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4회 삶의 목적
2023년 8월 6일 설교

홍성필 목사
www.kirin.kr
kirinmission@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5장 6절~7절
“6.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7.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ローマ人への手紙 15章 6節~7節
“6.そうして、あなたがたが心を一つにし、声を合わせて、私たちの主イエス・キリストの父である神をほめたたえますように。
7.ですから、神の栄光のために、キリストがあなたがたを受け入れてくださったように、あなたがたも互いに受け入れ合いなさ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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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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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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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144번째 시간으로서 “삶의 목적” 人生の目的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우선 6절 말씀부터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15장 6절
“6.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ローマ人への手紙 15章 6節
“6.そうして、あなたがたが心を一つにし、声を合わせて、私たちの主イエス・キリストの父である神をほめたたえますように。

여러분께서는 이 말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경에 보시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한다는 말씀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를 한 번 볼까요.


이사야 43장 21절
“21.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わたしのためにわたしが形造ったこの民は、わたしの栄誉を宣べ伝える。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 즉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지은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가 뭐냐 하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세요.

그 뿐만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이사야서를 보시면 다음과 같은 기록도 있습니다.

이사야 42장 8절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わたしは主、これがわたしの名。わたしは、わたしの栄光をほかの者に、わたしの栄誉を、刻んだ像どもに与えはしない。

이사야 48장 11절
“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わたしのため、わたしのために、わたしはこれを行う。どうしてわたしの名が汚されてよかろうか。わたしの栄光を、ほかの者に与えはしな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찬송과 영광을 결코 다른 자에게 주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께서는 이와 같은 기록을 보시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는 제가 좀 성격이 온순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좀 낯간지럽지 않습니까.

만약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영광과 찬송을 받았으면 좋겠다……뭐 이런 말을 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럼 여러분께서는 뭐라고 생각 하시겠습니까. 아니, 그런 걸 받아서 뭐하게? 라는 생각이 안 들겠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영광과 찬송을 받기 위해서 백성을 만드셨다고 하세요.

오늘은 우선 이 점부터 알아보려고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회사에 대해서 생각하면 금방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이 어떤 회사에 들어가셨어요. 그런데 회사 사장님이 조회 시간에 직원들을 모아 놓고 이런 말을 해요.


“제가 이 회사를 세운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저는 이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이윤을 창출할 생각이 없어요. 우리가 설령 이득을 보지 않더라도 사람들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회사가 되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새로 회사에 들어갔는데, 회사 사장님이나 대표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면,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여러분께 한 가지 권고 말씀을 드린다면 이렇습니다.

그 회사, 당장 그만 두세요. 더 늦기 전에 나오셔야 합니다…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그 이유가 뭐예요. 예, 항상 말씀 드리듯이, 회사라고 하는 곳은 봉사단체가 아니에요. 정치단체도 아닙니다. 다른 그 무엇보다도 우선 돈을 벌기 위해서 만들어진 모임이 바로 회사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사장님이 회사를 만들어 놓고는 회사로서 가장 중요한 목적인 돈을 벌 생각이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세요. 회사가 무슨 국민들 세금으로 운영되는 관공서도 아니고,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자선단체도 아니잖아요.

물건을 만들어서 팔든 서비스를 제공하든지 해서 어떻게 해서든 간에 이윤을 만들어야 회사도 운영하고 직원들 월급도 주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회사라고 하면서 이득을 내지 않겠다는 것은, 이는 다시 말해서 직원들 월급도 제대로 주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어떻게 해요? 예, 더 늦기 전에 그런 회사는 빨리 나오는 것이 상책인 것이지요.

우리가 무슨 뭐, “돈 때문에 일을 한다” 라고 하면 안 좋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회사라고 하면서 돈을 안 벌겠다는 것은, 말하자면 자동차를 팔겠다면서 자동차를 안 만드는 회사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본질이 빠진 말이라는 것이지요.

회사 사장님이 회사를 차리는 이유는 뭐냐 하면, 무엇보다 돈을 벌기 위해서, 조금 더 있어 보이게 표현한다면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사장님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 어떻게 합니까. 여러분께서 회사를 차렸어요. 그러면 일단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물론 혼자서도 할 수 있겠지만 일단 몇 명이라도 직원들을 뽑아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 그 직원은 최소한 회사에서는 누구를 위해서 일해야 하는 것이에요? 그렇죠. 회사를 위해서, 구체적으로는 사장님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선 이사야 43장 21절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이사야 43장 21절
“21.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わたしのためにわたしが形造ったこの民は、わたしの栄誉を宣べ伝える。

여기서 <이 백성>이라고 하는 것은 뭐라고 말씀 드렸어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를 바꾸어 보면 다음과 같이 되겠지요.

“이 직원들은 내가 나를 위하여 뽑았나니 나를 위해 일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렇게 말하면 너무 이기적으로 들릴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지만 이게 사실 아니겠습니까. 사장님이 하고자 하는 일이 있어요. 그 일을 함으로써 돈을 벌려고 해요. 그렇다면 직원들은 그 사장님을 위해, 말하자면 사장님이 돈을 벌도록 하기 위해 마음을 하나로 해서 일을 같이 해야 하는 것이잖아요.

그러면 이게 사장님만을 위한 일이에요? 사장님이 돈을 벌고 회사가 영업이익을 내야지만 직원들 월급도 줄 수 있고 예상보다도 훨씬 큰 이익을 냈다고 하면 특별보너스 같은 것도 있겠지요.

그 뿐만이 아닙니다. 직원들이 사용하는 컴퓨터나 장비들도 더 좋은 것으로 바꾸어 주기도 하고, 직원들에게는 주거비나 자녀들 교육비 지원이 있을 수도 있고, 기타 여러 복리후생 같은 혜택도 제공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회사가 맨날 돈이 안 되는 일만 해요. 사장님은 돈을 벌 생각이 없고 맨날 골프만 치러 다닌다거나 이상한 곳에만 돈을 써요. 그러면 회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겠지요.

또한 요즘은 취업난이라고 합니다만, 사실 회사에 다니다 보면 이런 말이 있어요. 뽑히는 것보다도 뽑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이에요.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로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고는 합니다만, 사실 뽑히는 쪽 그러니까 지원자 입장 보다도, 신입사원을 뽑는 회사 쪽 입장이 더 신경을 많이 써야 하거든요.

왜냐하면 직원 입장에서는 싫으면 그냥 그만 두면 돼요.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사장님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너 모가지야” 라고 하면 아무 말도 못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지만, 요즘은 한국이나 일본을 보더라도 직원을 함부로 그만두게 할 수가 없습니다.


한 번 뽑아 놓으면 그야말로 범죄나 정말 심각한 악의적인 행위가 없는 이상, 단순히 일을 못한다고 해서 자를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직원 하나를 뽑는다는 것은 자칫하면 회사 운명이 좌우될 수도 있는 심각한 것이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는 그만큼 신중하게, 경우에 따라서는 몇 번이나 면접을 보고 검토를 거친 다음에 선발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난 다음에 앞서 살펴본 이사야 42장과 48장 말씀을 보시면 어떻습니까.


이사야 42장 8절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わたしは主、これがわたしの名。わたしは、わたしの栄光をほかの者に、わたしの栄誉を、刻んだ像どもに与えはしない。

이사야 48장 11절
“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わたしのため、わたしのために、わたしはこれを行う。どうしてわたしの名が汚されてよかろうか。わたしの栄光を、ほかの者に与えはしない。

우리 회사에서 뽑은 우리 회사 직원이라면 당연히 우리 회사를 위해서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직원이 우리 회사 사장님이나 회사 이름을 더럽힐 뿐 아니라 다른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어요.

만약에 이렇게 된다고 한다면 이는 그야말로 업무상 배임 아니겠습니까. 이런 일이 어떻게 용서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는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설마 돈 몇 푼을 원하시겠습니까.

욥기 41장 11절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하여금 갚게 하겠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

だれが、まずわたしに与えたというのか。わたしがそれに報いなければならないほどに。天の下にあるものはみな、わたしのものだ。

이사야 44장 24절에 중반부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わたしは万物を造った主である。


이처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의 것인데 그깟 돈 몇 푼을 하나님께서 원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예로부터 제물을 바치도록 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마태복음 6장 21절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あなたの宝のあるところ、そこにあなたの心もあるのです。

그렇기 때문에 구약에서는 당시 대표적인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양이나 염소 같은 가축으로 드리고, 지금도 예물을 주님께 바치는 이유가 단순히 그 재산적인 가치가 아닌, 거기에 담긴 우리의 마음을 받기 원하시기 때문인 것이지요.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드린다는 것,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드린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제물을 바친다는 것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단순히 제물을 바쳤다고 해서 온전히 주님께 우리의 마음을 바쳤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단서가 되는 것을 6절과 7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우선 6절은 어떻게 시작합니까.

로마서 15장 6절 초반부
“6.한마음과 한 입으로……”

あなたがたが心を一つにし、声を合わせて

그렇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에스겔서 1장에 보시면 바퀴와 생물들에 대한 환상이 등장하는데 이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21절 말씀과 같습니다.

에스겔 1장 21절
“21.그들이 가면 이들도 가고 그들이 서면 이들도 서고 그들이 땅에서 들릴 때에는 이들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영이 그 바퀴들 가운데에 있음이더라”

生きものが進むときには輪も進み、生きものが止まるときには輪も止まり、生きものが地上から上がるときには輪も上がった。生きものの霊が輪の中にあったからである。

이 말씀에 보시면 바퀴들 가운데에는 생물의 영이 있는데,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네 바퀴가 달린 자동차를 보면 어떻습니까. 그 무거운 쇳덩어리가 그토록 빠른 속도로 가기 위해서는 네 바퀴의 호흡이 맞아야 합니다.

만약에 그 중 하나가 조금이라도 다른 방향으로 틀어진다고 한다면, 그런 경우에는 단순히 앞으로 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지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에 있어서도 우리의 목자 되신 주님을 바라보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주님을 섬기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7절 말씀입니다.

로마서 15장 7절
“7.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ローマ人への手紙 15章 7節
“7.ですから、神の栄光のために、キリストがあなたがたを受け入れてくださったように、あなたがたも互いに受け入れ合いなさい。”

주님은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다고 하는데, 여기에 대한 보다 자세한 기록은 요한계시록에 나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5장 9절~10절
“9.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彼らは新しい歌を歌った。「あなたは、巻物を受け取り、封印を解くのにふさわしい方です。あなたは屠られて、すべての部族、言語、民族、国民の中から、あなたの血によって人々を神のために贖い、
私たちの神のために、彼らを王国とし、祭司とされました。彼らは地を治めるのです。」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예수님의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스스로의 피로 사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바로 우리 믿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순종을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완전히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로 다가가려고 해도 죄라고 하는 것이 우리 앞을 막고 있는 바람에 다가갈 수가 없습니다.

이는 마치 구약시대 때 하나님의 성전에서 지성소와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과도 같습니다. 그 휘장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다고 무슨 바람이 불면 펄럭이는 커튼 같은 것이 아니에요.

신학자들에 의하면 당시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는 휘장 크기는 높이가 22미터가 넘고, 그 두께가 10센티 이상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두께가 10미리가 아니라 10센티 이상이었다고 해요. 이렇게 되면 찰랑거리는 헝겊 같은 것이 아니라 완전히 벽이나 돌담처럼 두껍고 단단한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마가복음 15장 38절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すると、神殿の幕が上から下まで真っ二つに裂けた。


그처럼 마치 벽이나 돌담과도 같았던 성소 휘장이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찢어짐으로 인하여, 이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 막고 있던 죄악이 사라지고, 마침내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죄악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힘으로 지울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오로지 예수님의 피로만이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앞서 회사 이야기로 잠시 돌아가자면, 회사에 들어가면 월급만 주는 것이 아니라, 책상, 의자, 컴퓨터 등 많은 것으로 채워줍니다. 하지만 그것은 나 자신의 개인적인 용도로 쓰라는 것이 아니에요. 이와 같은 것들을 사용해서 회사를 위해 일을 하고, 회사에 이익을 돌리게 하기 위해서 아니겠습니까.

이를 뒤집어보면 어떻게 됩니까. 만약에 내가 회사를 위해서 일을 안 한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회사에서는 나에게 주었던 모든 것을 다 빼앗아버리고는 마침내 회사에서 쫓아내 버리고 말 것입니다.

물론 이 세상에는 크고 작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회사들이 많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회사나 직원 생각은 안 하고 자기 배만 불리기 위해 열을 올리는 사장님도 많이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어떠십니까. 우리야 어떻게 되든 말든 자기만 생각하는, 마치 악덕 기업주 같은 그런 이기적인 하나님이십니까.

로마서 5장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しかし、私たちがまだ罪人であったとき、キリストが私たちのために死なれたことによって、神は私たちに対するご自分の愛を明らかにしておられます。


로마서 8장 32절
“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私たちすべてのために、ご自分の御子さえも惜しむことなく死に渡された神が、どうして、御子とともにすべてのものを、私たちに恵んでくださらないことがあるでしょうか。

회사가 어려워지면 직원들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자기 돈만 빼내서 도망가 버리는 사장도 있지만, 반면에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자기 개인 재산까지도 내놓는 사장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주셨습니다.

멸망을 향해 죽음의 질주를 하고 있는 우리를 어떻게든 살려 내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까지도 아낌 없이 우리에게 내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지금까지 수많은 철학자들이 우리가 왜 사는가, 라고 하는, 우리 삶의 목적을 다양하게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시면 어떻습니까.


시편 57편 7절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神よ 私の心は揺るぎません。 私の心は揺るぎません。 私は歌い ほめ歌います。


이제 우리의 삶의 목적은 확정되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의 아들도 아끼지 않고 그 생명까지 주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크나큰 축복으로 채워 주실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부터 예수님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던 것처럼, 우리도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드림으로 말미암아, 주님으로도 넘치는 축복 놀라운 축복으로 가득 채워지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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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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