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7회 로마로 향하는 뵈뵈
2023년 11월 5일 설교

홍성필 목사
기린선교회 www.3927.kr
kirinmission@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6장 1절~2절
“1.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2.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ローマ人への手紙 16章 1節~2節
“1.私たちの姉妹で、ケンクレアにある教会の奉仕者であるフィベを、あなたがたに推薦します。
2.どうか、聖徒にふさわしく、主にあって彼女を歓迎し、あなたがたの助けが必要であれば、どんなことでも助けてあげてください。彼女は、多くの人々の支援者で、私自身の支援者でもあるのです。”   


한국어 동영상


일본어 동영상

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한 달에 1,000원>
<물 한 그릇 선교후원>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KB 국민은행
079-21-0736-251
홍성필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156번째 시간으로서 “로마로 향하는 뵈뵈” ローマに向かうフィベ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16장 본문의 전체 구성을 살펴본 다음에 드디어 세부적인 내용으로 들어가고자 합니다.

먼저 구성에 대해서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절부터 27절까지 있는 로마서 16장의 구성은 네 가지 부분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먼저 1절부터 2절, 3절부터 16절, 17절부터 20절, 그리고 마지막으로 21절부터 27절입니다.

우선 1절부터 2절은 뵈뵈의 추천, 3절부터 16절은 문안 인사, 17절부터 20절은 본론, 그리고 21절부터 마지막인 27절까지는 맺음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일본어 시험반, 그리고 일본대학 입시반을 가르치기도 했었습니다만, 특히 많은 수험생들이 독해과목을 어려워합니다.

그리고 독해 문제 중에서도 이른바 “본문 내용”과 “필자의 생각”을 묻는 질문이 제일 까다롭습니다.

그 이유는 뭐냐 하면, 본문 내용과 같은 것은 무엇인가, 또는 필자가 가장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문장 전체의 흐름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인 것이지요.

하지만 제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는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독해문제를 풀기 위해서 문장 전체를 모두 다 이해할 필요가 없다. 독해문제는 본문 전체를 이해하고 푸는 문제가 아니라, 정답을 찾아내는 문제라고 했었지요.

그래서 독해 본문의 특징 중에서 본다면, 본문 중에서 핵심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첫째는 핵심 내용이 마지막에 오는 본문입니다. 서론 본론으로 이어지고는 그리고 마지막에 결론이 나오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둘째는 핵심 내용이 처음에 나오는 본문입니다. 우선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을 처음에 땅 하고 말한 다음에 그 이유에 대해서 서술하는 경우입니다.


셋째는 핵심 내용이 중간에 나오는 본문입니다. 그런데 핵심 내용이 본문의 중간에 오는 경우가 있나요? 예,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편지라고 할 수 있겠지요.

편지의 경우에는 일단 처음에는 인사말이 들어가지요? 예를 들어서 무슨 계절인사 같은 것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다음에 본론이 있고 마지막에 맺음말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자,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입니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살펴보게 될 로마서 16장에 있어서, 그 핵심내용은 어디에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1번, 1절부터 2절인 뵈뵈의 추천 부분
2번, 3절부터 16절까지인 문안 인사 부분
3번, 17절부터 20절까지인 본론 부분
4번, 21절부터 27절까지인 맺음말 부분

이 중에서 어디에 그 핵심 내용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1번, 1절부터 2절인 뵈뵈의 추천 부분
2번, 3절부터 16절까지인 문안 인사 부분
3번, 17절부터 20절까지인 본론 부분
4번, 21절부터 27절까지인 맺음말 부분

이 중에서 핵심 부분은? 예, 그것은 바로 전부 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일반 문장과 성경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요한삼서 2절. 우리가 잘 알지 않습니까.

요한삼서 2절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愛する者よ。あなたのたましいが幸いを得ているように、あなたがすべての点で幸いを得、また健康であるように祈ります。

이 구절이 좀 어렵게 들릴지는 모르기 때문에 생명의말씀사에서 나온 현대인의 성경을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판 요한삼서 2절
“사랑하는 자여, 그대의 영혼이 건강한 것처럼 그대의 모든 일이 잘 되고 몸도 건강하기를 기도합니다.”

이 내용을 보세요. 이 구절은 일반적인 문장으로 본다면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문안 인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용기 목사님이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 안았을 때, 세계 최대의 교회를 세우는 역사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성경 말씀의 능력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살펴볼 이 로마서 16장에 있어서도, 아, 이건 문안인사라서, 이건 맺음말이라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문장, 한 단어, 한 글자마다 우리가 버리는 것 없이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때 놀라운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시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오늘 본문을 보시면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뵈뵈라는 이름이지요.

그렇다면 왜 우리에게 생소하게 느껴지느냐 하면,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이 이름은 성경에서 이 곳에 단 한 번 밖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이 이름이 나오지 않아요.

이 이름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둘째 이유는 바로,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도 주제설교를 계속 했었다면 주일 말씀에 이 부분을 본문으로 말씀을 전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부분도 다룰 수 있는 것이 바로 강해설교의 묘미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16장 1절~2절
“1.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2.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私たちの姉妹で、ケンクレアにある教会の奉仕者であるフィベを、あなたがたに推薦します。
どうか、聖徒にふさわしく、主にあって彼女を歓迎し、あなたがたの助けが必要であれば、どんなことでも助けてあげてください。彼女は、多くの人々の支援者で、私自身の支援者でもあるのです。”

여기서 바울은 한 교회를 언급하는데, 그것이 바로 겐그레아 교회입니다. 이는 교회 이름이라기보다는 겐그레아라는 곳에 있는 교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여기가 어디 있냐 하면, 주석서에 의하면 고린도에서 남동쪽으로 11킬로 떨어진 항구도시였다고 합니다.

제가 앞서 바울이 이 로마서를 기록한 장소가 고린도였을 것이라고 신학자들이 추정한다고 말씀 드렸는데, 그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지요.


그러니까 지금 로마에 있는 교회에 대하여 한 성도를 추천하는데 그 성도가 고린도 바로 인근인 겐그레아에 있는 자매이기 때문에, 분명 이 글을 쓰고 있는 바울은 고린도 또는 그 근방에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이지요.

자, 나중에 다시 살펴보겠습니다만, 3절부터 16절까지 이어지는 문안인사에 이 뵈뵈라고 하는 자매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문안이 아니라 분명 추천이라고 되어 있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에 뵈뵈라고 하는 자매가 그녀의 소속된 교회는 겐그레아에 있다 하더라도 지금 로마 쪽에 있다고 한다면, 뭐, “주 안에서 사랑하는 자매 뵈뵈에게 문안하라” 라고 하면 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바울은 분명 문안이 아니라 추천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안의 특징을 살펴본다면 다음 두 가지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첫째로 문안은 그들이 만나거나 연락을 할 수 있는 경우에만 할 수 있습니다. 서로 대면하거나 아니면 편지나 기타 방법을 통해서 연락을 할 수 있는 상황에 있을 때 문안을 할 수 있겠지요.

둘째로 문안은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람에게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누가 저한테 편지 하기를 거기 누구누구한테 안부 전해주세요……라고 해봤자 제가 그 사람이 어디 사는 누구인지도 알지 못한다면 안부를 전할래야 전할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 내용으로 본다면 뵈뵈라는 자매에 대해서 문안이 아니라 분명 추천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내용으로 볼 때, 로마에 있는 교회 사람들은 이 뵈뵈에 대해서 그 때까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이 모르는 사람을 추천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 이유 중 가장 유력한 것은 바로, 이 바울이 쓴 편지, 그러니까 이 로마서를 로마에 있는 교회까지 가지고 간 인물이 다름 아닌 뵈뵈였을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자신이 쓴 서한을 로마에 있는 교회까지 전해달라면서 이를 겐그레아에 있는 교회 자매인 뵈뵈한테 부탁했고, 뵈뵈는 이를 들고 겐그레아에서 로마까지 간 것으로 신학자들은 보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서한을 들고 로마에 있는 교회에 전달했다고 해도, 그들은 바울은 알아도 뵈뵈라는 자매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당신이 누군데 이걸 가지고 왔느냐 하고 의심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이 뵈뵈라는 자매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하고 그리고 그녀는 대단히 신뢰할 수 인물이라고 하여 추천한다는 말까지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글을 읽으면, 아 뭐,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이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혹시 기억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고린도에서 로마까지 거리가 대충 얼마 정도라고 말씀 드렸는지 기억하십니까.

예, 직선거리로 1300킬로 정도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번에 다시 찾아보니까 코스에 따라서 1222킬로에서 2400킬로 정도라고 나오더라고요.

그리고 코스를 보니까, 참 세상 많이 좋아졌어요. 군마 시골에 있으면서도 고린도에서 로마까지 가는 길을 검색해보니까 금방 떠요.

고린도가 있는 그리스와 이태리 사이에는 바다가 있기 때문에 도중에 패리를 타고 간다면 그게 1222킬로인데 이렇게 가면 고린도에서 로마까지 19시간 정도 걸린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만약에 바다를 건너지 않고 육로로만 간다면, 북쪽으로 삥 돌아가게 되어서 2400킬로나 되는데, 이렇게 자동차만으로만 간다면 무려 30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는 자동차도 없었고 지금처럼 패리가 있었을 리도 만무하지요. 결국 육로는 걸어가야 하고 바다는 느린 배로 건너가야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편의상 거리가 1300킬로라고 하고, 이 길을 모두 걸어간다고 하면 얼마나 걸릴까요.

사람의 걸음걸이가 성인 남성의 경우 시속 4킬로라고 하고, 하루에 일어나 있는 시간을 16시간, 그리고 여기에 식사도 하고 휴식도 해야 하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실제로 걸어본 사람들 말에 의하면 하루에 대략 40킬로 걸으면 많이 걷는 편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건 남성인 경우이지만 뵈뵈는 자매라면서요. 그녀의 나이가 몇 살 정도였는지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만 편의상 하루에 평균 30킬로를 걸었다고 해보죠. 그러면 총 거리 1300킬로를 하루에 30킬로 정도 걸었다고 한다면, 고린도에서 로마까지 가는 데 며칠이나 걸립니까.


단순계산으로 1300 나누기 30하면 되겠죠? 답은? 예, 대략 44일, 그러니까 한달 하고도 보름 정도라는 답이 나옵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 무슨 서울 시민 걷기 대회라는 것이 있어서 제 아내와 걸어본 적이 있었거든요. 그게 대략 10킬로 정도 되는 거리였는데, 어땠을 것 같습니까. 예, 힘들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것도 익숙한 길도 아닌 처음 가는 길이니까 얼마나 멀게 느껴졌는지 몰라요.

그런데 거기에 3배를, 그것도 한달 반 이상이나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걸어야 하는 거리가 바로 이 뵈뵈가 갔던 여정이었습니다.

사실 이것만 보더라도 참 먼 거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것만이 아니지요.

본문에 보시면 뵈뵈는 무슨 일행이 있었다고 되어 있지 않습니다. 만약에 일행이 있었고 거기에 남자도 포함되어 있었다면, 굳이 자매인 뵈뵈 이름만을 쓰지는 않았겠지요. 훨씬 더 힘이 있는 형제 이름을 썼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자매 뵈뵈만을 언급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분명합니다. 바울의 서한을 들고 그 먼 거리를 간 인물은 자매 뵈뵈 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형제도 아닌 자매인 뵈뵈에게 이 서한을 맡겼을까요. 그 지역 사람 수가 적었기 때문일까요? 아니요. 지명사전에 의하면 거기는 당시 고린도나 앞서 말씀 드린 겐그레아 항구들이 있어서 상업과 물질적인 번영을 누린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인구 수 자체가 부족했다고 보기는 어렵겠지요.

그게 아니라면 바울은 자신의 서한에 대한 가치가 별로 없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요?

이 또한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에 있어서 로마는 얼마나 중요한 곳이었습니까. 이스라엘과 유럽을 비롯해서 그 일대를 통치하고 있던 로마제국의 심장부가 바로 로마인데, 여기에 있는 교회에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복음전파에 있어서 말하자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로마서 내용은 어떻습니까. 이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 어떻게 믿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사람들이 혼란한 가운데에 있을 때 신약 시대에 있어서 교리의 핵심을 이루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만에 하나 이 서한이 무슨 사고로 인해서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도중에 유실된다고 한다면, 이는 복음전파는 고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신앙적인 혼란은 종잡을 수 없이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중요한 일을 감당할 인물로 바울이 자매 뵈뵈를 선택했다는 것은, 이는 사람이 부족해서도 아니요, 로마서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런 단순한 이유가 아니라, 바로 자매 뵈뵈야 말로 이 중책을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웬만한 남자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임무를 자매인 뵈뵈한테 맡기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매 뵈뵈는 이 일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냈고, 그 결과 로마에 이 서한이 전달되었을 뿐만 아니라,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이 귀한 로마서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이 자매 뵈뵈는 정말로 놀랍고도 귀한 일을 해낸 인물로 평가 받아 마땅하다고 할 것입니다.

요즘도 여성이 혼자 여행을 한다고 한다면 여러 가지 위험이 따른다고 하는데, 당시는 오죽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녀의 노력은 분명 보상이 따랐을 것입니다.


로마서 16장 2절
“2.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どうか、聖徒にふさわしく、主にあって彼女を歓迎し、あなたがたの助けが必要であれば、どんなことでも助けてあげてください。彼女は、多くの人々の支援者で、私自身の支援者でもあるのです。”

이 부분을 현대인의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여러분은 성도의 사랑으로 주 안에서 그녀를 정중하게 맞아들이고 무슨 일이든지 그녀가 도움이 필요한 때는 아낌없이 도와 주십시오. 그녀는 많은 사람을 도와 주었으며 나도 그녀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 서한을 받은 로마 교회 사람들은 무사히 도착한 자매 뵈뵈에 대해서 여자라고 무시하거나 하지 않고 크나큰 대우로 그녀를 맞이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도중은 험난했을 것입니다. 로마까지 가는 길에서는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의지할 만한 사람도 없지 않았겠습니까.


오히려 당시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들통나면 생명까지도 위험에 처했을지도 모릅니다. 참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 따랐을 것입니다.

이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주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고 축복을 받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우리 인생 가운데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에 직면하게 되면, 쉽게 낙담하고 실망하고 좌절하고 절망하지 않습니까.

그와 같은 경우에 우리는 이 뵈뵈를 한 번 떠올려보았으면 합니다.

그 외로운 여정 가운데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로마로 향하던 뵈뵈.

그녀는 어쩌면 다음 성경말씀을 의지했는지도 모릅니다.

이사야 41장 10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恐れるな。わたしはあなたとともにいる。たじろぐな。わたしがあなたの神だから。わたしはあなたを強くし、あなたを助け、わたしの義の右の手で、あなたを守る。

우리가 가는 그 길, 힘들고 두렵고 불안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굳세게 해 주십니다. 주님께서 도와 주십니다. 주님께서 붙들어 주십니다.

強く、助けて、守って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그 고난과 역경을 뚫고 자신의 사명을 끝까지 감당했던 자매 뵈뵈의 믿음과 행함을 본받아서, 우리 역시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여, 마침내 주님께서 부어 주시는 놀라운 축복, 넘치는 축복을 받으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반응형
Posted by 홍성필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