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9회 심음과 거둠
2023년 11월 19일 설교

홍성필 목사
기린선교회 www.3927.kr
kirinmission@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6장 5절~12절
“5.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
6.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7.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8.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9.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10.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11.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가족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12.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ローマ人への手紙 16章 5節~12節
“5.また彼らの家の教会によろしく伝えてください。キリストに献げられたアジアの初穂である、私の愛するエパイネトによろしく。
6.あなたがたのために非常に労苦したマリアによろしく。
7.私の同胞で私とともに投獄されたアンドロニコとユニアによろしく。二人は使徒たちの間でよく知られており、また私より先にキリストにある者となりました。
8.主にあって私の愛するアンプリアトによろしく。
9.キリストにある私たちの同労者ウルバノと、私の愛するスタキスによろしく。
10.キリストにあって認められているアペレによろしく。アリストブロの家の人々によろしく。
11.私の同胞ヘロディオンによろしく。ナルキソの家の主にある人々によろしく。
12.主にあって労苦している、トリファイナとトリフォサによろしく。主にあって非常に労苦した愛するペルシスによろしく。”   


한국어 동영상


일본어 동영상

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한 달에 1,000원>
<물 한 그릇 선교후원>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KB 국민은행
079-21-0736-251
홍성필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158번째 시간으로서 “심음과 거둠” 種まきと刈り入れ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로마서 16장 1절~2절은 바울의 이 귀한 서한을 겐그레아에서 로마까지 자그마치 1000킬로가 넘는 거리를 가져간, 그것도 힘이 센 남자도 아닌 자매 뵈뵈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었지요.

그리고 지난 주에 살펴본 내용은 로마에서 고린도로 왔던 아굴라와 브리스가 부부, 그들은 고린도에서 에베소, 에베소에서 로마, 그리고 다시 로마에서 에베소로 이어지는 멀고도 험난한 여정을 마다 않고, 오로지 주님의 일을 위해 바울의 사역을 헌신적으로 도왔던 한 부부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5절부터 16절까지 보시면 계속해서 문안하라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이를 그냥 읽어 내려가면 재미가 없어요. 하지만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게 뭐냐 하면 성경은 참으로 흥미로운 책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성경에 한 번 빠지게 되잖아요? 그러면 세상 학문이 재미가 별로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무슨 소설가나 철학자가 쓴 책의 내용을 두고 그 내용이 무엇을 상징하는지에 대해서 후세 학자들이 여러 주장들을 내놓은 경우가 많이 있는데, 그래봐야 그건 어디까지나 사람의 생각이잖아요.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쓴 글이나 책이라 하더라도, 그 생각이나 주장이 항상 옳다고 만은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국어시험에 보면 본문이 있고 그 내용에 대한 질문이 있는데, 예전에 어디서 들어보니까 그 시험에 나온 본문의 필자가 직접 그 문제를 풀어봤대요.

그랬더니 절반도 못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저 글을 쓴 사람 따로, 그리고 해석한 사람 따로라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서 공부 많이 한 사람이 어떤 글을 해석했다 하더라도 그게 정말로 그 글을 쓴 사람의 생각과 같은가 하는 문제는 또다른 문제라는 뜻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떻습니까.


디모데후서 3장 16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聖書はすべて神の霊感によるもので、教えと戒めと矯正と義の訓練のために有益です。

비록 이 성경이 직접적으로는 사람의 손에 의해 쓰여졌다 하더라도,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구약 39권, 신약 27권, 전체 66권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유일하고도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을 때 비로소 올바로 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로마서 16장 5절에서 16절까지를 보시면, 우선 한 곳에서 나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디서 나눌 수 있냐 하면 바로 12절과 13절 사이에서 나눌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다음 주에는 13절부터 16절까지 살펴보기로 하고, 오늘은 우선 5절부터 12절까지를 함께 보시기로 하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혹시 텔레비전 같은 데에서, 유명한 식당이나 요리를 소개하는 방송을 보신 적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와 같은 방송을 보시면 주로 인기 연예인 같은 사람들이 나와서 음식을 먹는 장면들을 볼 수 있는데, 연예인들은 그런 것을 잘 해야 한다고 하지요?

그러니까 음식을 먹었을 때의 그 소감, 그 묘사를 잘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걸 잘하는 사람을 보면요, 정말 보고 있는 제가 직접 그 음식을 먹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 맛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잘 못하는 사람을 보면 어떻습니까. 그냥 이걸 먹어도 아, 참 맛있네요. 저걸 먹어도 아, 정말 맛있네요……라는 말 밖에 안 하면 정말 보는 사람이 재미가 없죠.

아니, 그 맛이 단지 매운지 짠지, 뜨거운지 차가운지, 식감은 딱딱한지 부드러운지, 어떤지를 알려주면서 먹어야 하는데, 그냥 맛있다고만 하면 보는 사람은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이는 다른 말로 하자면 별로 그 음식에 관심이 없거나, 아니면 그 사람의 어휘력이나 표현력이 딸린다는 것밖에는 되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이걸 먹으나 저걸 먹으나, 그냥 맛있다는 말로만 떼우려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 로마서 16장을 보시면 특히 12절까지에 대한 내용에 의하면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설명이 얼마나 정성 들여 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우선 5절에 등장하는 에베네도(エパイネト)라는 사람, 이 사람은 아시아에서 처음 맺은 열매라고 합니다. 성경에 보시면 종종 <아시아>라고 하는 지명이 나오는데 이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이나 일본,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소아시아, 다시 말해서 지금 터키 근방을 가리키는 소아시아 반도를 가리킵니다.

대략적인 지리적 위치를 본다면 이태리와 이스라엘 사이 부근을 가리킨다고 하겠습니다. 바울은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사역을 했는데 여기서 처음 전도한 사람이 바로 에베네도(エパイネト)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6절에 의하면 <마리아>라는 자매가 나오는데, 바울의 설명에 의하면 그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서 많은 수고를 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안드로니고(アンドロニコ)와 유니아(ユニア), 암블리아(アンプリアト) 등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12절까지를 보면 각 사람마다 자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이 로마서 16장 1절부터 12절까지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만, 여러분께서는 여기에 등장한 인물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되십니까.

간단하게 구분해볼까요?

만약에 여기 나오는 사람들을, 심는 사람들과 거둔 사람들로 구분을 해본다면, 여기에 등장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예, 모두 다 심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여기에 있는 사람들 만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만, 주님 안에서 칭찬을 받는 사람들은 모두 다 심는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모세, 다윗, 그리고 바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본다면, 사실 우리에게 거두는 것이 아닌 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나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심기보다는 거두고 싶어 합니다. 하나를 심고 열을 거두고 싶어합니다. 열을 심고 백, 천, 만, 백만 억을 거두기를 원합니다.

이것을 주시옵소서. 저것을 주시옵소서. 하는 것이지요. 
추수감사절이라고 하면 누구는 한 해 동안 수입이 많이 늘어서 기뻐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한편으로는 수입이 늘기는커녕 빚만 늘었다는 분들도 계시지 않겠습니까.

그럼 그런 분들은 추수감사절이라고 해도 감사할 것이 없는 건가요?

그런데 잠깐요. 우리말로는 추수감사절이지만 영어로는 뭐라고 합니까. Thanksgiving 이라고 하지요.

사실 성경을 해석할 때 영어만으로 해석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영어가 원어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추수감사절 같은 경우는 영어로 해석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추수감사절의 시작은 성경이 아니라 미국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경에는 수확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바치는 내용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11월로 한 것은 과거에 영국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건너가고 난 다음부터인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추수감사절을 나타내는 Thanksgiving이라는 말씀에 대해서 한 번 살펴볼까 하는데, 이 단어를 자세히 보시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에 감사한다는 말도 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에 대한 감사>라고도 이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회사원이라고 한 번 생각해보세요. 자, 우리가 몇 억대의 큰 계약을 따왔어요. 이는 얼마나 큰 성과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월급을 언제 받습니까.

1번 계약금이 입금되면 받는다.
2번 기타.

예, 계약금이 입금된다면 어디로 입금이 됩니까.

아무리 내가 계약을 따왔다고 해도 그 계약금이 내 통장으로 입금되지는 않잖아요. 그건 어디까지나 회사 돈이지요. 그렇다면 몇 억 짜리 계약을 따온 내 월급은 언제 입금이 됩니까. 그렇습니다. 월급날에 입금되겠지요.

회사에 있으면서 놀라운 성과를 내면 보너스가 나올 수도 있고, 월급이 오를 수도 있고, 그리고 승진도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회사에서 해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내 보너스를 줄 수도 없는 것이요, 내 마음대로 월급을 올릴 수도 없습니다. 당연히 내 마음대로 승진할 수도 없겠지요.

그러나 내가 내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서 성과를 올린다면, 분명 그에 걸맞는 결과가 주어지지 않겠습니까.

이는 믿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6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ですから、あなたがたは神の力強い御手の下にへりくだりなさい。神は、ちょうど良い時に、あなたがたを高く上げてくださいます。

물론, 세상에는 항상 공정하지만은 않겠지요. 내가 분명 성과를 올렸는데 아부를 잘 하는 사람이 먼저 승진하는 경우도 있겠지요.


하지만 주님 안에서는 전혀 오차가 없습니다.

여기서 <때가 되면>이라는 뜻은 단순히 <시간이 지난 다음에>다른 뜻이 아니라 <가장 좋을 때에> <가장 적합할 때에>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적합할 때에 우리를 높여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도 안 믿어지십니까. 그런 분들을 위해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마태복음 18장 10절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あなたがたは、この小さい者たちの一人を軽んじたりしないように気をつけなさい。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が、天にいる、彼らの御使いたちは、天におられるわたしの父の御顔をいつも見ているからです。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어떤 별볼일 없이 보이는 사람도 무시하지 말래요. 그 이유는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항상 뵙기 때문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구절을 두고 카톨릭에서는 천사가 우리를 지켜준다고 하는데, 성경은 그런 말씀은 안 하세요.

그 대신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지요.

요한복음 14장 16절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そしてわたしが父にお願いすると、父はもう一人の助け主をお与えくださり、その助け主がいつまでも、あなたがたとともにいるようにしてくださいます。


일부 이단 교주들은 여기서 <또 다른 보혜사>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보혜사 말고 다른 보혜사도 보내주시겠다는 뜻이라고 하면서, 그게 누구냐 하면, <그게 바로 자기다>라고 한다는 거예요.

하지만 이는 그런 뜻이 아니라, 지금까지 제자들과 함께 있던 예수님을 대신하여 또다른 보혜사를 보내 주셔서 우리와 함께 있게 하시겠다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보혜사는 무엇이냐 하면 그게 천사라고 하나요? 아니요. 그런 기록은 없습니다.


그럼 보혜사는 무엇이냐 하면, 요한복음 15장 26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요한복음 15장 26절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わたしが父のもとから遣わす助け主、すなわち、父から出る真理の御霊が来るとき、その方がわたしについて証ししてくださいます。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천사를 시켜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 진리의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해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천사들이 하나님을 뵙는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이는 분명히 그럴 필요가 있어요. 그것은 바로 요한계시록에 보면 등장합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2절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また私は、死んだ人々が大きい者も小さい者も御座の前に立っているのを見た。数々の書物が開かれた。書物がもう一つ開かれたが、それはいのちの書であった。死んだ者たちは、これらの書物に書かれていることにしたがい、自分の行いに応じてさばかれた。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정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만, 어쩌면 천사들은 우리의 모든 행위를 하늘에 기록하고 있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이 말씀에 있어서의 핵심은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사람일지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한사람 한사람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지요.

1961년에 존 F 캐네디는 미국 제35대 대통령 취임연설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하지요.

“국가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줄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으라”

国があなたのために何ができるかではなく、あなたが国のために何ができるかを問うてほしい

이런 말을 하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 지는 모르지만, 사실 이제부터 국정을 맡게 될 대통령이 될 사람의 말로서 이게 합당한지 저는 좀 의문이 듭니다.

오히려 대통령으로서는 국민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바라기 전에, 국가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말이에요. 이게 대통령이 했기 때문에 좀 그렇게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만약에 이제 학교를 갓 졸업하고 취업을 하는 사람한테 해주는 말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 말을 다음과 같이 한 번 바꾸어 보았습니다.

“회사가 자네에게 무엇을 해줄지 생각하지 말고 자네가 회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도록 해.”

어떻습니까. 회사에서 일은 안 하고 월급날만 손꼽아 기다리겠습니까. 왜 내 월급은 안 올려주는 거야. 왜 나는 승진을 안 시켜 주는 거야. 왜 나는 남들처럼 넉넉하지 못한 거야……라고 불평 불만만 늘어놓겠습니까.

사실 그런 사람한테 회사에서 무슨 비중 있는 일을 맡기겠습니까. 맨날 회사 불평이나 하고 상사 불만이나 하고, 동료들 후배들 험담이나 하는 사람은 회사에서 아무런 성과도 남길 수 없겠지요.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내가 회사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우선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내가 회사를 위해서 무엇을 심을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그리고 행함으로 심어야 합니다. 심지도 않고 거둘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회사생활을 하면서 내가 심었다면, 그러면 거두는 것은 누가 거둡니까. 내가 열심히 노력을 해서 큰 계약을 따왔다 하더라도, 그게 내 돈이 되는 것이 아니라 회사 돈이 되는 것이잖아요.

그리고 나서 때가 되면 나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억울한 경우가 있을지라도 주님 안에서는 한치의 오차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그만큼 큰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내 노력을 회사나 조직이 알아주지 못할 때가 있다 하더라도, 신앙에 있어서는 절대로 그런 일이 없습니다.

시편 121편 4절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見よ イスラエルを守る方は まどろむこともなく 眠ることもない。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는 않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고, 지켜 주시고, 그리고 인도해주시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좋은 회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회사를 위해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아무나 그 회사를 위해서 일을 할 수 있나요?

그렇죠. 그 회사의 입사 시험에 합격 해야지만 그 회사에 들어가서 그 회사를 위해 일을 할 수 있는 것이지, 아무나 할 수 있겠습니까. 말하자면 선택 받은 사람만이 그 회사를 위해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나 주님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6장 44절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わたしを遣わされた父が引き寄せてくださらなければ、だれもわたしのもとに来ることはできません。わたしはその人を終わりの日によみがえらせます。


에베소서 1장 3절~6절
“3.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エペソ人への手紙1章4節~5節
すなわち、神は私たちを世界の基の置かれる前から彼にあって選び、御前で聖く、傷のない者にしようとされました。
神は、みむねとみこころのままに、私たちをイエス・キリストによってご自分の子にしようと、愛をもってあらかじめ定めておられました。

요한1서 4장 19절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私たちは愛しています。神がまず私たちを愛してくださったからです。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심을 수 있는 것은, 창세 전부터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보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우리를 주님께로 인도해 주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그저 주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기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쁨을 가지고 믿음과 말씀으로 말미암아 주님 앞에 행함으로 심었을 때, 주님으로부터 크게 높임을 받으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반응형
Posted by 홍성필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