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6회 순결한 소망
2023년 8월 20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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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rinmission@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5장 10절~13절
“10.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11.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12.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13.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ローマ人への手紙 15章 10節~13節
“10.また、こう言われています。「異邦人よ、主の民とともに喜べ。」
11.さらに、こうあります。「すべての異邦人よ、主をほめよ。すべての国民が、主をたたえるように。」
12.さらにまたイザヤは、「エッサイの根が起こる。異邦人を治めるために立ち上がる方が。異邦人はこの方に望みを置く」と言っています。
13.どうか、希望の神が、信仰によるすべての喜びと平安であなたがたを満たし、聖霊の力によって希望にあふれさせてくださいますよう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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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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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146번째 시간으로서 “순결한 소망” 混じり気のない望み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본문 말씀 중에서 우선 12절과 13절을 보고 난 다음에 10절과 11절로 돌아오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1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15장 12절
“12.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12.さらにまたイザヤは、「エッサイの根が起こる。異邦人を治めるために立ち上がる方が。異邦人はこの方に望みを置く」と言っています。

이 말씀 중에서 12절은 이사야 서를 인용한 구절입니다.


이사야 11장 10절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その日になると、エッサイの根はもろもろの民の旗として立ち、国々は彼を求め、彼のとどまるところは栄光に輝く。

여기서 이새의 뿌리라고 하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새는 누구입니까. 그렇죠. 다윗의 아버지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말씀을 누구나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이새의 뿌리에서 메시야가 탄생한다는 말씀이었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 메시야 즉 구세주가 누구냐 라고 하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마태복음 1장에 등장하는 계보에 보면 아브라함에서 시작해서 이새와 다윗을 거처 요셉 그리고 예수님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다음으로 주목해 보아야 할 단어가 있는데, 이는 바로 <열방>이라는 단어입니다. 우리말로 본다면 이사야 11장 10절이나 로마서 15장 12절에 보면 모두 <열방>이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원어나 다른 번역본을 본다면, 이사야 서에서의 <열방>을 <모든 민족>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 반면, 로마서에서는 이를 <이방인>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로마서는 이사야서를 인용하면서 보다 구체적으로 이방인이 예수님을 통해서 소망을 둔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 여기까지 우선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약에서 예언된 것처럼 이새의 뿌리, 이새의 자손을 통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육적인 이스라엘 자손만이 아니라 이방인 즉 이 세상 모든 사람도 예수님을 통해서 소망을 얻게 된다는 내용이 12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13절은 어떻습니까.


로마서 15장 13절
“13.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3.どうか、希望の神が、信仰によるすべての喜びと平安であなたがたを満たし、聖霊の力によって希望にあふれさせてくださいますように。”

이 소망이라고 하는 것, 이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인데, 예수님은 홀로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얻을 소망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에 그 시작이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것으로 끝나버렸다면 이는 하나의 사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2천년 전에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더라……라고 하는 옛날 이야기에 그치고 마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소망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넘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지금 이 순간도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이신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지금까지는 많은 내용들을 좀 간략하게 정리를 했기 때문에 다소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를 조금 더 풀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서 소망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앞서 말씀 드렸던 것처럼 예수님은 2천년 전에 이새의 뿌리를 통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그 이전에는 안 계셨다는 뜻은 아니지요.



요한복음 1장 1절~3절
“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初めにことばがあった。ことばは神とともにあった。ことばは神であった。
この方は、初めに神とともにおられた。
すべてのものは、この方によって造られた。造られたもので、この方によらずにできたものは一つもなかった。

여기서 <그>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셨으며 하나님 또한 예수님을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예수님이 어떻게 해서 탄생하게 되셨는지는 우리가 알 수가 없지만, 여기서 분명한 것은 무엇인가 하면 예수님은 우리 사람처럼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에덴에서 사람을 지으신 것처럼 예수님도 지으셨다고 한다면 예수님은 우리 같은 피조물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이 만약에 피조물이었다고 한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별로 대단하지 않을 것 같으신가요? 아닙니다. 여기에는 심각한 문제, 그것도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십자가를 통한 구원이라고 하는 것이 완전히 물거품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 같은 피조물인 사람은 누군가의 죄를 대신 해결해줄 수 있습니까. 만약에 그게 가능하다고 한다면 예수님이 오시지는 않았겠지요. 성경에도 의인이 등장하지 않습니까. 노아나 아브라함 같은 사람한테 부탁해서, "야, 미안한데 말이야, 많은 사람들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네가 대신 십자가에 달려줄 수 있겠니?" 라고 하면 되지 않았겠어요?


역사상 보면 지금까지도 수많은 순교자가 있었습니다만, 그러나 아무리 의인이고 아무리 믿음이 좋은 순교자라 하더라도 그들의 죽음을 통해서는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은 바로 그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피조물이었기 때문인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같은 피조물이 아니십니다.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세상 모든 만물은 예수님 없이 창조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에베소서 1장 7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このキリストにあって、私たちはその血による贖い、背きの罪の赦しを受けています。これは神の豊かな恵みによることです。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려 주신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씻겨졌고,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집에 있으면서도 인터넷을 통해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누구는 그러더라고요. 학원에 가지 않더라도 웬만한 자격시험은 인터넷 동영상으로 충분히 공부하고 딸 수 있다는 거예요. 제가 직접 시도해보지는 않았습니다만, 사실 정말 그럴 정도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가톨릭의 어떤 한 젊은 신부님이 말씀을 전하는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제가 왜 그 방송을 클릭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마침 그 동영상을 보니까 미사 시간에 말씀을 전하는 모습 같던데, 그 말씀을 들어보니까 기독교를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기독교 개신교는 <오직 성경이다, 오직 말씀이다>라고 하면서 성모 마리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 못 마땅하셨나 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기독교에는 삼위일체라는 교리가 있지 않느냐, 삼위일체라는 말도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기독교에서는 이를 믿으면서, 마리아에 대해서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믿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이렇게 듣고 있으니까 좀 흥미롭더라고요? 그래서 무슨 말씀을 하시나 하고 계속 들어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분이 또 하시는 말씀이, 구약에 보더라도 마리아가 등장한다는 거예요.

그 말씀 자체는 맞습니다.

이사야 7장 14절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それゆえ、主は自ら、あなたがたに一つのしるしを与えられる。見よ、処女が身ごもっている。そして男の子を産み、その名をインマヌエルと呼ぶ。


이는 마태복음에 보더라도 나와 있지 않습니까. 아직 남자를 알지 못하는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하게 되어 예수님을 낳게 됩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인용하나 했더니만 아니더라고요.

출애굽 당시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언약궤에 넣고 이스라엘 자손들, 더 구체적으로는 레위 지파 사람들이 짊어지고 다니잖아요? 그 언약궤가 마리아를 상징한다는 거예요.

그 뿐만이 아니에요. 창세기에 보시면 아버지 이삭이 장남 에서에게 주려고 했던 축복을 동생 야곱이 속임수를 써서 가로채 버리고 맙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에서는 당연히 화를 내지요. 그래서 이 야곱을 죽이겠다고 찾아 나서자 그는 멀리 자기 어머니 고향을 향해 도망치게 됩니다.

그런데 창세기 28장에 보시면 그 과정에 야곱이 길에서 잠을 자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에 마리아가 등장한다는 거예요. 제가 한 번 읽어드리겠습니다. 마리아가 어디 등장하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시면서 들어보세요.

이 신부님 말씀에 그렇다는 건데…….

창세기 28장 12절~15절
“12.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세기 28장 12절~15절
すると彼は夢を見た。見よ、一つのはしごが地に立てられていた。その上の端は天に届き、見よ、神の使いたちが、そのはしごを上(のぼ)り下(お)りしていた。
そして、見よ、主がその上に立って、こう言われた。「わたしは、あなたの父アブラハムの神、イサクの神、主である。わたしは、あなたが横たわっているこの地を、あなたとあなたの子孫に与える。
あなたの子孫は地のちりのように多くなり、あなたは、西へ、東へ、北へ、南へと広がり、地のすべての部族はあなたによって、またあなたの子孫によって祝福される。
見よ。わたしはあなたとともにいて、あなたがどこへ行っても、あなたを守り、あなたをこの地に連れ帰る。わたしは、あなたに約束したことを成し遂げるまで、決してあなたを捨てない。」

내용은 우리에게 익숙한 말씀입니다만, 여러분께서는 찾으셨습니까. 이 신부님은 이 구절 중에서 어디에 마리아가 있다고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야곱의 꿈속에 등장한 사닥다리가 마리아를 상징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 분명히 등장하는데도 불구하고 기독교에서 마리아를 인정 안 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었어요.

자,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넣어두었던 언약궤와 야곱의 꿈속에 나타난 사닥다리가 마리아라고 하는 것을 믿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예, 상당히 특수한 믿음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우스갯소리가 아니에요. 상당히 특수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믿음이라는 뜻입니다.

구약 39권, 신약 27권을 통틀어도 언약궤나 꿈속에 나타난 사닥다리가 마리아라고 하는 말씀은 어디에도 없어요. 그런데 이걸 믿으라는 거예요. 하지만 이를 믿기 위해서는 성경을 초월한 상당히 특수한 믿음이 필요해 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애초에 가톨릭에서 이 마리아라고 하는 개념이 등장한 그 배경에는 사실 나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일설에 의하면 복음이 그리스 지역으로 전해지는 가운데에서 그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복음을 잘 받아드릴까 하는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에 보면 아프로디테다 아르테미스다 해서 여러 가지 여신들이 많이 있잖아요.

그래서 복음에도 여신이라고 하는 요소를 가미 시키면 그 사람들이 더 잘 믿게 되지 않을까 해서, 말하자면 마리아를 여신처럼 해서 전하게 되었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무슨 일이 발생합니까. 그와 같은 가르침은 성경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제가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더니 문득 한 성경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창세기 6장 1절~3절
“1.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3.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さて、人が大地の面(おもて)に増え始め、娘たちが彼らに生まれたとき、
神の子らは、人の娘たちが美しいのを見て、それぞれ自分が選んだ者を妻とした。
そこで、主は言われた。「わたしの霊は、人のうちに永久にとどまることはない。人は肉にすぎないからだ。だから、人の齢は百二十年にしよう。」


이는 노아의 방주 사건이 있기 전에 기록된 내용인데, 대표적인 성경의 난해한 구절 중 하나라고 하지요.

우선 1절부터 볼까요?


창세기 6장 1절
“1.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さて、人が大地の面(おもて)に増え始め、娘たちが彼らに生まれたとき、

이 말씀부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처녀가 잉태해서 아들을 낳은 것은 예수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잖아요.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위해서는 아들만이 아니라 당연히 딸들도 있었겠지요.

그렇다면 이 구절이 그나마 말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했다”는 식으로 앞뒤가 거꾸로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이 말씀에서는 굳이 사람들이 땅 위에서 번성하기 시작한 것이 처음이고, 그 다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2절을 볼까요?

창세기 6장 2절
“2.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神の子らは、人の娘たちが美しいのを見て、それぞれ自分が選んだ者を妻とした。


여기를 보면 더욱 흥미롭지 않습니까. 1절에는 <그들에게서 난 딸들(娘たちが彼らに生まれたとき)>이 누구인지 궁금했는데, 이제 2절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들>까지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렇다면 창세기 당시 예수님이 오셔서 이 땅의 딸들과 결혼을 하셨다는 말이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여기에 보시면 <아들>이 아니라 <아들들(子ら)>이라고 되어 있어요. 즉, <한 아들>이 아니라 <여러 아들>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 하나님의 아들들(神の子ら)이 아름다운 사람의 딸들(美しい人の娘たち)을 아내로 삼았다고 하는데, 이게 참 무슨 내용인지 난해하지요.

그런데 3절을 보면 한 가지 명확한 것이 있습니다.


창세기 6장 3절
“3.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そこで、主は言われた。「わたしの霊は、人のうちに永久にとどまることはない。人は肉にすぎないからだ。だから、人の齢は百二十年にしよう。」


이 구절에 보시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구이고 아름다운 사람의 딸들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결과적으로 그들이 육신이 되었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이를 기뻐하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참고로 여기에 등장하는 백이십 년이라고 하는 부분에 대하여 일부 신학자들은 노아가 방주를 짓는 기간이라고 하는데, 성경에 나온 기록을 바탕으로 계산해 보면 아무리 길게 잡아도 노아가 방주를 짓는 기간은 100년이 안 됩니다.

이 점에 대해서 설득력이 있는 주장은, 사람의 수명이 120년으로 될 것이라고 한다는 내용입니다.

창세기 5장에 의하면 홍수 이전에는 나이가 900살 이상까지 사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만, 홍수 이후에는 그 수명이 점점 줄어들어서,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에 있어서도 그 수명이 120세까지 못 미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수명을 900세에서 120세 정도까지 줄였다는 해석이 비교적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과연 하나님의 아들들과 아름다운 사람의 딸들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하겠지요.


여기에 있어서는 바로 복음의 본질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알기 쉽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라고 하는 말을 <하나님의 생각들(思い)>과 <사람의 생각들(思い)>이라고 바꾸어 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 그 자체로 남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입맛에 맞는 사람의 생각들과 뒤섞이게 되어 결국 육신 즉 육의 생각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육신이 되었다는 말씀에 대한 내용으로는 다음 구절을 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로마서 8장 6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肉の思いは死ですが、御霊の思いはいのちと平安です。

이처럼 영의 생각, 하나님의 생각이 육신의 생각, 사람들의 생각으로 인해서 오염이 되면 결국은 그 생각이 악하게 되고 하나님의 마음에서 멀어지게 되어 마침내 사망에 이르게 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순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시편 12편 6절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主のことばは 混じり気のないことば。 土の炉で七度試され 純化された銀。

이 구절에서 <순결>이라는 말로 사용된 히브리어 원어는 <테호로트>라고 하는 단어인데, 이는 <다른 것과 섞이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모두 해결해주시고 새롭게 날아오를 수 있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それから、イエスは彼らに言われた。「全世界に出て行き、すべての造られた者に福音を宣べ伝えなさい。


이제 이 소망을 온 천하 만민에게 전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온 천하 만민이라고 해서 꼭 무슨 아프리카나 밀림 오지까지 가야만 하는 것이 아니에요.

바로 아직 복음을 모르는 우리 이웃, 바로 거기가 땅끝이요 복음을 전해야 하는 곳이라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과정에서 성경에 없는 사람의 생각을 전해요? 이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생각이 아닌 엉뚱한 사람의 생각을 전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서 무조건 금식하면 병이 낫는다? 무조건 기도 많이 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사실 그럴 듯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이처럼 막무가내 식으로 금식이나 기도만 강조한다는 것은 오히려 사람의 생각이 되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의 믿음의 근본은 바로 성경말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도 모르고 어떻게 올바른 기도를 할 수 있겠으며, 성경도 모르고 금식만 한다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순결한 믿음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이 뒤섞인 또다른 우상숭배나 미신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로마서 15장 10절~11절을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15장 10절~11절
“10.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11.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10.また、こう言われています。「異邦人よ、主の民とともに喜べ。」
11.さらに、こうあります。「すべての異邦人よ、主をほめよ。すべての国民が、主をたたえるように。」


이제 우리가 올바른 말씀, 순결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아직 믿음을 모르고 복음을 모르는 우리 이웃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함으로 인해서, 마침내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한 목소리로 우리의 소망되신 주님을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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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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