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필 목사 설교_이카호중앙교회_http://www.ikahochurch.com
제353회 7000이라는 축복
2022년 8월 14 설교 - 로마서 강해 96

홍성필 목사
www.kirinmission.com
kirinmission@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1장 1절~5절
“1.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2.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3.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4.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11章1節~5節
“1.それでは尋ねますが、神はご自分の民を退けられたのでしょうか。決してそんなことはありません。この私もイスラエル人で、アブラハムの子孫、ベニヤミン族の出身です。
2.神は、前から知っていたご自分の民を退けられたのではありません。それとも、聖書がエリヤの箇所で言っていることを、あなたがたは知らないのですか。エリヤはイスラエルを神に訴えています。
3.「主よ。彼らはあなたの預言者たちを殺し、あなたの祭壇を壊しました。ただ私だけが残りましたが、彼らは私のいのちを狙っています。」
4.しかし、神が彼に告げられたことは何だったでしょうか。「わたしは、わたし自身のために、男子七千人を残している。これらの者は、バアルに膝をかがめなかった者たちである。」
5.ですから、同じように今この時にも、恵みの選びによって残された者たちが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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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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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96번째 시간으로서 “7000이라는 축복” 7000という祝福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1절부터 5절까지 있습니다만, 이를 앞부분 1절과 뒷부분 2절~5절까지로 나누어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절입니다.

로마서 11장 1절
“1.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1.それでは尋ねますが、神はご自分の民を退けられたのでしょうか。決してそんなことはありません。この私もイスラエル人で、アブラハムの子孫、ベニヤミン族の出身です。

지난 주에 살펴본 바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종일 손을 벌리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 그러나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서 돌아오라고 하시면서 손을 벌리고 기다리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돌아오지 않자 이제는 이방인들, 더 나아가 하나님을 전혀 알지도 못하고 찾지도 않은 민족들이 하나님을 찾아내게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기하게 되고 노여워하게 된다고 하십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은 이방인들을 선택하시고 이스라엘 자손들을 버리셨다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게 되지요.

그는 자기 자신을 이스라엘인이라고 말하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베냐민 지파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누구입니까.

첫째로 그는 정통 이스라엘인이었습니다. 그가 베냐민 지파라는 것은 말하자면 도중에 이스라엘인이 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정통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그는 로마인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지배를 당하는 입장이었으나 로마는 지배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흥미로운 구절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22장 27절~28절
“27.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시민이냐 내게 말하라 이르되 그러하다
28.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이르되 나는 나면서부터라 하니”

そこで、千人隊長はパウロのところに来て言った。「私に言いなさい。あなたはローマ市民なのか。」パウロは「そうです」と答えた。
すると千人隊長は言った。「私は多額の金でこの市民権を手に入れたのだ。」パウロは言った。「私は生まれながらの市民です。」

천부장은 출세 좀 해보려고 했는데, 그러려면 로마 시민이 되어야 해요. 당시는 로마가 최대 강국이었기 때문에, 로마 시민이 되면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외국인이 로마시민권을 따기가 대단히 어려웠다고 해요. 그래서 누구는 돈을 많이 내고 이 시민권을 얻는 경우도 있었고, 그리고 고대 문헌에 의하면 로마 군생활을 오래 하면 시민권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태어나면서 로마 시민이었다고 하는 것이지요.


셋째로 그는 외국어실력이 탁월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인이어기 때문에 히브리어를 할 수 있었습니다만, 그 뿐만이 아니라 당시 유럽의 공용어라고 할 수 있었던 헬라어도 능통했습니다.

사도행전 21장 37절
“바울을 데리고 영내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이르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兵営の中に連れ込まれようとしたとき、パウロが千人隊長に「少しお話ししてもよいでしょうか」と尋ねた。すると千人隊長は、「おまえはギリシア語を知っているのか。

바울이 헬라어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천부장이 놀라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외국인으로서 헬라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고급 학문을 한 사람들 뿐이었거든요. 그런데 그냥 어디 촌놈인 줄 알았던 바울이 헬라어까지 한다는 사실을 천부장이 보고 놀랐었던 것입니다.

넷째로 그는 가말리엘(ガマリエル)이라고 하는 유명한 선생님 문하에서 배웠으며, 공부를 마친 후 그는 관료로 임용되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고시 패스를 해서 청년 사무관으로서 엘리트 코스를 달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정도로 그는 대단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6장 24절에 보면 바울이 자신을 재판하던 당시 유대 총독 베스도(フェストゥス)에게 탁월한 언변으로 주님의 복음을 전하자, 그 말을 듣고 감탄하면서 말합니다.

사도행전 26장 24절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パウロがこのように弁明していると、フェストゥスが大声で言った。「パウロよ、おまえは頭がおかしくなっている。博学がおまえを狂わせている。」


유대 총독이 보기에는 그럴 만도 합니다.

지금까지 바울에 대해서 정리해보면 어떻습니까. 첫째로 그는 뼈대 있는 이스라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둘째로 그는 로마 시민권자입니다. 셋째로 외국어 실력에 능통했습니다. 넷째로 대단한 지식인이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이와 같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면 무엇을 하기가 좋습니까. 그렇죠. 출세하기 딱 좋지 않습니까. 집안도 명문에다가 로마 시민권자이니까 출세에 결격 사유도 없어요. 외국어도 잘 하고 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머리도 좋았으니 관리로 임용이 되었겠지요.

그런데 이 유대 총독 베스도가 보기에는 어때요. 이처럼 모든 조건들을 완벽하게 가지고 있는데, 그 앞날이 보장되어 있는 출세 코스를 다 내팽개쳐 버리고 예수인지 뭔지를 전하러 다녀요. 그러니까 이 총독이 생각하기에 그 원인은 하나에요. 야, 이 사람아, 네가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미쳤구나. 이렇게 밖에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앞서 바울의 조건이 무엇이었습니까. 정통 유대인, 로마 시민권자, 능통한 외국어 실력, 대단한 지식인. 당시 세상적으로 본다면 이와 같은 조건은 출세하기 딱 좋은 배경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런 사람, 어디에 쓰기 딱 좋았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선교사로 쓰기에 딱 좋은 조건이었던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유대인들이 얼마나 보수적입니까. 자기들이야말로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은 백성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는 사람들한테, 무슨 뿌리도 없고, 어디서 굴러온 지도 모르는 사람이 와서 아무리 말을 한다고 해서 귀를 기울이겠습니까.


그런데 바울로 본다면 유대인의 베냐민 지파에 속한 그야말로 정통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거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존경하는 유명한 선생님한테 배웠어요. 이와 같은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말이라면 아무리 고지식한 유대인들이라 하더라도 마냥 무시를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거기에 외국어가 능통해요. 그렇기 때문에 그는 먼 거리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거나 편지를 쓰거나 하더라도 전혀 불편함이 없습니다. 통역을 세울 필요가 없어요.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그리고 누구한테든지 자신의 말로 직접 복음을 전할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많은 지식이 있었습니다. 머리가 대단히 좋았습니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고위 관료나 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고 우상을 섬기고 있는 외국인들한테까지도 효과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지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약성경을 보면 저자가 밝혀진 것만 보더라도 절반 가까이를 바울이 직간접적으로 썼습니다. 이는 단순히 글을 썼다기보다도 우리가 예수님 이후에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교리를 완전하게 밝혔다는 점이 가장 크다고 하겠습니다.


특히나 우리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로마서를 보세요. 전체가 16장까지 있는 로마서는 다른 책들에 비하면 짧은 편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본다면 성경을 창세기부터 완전히 꿰뚫고 있으면서도 예수님의 가르침 또한 완전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바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 9장 15절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しかし、主はアナニアに言われた。「行きなさい。あの人はわたしの名を、異邦人、王たち、イスラエルの子らの前に運ぶ、わたしの選びの器です。

세상에는 좋은 그릇도 많다고는 하지만, 이와 같은 측면으로 본다면 주님께서는 그릇 한 번 제대로 고르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일생을 통해서 주님께 순종하면서 맡은 바 역할을 다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서 11장 2절 전반부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2.神は、前から知っていたご自分の民を退けられたのではありません。

지난 주에 살펴본 내용에 의하면 주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해서 손을 벌리고 계셨다고 했습니다만, 그렇다면 지금은 그 손을 집어넣으셨냐 하면, 그것이 아니라, 여전히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들이 순종하지 않고 있다고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손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자기 자신은 이처럼 정통적인 이스라엘 백성이요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만약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버리셨다면, 자기 자신을 주님의 그릇으로서 택하셨겠냐, 주님께서 나를 택하신 것이 여전히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고 계시다고 하는 그 증거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로마서 11장 2절 후반부부터 5절까지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11장 2절 후반부~5절

“2.……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3.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4.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2. ……神は、前から知っていたご自分の民を退けられたのではありません。それとも、聖書がエリヤの箇所で言っていることを、あなたがたは知らないのですか。エリヤはイスラエルを神に訴えています。
3.「主よ。彼らはあなたの預言者たちを殺し、あなたの祭壇を壊しました。ただ私だけが残りましたが、彼らは私のいのちを狙っています。」
4.しかし、神が彼に告げられたことは何だったでしょうか。「わたしは、わたし自身のために、男子七千人を残している。これらの者は、バアルに膝をかがめなかった者たちである。」
5.ですから、同じように今この時にも、恵みの選びによって残された者たちがいます。

이 본문은 열왕기상 19장에 나오는 내용을 인용한 부분입니다.

이 때 주요등장인물은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이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갈라져 있을 때에 북 이스라엘의 제7대 왕 아합(アハブ)과 그의 아내 이세벨(イゼベル),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입니다.

당시는 온갖 더러운 우상들이 넘쳐나고 있었는데, 그 주범이 바로 이 왕의 아내 이세벨이었습니다. 이 이세벨이 온갖 우상들을 들여오고 각지에 우상들을 세우고 이를 경배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열왕기상 18장에 의하면 선지자 엘리야가 바알을 섬기는 450명을 갈멜산(カルメル山(さん))에 집합시킵니다. 그래서 나의 하나님과 너희들이 믿는 바알 중에서 누가 진정한 하나님이신지 증명해보자 하고 대결을 신청하지요.

엘리야는 말합니다. 송아지를 한 마리 잡아다가 제단 위에 올려놓고 기도를 해봐라. 응답하시면 불이 내려와서 그 송아지를 태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제 먼저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들이 기도를 시작합니다.


열왕기상 18장 26절~29절
“26.그들이 받은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이르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그들이 그 쌓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27.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28.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
29.이같이 하여 정오가 지났고 그들이 미친 듯이 떠들어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르렀으나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


そこで彼らは、与えられた雄牛を取って、それを整え、朝から真昼までバアルの名を呼んだ。「バアルよ、私たちに答えてください。」しかし何の声もなく、答える者もなかった。そこで彼らは、自分たちが造った祭壇のあたりで踊り回った。
真昼になると、エリヤは彼らを嘲って言った。「もっと大声で呼んでみよ。彼は神なのだから。きっと何かに没頭しているか、席を外しているか、旅に出ているのだろう。もしかすると寝ているのかもしれないから、起こしたらよいだろう。」
彼らはますます大声で叫び、彼らの慣わしによって、剣(つるぎ)や槍で、血を流すまで自分たちの身を傷つけた。
このようにして、昼も過ぎ、ささげ物を献げる時まで騒ぎ立てたが、何の声もなく、答える者もなく、注目する者もなかった。


이제 우상을 섬기는 선지자들이 먼저 자기들 방식대로 기도를 합니다. 그래도 전혀 응답할 기색이 없어요. 아침부터 정오를 지나서 저녁 때까지, 정말 그야말로 미친 듯이 기도를 하고 난리를 칩니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당연하지요. 우상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일 뿐, 지난 주에 알아본 것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습니다.

하루 온종일 자기들 우상들한테 그와 같이 기도를 했으니 녹초가 되었겠지요.

이제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차례입니다.

열왕기상 18장 32절~35절
“32.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고 제단을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둘 만한 도랑을 만들고
33.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34.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째로 그리하라 하여 세 번째로 그리하니
35.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더라”


その石で、彼は主の御名によって一つの祭壇を築き、その祭壇の周りに、二セアの種が入るほどの溝を掘った。
それから彼は薪(たきぎ)を並べ、一頭の雄牛を切り裂いて薪の上に載せ、
「四つのかめに水を満たし、この全焼のささげ物と薪の上に注げ」と命じた。それから「もう一度それをせよ」と言ったので、彼らはもう一度そうした。さらに、彼が「三度目をせよ」と言ったので、彼らは三度目をした。
水は祭壇の周りに流れ出した。彼は溝にも水を満たした。

엘리야는 송아지를 각을 떠서 나무로 만든 제단 위에 올려 놓고는, 물통 4개에 물을 담아가지고 그 송아지 고기 위에 부으라고 합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세 번씩 부으래요. 물통 4개를 세 번씩 부었으니 물통 개수로 하자면 12통 분량의 물을 부은 셈이 됩니다.

이렇게 되니 고기는 물론이요 그 나무를 쌓아놓은 제단에 물이 줄줄줄줄 흐릅니다. 그리고 그 제단 주위에는 도랑을 파서 거기에도 물을 채웠습니다.

이제 불을 붙여야 할 제단이 이처럼 물로 범벅이 되었기 때문에,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을 붙일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이렇게 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불이 붙는다면 그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도록 한 것입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열왕기상 18장 36절~38절
“36.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37.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ささげ物を献げるころになると、預言者エリヤは進み出て言った。「アブラハム、イサク、イスラエルの神、主よ。あなたがイスラエルにおいて神であり、私があなたのしもべであり、あなたのおことばによって私がこれらすべてのことを行ったということが、今日、明らかになりますように。
私に答えてください。主よ、私に答えてください。そうすればこの民は、主よ、あなたこそ神であり、あなたが彼らの心を翻してくださったことを知るでしょう。」
すると、主の火が降(くだ)り、全焼のささげ物と薪と石と土を焼き尽くし、溝の水もなめ尽くした。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더니,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는 그 흠뻑 젖은 재물만이 아니라 나무와 돌들과 흙을 태우고 제단을 두르고 있던 도랑의 물까지도 모두 불살라 버리셨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와 같은 장면을 목격한 그 자리에 있든 백성들은 이제 어느 쪽이 진정한 하나님인지 분명해졌지요. 엘리야는 저기 지쳐서 뻗어 있는 바알 선지자들을 다 잡아다가 모저리 죽여버리고 맙니다.

자, 이것이 갈멜산의 대결입니다.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 1:450의 싸움은 엘리야의 놀라운 승리, 하나님의 놀라운 승리로 결론이 났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이세벨이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처럼 놀라운 승리를 거둔 엘리야라고 한다면, 그와 같은 상황이 되더라도 담대할 것도 같습니다만, 엉뚱한 곳에서 엘리야의 약점이 드러납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은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던 엘리야인데, 이세벨이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자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가기 시작합니다. 마침내는 광야까지 도망 가서는 거기서 하나님께 하소연을 합니다.


열왕기상 19장10절
“10.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エリヤは答えた。「私は万軍の神、主に熱心に仕えました。しかし、イスラエルの子らはあなたとの契約を捨て、あなたの祭壇を壊し、あなたの預言者たちを剣で殺しました。ただ私だけが残りましたが、彼らは私のいのちを取ろうと狙っています。」

하나님, 이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 죽고 나만 남았어요. 그리고 이제 저들은 내 목숨까지도 노리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지금 이러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엘리야에게 이런 약한 모습이 보인다는 것은 참으로 의외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약점이 있습니다. 강해 보이는 사람도 인간이기에 약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는 것이지요.

만약에 누군가에게 있어서 그런 모습을 보았다면 나무라지 마셨으면 합니다. 엘리야도 그런 약점이 있는데 다른 사람이라면 오죽하겠습니까.

그와 같은 엘리야에게 하나님도 꾸짖지 않고 오히려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열왕기상 19장 18절
“18.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しかし、わたしはイスラエルの中に七千人を残している。これらの者はみな、バアルに膝をかがめず、バアルに口づけしなかった者たちである。」

여기서는 현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도 않고 입맞추지도 않은 자, 즉 우상에게 굴복하지 않은 사람들을 7천 명이나 남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미래형이냐 완료형이냐, 즉 이제부터 7천 명을 남겨 놓으실 예정이라는 뜻인지, 아니면 이미 7천 명을 남겨 두셨다는 뜻인지에 대해서는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미래형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계획은 조금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미래형이든 완료형이든 그 뜻은 분명합니다. 7천명을 남겨두셨다는 것이지요.


이 7천명이라는 숫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를 들어서 회사를 생각해본다면 한국에서의 기준에서는 대기업이 되려면 몇 명이 필요하냐 하면, 여기에는 물론 자본금도 필요합니다만, 인원수 기준만 본다면 1000명이면 대기업이 됩니다. 일본은 300명을 넘으면 대기업 요건이 된다고 해요.

그런데 7000명입니다. 그것도 조금씩 성장해서 7000명이 아니라, 지금은 자기 회사에 하나밖에 없어요. 자기가 사장이고 자기가 말단이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7000명이 되는 회사로 단숨에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저에게는 더 와 닿는 표현이 있지요. 우리 교회 성도님 수는 지금 둘러보시면 아시겠지만, 저와 저희 가족을 빼면 10명 정도가 될까 말까예요. 그래서 아직까지 미자립 상태이기 때문에, 저도 인터넷을 통해서 외부 분들에게 선교 후원을 부탁해야만 간신히 생활을 유지해 나아갈 수가 있어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에이, 옛날 80년대 90년대에는 어떻게든지 일본에 오려고 했지만, 지금은 일본에 있다가도 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도 동경도 아닌 군마에서 교회가 되겠어? 라고 하는 분들, 모르긴 몰라도 분명히 많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왜 나를 이 곳으로 보내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제 교회도 정리를 하고 셔터문을 내릴 사람이 없어서 나를 보내셨을까. 그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러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믿는 것이 있어요. 그것은 바로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주신 7천 명이라고 하는 축복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7천명이라고 해서 단순히 5천, 6천, 7천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오늘 본문에 나온 7천이라는 숫자를 상징적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찌 되었든 7천이라는 숫자는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지요.

예전에 조용기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대조동에서 개척해서 천막을 쳐놓고 예배를 드리는데, 어느 날 성도님 중 한 사람이 목사님한테 이런 질문을 하더래요. 목사님은 왜 설교를 하실 때에 눈을 감고 하시냐는 거예요.

목사님은 당시에 실제로 설교를 할 때 눈을 감고 했다고 하세요. 그 이유는 뭐냐 하면 눈을 감으면 자기 앞에 사람들이 꽉 차 있는데, 눈을 떠 보면, 거기에는 당시 천막 교회에 돗자리 깔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대여섯 명 있을 뿐이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당시는 그런 심정이셨대요. 주님, 정말 성도 300명만 주시면 제가 평생 동안 주님만 섬기면서 살겠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성도가 얼마나 늘었어요? 300명이요? 아니요. 75만명이나 되었습니다.

이건 교회만이 아니에요. 요즘 코로나 때문에 얼마나 많이 힘드십니까. 그런데 지금 눈앞의 현실만 보고 절망하지 말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하루 종일 가게를 지켜도 손님이 안 와요. 파리만 날라요. 아휴, 이제 소망도 없어요. 다 포기해버리고 싶어요.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위해 7000명이라는 축복을 예비해 놓고 계시다고 말씀해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한 달에 7000명이라고 한다면 이를 30으로 나누면 하루에 230명이 넘습니다. 그렇다고 꼭 인원수일 필요가 있겠습니까. 한 달에 7000만원이라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하루에 230만원이 넘게 되겠지요. 어떠세요. 웃음이 절로 나오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것으로 만족하시겠습니까. 한 달이 아니라 하루에 7000이 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또 오해하시는 분들이 간혹 계십니다. 교회에는 부자만 되게 해달라고 다니는 것이냐 하는 말을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아니, 부자가 되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곤란하지요. 그러나 경제적으로 넉넉해진다면, 궁핍할 때보다도 주님을 위해서, 그리고 이웃을 위해서 얼마나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집니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대형교회를 비판하는 경우도 보입니다만, 교회의 재정이 넉넉해야지만 할 수 있는 일들 또한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교회가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데 대에 빚을 내면서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왜 여기 있습니까. 멋진 대도시도 아닌 지방 변두리 군마현에 왜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한테 밉보여서 좌천되었기 때문인가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한 계획이 있으십니다.

세상에서는 영전도 있고 좌천도 있지요. 요직이 있나 하면 한직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 안에서는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어디로 가든지 좌천은 없습니다. 오로지 영전이 있을 뿐이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자리가 요직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7000이라는 축복을 예비해주고 계십니다. 이를 모르고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다면, 우리는 지금 현실만 바라보고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절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알게 되면, 우리는 힘을 얻어 주님만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남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날에 불순종했던 우리를 하나님은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손을 내밀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제 지난날을 회개하고 좌절과 절망을 털어버리고서 주님께로 돌아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 주신 7000이라는 축복을 믿고, 주님께 소망을 두고 주님과 함께 달려 감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받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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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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