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7회 믿음이 강한 자
2023년 6월 11일 설교 - 로마서 강해 138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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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5장 1절
“1.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ローマ人への手紙 15章 1節
“1.私たち力のある者たちは、力のない人たちの弱さを担うべきであり、自分を喜ばせるべきではありませ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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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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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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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138번째 시간으로서 “믿음이 강한 자” 信仰の力ある者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자, 이제 오늘부터는 드디어 로마서 15장에 들어갑니다. 로마서는 16장까지이지만 16장은 맺음말과도 같은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내용들이 많이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실질적인 로마서는 15장까지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오늘은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이 말씀에 담긴 주님의 은혜를 모두 받으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15장 1절
“1.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ローマ人への手紙 15章 1節
1.私たち力のある者たちは、力のない人たちの弱さを担うべきであり、自分を喜ばせるべきではありません。


이 말씀에서 주어는 무엇입니까. 단순히 <우리>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우리>를 수식하고 있는 말은 바로 <믿음이 강한>입니다. 그러니까 이 문장에서 주어는 <믿음이 강한 우리>라고 할 수 있겠지요.

여러분께서는 자신을 스스로 생각했을 때 믿음이 강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약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에 본인의 믿음이 약하다고 생각한다거나, 아니면 믿음이 약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죠.

그렇다면 믿음이 약하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믿음이 약하다는 것이 좋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우리가 지난 시간까지 믿음의 중요성에 대해서 얼마나 자세히 알아보았습니까.

말씀도 중요하고 행함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아무리 말씀이라는 씨앗에 물을 주는 행함을 한다 하더라도 믿음이라고 하는 밭이 갈려져 있지 않으면 제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믿음이 약하다고 생각된다면 우리는 강한 믿음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강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에베소서 6장에 보시면 바울은 악한 영을 대적하기 위해 영적으로 무장을 하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6장 13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ですから、邪悪な日に際して対抗できるように、また、一切を成し遂げて堅く立つことができるように、神のすべての武具を取りなさい。


이 구절은 아는 분들도 많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여러분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당시에 전쟁에 나간다고 한다면, 여러 가지 장비가 필요했겠지요. 그렇다면 그와 같은 전쟁에서 승리를 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장비는 무엇이라고 생각됩니까.

그것은 바로 <검> 아니겠습니까. 갑옷이나 방패가 튼튼하다고 하면 상대방으로부터의 공격은 막아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상대방을 물리칠 수는 없습니다.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무기가 반드시 필요할 텐데, 이는 지금 식으로 본다면 총이 될 것이요, 옛날에는 검이나 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바울은 영적인 전쟁에서 <검>에 해당되는 것을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었는지 혹시 기억하십니까.

에베소서 6장 17절
“17.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救いのかぶとをかぶり、御霊の剣、すなわち神のことばを取りなさい。

그렇습니다. 성령의 검, 악한 영을 물리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과 말씀과 행함이 있다고 한다면, 그러면 강한 믿음을 가진 다음에 비로소 말씀을 읽을 수 있다는 뜻인가요? 만약에 그렇다면 새신자분들은 성경 근처에도 가면 안되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약한 믿음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믿음을 가지고 말씀을 받아 들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얻어진 깨달음으로 행함도 해야지요.


행함이라고 해서 무슨 당장 길거리에 나가서 전도를 하고 그런 것만이 행함이 아니에요. 예배를 드리는 것, 그리고 기도를 하는 것 모두가 훌륭한 행함입니다.

그런데 행함에서 끝나면 믿음은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행함을 통해서 다시 믿음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행함을 통해서 믿음이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를 쉽게 말씀 드리자면 이런 식입니다. 내가 작은 믿음을 가졌어요. 그리고 그 작은 믿음을 가지고 말씀을 읽었어요. 그랬더니 믿어지는 것도 있고 안 믿어지는 것도 있어요.

성경을 처음 읽고 아직 믿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그 작은 믿음을 가지고 말씀을 읽었는데, 조금 믿어지는 말씀들이 있어요. 그래서 우선 그 말씀들만 믿었어요. 그리고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하고 그랬는데, 어, 정말 내가 믿었던 말씀대로 된 거예요.

그러면 어떤 마음이 들어요? 어, 정말 성경말씀대로 되네? 난 안될 줄 알았는데, 내가 조금 믿고 말씀대로 행하니까 정말 되는구나. 야, 이거 뭔가 있긴 있는 것 같아. 정말 예수님이 있는 게 맞는 것 같네. 정말로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걸까?

그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믿음이 성장을 합니다. 그러면 그 성장한 상황에서 말씀을 읽으면 작은 믿음을 가졌을 때보다 조금 더 말씀이 이해가 되요. 그러면 이제 조금 더 큰 행함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는 마치 우리 인체와도 같습니다. 혈액이 심장에서 출발해서 온 몸을 다 돌잖아요. 하지만 한 번 심장에서 나간 혈액이 심장으로 안 돌아오면 어떻게 됩니까. 그렇죠. 죽고 말겠지요.

심장에서 혈액이 나가더라도 우리가 살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다시 혈액이 심장으로 돌아오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믿음과 말씀과 행함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심장에서 말씀이라고 하는 혈액이 행함이라는 힘을 통해서 온 몸을 돌고 난 다음에는 다시 믿음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으로도 성장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말씀인 것입니다. 말씀이 없이는 믿음이 결코 성장할 수가 없어요.

이는 아무리 뛰어난 전쟁장비라 하더라도 방어만 해서는 전쟁에서 결코 이길 수가 없고,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뛰어난 공격용 무기가 필요하듯이,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검>이 필수불가결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에를 시작하시기 전에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으실 때에도 어떻게 하셨습니까.

마태복음 4장 4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イエスは答えられた。「『人はパンだけで生きるのではなく、神の口から出る一つ一つのことばで生きる』と書いてある。」

마태복음 4장 7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イエスは言われた。「『あなたの神である主を試みてはならない』とも書いてある。」

마태복음 4장 10절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そこでイエスは言われた。「下がれ、サタン。『あなたの神である主を礼拝しなさい。主にのみ仕えなさい』と書いてある。」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마귀와의 싸움에서 모두 하나님의 말씀, 성경 말씀으로 물리치시지 않았습니까.

이는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말을 잘하는 변호사라 하더라도 법조문을 잘 모른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어떻게 재판에서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영적인 전쟁에 있어서는 반드시 이 성경말씀이라고 하는 강력한 영적인 <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승리할 수가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심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이는 겉으로 봐서는 누가 진정한 말씀의 <검>을 가졌는지 눈으로 봐서는 잘 모른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어떤 모습을 떠올립니까.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 방언을 많이 하는 사람? 높은 직분을 받은 사람?

정말 그런 분들 가끔 보면 계십니다. 자기와는 별로 상관 없는 데에까지도 간섭하기 좋아하고,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이런저런 지적을 많이 하시는 분들, 아마도 여러분 주위에도 그런 분들이 계시거나 아니면 계신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에 대해서 그런 말을 해요. 자기가 얼마나 주님을 의지하는지, 자기가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는지, 자기가 얼마나 영적 체험을 많이 했는지, 자기가 얼마나 금식을 많이 하고, 얼마나 기도 응답을 많이 받았는지에 대해서 줄줄줄줄 말이 나옵니다.

이런 분들을 보면 정말 믿음이 좋아 보이죠. 하지만 정말로 믿음이 좋은지 아닌지는 언제 분간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위기가 닥쳤을 때입니다.

2015년 9월, 일본 관동지방에는 비가 많이 내려서 결국 기누가와라고 하는 강이 범람을 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그 일대가 모두 물바다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집들까지도 다 떠내려가는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사람들 눈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얀 집 한 채였습니다. 왜 그 집에 사람들이 주목을 했냐 하면, 다른 집들은 다 물에 떠내려가고 그러는데 그 집 한 채만 떠내려가지 않고 굳건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뿐만이 아니에요. 저기서 떠내려가는 집이 그 집에 부딪혔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됐냐 하면 그 하얀 집이 떠내려 온 집의 무게를 버티고 서 있는 것이에요.


그 결과 어떻게 됐냐 하면, 그 떠내려가던 집에 있던 사람들도 목숨을 건질 수가 있어요. 그리고 그 하얀 집 뒤쪽에 보면 전봇대에 매달려 있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도 생명을 구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그 하얀 집이 떠내려온 집을 버티지 못했더라면, 그 떠내려온 집에 있는 사람들도 위험했을 것이고, 그 뒤쪽에서 전봇대에 간신히 매달려 있었던 사람도, 떠내려온 집과 함께 물살에 휩쓸려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범람한 강물이 할퀴고 지나간 곳에는 광활한 벌판만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떠내려가고 대부분은 집이 있었던 흔적 조차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벌판에 그 하얀 집 한 채만은 당당하게 서 있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그 집은 그와 같은 지진이나 천재지변을 대비해서 지어진 집이었다고 합니다. 40대인 이 집주인은 이왕이면 튼튼한 집을 짓고 싶었다고 해요. 그래서 일반 집을 짓는 것보다 두 배 이상이나 돈이 들었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그처럼 튼튼한 집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그 집이 무슨 군사기지처럼 무지막지하게 생기거나 하지 않았어요. 겉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건물처럼 보입니다. 그와 같은 끔찍한 범람이 일어나기 전에는 다른 집들과 구분이 안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위기가 닥치자 다른 집들은 다 부서지고 떠내려가버리고 말았지만, 그 집 하나는 끝까지 남지 않았습니까.

평소에 아무리 믿음이 좋은 척해봐야 소용 없습니다. 막상 위기가 닥치면 그랬던 분들 대부분 뭐라고 해요?

아이고~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럴 수 없어. 예수님이 살아 계신데 어떻게 이럴 수 있어. 하면서 난리를 칩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뭐 어쩌고 하면서, 기도원에 가겠다는 둥 금식을 하겠다는 둥 말도 못해요.

아니, 지금 문제가 발생했으면 정신을 차리고 해결할 생각을 해야지, 기도원으로 도망가서 금식하겠다면 어쩌겠다는 것입니까.

그래서 주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누가복음 18장 8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が、神は彼らのため、速やかにさばきを行ってくださいます。だが、人の子が来るとき、はたして地上に信仰が見られるでしょうか。」

주님께서는 우리의 원한을 풀어 주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도 속히 해결해 주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문제가 뭐예요? 예. 그 때까지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냐고 주님은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평소에 믿음이 있는 척은 많이 했다가도 조금만 어려움이 닥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예수님을 비방하고 그러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오늘 말씀 다시 보실까요?

로마서 15장 1절
“1.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ローマ人への手紙 15章 1節
1.私たち力のある者たちは、力のない人たちの弱さを担うべきであり、自分を喜ばせるべきではありません。

믿음이 강한 사람과 믿음이 강한 척을 하는 사람은 분명히 다릅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은 믿음이 약한 사람의 약점을 담당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는 다른 말로 하자면 믿음이 약한 사람의 약점을 보살펴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는 말씀은 이는 믿음이 약한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행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믿음이 강한 척을 하는 사람, 어떻게 합니까.

교회 나오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아, 그것 밖에 안 되셨구나.

직분을 받으신 것은 있어요? 아직 직분도 못 받으셨어요? 아니면 아직 집사밖에 못 받으셨어요?

금식은 얼마나 해보신 적이 있어요? 3일금식 밖에 못 해봤어요?

은사는 받은 게 있어요? 아, 방언도 아직 못 받으셨구나.


성경은 몇 번이나 읽어보셨어요? 아직 그것밖에 못 읽어보셨어요…….

처음 교회에 나갔는데 이런 말을 들으면 다시 그 교회 나가고 싶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믿음이 좋은 사람이에요? 아니에요. 믿음이 좋은 척만 하는 사람입니다. 평소에 이처럼 믿음이 좋은 척만 하는 사람이 어떻게 믿음이 약한 사람을 보살필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오늘 저는 이런 사람을 미워하자고 하는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사람, 왜 이렇게 믿음이 좋은 척을 하시는 것일까요. 아주 나쁜 사람이라서요? 아니면 무슨 악한 마귀가 씌어서 그래요?

아니요.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강하지 못하고 약한 사람이라 그런 것이에요.

세상에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평소에 강한 척 하면서 목에 힘 주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사실 연약한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럼 왜 그렇게 약한데도 불구하고 강한 척을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열등감, 콤플렉스가 있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분들 계시잖아요. 뻑 하면, 당신 나 무시하는 거야? 라고 하는 분들. 사실 왜 그런 말씀을 하냐 하면, 남들이 자기를 무시할 수 있다고 평소에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금방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서 자기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오기도 하는 것이고, 그리고 평소에도 고압적인 태도를 하는 것이지요.



대체로 보면 이와 같이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잘난 척을 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가진 것이 많기 때문에? 아니요. 오히려 자기가 가진 작은 것을 남들이 안 알아줄까봐. 자기가 가진 것을 남들한테 빼앗길까봐 안절부절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가 먼저 나서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 분들을 대할 때보면 때로는 감정적이 되어서 험악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그럴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어떻게 되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믿음이 강한 사람이 되어서 그런 분들을 보살펴주고 위로하고 힘을 주어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이 강한 척 하는 사람들 만이 아닙니다. 돈 자랑 하는 사람들, 집안 자랑 하는 사람들, 가족 자랑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실상은 외로운 사람들, 불안해하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경우를 본다면 이는 어떻게 보면 구조신호, SOS인 경우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처럼 애타게 구조신호를 보내는 사람을 만나면, 인상을 찌푸리거나 불쾌해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사랑해주신 그 마음으로 우리의 사랑을 실천할 기회로 삼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말씀을 다시 봅니다.


로마서 15장 1절
“1.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ローマ人への手紙 15章 1節
1.私たち力のある者たちは、力のない人たちの弱さを担うべきであり、自分を喜ばせるべきではありません。


이제 우리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약한 우리 이웃의 약점을 담당하고 보살피는 믿음이 강한 자가 되셔서, 우리 이웃에게 주님의 사랑을, 주님의 말씀을, 주님의 위로를, 주님의 기쁨과 평안을 전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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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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