는 해외는 아니더라도 제주도 3박 4일 정도는 출장을 보내주실 것 같아서 계획을 짜보았습니다.”
“흠……. 그래? 그럼 제주도는 왜 가려고?”
그러자 우리의 홍 대리.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바다가 좀 보고 싶어서요.”
여러분께서 이 사장님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자비로운 사장님이 가만히 있다가 말을 시작합니다.
“이보게 홍 대리. 잠깐 앉아보게. 자, 그리고 내 말을 좀 들어봐. 지난 번에 김 대리가 출장 기획서를 냈고 내가 사인을 했네. 그
내용은 자네가 말한 대로 미국과 유럽 각국을 한 달 동안 방문하고 오는 일일세. 물론 거기에는 항공비와 숙식비, 그리고 출장
수당까지도 지불되지. 하지만 그 기획서를 자네는 봤나? 우리 회사는 우리 회사 제품을 해외로 수출하려고 하고 있네. 그런데 김 대리는
미국과 유럽 각지에 있는 회사들을 검색해서 우리 회사와 제휴를 할 만한 곳을 물색하고, 계속 연락을 해오다가 이제 마지막으로 직접
방문을 해서 계약을 맺으러 간 걸세. 이 일은 사장인 내가 추진하라고 지시를 했고, 이 일이 성사된다면 우리 회사에 있어서 큰 이익이
되는 일이네. 요즘은 다들 경기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다행히 우리 회사는 그 정도 지원해줄 여력은 있어. 내가 지시한 일이고 우리
회사를 위한 일이라면 미국과 유럽 한 달이 문제인가? 세계 일주 1년치라도 비용을 지출할 수 있단 말이네.
그런데 이봐. 홍 대리. 3박 4일로 제주도에 보내달라고? 물론 비용으로 본다면 미국과 유럽 한 달 간 출장비에 비해 몇 분의 일도
안 되는 돈이지. 그런데 말이야. 자네가 제주도에 가고 싶다는 이유가 바다를 보고 싶다고? 만약에, 자네가 바다를 보는 일이 사장인
나나 회사한테 도움이 된다면 3박 4일이 아니라 제주도에 아예 별장을 지어가지고는 돈 다 대주면서 원하는 만큼 살게 해줄 수도 있어.
그런데 그게 나나 회사에 무슨 도움이 된다는 건가?”
사장님 말씀은 계속됩니다.
“이봐. 자네 지난번에는 책상을 바꿔달라고 했지? 그래. 그러면 회사 돈을 들여서 자네 책상을 바꿔주어야 할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나?
또 그 전에는 차를 하나 뽑아달라고 했지? 이봐. 자네 집에서 전철 역까지 걸어서 5분 걸리지? 그리고 전철로 회사까지 20분이면 올
수 있지? 그런데 왜 내가 회사 돈을 써가면서 자네한테 차를 뽑아 주어야 하지? 이래도 내가 결제를 안 해 주는 게 자네를 차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이런 결제를 올릴 시간이 있으면, 나나 우리 회사의 경영방침을 좀 공부하도록 하게.”
이 이야기,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는 물론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는 아니고 제가 잠시 생각해본 짤막한 것입니다만, 우리는
분명 신앙적으로 볼 때 이런 면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라는 것이 있어요. 그래서 기도를 합니다. 새벽기도도 하고 철야기도도 하고, 또 때로는 금식기도를
하고 그렇습니다. 큰 소리로 기도도 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지요. 그렇게 해서 그러면 응답을 받았어요. 그러면 기쁘겠지요.
할렐루야. 감사하지요. 그런데, 그걸로 끝인가요?
여러분도 많은 간증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저는 이러이러한 어려움이 있었어요. 이러이러한 병에 걸렸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기도를 하고
응답을 받았어요. 할렐루야! 아멘! 감사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간증이었습니다.
예전에 제가 어느 기독교 방송에서 라디오에 나오신 분인데 이런 간증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예전에 양쪽 귀가 잘 안 들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 분이 어떻게 했냐 하면, 병원 침대에 앉아서 성경을 들고서는,
주기도문을 한 번 외울 때마다 성경 한 장씩 넘겼대요. 이 성경이 얼마나 두껍습니까. 한국 성경은 구약이 대략 1330페이지, 신약은
423페이지 정도가 되어요.
이걸 더하면 1753페이지. 종이 한 장씩으로 계산 한다면 단순히 2로 나누어서 876장 정도 되겠지요. 주기도문을 한 번 외우는데
얼마나 걸릴까. 제가 한 번 해보니까 빨리 하면 15초 정도면 하겠더라구요. 그런데 한 두 번도 아니고 800번 이상 외워야 하니까
나중에는 지치겠지요. 그래서 대략 평균을 잡아서 30초에 한 번, 1분에 두 번이라고 계산했습니다. 종이가 876장이었으니까 이를
1분에 2장 넘기게 되면 438분. 시간으로 바꾸면 7.3시간, 대략 7시간 12분입니다. 그 동안 잠시 쉬거나 화장실도 다녀오고
식사도 하고 그러면 더 길어졌겠지요. 그렇게 주기도문 한 번 외우고 넘기고 한 번 외우고 넘기고, 그렇게 요한계시록 끝까지 넘기고
나니까 갑자기 저기서 빛이 날라오더니 두 갈래로 나뉘어져서 귓속으로 휙 하고 들어 오더래요. 그러자 귀가 뚫리고 들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런 식의 간증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예. 감사하지요. 예, 신앙이 있으시고 더구나 방송에까지 나와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
정도이니 뭐, 거짓은 아니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 신앙의 전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또 이런 분도 계십니다. 자기는 반드시 응답을 받아야 할 기도제목이 있대요. 자기는 하나님이 이 기도를 들어줄 때까지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분들 기도원에 가면 많이 계세요.
하지만 우리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과연 신앙적으로 맞는 일인가요? 지금 무슨 하나님과 기 싸움을 해서 이기자는
것인가요? 이것은 신앙이 아니라 고집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를 드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믿음이 있기 때문이지요. 믿음이 없으면 기도를 드리지 않습니다. 내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리면 응답해주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는 응답을 받고 누구는 응답을 못 받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내가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뜻에 맞느냐 안 맞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아무리 유창한 말투로 아무리 오랜 시간을 아무리 큰 소리로 기도를 드려보아도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 뜻에 맞지도 않는 기도라면 이는 헛수고입니다.
한편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 마음에 맞는다면, 하나님 뜻에 맞는다면 아는 무엇이든지 주님께서 곧바로 이루어주실 줄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욥기 41장 1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욥기 41장 11절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하여금 갚게 하겠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
だれが、まずわたしに与えたというのか。わたしがそれに報いなければならないほどに。天の下にあるものはみな、わたしのものだ。
이사야 59장 1절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見よ。主の手が短くて救えないのではない。その耳が遠くて聞こえないのではない。
시편 94편 9절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耳を植えつけた方が聞かないだろうか。目を造った方が見ないだろうか。
시편 33편 13절~15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살피시는도다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살피시는 이로다”
主は天から目を注ぎ人の子らをすべてご覧になる。
御座が据えられた所から地に住むすべての者に目を留められる。
主は一人ひとりの心を形造りわざのすべてを読み取る方。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관심하시기 때문에 기도를 안 들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살펴보고 계실
정도로 우리들에게 대단히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능력이 부족해서 너무 멀리 계셔서, 돈이 부족해서 안 들어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온 천하가 주님의
것입니다. 무엇이 부족하시겠습니까. 다만, 우리가 하나님 마음을 알지 못한 채 그저 기도만 드리고 있기 때문에 응답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 마음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성경에 하나님 마음이 적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믿음만 있고
말씀이 없다면 이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자동차로 예를 들어봅니다. 믿음은 자동차를 뜻하지요. 말씀은 기름입니다. 아무리 자동차가 좋아도 기름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지요. 우리
믿음을 말씀으로 가득 채워야 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반대로, 말씀만 있고 믿음이 없으면 곤란합니다. 가끔 보면 신앙이 없는 상태에서 성경을 연구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런 분들을 보면
자꾸만 성경을 인간적으로 해석하려고 해요. 믿음이 없기 때문에 이를 자기 생각대로만 자기 지식과 경험대로만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아요.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고 애기하거나, 사도 바울이
다메섹을 향할 때 예수님을 만난 것도 당시 그 지역에는 천둥이 많이 일어났는데, 이 때도 천둥 때문에 바울이 헛것을 본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차는 없고 기름만 있으면 이것도 안 되는 것처럼 믿음은 없고 말씀만 있어도 안 되는 것입니다. 믿음과 말씀은 반드시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이제 믿음이라고 하는 좋은 차에 말씀이라고 하는 기름을 꽉 채웠어요. 하지만 아무리 좋은 차에 비싼 기름을 가득 채웠다고 해도
움직이지 않는 차는 쓸모가 없습니다. 움직이는 것, 이것이 바로 행함인 것이지요.
야고보서 2장 17절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同じように、信仰も行いが伴わないなら、それだけでは死んだものです。
움직이지 않는 차가 고장 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도 역시 죽은 것입니다.
자, 이제 좋은 차에 기름을 가득 채웠습니다. 본격적으로 운전을 하려고 해요. 아이구, 그런데 이걸 어쩌면 좋겠습니까. 중요한 것이
빠졌습니다. 무엇이 빠졌습니까. 그렇습니다. 열쇠가 없어요. 차도 있고 기름도 채웠는데 열쇠가 없으니 움직이려고 해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열쇠가 무엇입니까. 성경을 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절~3절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たとえ私が人の異言や御使いの異言で話しても、愛がなければ、騒がしいどらや、うるさいシンバルと同じです。
たとえ私が預言の賜物を持ち、あらゆる奥義とあらゆる知識に通じていても、たとえ山を動かすほどの完全な信仰を持っていても、愛がないなら、私は無に等しいのです。
たとえ私が持っている物のすべてを分け与えても、たとえ私のからだを引き渡して誇ることになっても、愛がなければ、何の役にも立ちません。
고린도전서 13장 13절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こういうわけで、いつまでも残るのは信仰と希望と愛、これら三つです。その中で一番すぐれているのは愛です。
그렇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성경에 보면 응답 받는 기도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는 바로 그 기도에 <사랑>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믿음과 말씀과 행함은 반드시 중요하지만 그 안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이는 휴지조각이요 그야말로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이 운전을 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요즘도 뉴스에 보면 끔찍한 교통사고 소식들이 많이 들려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합니까.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많다고 하는 분들, 성경을 많이 공부했다고 하는 분들이 기독교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습니까.
그런 분들을 보면 공부도 많이 합니다. 기도도 많이 합니다. 봉사도 많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그 기도에 없기
때문에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면 이런 분들을 보면 남들한테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너, 요즘 기도 안 하지? 기도 많이 해. 어. 누구누구, 금식 좀 해야 되겠어. 너 믿음이 좀 부족한 것 같애……”
아니, 자기가 무슨 하나님이에요? 그런데 이런 말을 남들한테 합니다. 그 이유는 뭐냐 하면 피해의식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어떤
생각이 들게 되겠습니까. 아무런 응답도 못 받는데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기도하고 봉사해야만 하나……라는 피해의식이 자리잡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주지 못할망정 상처를 주어서 되겠습니까. 이 때문에 우리에게는 하나님 사람과 이웃 사랑이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만 하는 것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살펴본 말씀 중 세 가지를 다시 한 번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6장 24절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今まで、あなたがたは、わたしの名によって何も求めたことがありません。求めなさい。そうすれば受けます。あなたがたの喜
びが満ちあふれるようになるためです。
마태복음 6장 33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まず神の国と神の義を求めなさい。そうすれば、これらのものはすべて、それに加えて与えられます。
고린도전서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こういうわけで、いつまでも残るのは信仰と希望と愛、これら三つです。その中で一番すぐれているのは愛です。
우리는 이제 믿음이라는 자동차에 말씀이라는 기름을 가득 채우고, 사랑이라는 열쇠로 엔진을 걸어서 힘차게 주님의 일을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사랑을 갖고 주님의 마음과 주님의 나라를 생각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구할 때 믿음과 말씀과 행함 속에서 모든 기도에
응답을 받고 주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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