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7회 세 고을의 가르침 - 이루리라선교회
2024년 6월 9일 설교

홍성필 목사
이루리라선교회
www.IRURIRA.com
mail@IRURIRA.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0절~24절
“20.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21.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23.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24.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マタイの福音書11章20節~24節
“20.それからイエスは、ご自分が力あるわざを数多く行った町々を責め始められた。彼らが悔い改めなかったからである。
21.「ああ、コラジン。ああ、ベツサイダ。おまえたちの間で行われた力あるわざが、ツロとシドンで行われていたら、彼らはとうの昔に粗布をまとい、灰をかぶって悔い改めていたことだろう。
22.おまえたちに言う。さばきの日には、ツロとシドンのほうが、おまえたちよりもさばきに耐えやすいのだ。
23.カペナウム、おまえが天に上げられることがあるだろうか。よみにまで落とされるのだ。おまえのうちで行われた力あるわざがソドムで行われていたら、ソドムは今日まで残っていたことだろう。
24.おまえたちに言う。さばきの日には、ソドムの地のほうが、おまえよりもさばきに耐えやすいの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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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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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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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복음서 강해 22번째 시간으로서 “세 고을의 가르침” 三つの町の教え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약 3년에 걸친 공생애 기간 중에 이스라엘 여러 곳을 다니시면서 천국 복음을 전하시고 병자를 치유하셨으며, 죽은 자도 살리시는 많은 역사를 감당하셨습니다.

21장까지 있는 요한복음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21장 25절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イエスが行われたことは、ほかにもたくさんある。その一つ一つを書き記すなら、世界もその書かれた書物を収められないと、私は思う。

예수님께서 그 공생애 기간 동안에 하신 일이 얼마나 많냐 하면, 이를 모두 기록하게 될 경우 이 세상에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도 부족하다고 하는 것이에요. 그러니 얼마나 많은 말씀을 하셨고 얼마나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시면 상당히 특이한 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도시 이름 중 대표적인 곳이 첫째는 고라신(コラジン), 둘째는 벳새다(ベツサイダ), 그리고 셋째는 가버나움(カペナウム)입니다.

먼저 고라신이라는 곳은 성경에 딱 두 번만 그 이름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오늘 본문 마태복음 11장 21절이고 또 하나는 오늘 본문과 동일한 내용을 다르고 있는 누가복음 10장 13절입니다.

다음으로 벳새다(ベツサイダ)는 몇 번 등장하는데 요한복음 1장 44절에 의하면 여기는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 그리고 역시 사도 빌립(ピリポ)의 고향이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버나움(カペナウム)입니다. 이 곳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선 가버나움(カペナウム)은 예수님의 제2의 고향이라고도 합니다.


마태복음 4장 12절~13절
“12.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13.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イエスはヨハネが捕らえられたと聞いて、ガリラヤに退かれた。
そしてナザレを離れ、ゼブルンとナフタリの地方にある、湖のほとりの町カペナウムに来て住まわれた。

예수님께서는 나사렛에 계시다가 가버나움(カペナウム)에서 사시기도 하셨는데 그 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마태복음 8장 5절~13절에서는 백부장(百人隊長)의 하인(しもべ)을 치료하셨고, 14절~15절에서는 베드로의 장모도 고치셨습니다.

이 외에도 마태복음 8장 16절에 의하면 수많은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어떻습니까.


마태복음 11장 20절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それからイエスは、ご自分が力あるわざを数多く行った町々を責め始められた。彼らが悔い改めなかったからである。

여기에 나오는 <권능>이라는 말은 혹시 보신 적이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헬라어로 <뒤나미스> 또는 <두나미스>라고 하는데, 이는 그야말로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강력한 힘을 상징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보면 <두나미스>라고 붙여진 교회나 교회시설 이름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고라신(コラジン), 벳새다(ベツサイダ), 그리고 가버나움(カペナウム)에서 하나님의 크나큰 권능을 행하셨어요. 그것도 상당히 많이 행한 곳이 바로 이 도시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기서 상당히 많다는 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이는 단순히 비교하자면 다른 도시들보다도 많이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셨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이 도시에서 회개와 부흥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1절~24절
“21.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23.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24.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21.「ああ、コラジン。ああ、ベツサイダ。おまえたちの間で行われた力あるわざが、ツロとシドンで行われていたら、彼らはとうの昔に粗布をまとい、灰をかぶって悔い改めていたことだろう。
22.おまえたちに言う。さばきの日には、ツロとシドンのほうが、おまえたちよりもさばきに耐えやすいのだ。
23.カペナウム、おまえが天に上げられることがあるだろうか。よみにまで落とされるのだ。おまえのうちで行われた力あるわざがソドムで行われていたら、ソドムは今日まで残っていたことだろう。
24.おまえたちに言う。さばきの日には、ソドムの地のほうが、おまえよりもさばきに耐えやすいのだ。」”

이 말씀에 의하면 고라신(コラジン)과 벳새다(ベツサイダ), 그리고 가버나움(カペナウム)에서도 두나미스 그러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많이 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복음이 전파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서는 두로와 시돈(ツロとシドン)에 대한 심판은 정확하게 기록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소돔에 대해서는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창세기 19장에 의하면 죄로 물든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는 모습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창세기 19장 24절~25절
“24.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25.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そのとき、主は硫黄と火を、天から、主のもとからソドムとゴモラの上に降らせられた。
こうして主は、これらの町々と低地全体と、その町々の全住民と、その地の植物を滅ぼされた。

예전에 어느 기독교 방송에서 과거에 소돔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본 적이 있습니다. 보통 아무리 오래 되더라도 거기에 도시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의 흔적이라도 있는 것이 보통인데, 거기는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허허벌판이에요. 거기에 큰 도시가 있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곳 땅 표면에 보면 유황성분이 검출된다는 거예요. 여기서 더 놀라운 것은, 이 지질학자의 말에 의하면, 보통 땅 표면에서 유황이 검출될 경우에는 땅 표면 밑에도 유황성분이 있어서, 그 성분이 땅 위에까지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는데, 그곳의 경우를 보면 땅속에는 전혀 유황성분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땅 표면에서만 유황이 발견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는 성경말씀 그대로 아닙니까. 본래 그 지역에는 지질학적으로 유황성분이 없는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에서 유황이 쏟아졌기 때문에 지금도 유황성분이 검출된다는 것이지요.

한 가지 덧붙이자면 왜 유황만 쏟아진 것이 아니라 유황과 함께 불이 쏟아졌을까 하는 것인데, 이는 간단합니다. 유황만 쏟아지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그런데 여기에 불이 붙게 되면 크나큰 화재가 발생하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화약이라고 생각해보세요.


화약 가루만 뿌린다고 무슨 대단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여기에 불이 붙게 되면 큰 폭발을 일으키는 것과 같이 역시 어마어마한 양의 유황과 불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졌기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를 모두 삼켜버리고는 지금은 그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지요.

소돔에 대해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창세기 13장 13절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ところが、ソドムの人々は邪悪で、主に対して甚だしく罪深い者たちであった。

소돔은 하나님 앞에 악하고 큰 죄인이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당시에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에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선지자를 소돔과 고모라로 보내셔서 구원 받을 기회나 회개할 기회도 주신 적도 없었고 경고를 하신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시면 주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예, 만약에 가버나움(カペナウム)에서 행했던 두나미스, 하나님의 능력을 소돔에서 행했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무슨 뜻이겠습니까. 
만약에 가버나움(カペナウム)에서 했던 하나님의 능력을 소돔에서 보여주었더라면 소돔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주님께로 돌아왔을 것이고, 그럼으로 인해서 소돔은 멸망을 면하고 지금까지 있었을 것이라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결국 예수님의 말씀처럼 고라신(コラジン)과 벳새다(ベツサイダ), 그리고 가버나움(カペナウム)은 지금은 모두 멸망하고 고대 유적들만 남아 있는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자, 그런데 이 시점에서 한 번 생각해 보시기를 원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이 말씀에 좀 이상한 것을 느끼지 않으십니까. 지금 고라신(コラジン)과 벳새다(ベツサイダ), 그리고 가버나움(カペナウム)에서 사역을 하신 분이 누구세요? 그렇죠. 예수님이십니다.

사도행전 2장 41절에 의하면 베드로가 한 번 설교를 했더니 3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았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런데 이 세 고을은 어땠습니까.


마태복음 11장 16절~17절
“16.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7.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16.この時代は何にたとえたらよいでしょうか。広場に座って、ほかの子どもたちにこう呼びかけている子どもたちのようです。
17.『笛を吹いてあげたのに君たちは踊らなかった。弔いの歌を歌ってあげたのに胸をたたいて悲しまなかった。』


고라신(コラジン)이나 벳새다(ベツサイダ)나 가버나움(カペナウム)에서는 마치 이 말씀,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슬피 울어도 가슴을 치지 않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그 곳에서 하나님의 많은 권능을 나타내셨지만, 결국 회개도 안 일어나고 부흥도 안 일어났다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는 예수님께서 실패하신 것인가요. 다른 곳은 몰라도 고라신(コラジン)이나 벳새다(ベツサイダ)나 가버나움(カペナウム)에서의 예수님의 선교는 성공하지 못한 실패한 사역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요.


생각해 보세요. 만약에 그게 사실이라고 한다면,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은 예수님입니까, 아니면 고라신(コラジン)이나 벳새다(ベツサイダ)나 가버나움(カペナウム) 사람들입니까.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고, 하나님의 명을 받아 선교사역을 하신 분이 예수님이시라고 한다면, 역시 하나님의 명을 받아서 그 세 고을로 가신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세 고을에 부흥을 일으키지 못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셨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본다면 혼이 나야 하는 쪽은 불쌍한 세 고을 사람들이 아니라, 선교사역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예수님 아니겠습니까.

자, 성경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이와 같은 황당한 결론이 도출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에 보시면 앞서 말씀드린 소돔과 고모라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에 이르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로 하여금 가나안 족속들을 멸망시켰던 일입니다.


신명기 20장 16절~18절
“16.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17.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하라
18.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


あなたの神、主が相続地として与えようとしておられる次の民の町々では、息のある者を一人も生かしておいてはならない。
すなわち、ヒッタイト人(じん)、アモリ人、カナン人、ペリジ人、ヒビ人、エブス人は、あなたの神、主が命じられたとおり必ず聖絶しなければならない。
それは、彼らが、その神々に行っていたすべての忌み嫌うべきことをするようにあなたがたに教え、あなたがたが、あなたがたの神、主の前に罪ある者とならないようにするためである。


이와 같은 무서운 명령은 다른 곳에도 있습니다.

사무엘상 15장 1절~4절
“1.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2.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3.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4.사울이 백성을 소집하고 그들을 들라임에서 세어 보니 보병이 이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만 명이라”

サムエルはサウルに言った。「主は私を遣わして、あなたに油を注ぎ、主の民イスラエルの王とされた。今、主の言われることを聞きなさい。
万軍の主はこう言われる。『わたしは、イスラエルがエジプトから上って来る途中で、アマレクがイスラエルに対して行ったことを覚えている。
今、行ってアマレクを討ち、そのすべてのものを聖絶しなさい。容赦してはならない。男も女も、幼子も乳飲み子も、牛も羊も、らくだもろばも殺しなさい。』」
サウルは兵を呼び集めた。テライムで彼らを数えると、歩兵が二十万、ユダの兵が一万であった。

예전에 저는 누구한테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니, 가나안 사람들이나 아말렉 사람들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들 아니야?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서.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도 사랑과 자비로 살려줘야지 그렇게 무참하게 죽여버리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셨어요. 노아의 홍수 때를 보십시오.

신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당시의 평균수명으로 보았을 때에 지구상에는 지금보다도 인구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홍수를 일으켜서 모든 인류를 멸망시키고 오직 노아와 그의 가족 여덟 명 만을 구원하지 않으셨습니까.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나안 사람들도 죽이고, 아말렉 사람들도 죽이라고 하신 하나님, 더 나아가 노아의 홍수로 전세계 거의 모든 인류를 멸망시키셨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 잔인한 하나님, 무자비한 하나님이십니까.

아니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구약에서 가나안 사람들을 죽이고 아말렉 사람들을 죽이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노아의 홍수로 심판하신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보이시고, 그리고 거기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 아니겠습니까.

자, 주일학교 때의 질문을 한 번 살펴볼까요. 성경은 누구 읽으라고 쓰여진 책이지요?

예, 그렇습니다. 우리 읽으라고, 더 구체적으로는 나 읽으라고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심판하신 내용이 성경에 적혀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나 하나를 살리려고, 어떻게 해서든 나 하나를 살려 보시려고 그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생각해보세요. 지금 가나안 사람들이나 아말렉 사람들이 문제예요?

아니, 노아 때 멸망한 전세계 사람들이 문제예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누구를 죽이셨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나 하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독생자 예수님까지도 채찍을 맞게 하시고 십자가에서 무참하게 죽도록 하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로마서 5장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しかし、私たちがまだ罪人であったとき、キリストが私たちのために死なれたことによって、神は私たちに対するご自分の愛を明らかにしておられます。

아무리 사람의 생명이 귀하다고는 하지만, 이 온 천하 만물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의 피 한 방울보다 귀하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한 방울 정도가 아닌 모든 피를 흘려 주셨으며, 이를 통해서 우리의 죄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 것인지를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세상에는 <반면교사>라는 말이 있지요. <교사>라고 하면 <나도 저 사람 같이 되어야지>하고 내가 본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반면교사라고 한다면 반대로 <나는 저 사람처럼 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고 배운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논어에 보시면 삼인행 필유아사……라는 말도 그렇지요.

세 명이 가고 있으면 그 중에는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는 뜻인데, 스승이라고 해서 꼭 훌륭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훌륭하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으로부터 반면교사 식으로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라고 하겠습니다.

世の中には反面教師という言葉があります。「教師」といえば「私もあの人のようになりたい」というように見習いたいという人と言えますが、「反面教師」というと、逆に「私はあの人のようにはならないようにしよう」という意味で学びがあるということではないでしょうか。

論語に出てくる「三人行けば必ず我が師有り」もそうです。

人が三人いれば、その中には必ず自分の師となる人物がいるということですが、師と言っても必ずしも優れた人物でなくても、その人から反面教師として学ぶべき点があるという意味だと言えます。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결국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예수님의 사역이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를 통해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우리가 회개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コラジンやベツサイダ、そしてカペナウムはイエス様を受け入れず、結局裁きを受けてしまいました。しかし、だからと言ってイエス様の働きが失敗に終わったというわけではありません。

むしろ、私たちが進むべき道、私たちが福音を受け入れ、私たちが悔い改めるということがどれ程大事なことなのかを悟ることになったということを信じる皆様であらんことをお祈りいたします。





히브리서 10장 19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이제 우리는 고라신이나 벳새다나 가버나움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아니라 더 늦기 전에 회개하고 주님께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십자가 보혈에 힘입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구원에 이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へブル人への手紙10章19節
「こういうわけで、兄弟たち。私たちはイエスの血によって大胆に聖所に入ることができます。」

これから私たちは、コラジンやベツサイダ、そしてカペナウムのようになってはなりません。そうではなく、手遅れになる前に悔い改め、そして主に従うことによって、イエス様の血によって大胆に主が許された救いに至る皆様であらんことをお祈りいたします。

 

Posted by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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