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5회 해방을 주신 예수님
2023년 8월 13일 설교

홍성필 목사
기린선교회 www.3927.kr
kirinmission@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5장 8절~9절
“8.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9.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15章 8節~9節
“8.私は言います。キリストは、神の真理を現すために、割礼のある者たちのしもべとなられました。父祖たちに与えられた約束を確証するためであり、
9.また異邦人もあわれみのゆえに、神をあがめるようになるためです。「それゆえ、私は異邦人の間であなたをほめたたえます。あなたの御名をほめ歌います」と書いてあるとおり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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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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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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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145번째 시간으로서 “해방을 주신 예수님” 解放をくださったイエス様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가상칠언이라는 말씀을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가상>이라고 하는 것은 <십자가 위>라는 뜻이고, <칠언>이라고 하는 것은 일곱가지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가상칠언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하신 일곱가지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지요.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누가복음 23장 34절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父よ、彼らをお赦しください。彼らは、自分が何をしているのかが分かっていないのです。」


둘째는 누가복음 23장 43절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まことに、あなたに言います。あなたは今日、わたしとともにパラダイスにいます。」

셋째는 요한복음 19장 26절~27절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 보라 네 어머니라”

「女の方、ご覧なさい。あなたの息子です」/「ご覧なさい。あなたの母です」

넷째는 마태복음 27장 46절과 마가복음 15장 34절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エリ、エリ、レマ、サバクタニ。」/「わが神、わが神、どうしてわたしをお見捨てになったのですか」

다섯째는 요한복음19장 28절
“내가 목마르다”

「わたしは渇く」

여섯째는 요한복음 19장 30절
“다 이루었다”

「完了した」

일곱째는 누가복음 23장 46절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父よ、わたしの霊をあなたの御手にゆだねます。」

이렇게 일곱가지가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가상팔언>이라고 하기도 합니다만 아무튼 이렇게 세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 가상칠언에 대해서도 말씀을 전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만, 오늘은 이 중에서 여섯 번째 말씀에 좀 주목을 해보고자 합니다.

이 말씀이 나오는 요한복음 19장 30절 전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0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イエスは、酸いぶどう酒を受けられると、「完了した」と言われた。そして、頭をたれて、霊をお渡しになった。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完了した」


그렇다면 그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방법은 바로 우리 자신의 죄 때문에 죽어 마땅한 우리를 대신해서, 친히 죄를 받아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구원사역을 모두 이루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의 모든 사역을 다 이루신 예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이와 같은 설교 말씀, 어디 좀 이상한 곳이 있습니까?

사실 많은 분들께서 이렇게 말씀을 전하시고 계십니다. 아니,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내용은 지극히 성경적이고 은혜로운 말씀임이 분명합니다. 저도 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런데 말이에요. 여기서 이렇게 마침표를 찍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좀 찝찝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성경에 있어서 제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의문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바로 영어 성경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글성경은 영어성경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목사님께서는 마치 원어를 인용하듯이 영어성경을 인용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영어성경도 또한 하나의 번역본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글성경의 경우를 본다면 기본적으로 구약은 히브리 성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신약은 헬라어 성경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어성경을 보는 것은 의미가 없느냐 하면,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성경 말씀을 살펴볼 때에는 기본적으로 한국어와 일본어 성경을 사용합니다만, 그 뜻을 살펴볼 때에는 원어도 물론입니다만, 우선 영어 성경을 살펴봅니다.

일단 일본어 성경을 살펴보는 이유는, 동영상 촬영을 할 때 한국어만이 아닌 일본어로도 말씀을 전해야 하고, 그럴 때에는 일본어 성경을 인용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만, 그 뿐만이 아니라 일본어는 한국어와 문법상으로도 상당히 유사하고, 그리고 같은 한자권이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보다 깊이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한편 영어 성경은 어떠냐 하면, 미국이나 유럽 등 영어권을 본다면 동양에 비해 성경 연구에 대한 역사가 월등하게 길고, 그리고 연구하는 신학자나 목회자 수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어와 일본어, 그리고 영어 성경을 비교해보면 각각 그 번역자들이 원어 성경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원어 성경만을 읽는 것보다도 훨씬 더 깊이 있게 성경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때가 많습니다.

자, 그렇다면 요한복음 19장 30절에 있어서 영어성경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알아보아야 하겠지요.

영어권에 있어서는 대표적인 영어성경은 세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가장 보편적인 성경은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NASB (New American Standard Bible), KJV (King James Version) 이렇게 세 가지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NIV 성경은 가장 일반적인 성경으로서, 단어가 현대어와 가장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말 성경으로 본다면 현대인의 성경이나 표준새번역 성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NASB 성경은 주로 신학교에서 많이 사용되는 성경으로 알고 있어요. 좀 문장이 문어체에 다소 가깝습니다. 이 성경이 한글로 본다면 개역개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다음으로 KJV 성경은 킹제임스 성경, 한국에서는 흠정역이라고도 하는 성경입니다. 이 흠정역은 한글로 번역한 한국어판 킹제임스 성경도 있습니다.

이건 좀 여담입니다만, 일부 단체에서는 오로지 이 KJV 흠정역 성경만이 진정한 성경이라고 하면서 다른 성경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는 옳지 않습니다. 개역개정이나 개역한글은 물론이고, 표준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흠정역 모두 공인된 성경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 19장 30절에서는 어떨까요.

한국어 성경에 본다면 개역개정만이 아니라 표준새번역, 그리고 현대인의 성경 모두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新共同譯 「成し遂げられた」
新改譯 「完了した。」
口語譯 「すべてが終った」

자, 그렇다면 영어성경에 있어서 이 요한복음 19장 30절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겠지요. 
개역개정 성경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한다면, 언뜻 생각하기에 <done>이나 <complete> 처럼 <성취했다>, <완료했다>는 뜻의 단어가 쓰였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영어성경을 보면 앞서 말씀드렸던 대표적인 영어성경에서 모두 <finished>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어요.

이를 번역하면 <성취했다>거나 <완료했다> 라기 보다는 그냥 <끝났다> 라는 뜻이 되어버리거든요.

아니,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그렇게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많고 역사도 깊은데, 왜 <다 이루었다> 또는 <완료했다>는 단어가 아니라 굳이 <끝났다>는 말을 썼는지 오랫동안 의문이었습니다.

참고로 헬라어 원어는 <테텔레스타이>라는 단어인데, 이는 어느 쪽으로든 사용할 수 있는 단어라고 할 수 있거든요.

만약에 이를 <다 이루었다>거나 <완료했다>가 아니라 <끝났다>라고 번역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에 <다 끝났다> 라고 말씀하셨다고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생각하기에 좀 적지 않게 부자연스럽지 않습니까.

일단 처음 드는 의문이 <뭐가 끝났다는 건데?>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어요?

그래서 저는 오랫동안, 그래, 뭐, finish 라는 단어에도 의역을 한다면 <다 이루었다>, <완료했다>는 뜻이 있는 것으로 치자……이 정도로, 말하자면 타협을 해왔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문득 이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어? 이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등장하는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이 어쩌면 <다 끝났다>였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다 끝났다>는 말이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으로 <다 이루었다>와 <다 끝났다>. 이 두 말씀 중에서 <다 끝났다>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면, 그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기서 좀 단순하게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하신 그 말씀이 <다 끝났다>라고 하셨다면, 성경에는 다른 말씀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 말씀이 무엇일까요.

더 쉽게 생각해 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자, <끝난다> 즉 <끝>이 있다면 무엇이 있어야 하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끝>의 반대말은 무엇입니까. 그렇죠. 바로 <시작>입니다.

나중이 있다면 처음이 있어야 하고, <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만약에 예수님께서 <끝났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면, 무엇이 끝났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 반대말인 <시작>을 찾아야만, 그 끝난 것을 알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과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끝>의 반대편에 있는 <시작>은 어디일까요.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에서 <시작>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동영상을 보시거나 음성으로 들으시는 분께서는 잠시 멈추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한 번 생각해보세요. 성경에서 <시작>은 어디일까요.

자, 조금 더 쉽게 말씀 드려볼까요? 성경에서 <시작> 그러니까 다른 말로, <태초(はじめ)>는 어디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창세기 1장 1절입니다.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はじめに神が天と地を創造された。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시기 직전에 <끝>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시작은 어디냐 하면 바로 창세기 1장 1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는 무엇을 말해 주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지혜와 말씀으로 이 천지를 창조하셨으며, 그것을 모두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불순종이라고 하는 죄를 범함으로 인해서 우리는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로마서 7장 14절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私たちは、律法が霊的なものであることを知っています。しかし、私は肉的な者であり、売り渡されて罪の下にある者です。

로마서 7장 22절~24절
“22.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私は、内なる人としては、神の律法を喜んでいますが、
私のからだには異なる律法があって、それが私の心の律法に対して戦いを挑み、私を、からだにある罪の律法のうちにとりこにしていることが分かるのです。
私は本当にみじめな人間です。だれがこの死のからだから、私を救い出してくれるのでしょうか。

우리는 죄에서 벗어나려고 하나 창세기에서 시작된 죄는 우리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려고 해도 내 안에 있는 죄가 자꾸만 나를 사로잡고 있어요. 내 힘으로는 내 능력으로는 이를 뿌리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또 그로 인해서 다른 죄를 짓게 되고 맙니다.

이 악순환을 끝내려고 해도 내 힘으로는 끝낼 수가 없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말미암아, 불순종으로 비롯된 이 죄의 악순환을 끝내주시고 저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15장 8절~9절
“8.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9.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私は言います。キリストは、神の真理を現すために、割礼のある者たちのしもべとなられました。父祖たちに与えられた約束を確証するためであり、
また異邦人もあわれみのゆえに、神をあがめるようになるためです。「それゆえ、私は異邦人の間であなたをほめたたえます。あなたの御名をほめ歌います」と書いてあるとおりです。


예수님께서는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다(割礼のある者たちのしもべとなられました)고 하는데, 그 이유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해서(神をあがめるようになるため)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잠시 여기서 우리는 법률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기를 원합니다. 그 나라에 있는 헌법이나 법률은 기본적으로 누가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까.

이는 원칙적으로 당연히 그 나라 국민이 지키도록 만들어진 것이지요. 말하자면 그 나라의 국민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명시해 놓은 것이 바로 그 나라의 헌법이자 법률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은 어떻습니까. 율법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 만들어졌습니까. 율법은 출애굽 때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된 것입니다. 즉 이 율법을 지켜야 할 대상은 바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자손들이었던 것이고, 그 징표가 무엇이냐 하면 바로 할례였던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6절~8절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キリストは、神の御姿であられるのに、神としてのあり方を捨てられないとは考えず、
ご自分を空しくして、しもべの姿をとり、人間と同じようになられました。人としての姿をもって現れ、
自らを低くして、死にまで、それも十字架の死にまで従われました。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서 이 땅에 오시면 율법을 지킬 의무도 없고 율법을 어겼다고 해서 징계를 받지도 못하시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율법을 어긴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의 죄를 해결하실 수가 없어요.

어쩌면 예수님께 있어서 가장 쉬운 일은 율법을 없애 버리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시기에 율법을 만드실 수도 있고 없애 버리실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어떤 행위를 처벌하는 법률이 있었는데, 그 법률을 없애 버렸어요. 그러면 그 법이 있었을 때에는 그 행위가 범죄였습니다만, 그 법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그 행위는 범죄가 아니게 됩니다. 범죄가 아니게 되면 당연히 처벌할 수도 없게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이 만약에 율법을 없애 버리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이 율법을 어겼기 때문에 죽음을 당해야 하는데 율법을 없애 버리게 되면 이제 사람을 처벌할 근거가 없어졌기 때문에 죽음을 당하지 않게 되고, 그렇게 되면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리실 필요가 없게 됩니다. 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마태복음 5장 17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わたしが律法や預言者を廃棄するために来た、と思ってはなりません。廃棄するためではなく成就するために来たのです。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께 있어서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율법을 폐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처벌할 근거를 없애 버리는 것이요, 또 하나는 율법을 지킴으로 인해서 죽음에 이르는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둘 중에서 무엇이 쉽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가장 쉬운 일은 율법을 없애 버리는 일이겠지요. 그러면 우리도 죄에서 해방이 되고,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죽으실 일이 없지 않겠습니까.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꿩도 먹고 알도 먹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도랑 치고 가제 잡고, 마당 쓸고 돈도 줍고…….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그런데 희한하게도 예수님은 그 방법을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그대로 둔 채로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으시는 쪽을 선택하셨던 것이지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우리보다 머리가 좀 딸려서 깜박하고 미처 그런 생각을 못하셨기 때문이었을까요?

오늘 본문 중에서 9절에는 뭐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까.

로마서 15장 9절
“9.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9.また異邦人もあわれみのゆえに、神をあがめるようになるためです。「それゆえ、私は異邦人の間であなたをほめたたえます。あなたの御名をほめ歌います」と書いてあるとおりです。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위해서였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무리 우리를 사랑하셨다 하더라도,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율법을 폐하게 된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불순종이자 반역 아니겠습니까. 이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무시하는 처사요, 정면으로 반항하는 일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엇을 택하셨느냐 하면 바로 하나님께 반항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율법에 죽기까지 복종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어긴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모두 받아 주셨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하여 그 저주와 사망을 끝내주시고 새로운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요한계시록 말씀이 새로 보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3절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わたしはアルファであり、オメガである。最初であり、最後である。初めであり、終わりである。」

예수님께서는 시작하실 능력도 있으시고 끝내실 권능도 있으십니다. 그런데 그 끝내는 권능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히시면서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시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만약에 거기서 끝나면 우리는 여전히 죄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살아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스스로 살아나셨나요?

사도행전 2장 24절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しかし神は、イエスを死の苦しみから解き放って、よみがえらせました。この方が死につながれていることなど、あり得なかったからです。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권한이 있으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리셨던 것입니다.

로마서 4장 25절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主イエスは、私たちの背きの罪のゆえに死に渡され、私たちが義と認められるために、よみがえられました。

이 말씀이야말로 성경에서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이 아닌 우리의 범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하나님이 살리셨고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어 천국백성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죽기까지 복종하시면서 십자가에 달려서 우리를 죄로부터 해방시켜 주신 예수님, 시작과 끝이 되신 예수님께 감사하고,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모두 사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며,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끝까지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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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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