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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9회 믿음 성장의 출발점
2019년 9월 22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5장 12절~14절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ヘブル人への手紙 5章 12節~14節
“あなたがたは、年数 からすれば教師になっ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にもかかわらず、神が告げたことばの初歩を、もう一度だれかに教えてもらう必要があります。あなたがたは固い食物ではなく、乳が必要になっています。
乳を飲んでいる者はみな、義の教えに通じてはいません。幼子なのです。
固い食物は、善と悪を見分ける感覚を経験によって訓練された大人のも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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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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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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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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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믿음 성장의 출발점” 信仰成長の出発点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 인생은 어떻게 됩니까. 만사형통? 혹시 우리 이웃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복음을 전할 때,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 인생에 전혀 어려움이 없게 되고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100% 다 이루어진다. 이렇게 전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실제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정말로 모든 것이 만사형통, 우리가 원하는 대로 100% 다 이루어졌나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때로는 어려운 일도 있고, 때로는 괴로울 때도 있지요.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대부분 믿음이 있으신 분들은 기도를 할 것입니다. 사업에 문제가 있을 때, 진로에 문제가 있을 때, 인간관계나 건강상의 문제가 있을 때 우리는 주님께 기도를 드리지요.

기도를 드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냥 기도를 드리는 일이 착한 일이기 때문에요? 잘 모르겠지만 왠지 마음이 편해져서요?

어떠한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고 주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이지요. 제가 지금 이러이러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이러이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해결해주세요. 이 어려움을, 이 고통을 제게서 물리쳐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기도를 드리는 이유는 단순히 그와 같은 문제가 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내가 주님께 기도를 드리면, 주님께서는 응답을 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주님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와 같은 믿음을 갖고 기도를 드리면 어떻습니까.

내가 드린 기도에 대해서 응답을 해주셨어요. 어려움이 있었는데 기도를 드렸더니 어려움이 해소되었어요. 건강이 회복되었어요. 문제가 해결 되었어요. 이렇게 된다면 정말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감사와 찬송이 넘쳐날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도를 해도 자신이 원하는 응답을 받지 못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한국에서 옛날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쑤시개로 코끼리를 죽이는 세 가지 방법이라는 말씀을 혹시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작은 이쑤시개로 큰 코끼리를 죽이는 방법, 생각만 해도 어려울 것 같지만, 그 방법이 한 가지가 아니라 세 가지나 있다고 하니 놀랍지 않습니까.

오늘은 이 방법만 알고 돌아가도 남는 장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 이쑤시개로 코끼리를 죽이는 첫 번째 방법, 그것은 이쑤시개로 코끼리를 콕 하고 한 번 찌르고 죽을 때까지 기다린다.

두 번째 방법은, 코끼리가 죽기 바로 직전에 딱 한 번 찌른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죽을 때까지 찌른다.

예, 정말 뭐 추억의 우스개 소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렇다면 우리가 기도 응답을 받기 위해서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뭐 응답을 언제 해주실지 모르는 상황에서, 응답해주시기 직전에 딱 한 번 기도를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그러면 기도를 딱 한 번 하고 이제 응답해주실 때까지 기다려요?

제가 생각하기에 대체적으로 믿음이 좋은 분들을 보면 주로 세 번째 방법을 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게 뭐겠습니까. 그렇죠. 응답을 해주실 때까지 기도를 하는 것이죠. 우리 한국 사람들을 보면 기도를 얼마나 열심히 하십니까. 매주 주일에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는 것 외에도 철야기도 수요예배, 새벽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무슨 다니엘 기도라는 것도 있지요? 그리고 또 그것도 모자라서 기도원에 올라가서 금식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금식도 3일 금식, 5일 금식, 뭐 경우에 따라서는 40일 금식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다고 하니 참으로 놀라울 따름입니다. 저도 예전에 금식도 해보고 그랬지요. 괜히 또 며칠까지 금식을 해 보았다고 하고 말씀을 드리면 교만도 될 것 같아서 자세한 말씀을 드리지는 않겠습니다만, 40일까지는 한참 못 미치더라도 그래도 금식기도는 몇 번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 참 배가 많이 고프더라구요.

자. 좋아요. 그렇게 기도를 열심히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100%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응답을 받을 수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겠지요.

그러면 그렇게 열심히 기도를 드렸는데, 금식기도도 해가면서 새벽기도 철야기도까지 드렸는데, 그래도 응답을 안 해주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성경에 보면 상당히 쿨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좋았습니다만, 그의 행동이 모두 바람직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결점이 바로 밧세바와의 일이었지요.

밧세바는 다윗의 충신 우리아의 아내였습니다. 말하자면 자기 부하의 아내였던 것이지요. 우리아는 지금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사무엘하 11장에 의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 왕은 그 자기 부하의 아내인 밧세바와 잠자리를 함께 합니다.

그런데 이 일로 인하여 밧세바는 아이를 갖게 되었지요. 이를 숨기기 위해 다윗 왕은 한 계책을 생각해냅니다. 전쟁터에 나가 있는 우리아를 잠시 예루살렘으로 불러들인 것이지요. 다윗 생각에는 그가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가면 아내와 잠자리를 함께 할 것이요, 그렇게 되면 밧세바가 가진 아기는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 우리아의 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당시는 지금처럼 무슨 DNA 검사가 있는 것도 아니니, 어쩌면 성공할 수도 있는 작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껏 예루살렘으로 불러들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아가 집으로 가지 않고, 바깥에서 자기 부하들과 함께 잠을 잡니다. 그래서 답답해진 다윗이 우리아를 불러서, 아니, 넌 왜 집에 안 들어가고 바깥에서 네 부하들과 잠을 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다윗의 부하 우리아 장군의 말이 기가 막힙니다.

사무엘하 11장 11절
“우리아가 다윗에게 아뢰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 하니라”

ウリヤはダビデに言った。「神の箱も、イスラエルも、ユダも仮庵 に住み、私の主人ヨアブも、私の主人の家来たちも戦場で野営しています。それなのに、私が家に帰り、食べたり飲んだりして、妻と寝るという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か。あなたの前に、あなたのたましいの前に誓います。私は決してそのようなことをいたしません。」


지금 우리 군대가 전쟁 중에 있고, 내 상관과 부하가 거기서 목숨을 건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어찌 내가 혼자 집에 가서 먹고 마시고, 편안한 잠자리를 잘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이처럼 놀라운 충신을 보았습니까.

자, 이 말을 들은 다윗. 자신의 작전이 실패한 줄 알게 된 다윗은, 이제 자신의 잘못을 숨기기 위해, 전쟁터에서 우리아를 일부러 죽이라고 명령을 합니다. 참 나쁜 사람이에요.

이 작전은 안타깝게도 성공을 합니다. 우리아는 아군이 일부러 쳐놓은 덫에 걸리게 되어 마침내 전쟁터에서 전사를 하게 됩니다. 그 이후 다윗 왕은 밧세바를 정식으로 아내로 맞이하지요.

하지만 이 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이 일에 대하여 다윗을 꾸짖으십니다. 그리고 이번에 태어날 아이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여기서 조금 길지만 잠시 사무엘하 12장 15절~23절까지를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사무엘하 12장 15절~23절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다윗이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그 곁에 서서 다윗을 땅에서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과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이레 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그러나 다윗의 신하들이 아이가 죽은 것을 왕에게 아뢰기를 두려워하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 우리가 그에게 말하여도 왕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셨나니 어떻게 그 아이가 죽은 것을 그에게 아뢸 수 있으랴 왕이 상심하시리로다 함이라

다윗이 그의 신하들이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죽은 줄을 다윗이 깨닫고 그의 신하들에게 묻되 아이가 죽었느냐 하니 대답하되 죽었나이다 하는지라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왕궁으로 돌아와 명령하여 음식을 그 앞에 차리게 하고 먹은지라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그를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이 일이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第二サムエル記 12章 15節~23節
ナタンは自分の家へ帰って行った。主は、ウリヤの妻がダビデに産んだ子を打たれたので、その子は病気になった。
ダビデはその子のために神に願い求めた。ダビデは断食をして引きこもり、一晩中、地に伏(ふ)していた。
彼の家の長老たちは彼のそばに立って、彼を地から起こそうとしたが、ダビデは起きようともせず、彼らと一緒に食事をとろうともしなかった。
七日目 にその子は死んだ。ダビデの家来たちは、その子が死んだことをダビデに告げるのを恐れた。彼らは、「聞きなさい。王はあの子が生きているとき、われわれが話しても、言うことを聞いてくださらなかった。どうして、あの子どもが死んだことを王に言えるだろうか。王は何か悪いことをされるかもしれない」と言ったのである。
ダビデは、家来たちが小声で話し合っているのを見て、子が死んだことを悟った。ダビデは家来たちに言った。「あの子は死んだのか。」彼らは言った。「亡くなられました。」
ダビデは地から起き上がり、からだを洗って身に油を塗り、衣を替えて主の家に入り、礼拝をした。そして自分の家に帰り、食事の用意をさせて食事をとった。
家来たちは彼に言った。「あなたのなさったこのことは、いったいどういうことですか。お子様が生きておられるときは断食をして泣かれたのに、お子様が亡くなられると、起き上がり食事をされるとは。」
ダビデは言った。「あの子がまだ生きているときに私が断食をして泣いたのは、もしかすると主が私をあわれんでくださり、あの子が生きるかもしれない、と思ったからだ。
しかし今、あの子は死んでしまった。私はなぜ、断食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か。あの子をもう一度、呼び戻せるだろうか。私があの子のところに行くことはあっても、あの子は私のところに戻っては 来ない。」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 아이를 살려달라고 기도를 드립니다. 기도 내용은 우리도 짐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에게는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그 아이를 살려주시옵소서……하고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7일 동안 금식하면서 밤새도록 기도를 드렸는데, 결국 아이가 죽고 말았다는 것이지요.

이럴 때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하나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제가 이렇게 간절히 금식까지 해가면서 철야까지 해가면서 기도를 드렸는데, 왜 하나님은 내 기도를 안 들어주십니까.

하나님이 계시긴 한 걸까? 하나님은 안 계실지도 몰라. 성경? 아이구, 이거 다 거짓말이야……이렇게 낙담을 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다윗은 어땠다고 합니까. 그래. 내가 이렇게 기도를 드렸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들어주지 않으셨어. 그러면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여야지…… 그러고는 툭툭 털고 일어나서 밥을 먹었다는 것이지요.

다윗은 참 강했습니다. 무엇이 강했습니까. 그렇습니다. 믿음이 강했습니다.

그 아이가 태어났다면 어땠겠습니까. 그 아이는 아직 다윗이 정식으로 아내로 맞이하기 전, 우리아의 아내일 때 갖게 된 아이입니다. 아무리 비밀로 한다 하더라도 궁에서는 왕이 충신 우리아의 아내와 부정한 관계를 맺었고, 그 결과 갖게 된 아이라는 사실은 누구나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태어나서 자랐다고 한다면, 다윗이나 밧세바에게는 물론이거니와 그 아이에게 있어서도 대단히 불행한 삶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물론 이 부분은 제 추측입니다만, 결국 다윗의 그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죽고 말았는데, 다윗은 이를 너무나도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던 다윗은 밧세바를 통하여, 마침내 솔로몬이라는 자신의 진정한 후계자를 얻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약에 바울은 어떻습니까.

고린도후서 12장 7절~10절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第二コリント人への手紙 12章 7節~10節
“その啓示のすばらしさのため高慢にならないように、私は肉体に一つのとげを与えられました。それは私が高慢にならないように、私を打つためのサタンの使いです。
この使いについて、私から去らせてくださるようにと、私は三度、主に願いました。
しかし主は、「わたしの恵みはあなたに十分である。わたしの力は弱さのうちに完全に現れるからである」と言われました。ですから私は、キリストの力 が私をおおうために、むしろ大いに喜んで自分の弱さを誇りましょう。
ですから私は、キリストのゆえに、弱さ、侮辱、苦悩、迫害、困難を喜んでいます。というのは、私が弱いときにこそ、私は強いからです。”

이 기록에 대해서 신학자들은, 정확히 어떠한 질병인지는 모르지만 당시 바울은 어떤 건강상의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래서 이를 치료해달라고 기도를 세 번이나 드렸더니, 주님이 이를 거절하셨는데, 오히려 이로 인하여 크게 기뻐했다고 합니다.

이 또한 참으로 놀라운 믿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습은 어떻습니까.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는데, 정말 다른 건 몰라도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주셔야 했는데, 아이구 기도를 들여주지 않으셨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때로는 낙담을 합니다.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무슨, 내 기도 하나도 들어주지 않으면서 뭐가 전능하다는 거야. 내 기도가 혹시 안 들리신 것 아닌가? 좀 더 큰 소리로 기도를 드렸어야 하나? 뭐 그러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다 하게 됩니다.

하지만 성경은 어떻게 기록합니까.


이사야 59장 1절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イザヤ書 59章 1節
見よ。主の手が短くて救えないのではない。その耳が遠くて聞こえないのではない。

하나님은 모든 기도를 다 듣고 계신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기도를 응답해주지 않으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한탄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고린도전서 3장 1절~2절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兄弟たち。私はあなたがたに、御霊に属する人に対するようには語ることができずに、肉に属する人、キリストにある幼子に対するように語りました。
私はあなたがたには乳を飲ませ、固い食物を与えませんでした。あなたがたには、まだ無理だったからです。実は、今でもまだ無理なのです。

이 말씀이 무엇을 뜻합니까. 내가 너희들을 믿음 안에서 어른으로 대할 수가 없어. 너는 아직 어린애야. 너는 아직 밥을 먹을 수가 없고 젖먹이 밖에는 안 돼……. 이러는 것이지요.


여러분, 아이들이 누워서, 이거 줘. 저거 줘…….라고 하면 어떻습니까. 물론 갓난아이들은 충분히 그럴만하지요. 아기들의 발바닥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어른 들의 발바닥은 평평하지만 갓난아기의 발바닥은 볼록합니다. 그리고 근육도 제대로 발달하지 못해서 걸어 다닐래야 걸어 다닐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이것도 갖다 주고 저것도 갖다 줍니다. 혼자서 걸어 다닐 수도 없으니, 업어주기도 하고 안아 주기도 하지요.

그리고 어른들의 배를 엑스레이로 찍어보면 위장이 있지요. 이렇게 볼록한 위장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형태로 되어 있으니까 음식을 먹으면 그 공간에서 잠시 음식물을 머물게 해서 소화액으로 부드럽게 한 후에 내려 보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갓난아기의 배를 엑스레이로 찍어보면 위장이 없어요. 그냥 소장이나 대장처럼 한 줄기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단단한 것을 먹이면, 아직 이빨도 제대로 없으니까 꼭꼭 씹을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위장도 그렇게 생겼기 때문에 시간을 들여서 부드럽게 할 수가 없으니까 배탈이 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냐 하면, 처음에는 젖을 먹이거나 하고, 조금 지난다 하더라도 부드러운 이유식을 먹여야 하는 것입니다.

부드러운 음식을 먹으면 속은 편하지요. 굳이 힘들여서 소화를 시킬 필요도 없으니 얼마나 편합니까. 하지만 언제까지나 젖만 먹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내장이 약해집니다. 이제 젖이나 이유식이 아니라 제대로 된 단단한 음식을 먹고, 영양분도 충분히 섭취해야 하고 하는데도, 언제까지나 젖이나 죽만 먹고 있다거나, 아니면 이제 근육도 생기고 얼마든지 걸을 수 있을 만큼 성장했는데, 일어설 생각도 안 하고, 여전히 엄마, 이것 줘, 저것 줘……그리고 업혀 다니려고 한다는 생각을 해보십시오.

이렇게 되면 아무리 건강한 몸으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올바로 성장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이거 주세요, 하면 이걸 주시고, 주님, 저걸 주세요, 하면 저걸 주신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순간적으로는 편하고 감사하게 느껴질 지는 몰라도 그런 상태로라면 믿음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걸음마 단계의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 분들에게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다시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히브리서 5장 12절~14절
“12.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ヘブル人への手紙 5章 12節~14節
あなたがたは、年数 からすれば教師になっ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にもかかわらず、神が告げたことばの初歩を、もう一度だれかに教えてもらう必要があります。あなたがたは固い食物ではなく、乳が必要になっています。
乳を飲んでいる者はみな、義の教えに通じてはいません。幼子なのです。
固い食物は、善と悪を見分ける感覚を経験によって訓練された大人のものです。

이봐. 니가 지금 교회 다닌 지가 얼마나 됐어. 이제 단단한 음식도 먹고 그러면서 교회도 섬기고 이웃도 섬기고 그래야 할 거 아니야. 그런데 아직까지 젖먹이 아이처럼 나약한 믿음을 갖고 있으면 어떡하니……하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믿음의 성장은 언제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기도의 응답을 받았을 때요? 아니요. 오히려 기도 응답을 받지 못했을 때부터 인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때가 바로 믿음 성장에 있어서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しかし、私たちがまだ罪人であったとき、キリストが私たちのために死なれたことによって、神は私たちに対するご自分の愛を明らかにしておられます。

여러분, 우리가 주님 안에서 얼마나 귀한 존재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를 흘리시면서 까지 우리를 사랑해주셨던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귀하게 여겨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그 치욕을 당하시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해주셨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기도, 그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원하시는 우리의 마음을 주님은 분명히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를 물리치신다는 것은 주님께서 사랑해주시는 우리를 위해 더욱 더 큰 축복이 예비되어 있다는 것을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한일서 4장 19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요한일서 4장 19절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第一ヨハネの手紙 4章 19節
私たちは愛しています。神がまず私たちを愛してくださったからです。

우리 모두 우리가 사랑하기보다도 먼저 우리를 사랑해주신 예수님을 믿고, 우리가 사랑하는 크기보다도 훨씬 더 큰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예수님을 믿고, 그 믿음이 성장하는 출발점, 믿음 성장의 갈림길에 섰을 때, 좌절하거나 낙담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더 큰 신뢰와 감사를 주님께 돌림으로 말미암아, 위대한 믿음의 용사로 성장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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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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