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필 목사 설교_이카호중앙교회_http://www.ikahochurch.com
제352회 깨어나기 위하여
2022년 8월 7일 설교 - 로마서 강해 95

홍성필 목사
www.kirinmission.com
kirinmission@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0장 19절~21절
“19.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20.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말하였고
21.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ローマ人への手紙 10章19節~21節
“19.では、私は尋ねます。イスラエルは知らなかったのでしょうか。まず、モーセがこう言っています。「わたしは、民でない者たちであなたがたのねたみを引き起こし、愚かな国民であなたがたの怒りを燃えさせる。」
20.また、イザヤは大胆にもこう言っています。「わたしを探さなかった者たちにわたしは見出され、わたしを尋ねなかった者たちに自分を現した。」
21.そして、イスラエルのことをこう言っています。「わたしは終日、手を差し伸べた。不従順で反抗する民に対し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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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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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95번째 시간으로서 “깨어나기 위하여” 目を覚ますために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지금까지 함께 공부해왔던 것처럼, 오늘 말씀도 하나씩 살펴본 다음에 전반적으로 정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10장 19절
“19.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19.では、私は尋ねます。イスラエルは知らなかったのでしょうか。まず、モーセがこう言っています。「わたしは、民でない者たちであなたがたのねたみを引き起こし、愚かな国民であなたがたの怒りを燃えさせる。」

이 말씀은 신명기 32장 21절을 인용한 내용입니다.


신명기 32장 21절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

彼らは、神でないものでわたしのねたみを引き起こし、彼らの空しいものでわたしの怒りを燃えさせた。わたしも、民でない者たちで彼らのねたみを引き起こし、愚かな国民で彼らの怒りを燃えさせる。

여기서 <그들>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질투를 일으키게 하고 진노를 일으키게 했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질투를 일으키게 했고 진노를 일으키게 했냐 하면, 허무한 것으로 질투를 일으키게 했고 진노를 일으키게 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질투를 일으키게 하고 진노를 일으키게 하는 허무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상인 것입니다.


시편 115편 4절~7절
“4.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5.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6.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7.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彼らの偶像は銀や金。 人の手のわざにすぎない。
口があっても語れず 目があっても見えない。
耳があっても聞こえず 鼻があっても嗅げない。
手があってもさわれず 足があっても歩けない。 喉があっても声をたてることができない。

사람이 무슨 진화를 해요? 발전을 해요?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는 것을 보십시오. 은금으로 번쩍번쩍하게 만들기도 하고 나무나 돌 등으로 크게 만들어 놓고, 거기다 대고 무엇을 합니까. 절을 하고 주문을 외우고 제물을 바칩니다.

지금도 그러고 있지 않습니까. 수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쩌면 우상을 섬기는 모습을 보면 발전이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크고, 아무리 비싼 재료들을 써서, 아무리 솜씨 좋은 기술자가 만들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냥 인형일 뿐입니다. 거기에 영혼은 없습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합니다. 말하고 걷기는 커녕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능력도 없습니다.

이 얼마나 허무합니까. 그런데 여기에 대고 지극정성으로 섬깁니다. 이는 지금이나 수천년 전이나 마찬가지에요.

그러면 성경에 보면 누가 우상을 섬겼습니까. 이방인이 우상을 섬기는 일은 어쩌면 당연했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들은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하나님도 그들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습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무조건적인 선택이라고 말씀드렸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고도 조금 지나서 살만 해지면 이상하게 우상을 섬깁니다.

어렵고 힘들 때는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섬겼던 그들이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평화가 찾아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우상들을 섬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4장 24절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あなたの神、主は焼き尽くす火、ねたみの神である。

하나님은 하나님 스스로를 가리켜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상을 섬기는 그들을 보고 질투를 하신다는 거예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질투를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꾸만 우상을 섬깁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시겠대요. 그렇습니다. 백성이 아닌 자로 시기하게 하고,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게 만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자기들을 사랑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축복을 주시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그들이 오히려 백성이 아닌 자들한테 대해서 시기를 하고 분노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백성인 아닌 자, 그리고 어리석은 민족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다 이방인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두 가지 점에 대해서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우선 그들은 자신들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점에 대한 자부심입니다.

세례 요한은 말합니다.

누가복음 3장 8절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それなら、悔い改めにふさわしい実を結びなさい。『われわれの父はアブラハムだ』という考えを起こしてはいけません。言っておきますが、神はこれらの石ころからでも、アブラハムの子らを起こすことができるのです。

이 말을 보더라도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점에 대해서 얼마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그들은 모세의 제자라는 점에 대해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 의하면 앞을 못 보는 사람을 예수님이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 사람을 앞에 두고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아요.

요한복음 9장 26절~28절
“26.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27.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28.그들이 욕하여 이르되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彼らは言った。「あの人はおまえに何をしたのか。どのようにしておまえの目を開けたのか。」
彼は答えた。「すでに話しましたが、あなたがたは聞いてくれませんでした。なぜもう一度聞こうとするのですか。あなたがたも、あの方の弟子になりたいのですか。」
彼らは彼をののしって言った。「おまえはあの者の弟子だが、私たちはモーセの弟子だ。

자신들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기에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은 민족이기 때문에 유일하게 구원받은 민족이요, 그리고 자신들은 모세의 제자라는 점에 대해서 크나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바울이 인용한 말씀은 무엇입니까. 너희들이 스승이라고 모시고 있는 모세의 말을 들어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구원받은 유일한 백성이라는 자부심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오히려 너희들이 차별하고 있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고 구원이 임함으로 인해서, 너희들이 그들을 보고 시기하게 될 것이라고 하지 않느냐.

바울은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일단 19절은 여기까지 정리하고 다음으로 20절을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10장 20절
“20.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말하였고”

20.また、イザヤは大胆にもこう言っています。「わたしを探さなかった者たちにわたしは見出され、わたしを尋ねなかった者たちに自分を現した。」

이 말씀은 이사야 65장 1절에서 인용한 내용입니다.


이사야 65장 1절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わたしを尋ねなかった者たちに、わたしは尋ね求められ、わたしを探さなかった者たちに、わたしは見出された。わたしの名を呼び求めなかった国民に向かって、『わたしはここだ、わたしはここだ』と言った。

유대인들은 창세기로부터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역사를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축복과 타락, 노아 때의 홍수로 인한 심판과 구원, 아브라함의 순종, 야곱과 열 두 지파, 모세와 출애굽, 여호수아와 가나안 땅 점령, 다윗 왕과 이스라엘 왕국……이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는 말하자면 자신들이 구원 받는 족보였던 것이지요.

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 구원 받아 마땅한 거룩한 하나님의 선택 받은 민족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민족들은요? 그들이 이방인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여호와 하나님을 알긴 알았습니다. 들은 적은 있었어요. 다만 그들은 하나님을 올바로 믿지 않고, 우상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서 말씀은 무엇이냐 하면, 여기서는 더 나아가서 유대인도 이방인도 없습니다. 완전히 모르는 땅에 가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21절입니다.

로마서 10장 21절
“21.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21.そして、イスラエルのことをこう言っています。「わたしは終日、手を差し伸べた。不従順で反抗する民に対して。」


이는 이사야 65장 2절에 있는 말씀인데, 3절까지 함께 보시겠습니다.

이사야 65장 2절~3절
“2.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3.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

わたしは終日、頑なな民に手を差し伸べた。自分の考えのまま、良くない道を歩む者たちに。
この民はいつもわたしに逆らってわたしの怒りを引き起こす。園の中でいけにえを献げ、れんがの上で犠牲を供え、

신학자들에 의하면 3절에 있는 내용은 우상숭배를 하는 모습을 나타낸 표현이라고 하는데, 이는 이방인이 아닌 이스라엘 자손들이 우상숭배를 하는 죄를 범한다는 내용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죄를 짓는 이스라엘 자손들도 버리지 않으시고, 언제라도 돌아오도록 손을 벌렸다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3장 37절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エルサレム、エルサレム。預言者たちを殺し、自分に遣わされた人たちを石で打つ者よ。わたしは何度、めんどりがひなを翼の下に集めるように、おまえの子らを集めようとしたことか。それなのに、おまえたちはそれを望まなかった。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해도 그들은 죄를 짓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그들을 회개하게 하고 바른 길로 인도하려는 선지자들을 죽이고 돌로 쳤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내미시는 구원의 손길을 자신들의 고집을 내세워가면서 그 하나님의 손길을 뿌리쳐 왔었던 것입니다.

자, 여기까지가 이 세 구절을 간략하게 보아온 내용입니다.

이번에도 이 순서를 조금 바꾸면 더 알기 쉬울 것 같습니다.


먼저 21절, 그 다음에 19절과 20절을 보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로마서 10장 21절, 19절, 20절
“21.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19.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20.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말하였고”

21.そして、イスラエルのことをこう言っています。「わたしは終日、手を差し伸べた。不従順で反抗する民に対して。」
19.では、私は尋ねます。イスラエルは知らなかったのでしょうか。まず、モーセがこう言っています。「わたしは、民でない者たちであなたがたのねたみを引き起こし、愚かな国民であなたがたの怒りを燃えさせる。」
20.また、イザヤは大胆にもこう言っています。「わたしを探さなかった者たちにわたしは見出され、わたしを尋ねなかった者たちに自分を現した。」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말을 듣지 않는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고 구원하시려고 종일 그들을 불렀다.


그래도 결국 하나님의 부름을 거절하였기 때문에 이미 모세가 예언한 바와 같이 너희들이 무시하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을 것이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한 사람들이 오히려 하나님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제가 이스라엘 자손과 이방인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 드렸습니까. 이스라엘 자손, 유대인은 육적인 유대인이 아니라 영적인 유대인으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은 곧 믿음이 있는 사람이요, 이방인은 믿음이 아직 없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야 성경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 어떻습니까. 이미 믿음이 있는 사람은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교회도 오래 다녔으니까, 모태신자니까, 대대로 예수님을 믿고 직분도 받고 봉사도 많이 해 왔으니까 나는 분명히 구원 받을 거야. 천국에 갈 수 있을 거야. 다른 사람은 못 가더라도 나는 틀림없이 천국에 갈 거야. 혹시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성경에 보면 그와 같은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누구였다고요? 그것은 다름 아닌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10절~14절
“10.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二人の人が祈るために宮に上って行った。一人はパリサイ人で、もう一人は取税人であった。
パリサイ人は立って、心の中でこんな祈りをした。『神よ。私がほかの人たちのように、奪い取る者、不正な者、姦淫する者でないこと、あるいは、この取税人のようでないことを感謝します。
私は週に二度断食し、自分が得ているすべてのものから、十分の一を献げております。』
一方、取税人は遠く離れて立ち、目を天に向けようともせず、自分の胸をたたいて言った。『神様、罪人の私をあわれんでください。』
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が、義と認められて家に帰ったのは、あのパリサイ人ではなく、この人です。だれでも自分を高くする者は低くされ、自分を低くする者は高くされるのです。」


이 말씀은 그 당시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바리새인이라고 하면 누구보다도 믿음이 좋고 구원 받을 1순위인 사람들이요, 세리라고 하면 로마의 앞잡이, 죄인의 대명사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믿음이 좋아 보이는 저 바리새인보다 회개하는 죄인 세리를 하나님께서는 더욱 높이셨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1장 31절 후반부~32절
“31.……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32.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取税人たちや遊女たちが、あなたがたより先に神の国に入ります。
なぜなら、ヨハネがあなたがたのところに来て義の道を示したのに、あなたがたは信じず、取税人たちや遊女たちは信じたからです。あなたがたはそれを見ても、後で思い直して信じることをしませんでした。


이 말씀은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이에요. 당시 종교지도자로서 목에 힘깨나 주는 그들에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믿지 않은 너희들보다 하나님을 믿은 죄인들이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시 바리새인들은 무엇을 그리도 잘못했길래 예수님으로부터 이처럼 꾸중을 들었던 것일까요.

예수님은 반복해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만 보시겠습니다.

마태복음 24장 42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ですから、目を覚ましていなさい。あなたがたの主が来られるのがいつの日なのか、あなたがたは知らないのですから。

마태복음 25장 13절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ですから、目を覚ましていなさい。その日、その時をあなたがたは知らないのですから。


마태복음 26장 38절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そのとき、イエスは彼らに言われた。「わたしは悲しみのあまり死ぬほどです。ここにいて、わたしと一緒に目を覚ましていなさ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반복적으로 말씀하시기를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우리 한 번 생각해봅시다. 깨어 있는 사람과 깨어 있지 않는 사람을 비교해본다면, 깨어 있는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고, 잠자는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없습니까.

대표적인 것이 바로 눈으로 앞을 보는 것입니다. 깨어 있는 사람은 눈을 뜨고 앞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잠자고 있는 사람은 눈을 뜨고 앞을 볼 수가 없어요.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9장 39절~41절
“39.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40.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そこで、イエスは言われた。「わたしはさばきのためにこの世に来ました。目の見えない者が見えるようになり、見える者が盲目となるためです。」
パリサイ人の中でイエスとともにいた者たちが、このことを聞いて、イエスに言った。「私たちも盲目なのですか。」
イエスは彼らに言われた。「もしあなたがたが盲目であったなら、あなたがたに罪はなかったでしょう。しかし、今、『私たちは見える』と言っているのですから、あなたがたの罪は残ります。」

이 말씀 흥미롭지 않습니까. 차라리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는데 본다고 하니 죄가 그대로 있다고 말씀하세요.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은 그나마 낫습니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뭐냐 하면, 자기가 잠을 자고 있으면서 안 자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더 무섭지 않습니까.

술을 마시고 난 다음에, 아, 나 많이 취했어. 더 마시면 안 될 것 같아. 그러면 차라리 낫지요. 빨리 집에 가야 되겠네. 택시를 부르거나, 차를 가지고 왔다면, 어떻게 해요? 예, 대리를 불러서 어서 집에 가려고 하겠지요.

그런데 많이 마시고 난 다음에 뭐래요? 자기는 괜찮대요. 안 취했대요. 택시도 필요 없고 대리도 필요 없대요. 그러면서 뭐래요? 운전할 수 있대요. 이러면 정말 심각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이 순간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아니, 지금 예배 시간에 졸고 있는 분들을 탓하는 게 아니에요. 예배시간 때 조는 것은 죄가 아니에요. 괜찮아요.

다만 문제는 뭐냐 하면 영적으로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누가 영적으로 잠을 자고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 때 바리새인들이 잠을 자고 있었다면, 지금은 자신들이 믿음 좋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인들이 잠을 자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괜찮아. 틀림없이 구원 받을 거니까 걱정하지 않아. 내가 누구누구 같은 죄인들보다 훨씬 낫잖아? 저 사람들은 벌 받아서 지옥에 가겠지만, 나는 분명히 천국에 갈 거야……


이렇게 되면 그 확신은 교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어쩌면 이렇게 말씀하실 지도 모릅니다. 이봐, 그 사람들이 너보다 먼저 천국에 들어갈 거야.

만에 하나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쩌시겠습니까.

우리는 깨어나야 합니다. 어서 빨리 이 교만이라고 하는 잠에서 깨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깨어날 수 있을까요. 성경에 보면 깨어나는 방법이 있습니다.

골로새서 4장 2절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たゆみなく祈りなさい。感謝をもって祈りつつ、目を覚ましていなさい。

기도는 주님과의 교재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깨어 있으라고요? 그렇습니다.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는 잠을 자면 말을 못한다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아니요. 잠을 자면서도 말은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뭐라고 해요? 그렇죠. 잠꼬대입니다.

우리는 잠꼬대를 참 조심해야 합니다.

이는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만, 1990년에 결혼한 부부가 이는데, 남편이 자면서 잠꼬대를 했대요. 그런데, 반복적으로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 이름을 부르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애정표현을 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해요. 그래서 1996년, 결혼한지 7년 만에 참다못해서 아내가 이혼소송을 냈는데, 이 이혼 청구가 받아들여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잠들고 있을 때에는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옵니까. 그것은 바로 우상숭배가 나옵니다. 불평이 나옵니다. 불만이 나옵니다. 이웃에 대한 비난이 나오고 험담이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19장 9절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御使いは私に、「子羊の婚宴に招かれている者たちは幸いだ、と書き記しなさい」と言い、また「これらは神の真実なことばである」と言った。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얼마나 사랑하시면 질투까지 하신다고 하잖아요.

구원 받은 우리가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드리는 잔치를 혼인잔치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요. 우리는 모두 부족하기 때문에 한 두 번은 그럴 수 있다고 쳐요. 그러나 반복적으로 우리 입에서 그런 잠꼬대가 나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더 이상은 도저히 안 되겠다. 우리는 이제 이혼해야 되겠다. 만약에 이처럼 예수님이 우리더러 이혼신고서를 내미시면 어쩌시겠습니까.

우리 입에 주님이나 이웃에 대한 불평이 있습니까. 우상 숭배가 나오고 불만이 나옵니까. 비난이 막 쏟아져 나옵니까. 험담이 나옵니까.

교회에 아무리 다니고 직분을 많이 받고, 봉사를 아무리 많이 했다 하더라도, 만약에 그런 증상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분명 우리가 잠을 자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말도 안 되는 잠꼬대가 입에서 줄줄 새고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우리는 깨어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깨어난다고요? 그렇습니다. 감사로 깨어날 수 있습니다.

좋은 일이 있어도 감사, 안 좋은 일이 있으면 더 좋은 일로 채워 주실 것을 믿으니 감사. 내가 잘 되면 감사, 이웃이 잘 되면 더욱 감사……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는 것,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감사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잠을 자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깨어나는 것은 아무나 할 수가 없습니다.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평 불만은 안 배워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도 우상숭배를 할 줄 압니다.

그러나 감사는 배워야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감사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영적인 잠에서 벗어나, 감사함으로 깨어나서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거듭남으로 말미암아, 주님께 기쁨을 드리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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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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