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필 목사 설교_이카호중앙교회_http://www.ikahochurch.com
제381회 채워야 하는 것
20232월 19일 설교 - 로마서 강해 123

홍성필 목사
www.kirinmission.com
kirinmission@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3장 7절
“7.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ローマ人への手紙 13章 7節
“7.すべての人に対して義務を果たしなさい。税金を納めるべき人には税金を納め、関税を納めるべき人には関税を納め、恐れるべき人を恐れ、敬うべき人を敬いなさ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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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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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123번째 시간으로서 “채워야 하는 것” 満たすべきもの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주는 6절과 7절을 살펴보며 세금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만, 오늘은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에 7절을 조금 더 심도 있게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오늘은 이 구절을 앞부분과 뒷부분으로 구분을 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앞부분부터 보겠습니다.


로마서 13장 7절 전반부
“7.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7.すべての人に対して義務を果たしなさい。税金を納めるべき人には税金を納め、関税を納めるべき人には関税を納め、

여기서 조세라고 하는 것은 쉽게 말해서 일반적인 세금을 가리키는 것입니다만, 관세는 무엇입니까. 관세라고 하는 것은 외국 물건을 수입해서 판매할 경우 자칫 잘못하면 국내 생산자들에게 불이익이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똑 같은 품질의 물건인데 환율이 낮은 외국에서 수입해서 그대로 판매할 경우 국내의 생산자를 보호할 수가 없기 때문에 여기에 관세를 부과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동일한 수준의 물건이라면 국산품보다 수입품 가격을 높임으로 해서 자국민의 경제활동을 보장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관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주에도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습니다만, 실제로는 어떻든 간에, 내가 세금을 내도 대부분 나한테 돌아온다는 마음이 별로 없다 보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급적 세금을 안 내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정말로 많은 국민들이 세금을 안 내느냐 하면, 아니요. 대부분이 성실하게 납세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습니다. 저도 얼마 전에 세무서에 가서 신고를 하고 왔어요.

그렇다면 나한테 돌아올 부분도 별로 없는데도 왜 사람들이 내고 있습니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요? 물론 그런 분들도 계시겠지만, 더 구체적인 이유는 바로 내가 내지 않으면 나한테 불이익이 생겨요. 쉽게 말해서 내가 내도 나한테 좋은 일은 없지만, 안 낼 경우 내가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낸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는 돈을 많이 버는 사람만이 아니라 마땅한 소득이 없는 사람들도 신고를 해야 합니다. 제가 세무서에 가서 신고를 한 이유도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니라, 내야 할 세금이 있든 없든 간에 세무신고는 해야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좀 불안해집니다. 그 이유는 뭐냐 하면 어쩌면 많은 분들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어서입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던 로마서 5장 12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로마서 5장 12절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こういうわけで、ちょうど一人の人によって罪が世界に入り、罪によって死が入り、こうして、すべての人が罪を犯したので、死がすべての人に広がったのと同様に──

여기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하는데, 여기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죄는 무엇을 가리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에덴에서의 사건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어요. 뱀을 가장한 마귀가 하와를 유혹합니다.

창세기 3장 4절~6절
“4.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すると、蛇は女に言った。「あなたがたは決して死にません。
それを食べるそのとき、目が開かれて、あなたがたが神のようになって善悪を知る者となることを、神は知っているのです。」
そこで、女が見ると、その木は食べるのに良さそうで、目に慕わしく、またその木は賢くしてくれそうで好ましかった。それで、女はその実を取って食べ、ともにいた夫にも与えたので、夫も食べた。

이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하와는 하나님이 금하신 나무 열매를 따먹고, 뿐만 아니라 그의 남편인 아담에게도 주었더니 그도 먹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로마서 5장 19절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すなわち、ちょうど一人の人の不従順によって多くの人が罪人とされたのと同様に、一人の従順によって多くの人が義人とされるのです。

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은 사건은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불순종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상황과 우리의 상황을 비교해 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들이 하나님께 불순종이라는 죄를 엄청난 죄를 저지름으로 해서 받은 대가가 무엇이었습니까.


창세기 3장 16절~19절
“16.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女にはこう言われた。「わたしは、あなたの苦しみとうめきを大いに増す。あなたは苦しんで子を産む。また、あなたは夫を恋い慕うが、彼はあなたを支配することになる。」
また、人に言われた。「あなたが妻の声に聞き従い、食べてはならないとわたしが命じておいた木から食べたので、大地は、あなたのゆえにのろわれる。あなたは一生の間、苦しんでそこから食を得ることになる。
大地は、あなたに対して茨とあざみを生えさせ、あなたは野の草を食べる。
あなたは、顔に汗を流して糧を得、ついにはその大地に帰る。あなたはそこから取られたのだから。あなたは土のちりだから、土のちりに帰るのだ。」

그들이 받은 형벌은 임신과 출산, 즉 자손에 대한 고통과 생계에 대한 저주, 그리고 마지막에는 죽음이라고 하는 멸망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죄에 대한 대가였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은 성경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2대 왕인 다윗은 본래 대단한 집안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형제들 사이에서도 첫째나 둘째도 아닌 막내였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택하셔서 사무엘로 하여금 기름을 붓게 하시고는 왕의 자리에 앉게 하셨습니다. 그가 가는 곳에는 하나님도 함께 하시고 그가 하는 모든 일에는 하나님께서 넘치는 축복으로 채워주셨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의 충신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버립니다. 그때 우리아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그는 전쟁터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그리고 다윗 왕을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와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자신의 충신의 아내를 빼앗는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다윗의 죄는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가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윗은, 이를 숨기기 위해 그의 남편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일부러 전사하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러면 이 일을 아무도 몰랐을까요?

“한 가지 거짓말을 참말처럼 하기 위해서는 항상 일곱가지 거짓말을 필요로 한다.”

一つの嘘を本当らしくするためには、いつも七つだけ嘘を必要とする。

이는 종교혁명을 일으킨 마틴 루터의 말입니다.

그리고 중국에는 양진(楊震)이라고 하는 사람이 말한 사지(四知)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지, 즉 네 가지 아는 것이라는 뜻인데, 이는 “천지 지지 여지 아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안다는 말이 있어요.

天知る地知る人知る我知る

누군가가 나한테 뇌물을 주면서, 이건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라고 해봐야 정말 아무도 모르느냐고요.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리고 무엇보다 네가 알고 나도 아는데 아무도 모르는 게 무슨 소리냐 하는 것이지요.

다윗과 밧세바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그의 남편 우리아를 죽인다고 해서 아무도 모르겠습니까.

사무엘하 11장에 의하면 다윗은 목욕을 하는 여인을 보고 누군지 알아보도록 사람을 보내요. 그리고 그를 또 데려오라고 전령을 보냅니다. 그럼 왕이 부르는데 혼자서 뚜벅뚜벅 걸어오겠습니까. 그것만도 여러 사람이 벌써 움직여야 했겠지요.

그리고 와서는 목욕을 하고 잠자리를 함께 했다고 합니다. 그럼 왕이 불러서 온 사람인데, 밧세바가 무슨 혼자 와서 샤워하고 침실로 갔겠습니까. 여기서도 여러 여인들이 시중을 들었겠지요.

어디 그 뿐입니까. 이제 구체적인 이름이 나와요. 사무엘하 11장 14절~15절에 보니 그의 부하 요압을 시켜서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라고 합니다.

이게 보통 무거운 죄입니까.


하나님은 다윗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무엘하 12장 7절 후반부~11절
“7.……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8.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9.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10.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11.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わたしはあなたに油を注いで、イスラエルの王とした。また、わたしはサウルの手からあなたを救い出した。
さらに、あなたの主君の家を与え、あなたの主君の妻たちをあなたの懐に渡し、イスラエルとユダの家も与えた。それでも少ないというのなら、あなたにもっと多くのものを増し加えたであろう。
どうして、あなたは主のことばを蔑み、わたしの目に悪であることを行ったのか。あなたはヒッタイト人ウリヤを剣で殺し、彼の妻を奪って自分の妻にした。あなたが彼をアンモン人の剣で殺したのだ。
今や剣は、とこしえまでもあなたの家から離れない。あなたがわたしを蔑み、ヒッタイト人ウリヤの妻を奪い取り、自分の妻にしたからだ。』
主はこう言われる。『見よ、わたしはあなたの家の中から、あなたの上にわざわいを引き起こす。あなたの妻たちをあなたの目の前で奪い取り、あなたの隣人に与える。彼は、白昼公然と、あなたの妻たちと寝るようになる。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사랑하셔서, 그의 목숨을 노리던 사울로부터 구원해주셨고, 부와 권세와 명예와 뿐만 아니라 여인까지도 모두 다 그에게 더하셨습니다. 그리고 더 필요한 것이 있었더라면 이것도 저것도 다 줬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다윗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는 하나님 앞에서 씻을 수 없는 악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게 됩니다.


우선 그 자녀들 사이에서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서 형제들 사이에 서로 죽고 죽이는 일까지 일어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났더니 이제 그 자녀 중에서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서 다윗은 광야로 내몰리게 되고는, 결국 그가 가장 아끼던 아들 압살롬은 그의 부하 요압에 의해 살해되고 맙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다윗이 왕이 된 것은 그의 나이 서른이었고, 40년을 다스리게 되었다면 70세까지 살았다는 것이 되지요. 젊었을 때에는 그의 공적이 화려하게 기록됩니다. 그러나 이 밧세바 사건을 사이에 두고 그 이후에는 그의 공적이 사라집니다. 성경은 그가 죽는 수십 년 동안의 통치에 대해서 완전히 무관심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한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본인만이 아니라 본인의 주변이나 자손들에게 불행이 닥친다는 것은 에덴이나 구약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죄를 저지르게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무엇을 모르기 때문에요? 그렇습니다. 감사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하고 주님께 순종하는 삶에서는 기쁨이 있습니다. 감사가 있습니다. 축복이 있습니다. 평안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구원이 약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 앞에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주님 앞에 떳떳하지 못합니다. 주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눈을 피해서 무화과 이파리로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가리려고 했던 것처럼, 우리의 노력으로 열심히 거짓말을 해가면서 나 자신을 가리려고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내 삶이 무너지고 뿐만 아니라 내 가정이 무너지고 결국은 절망 속으로 빠져들고 마는 것이지요.

오늘 말씀 후반부를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13장 7절 후반부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恐れるべき人を恐れ、敬うべき人を敬いなさい。”

우리는 누구를 두려워하고 누구를 존경해야 하는지 알고 있을까요? 사실 모르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요즘 일본 뉴스를 보면 지난 동경올림픽을 둘러싸고 뇌물을 주고 받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려옵니다. 그렇다면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못 배운 사람들이에요? 머리가 나쁜 사람들입니까.


아니에요. 오히려 많이 배운 사람들, 이 시대에 엘리트 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를 두려워해야 하는지, 누구를 존경해야 하는지를 잘못 판단했기 때문에 저렇게 경찰한테 잡혀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2장 5절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恐れなければならない方を、あなたがたに教えてあげましょう。殺した後で、ゲヘナに投げ込む権威を持っておられる方を恐れなさい。そうです。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この方を恐れなさい。

오로지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두려워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물질이나 봉사로 섬기는 것을 단순히 벌 받을까봐 한다면, 여기에는 무엇이 없습니까. 그렇습니다. 감사가 없는 것이지요.

감사가 없다면 이는 아, 그런가보다, 하고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마귀에게 주어서는 안 될 것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절대로 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이라고 성경에 나와 있습니까.

에베소서 4장 27절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悪魔に機会を与えないようにしなさい。

그렇습니다. 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에덴에 있는 아담과 하와에게 부족한 것이 있었을 것 같습니까.

창세기 2장에 기록된 에덴의 모습을 보시면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정말 기쁨과 감사로 충만할 것 같은데, 그들은 여기에 감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뭐가 기어왔습니까. 그렇습니다. 뱀의 탈을 쓴 마귀가 기어왔습니다.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다윗 왕, 이제 그는 이스라엘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명실상부한 영웅이자 절대군주였습니다. 누구 하나 그에게 대적할 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여기에다가 부족한 것이 있었다면 더 주었을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는 여기에 감사의 제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마귀가 기어옵니다. 세상적인 육적인 유혹들이 슬금슬금 기어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육체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지르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마음 안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내가 하나님을 섬기고 있으면서도 내가 주님의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 의미를 알지 못하게 된다면, 여기에는 두려움이 오게 됩니다. 피곤함이 오게 되지요. 나아가 온갖 유혹들이 나를 삼키기 위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믿음에 있어서 틈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틈을 보이는 순간 마귀는 하와나 다윗에게 접근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슬그머니 다가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9절
“8.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身を慎み、目を覚ましていなさい。あなたがたの敵である悪魔が、吼えたける獅子のように、だれかを食い尽くそうと探し回っています。
堅く信仰に立って、この悪魔に対抗しなさい。ご存じのように、世界中で、あなたがたの兄弟たちが同じ苦難を通ってきているのです。

우리는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마귀들을 대적하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대적해야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감사로 채움으로 말미암아 마귀를 대적해서 물리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가 있었더라면 다윗은 그와 같은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요, 무엇보다 아담과 하와도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 마음을 기쁨과 감사로 채움으로 말미암아 마귀 사탄을 대적하여 물리쳐서, 태초에 아담과 하와에게 약속하시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축복과 생명과 구원을 얻으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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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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