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6회 흔들림 없는 순종
2022년 11월 13일 설교 - 로마서 강해 108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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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1장 28절~29절
“28.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29.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11章28節~29節
“28.彼らは、福音に関して言えば、あなたがたのゆえに、神に敵対している者ですが、選びに関して言えば、父祖たちのゆえに、神に愛されている者です。
29.神の賜物と召命は、取り消されることがないから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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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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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108번째 시간으로서 “흔들림 없는 순종” 揺るぎのない従順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로마서 11장 28절을 봅니다.

로마서 11장 28절
“28.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28.彼らは、福音に関して言えば、あなたがたのゆえに、神に敵対している者ですが、選びに関して言えば、父祖たちのゆえに、神に愛されている者です。

여기에 보시면 ‘그들’과 ‘너희’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그들’이라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을 가리키는 것이요, ‘너희’는 이방인을 말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28절 내용은, 복음적인 측면으로 보았을 때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방인으로 말미암아 원수가 된 자라고 하십니다. 이는 누구에 대해서 원수가 된 자라는 뜻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원수 된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으로 인해서 분명 택하심을 받았고, 이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사람들이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성경은 지금 계속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잠시 복습을 한다면 본래 복음은 이스라엘에 전파되어야 하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를 거부했어요.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았어요.

이렇게 되자 그들에게로 전파되었을 복음이 이제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인에게 전파되어서, 이방인이 구원 받게 되었다고 우리는 배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영원히 버리지 않으시며, 반드시 구원하신다는 말씀을 지난 주까지 공부했습니다.

그러면서 29절에서는 어떻게 기록합니까.

로마서 11장 29절
“29.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29.神の賜物と召命は、取り消されることがないからです。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고 말씀하세요.

많은 분들이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우리가 믿음을 한 번 가지면 절대로 구원의 취소가 안 된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지만 이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15장 11절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わたしはサウルを王に任じたことを悔やむ。彼はわたしに背を向け、わたしのことばを守らなかったからだ。」それでサムエルは怒り、夜通し主に向かって叫んだ。

이 구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후회하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로마서 11장 29절에서는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고 하는데, 사무엘상 15장 11절 말씀에 보시면 분명히 후회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무엘상 15장 11절은 어쩌다가 우연히 좀 잘못 기록된 것인가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혹시 그렇게 생각하시는 사람이 있을 까봐,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사무엘상 15장 35절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サムエルは死ぬ日まで、再びサウルを見ることはなかった。しかしサムエルはサウルのことで悲しんだ。主も、サウルをイスラエルの王としたことを悔やまれた。

이처럼 성경은 하나님께서 후회하신다는 것을 놓칠 까봐, 하나님께서 후회하셨다는 점을 반복해서 기록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이처럼 후회하셨던 것일까요.

이는 우리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만, 우리가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정리를 해보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인도 하에 그 동안 종살이를 하고 있던 애굽에서 탈출하고는 무려 40년이나 광야에서 방황한 끝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셨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올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모세에 이어 그들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부터 시작해서 대대로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시 사사에게 우리가 생각하는 대단한 권력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당시 모습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사사기 17장 6절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そのころ、イスラエルには王がなく、それぞれが自分の目に良いと見えることを行っていた。

사사기 21장 25절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そのころ、イスラエルには王がなく、それぞれが自分の目に良いと見えることを行っていた。

그러니까 사사의 존재라고 하는 것은 지금의 왕이나 대통령 같은 강력한 공권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 글쎄요. 쉽게 말하자면 정신적인 지도자 정도로 인식 되어 왔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사의 말을 들으면 좋겠지만, 안 듣는다고 해서 체포한다거나 특별한 형벌을 내린다거나 하는 경우는 없었던 것이지요.

이는 참으로 이상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나라였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왕을 원했던 것이지요. 참 이상한 노릇이지요? 왕이 있으면 자신들에게 명령을 할 것이요, 자신들의 세금도 가져갈 것이요, 얼마나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사무엘상 8장에 보시면, 왕을 달라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시 사사였던, 정확하게는 일선에서 은퇴하고 자기 아들에게 사사를 물려주었던 사무엘은, 왕을 세우게 될 경우의 불이익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역설을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끝까지 왕을 세워달라고 해요. 그들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무엘상 8장 19절~20절
“19.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20.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하는지라”

しかし民は拒んで、サムエルの言うことを聞こうとしなかった。そして言った。「いや。どうしても、私たちの上には王が必要です。
そうすれば私たちもまた、ほかのすべての国民のようになり、王が私たちをさばき、私たちの先に立って出陣し、私たちの戦いを戦ってくれるでしょう。」

참 단순하지요? 생각해보세요. 물론 당시에 전쟁을 하게 된다면 왕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가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어디 항상 그러나요. 보통은 후방에서 보고를 받거나 군대를 지휘하는 게 일반적이잖아요.

그럼 직접적으로 전쟁은 누가 합니까. 당연히 병사들이 하는데, 병사는 말하자면 그 나라 백성, 그러니까 자기들 아니겠어요?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왕을 세우면 왕이 자기들을 대신해서 전쟁도 해주고 얼마나 좋아? 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니 참으로 답답한 일이었지요.

사무엘이 아무리 만류를 해도 백성들이 도무지 듣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서도 그들 위에 왕을 세우게 되는데 그게 바로 사울이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 그리고 미국도 그렇습니다만, 그깟 몇 년밖에 못하는 대통령이나 총리 한 번 하려 해도 얼마나 노력을 많이 해야 합니까. 그런데 원칙적으로 죽을 때까지 평생 할 수 있는 왕이 되기 위해서 사울이 한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울이 왕으로 세움을 받은 것은 99%도 아니고 100%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로 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사울은 어떻게 해야했겠습니까. 그야말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결국 사울은 하나님을 후회하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엇 때문에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셨던 것일까요.

어렵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불순종이었습니다.

사무엘상 15장에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해서 아말렉을 치라고 명령하십니다.

사무엘상 15장 2절~3절
“2.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3.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万軍の主はこう言われる。『わたしは、イスラエルがエジプトから上って来る途中で、アマレクがイスラエルに対して行ったことを覚えている。
今、行ってアマレクを討ち、そのすべてのものを聖絶しなさい。容赦してはならない。男も女も、幼子も乳飲み子も、牛も羊も、らくだもろばも殺しなさい。』」

이런 말씀을 보시면 참 무섭고 잔인하지요. 아니, 성인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젖 먹는 아이나 가축들까지도 죽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이는 단순한 공격이나 점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알기 쉬운 예로, 소돔과 고모라를 보더라도 거기에 무슨 어린 아이들이나 가축들은 남겨두고 멸망한 것이 아니잖아요? 남녀노소는 물론이고 그 도시에 있었던 모든 것들을 흔적도 남김없이 전멸하신 모습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말렉 족속은 야곱의 쌍둥이 형인 에서의 후손입니다만, 출애굽기 17장에 의하면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홍해를 건너고 얼마 가니까 이 아말렉 족속들이 공격을 해오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하고자 하셨던 것이고, 그 심판을 이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초대 왕으로 세우신 사울을 통해서 하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이 어떻게 했습니까.

사무엘상 15장 7절~9절
“7.사울이 하윌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사람을 치고
8.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의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9.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サウルは、ハビラからエジプトの国境にあるシュルに至るまで、アマレク人を討ち、
アマレク人の王アガグを生け捕りにし、その民のすべてを剣の刃で聖絶した。
サウルとその兵たちは、アガグと、肥えた羊や牛の最も良いもの、子羊とすべての最も良いものを惜しんで、これらを聖絶しようとしなかった。ただ、つまらない値打ちのないものだけを聖絶したのである。


사울은 별볼일 없는 하찮은 가축들은 다 죽였지만, 아말렉 왕인 아각이 가지고 있던 최고의 가축들은 남겼다고 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15절에 의하면 좋은 것들을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서라고 그는 말합니다.

이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요? 아니요. 오히려 이 일을 가지고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에 대해서 후회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좋은 제물을 바치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순종하는 것, 하나님께서는 어느 쪽을 좋아하시겠냐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본다면 좋은 제물을 바치는 것을 기뻐하실 것도 같지만, 이는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좋은 제물을 갖다 바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신해서 아말렉을 심판하라는 명령이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 얻은 그깟 가축 몇 마리를 기뻐하시겠습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무엘은 사울 왕에게 말합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サムエルは言った。「主は、全焼のささげ物やいけにえを、主の御声に聞き従うことほどに喜ばれるだろうか。見よ。聞き従うことは、いけにえにまさり、耳を傾けることは、雄羊の脂肪にまさる。

그 어떤 제사나 그 어떤 제물보다도 하나님께서는 순종을 기뻐하신다고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도 끝까지 자기의 생각, 자기의 고집, 자기의 자존심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됩니까. 사무엘상 31장에 의하면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버린 사울은 결국 전쟁터에서 비참하게 죽고, 이스라엘 왕위는 다윗에게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 성경을 알게 되면 이 부분에서 의문이 생깁니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다면서요. 전지전능이 무슨 뜻이에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그처럼 순종을 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계셨을 텐데, 왜 왕으로 세우시고는 후회를 하셨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만약에 사울이 순종을 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셨다면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아니게 되잖아요.

이와 같이 생각하게 된다면 우리는 <성경이 무엇인가>라고 하는 근본적인 문제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단순한 역사서나 위인전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은 객관적인 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앞에 두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생각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께서는 사울에 대한 후회를 통해서 우리에게 분명히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순종이란 무엇인가>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한 나라의 왕이 세워진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지금의 왕도 그렇습니다만, 이는 그 한 사람만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대를 이어 계승되는 것이 바로 왕위인 것입니다.


사실 사울이 범한 실수는 이게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사울은 이미 13장에서 처음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 제사를 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끝까지 기다리지 못해서 결국 자신이 대신 제사를 드리는, 말하자면 하나님 앞에서 월권행위를 하고 맙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사무엘은 사울에게 말합니다.

사무엘상 13장 13절~14절
“13.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14.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サムエルはサウルに言った。「愚かなことをしたものだ。あなたは、あなたの神、主が命じた命令を守らなかった。主は今、イスラエルにあなたの王国を永遠に確立されたであろうに。
しかし、今や、あなたの王国は立たない。主はご自分の心にかなう人を求め、主はその人をご自分の民の君主に任命しておられる。主があなたに命じられたことを、あなたが守らなかったからだ。」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왕이 되게 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사울을 통한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버리셨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기다림>이라고 하는 단순한 명령에 순종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44절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わたしを遣わされた父が引き寄せてくださらなければ、だれもわたしのもとに来ることはできません。わたしはその人を終わりの日によみがえらせます。

요한복음 15장 16절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あなたがたがわたしを選んだのではなく、わたしがあなたがたを選び、あなたがたを任命しました。それは、あなたがたが行って実を結び、その実が残るようになるため、また、あなたがたがわたしの名によって父に求めるものをすべて、父が与えてくださるようになるためです。


우리는 우리가 내 의지로 예수님을 선택하고 내 의지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고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끌어주시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세워 주셨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로마서 1장 6절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その異邦人たちの中にあって、あなたがたも召されてイエス・キリストのものとなりました──


고린도전서 3장 23절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あなたがたはキリストのもの、キリストは神のものです。

그럼으로 인해서 우리는 우리 혼자가 아닌 그리스도 예수님의 소유가 되고, 그리고 예수님의 소유라는 것은 곧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있기만 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과 축복은 결코 후회하심, 즉 취소됨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조건이 있다는 사실을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님께로 인도해주시고, 주님께서 우리를 세워주신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원대한 계획이 있으셨기 때문에 우리를 수많은 모래알 속에서 우리를 불러 주시고 우리를 선택해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것으로 세워 주셨다 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버리게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버리신 것처럼 우리도 헌신짝 버리듯 버림을 받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요한1서 4장 19절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私たちは愛しています。神がまず私たちを愛してくださったからです。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 우리를 먼저 사랑해주시고 우리를 선택해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여 마침내 이루고자 하시는 구원의 원대한 계획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남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을 후회하게 하실 수는 없습니다. 후회하게 하셔도 안 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흔들림 없는 순종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사용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를 먼저 사랑해주시고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우리를 사용하고자 하시는 주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림으로 말미암아, 절대적인 순종을 통해서, 마침내 넘치는 축복과 넘치는 은혜를 받으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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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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