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9회 버림 받은 예수님
2023년 9월 10일 설교

홍성필 목사
www.3927.kr
kirinmission@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46절
“46.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マタイの福音書 27章 46節
“46.三時ごろ、イエスは大声で叫ばれた。「エリ、エリ、レマ、サバクタニ。」これは、「わが神、わが神、どうしてわたしをお見捨てになったのですか」という意味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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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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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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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버림 받은 예수님” 見捨てられたイエス様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실 오늘은 계속해서 로마서 강해를 이어가고자 했습니다만, 지난 주에 어느 일본 분으로부터 메일 하나를 받았습니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의문입니다.
십자가에 달렸을 때 예수님은 하나님께 묻습니다만, 하나님은 대답하지 않고 예수님은 버림 받았습니다.
그 이후 부활이 있었다고는 하나 예수님은 역사적으로 자취를 감춥니다.
귀 교회에서 믿고 있는 것은 예수님을 침묵으로써 내버린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십자가 이후 이렇다 할 행동을 보이지 않는 예수님입니까.”

以前から持っていた疑問です。
十字架にかかった時、イエスは神様に尋ねますが、神様は答えずイエス様は捨てられました。
その後復活があったとはいえ、イエス様は歴史的に姿を消します。
貴教会で信じているのはイエス様を沈黙で出してしまった神様ですか。
それとも十字架以後、これといった行動を見せないイエス様ですか

간혹 이런 저런 메일을 받곤 합니다만, 이 메일을 받아보니 짧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많은 생각을 하신 것 같이 보였습니다.

이 글 내용을 보면 성경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분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곳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이와 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오늘은 로마서 강해를 잠시 쉬고, 숨 좀 돌리는 의미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본 다음에 다시 강해로 넘어갈까 합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우선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왜 침묵하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 부분은 아마도 다음 장면에 대한 질문으로 생각됩니다.


마태복음 27장 45절~50절
“45.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46.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47.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48.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49.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50.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さて、十二時から午後三時まで闇が全地をおおった。
三時ごろ、イエスは大声で叫ばれた。「エリ、エリ、レマ、サバクタニ。」これは、「わが神、わが神、どうしてわたしをお見捨てになったのですか」という意味である。
そこに立っていた人たちの何人かが、これを聞いて言った。「この人はエリヤを呼んでいる。」
そのうちの一人がすぐに駆け寄り、海綿を取ってそれに酸いぶどう酒を含ませ、葦の棒に付けてイエスに飲ませようとした。
ほかの者たちは「待て。エリヤが救いに来るか見てみよう」と言った。
しかし、イエスは再び大声で叫んで霊を渡された。

이 장면은 마가복음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15장 33절~37절
“33.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34.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35.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36.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고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37.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さて、十二時になったとき、闇が全地をおおい、午後三時まで続いた。
そして三時に、イエスは大声で叫ばれた。「エロイ、エロイ、レマ、サバクタニ。」訳すと「わが神、わが神、どうしてわたしをお見捨てになったのですか」という意味である。
そばに立っていた人たちの何人かがこれを聞いて言った。「ほら、エリヤを呼んでいる。」
すると一人が駆け寄り、海綿に酸いぶどう酒を含ませて、葦の棒に付け、「待て。エリヤが降ろしに来るか見てみよう」と言って、イエスに飲ませようとした。
しかし、イエスは大声をあげて、息を引き取られた。

여러분께서는 혹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혹시 몇 시인지 아시나요?

마가복음 15장 25절에 보시면 그 시간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15장 25절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彼らがイエスを十字架につけたのは、午前九時であった。

여기서 시간 표기 방법에 대해서 잠시 말씀 드리자면,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서의 시간은 유대식 시간 표기이고, 요한복음은 로마식 시간 표기입니다.

따라서 요한복음에 나오는 시간은 알기 쉬워요.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시간과 같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시간에 대한 구절이 네 군데가 있는데, 그 중에서 4장 6절을 보시면 다음과 같습니다.

요한복음 4장 6절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이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시는 장면인데, 그 때가 여섯 시쯤 되었다고 하니까 이는 지금 우리와 마찬가지로 저녁 여섯 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당시는 상수도 시설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매일 같이 물을 길으러 나와야 하는데, 낮에는 햇빛이 강하다 보니까 오후 6시, 그러니까 저녁 때쯤 해서 여인들이 우물가로 물을 길으러 나왔던 것입니다.

이처럼 요한복음에서는 로마식 시간표기를 하고 있는 반면에,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서는 유대식 시간으로 표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는 어떻게 되냐 하면, 동이 트는 아침 시간을 0시로 잡았습니다.

그러니까 대략 아침 해가 뜨는 오전 6시를 0시로 잡았던 것이지요.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냐 하면, 오전 6시가 0시, 오전 9시가 제 삼시, 오후 12시가 제 육시, 그리고 오후 3시가 제 구시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시간 순서로 다시 한 번 보실까요?

마가복음 15장 25절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彼らがイエスを十字架につけたのは、午前九時であった。

마태복음 27장 45절
“45.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さて、十二時から午後三時まで闇が全地をおおった。

마태복음 27장 46절
“46.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三時ごろ、イエスは大声で叫ばれた。「エリ、エリ、レマ、サバクタニ。」これは、「わが神、わが神、どうしてわたしをお見捨てになったのですか」という意味である。

마태복음 27장 50절
“50.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しかし、イエスは再び大声で叫んで霊を渡された。

이와 같은 기록을 바탕으로 해서 본다면 다음과 같이 정리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예수님은 제삼시 그러니까 오전 9시 경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3시간 뒤인 제육시부터 제구시 즉 오후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온 땅에 어둠이 임하게 되고, 제 구시, 그러니까 오후 3시 경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말씀하셨으며, 잠시 후 큰 소리를 지르시고는 숨을 거두셨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아침 9시 경부터 오후 3시 경까지 약 6시간 동안이나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계산이 됩니다.

자, 여기까지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의 대략적인 흐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분의 질문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7장 46절
“46.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三時ごろ、イエスは大声で叫ばれた。「エリ、エリ、レマ、サバクタニ。」これは、「わが神、わが神、どうしてわたしをお見捨てになったのですか」という意味である。


마가복음 15장 34절
“34.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そして三時に、イエスは大声で叫ばれた。「エロイ、エロイ、レマ、サバクタニ。」訳すと「わが神、わが神、どうしてわたしをお見捨てになったのですか」という意味である。

이 원어와 번역에 대해서는 신학자들 사이에서 여러 주장이 있습니다만, 일단 오늘은 성경적으로만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말씀은 마태, 마가복음 모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선 참고로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즉흥적으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 이는 예수님께서 시편을 인용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22편 1절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わが神 わが神 どうして私をお見捨てになったのですか。 私を救わず 遠く離れておられるのですか。 私のうめきのことばにもかかわらず。

이 말씀만으로 본다면 십자가에 달려서 고난을 당하시는 예수님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내 하나님, 내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 왜 나를 도와주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어떠십니까. 생각해보세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 아니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랑하세요? 안 하세요?

예, 사랑하십니다. 그걸 어떻게 알죠? 당연히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니까 사랑하겠지?

아뇨. 성경에 보시면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고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있어요.


마태복음 3장에 보시면 예수님이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려옵니다.

마태복음 3장 17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そして、見よ、天から声があり、こう告げた。「これはわたしの愛する子。わたしはこれを喜ぶ。」

다음으로 마태복음 17장에 보시면 이른바 변화산 사건 때에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7장 5절
“5.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彼がまだ話している間に、見よ、光り輝く雲が彼らをおおった。すると見よ、雲の中から「これはわたしの愛する子。わたしはこれを喜ぶ。彼の言うことを聞け」という声がした。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예수님을 사랑하시는데, 그 사랑하시는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몸부림을 치신다면, 어, 그래. 얼마나 힘들겠니. 알았어. 내가 구해줄게……라고 하시고 당장 내려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제게 메일을 보내주신 그 분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예수님이 숨을 거두실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아무런 도움도 두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은 완전히 외면하시고, 예수님께서는 결국 죽음에 이르도록 버림을 당하셨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예수님의 기도를 끝까지 외면하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어떤 입장이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2장 6절~8절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キリストは、神の御姿であられるのに、神としてのあり方を捨てられないとは考えず、
ご自分を空しくして、しもべの姿をとり、人間と同じようになられました。人としての姿をもって現れ、
自らを低くして、死にまで、それも十字架の死にまで従われました。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피조물이 아닌 하나님의 본체이시자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다는 뜻은 무엇을 말합니까

구약에 나온 율법에서는 다음과 같이 규정합니다.

신명기 21장 23절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その死体を次の日まで木に残しておいてはならない。その日のうちに必ず埋葬しなければならない。木にかけられた者は神にのろわれた者だからである。あなたの神、主が相続地としてあなたに与えようとしておられる土地を汚してはならない。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았다는 증거라고 율법은 기록합니다.

이에 대해 신약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キリストは、ご自分が私たちのためにのろわれた者となることで、私たちを律法ののろいから贖い出してくださいました。「木にかけられた者はみな、のろわれている」と書いてあるからです。

이보다 앞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뭐라고 합니까.

요한복음 1장 29절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その翌日、ヨハネは自分の方にイエスが来られるのを見て言った。「見よ、世の罪を取り除く神の子羊。

즉,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독생자이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를 그 한 몸에 모두 짊어지심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은 자가 되어 십자가라고 하는 나무에 달리게 되셨고,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가 받아야 할 징계를 모두 받아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주를 받은 자의 특징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시면 처음에는 하나님으로부터 크나큰 사랑을 받았으나 나중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누가 떠오르십니까.

그와 같은 인물의 대표적인 예로서는 사울을 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처음에 그는 아무런 노력 없이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초대 왕이 되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그를 왕으로 세우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 위해서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사울은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망각하고, 오직 자기 욕망을 채우고, 하나님보다는 자기를 내세우려고 합니다.

그와 같은 사울을 하나님께서는 몇 번을 참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시지만 끝까지 참으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버리게 되지요. 그러자 그에게는 어떠한 일이 일어나게 됩니까.


사무엘상 28장 6절~7절
“6.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7.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サウルは主に伺ったが、主は、夢によっても、ウリムによっても、預言者によってもお答えにならなかった。
サウルは家来たちに言った。「霊媒をする女を探して来い。私が彼女のところに行って、彼女に尋ねてみよう。」家来たちはサウルに言った。「エン・ドルに霊媒をする女がいます。」

여기서 <우림>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한 하나의 도구입니다만, 사울이 하나님께 어떠한 방법으로 기도를 해도, 하나님께서는 전혀 응답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는 어쩔 수 없이 신접한 여인, 지금으로 말하자면 점쟁이나 무당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죄,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라고 하는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나무에 달렸다고 하는 것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이를 확인시켜주는 장면이 바로 예수님의 절규이자 하나님의 침묵이었던 것입니다.

로마서 6장 23절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罪の報酬は死です。しかし神の賜物は、私たちの主キリスト・イエスにある永遠のいのちです。

아무리 죄를 지었다고 해도 이 세상에서는 벌금형도 있고 금고나 징역형도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에 있어서의 죄에 대한 형벌은 곧 죽음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로 인해서 우리가 나무에 달려 저주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저주를 예수님이 모두 다 받아 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아요. 왜냐하면 최종 결재권자인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 되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하여 우리의 죄가 해결되었다는 사면장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이 모든 과정이 완료가 되었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시고 저주를 받으사 십자가라고 하는 나무에 달려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모두 용서 받았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 증거가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모든 내용을 하나로 압축한 구절이 바로 로마서 4장 25절 아니겠습니까.

로마서 4장 25절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主イエスは、私たちの背きの罪のゆえに死に渡され、私たちが義と認められるために、よみがえられました。


우리의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제대로 서 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무슨 어려운 교리나 복잡한 증명이 필요 없어요.

로마서 4장 25절 이 한 구절을 100프로 믿을 수 있느냐 아니냐 그 뿐입니다.

누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독생자가 아닌 우리와 같은 피조물이라고 해요.

생각해보세요. 그렇다면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무슨 마리아가 죽는다고, 베드로가 죽는다고 우리의 죄가 해결됩니까.

아닙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그 어떠한 인물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죽음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죽음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모두 다 우리와 같은 피조물이기 때문인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시자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짊어지실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가 의롭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구절을 그야말로 토시 하나 빠트리지 않고 완전하게 믿어야지만 제대로 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둘째로 예수님은 부활 이후로 자취를 감추셨다고 하는데, 이를 믿어야 하느냐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자, 신약성경의 구조를 보시면 다음과 같습니다.

신약성경은 총 27권이지요?

이 중에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은 복음서, 즉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하실 때의 기록을 주로 담은 것이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다음에 대한 기록들은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로마서를 비롯해서 유다서까지 21권은 서신,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편지입니다.

여기에서는 발신자가 수신자에게 글을 쓴 것이기 때문에 따로 예수님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도행전과 요한계시록에는 그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 의하면, 초기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했던 바울을 예수님이 직접 부르십니다.


그리고 모든 역사가 성령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데,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서 성령님은 유일하게 형체가 없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명확한 기록은 없습니다만, 계시록에 의하면 어떻습니까. 마침내 예수님이 다시 등장하게 됩니다.

자, 우리 한 번 복습해볼까요? 성경은 구약과 신약이 있습니다. 구약은 오래된 약속이고 신약은 새로운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무슨 약속을 뜻한다고 말씀 드렸는지 기억 하시나요?

이는 어렵지 않습니다. 구약에서는 예수님이 초림하신다는 약속이었고, 신약은 예수님이 재림 그러니까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지요.
예수님은 분명히 다시 오신다는 말씀이 신약 성경에도 넘쳐납니다.

사도행전 1장 11절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そしてこう言った。「ガリラヤの人たち、どうして天を見上げて立っているのですか。あなたがたを離れて天に上げられたこのイエスは、天に上って行くのをあなたがたが見たのと同じ有様で、またおいでになります。」

요한계시록 1장 7절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見よ、その方は雲とともに来られる。すべての目が彼を見る。彼を突き刺した者たちさえも。地のすべての部族は彼のゆえに胸をたたいて悲しむ。しかり、アーメン。

요한계시록 16장 15절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見よ、わたしは盗人のように来る。裸で歩き回って、恥ずかしい姿を人々に見られることのないように、目を覚まして衣を着ている者は幸いである──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4장 23절~27절
“23.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25.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6.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7.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そのとき、だれかが『見よ、ここにキリストがいる』とか『そこにいる』とか言っても、信じてはいけません。
偽キリストたち、偽預言者たちが現れて、できれば選ばれた者たちをさえ惑わそうと、大きなしるしや不思議を行います。
いいですか。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前もって話しました。
ですから、たとえだれかが『見よ、キリストは荒野にいる』と言っても、出て行ってはいけません。『見よ、奥の部屋にいる』と言っても、信じてはいけません。
人の子の到来は、稲妻が東から出て西にひらめくのと同じようにして実現するのです。


이는 무엇을 뜻합니까. 지금도 보면 자기가 무슨 재림 예수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혹시 여러분께서는 그런 사람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예, 누구는 몇몇 이름을 알기도 하겠지만 또 워낙 많으니까 다 알지 못하잖아요?

이는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그 사람들은 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번개가 칠 때, 꼭 누가 지금 번개가 쳤다고 해야 알아요? 아니에요. 거기 있는 사람 모두가 압니다. 그 임하는 것이 번개가 동편에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다고 하시잖아요.

번개 즉 빛의 속도는 초속 30만킬로입니다. 지구 둘레는 4만킬로이니까 30만 킬로면 어떻게 돼요? 예, 30만 나누기 4만은 7.5, 그러니까 1초에 지구를 일곱바퀴 반이나 도는 속도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게 되면 그 정도의 속도로 그 사실이 온 지구상에 알려지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은 믿는 사람한테만 보이는 환상이 아니에요. 그 때까지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교회를 핍박했던 사람들을 포함해서,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 오시는 모습을 보게 되고 그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4장 44절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ですから、あなたがたも用心していなさい。人の子は思いがけない時に来るのです。

이미 그 때가 이른 다음에는 늦습니다. 더 늦기 전에 미리 우리는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믿음과 말씀과 행함으로 준비하여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의 마지막이자 성경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이 맺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20절~21절
“20.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1.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これらのことを証しする方が言われる。「しかり、わたしはすぐに来る。」アーメン。主イエスよ、来てください。
主イエスの恵みが、すべての者とともにありますように。


이제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버림 받으신 예수님, 그러나 우리를 위하여 살아나신 예수님을 믿고, 주님의 말씀을 깨달아,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통해서 준비함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주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기쁨으로 그 날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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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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