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땅 끝으로 향하는 믿음” 地の果てへと向かう信仰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이 있는 사도행전은 신약성경 중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제외한 대부분의 신약성경은 서신, 즉 편지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에는 창세기나 출애굽기, 사사기, 열왕기 등을
비롯하여 좀 스토리가 있는 책들이 많기 때문에 그나마 덜 지루한 면이 있습니다만, 신약은 대부분이 그와 같은 편지 형식이기 때문에 좀
읽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복음서를 제외하면 유일하게 스토리가 있는, 신학적으로는 신약에서 유일한 역사서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사도행전입니다.
그 뿐만이 아니지요. 만약에 사도행전이 없었더라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복음이 어떻게 전파되기 시작하였는지를 우리는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행전이 있는 덕분에 말씀 전파, 복음 전파의 시작을, 그리고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쓴 저자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합니다만, 대체적으로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가 사도행전 저자라고 하는 견해가 많은 것
같습니다.
사복음서 중에서 사실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셨다고 하는 기록은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있습니다만, 그런데 사실 좀 찝찝한 게 성경을
자세히 보시면 그 부분,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셨다고 하는 그 부분이 괄호 안에 적혀 있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현재
성경은 원본이 발견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은 모두 다 사본을 바탕으로 번역이 된 책들입니다. 그런데 이 괄호 안에
적혀 있다는 것은 어떤 사본에는 이 부분이 있는데, 또 어떤 사본에는 이 부분이 빠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신앙을 고백하는 사도신경에는 “하늘에 오르사” 天に昇り 라는 부분이 있습니다만, 사도신경은 성경 본문에 나오는 기록이
아닙니다. 오랜 교회 역사 속에서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완성된 귀한 신앙고백이긴 합니다만 성경에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영화를 보면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이 아니라 점점점점 눈앞에서 사라지는 식으로 묘사한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는 모습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번 볼까요?
사도행전 1장 8절~11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しかし、聖霊があなたがたの上に臨むとき、あなたがたは力
を受けます。そして、エルサレム、ユダヤとサマリアの全土、さらに地の果てまで、わたしの証人となります。」
こう言ってから、イエスは使徒たちが見ている間に上げられた。そして雲がイエスを包み、彼らの目には見えなくなった。
イエスが上って行かれるとき、使徒たちは天を見つめていた。すると見よ、白い衣を着た二人の人が、彼らのそばに立っていた。
そしてこう言った。「ガリラヤの人たち、どうして天を見上
げて立っているのですか。あなたがたを離れて天に上げられたこのイエスは、天に上って行くのをあなたがたが見たのと同じ有様で、またおいでになります。」
정말 참으로 생생 活き活き 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괄호도 없지요. 이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려지셨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인생에 있어서 마지막 말을 남기는 것을 “유언”이라고 합니다. 이는 일반적인 그런 말들과는 다르지요. 법적으로도 적법한 절차에
맞게 작성된 유언장은 대단히 큰 효력을 가집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말씀하신 것은 또 다른 유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말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말씀을 하셨을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 말씀이 무엇이냐 하면, 두 구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마가복음부터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それから、イエスは彼らに言われた。「全世界に出て行き、すべての造られた者に福音を宣べ伝えなさい。
그리고 오늘 본문말씀,
사도행전 1장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しかし、聖霊があなたがたの上に臨むとき、あなたがたは力
を受けます。そして、エルサレム、ユダヤとサマリアの全土、さらに地の果てまで、わたしの証人となります。」
이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남겨놓으신 마지막 말씀이셨습니다. 그만큼 이 말씀에 담긴 내용이 무겁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오늘은 이 말씀에 담긴 진정한 뜻을 깨닫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고 믿음과 말씀과 행함으로 말미암아 주님께
기쁨과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살펴본 마가복음 16장 15절에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全世界に出て行き、すべての造られた者に”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인 사도행전 1장 8절에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エルサレム、ユダヤとサマリアの全土、さらに地の果てまで”라는 말씀이 나오지요.
우리는 이와 갈은 말씀을 접할 때 보면, 그래, 여기저기 다니면서 전도하라는 말씀이겠지……라고 쉽게 넘어가버릴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사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이스라엘 민족은 말하자면 유대교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유대교는 이방인한테 전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선택 받은 이스라엘 민족만의 특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과
이방인들을 철저하게 구분하였고, 이방인들과는 교류를 일체 하지 않았으며, 하물며 말도 하지 않았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은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全世界に出て行き、すべての造られた者に” ,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エルサレム、ユダヤとサマリアの全土、さらに地の果てまで”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이냐 하면 바로 “이방인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는 제 추측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위해 전도자를 세우셨습니다. 이는 다름 아닌 사도 바울입니다.
주님은 바울을 가리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 9장 15절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しかし、主はアナニアに言われた。「行きなさい。あの人はわたしの名を、異邦人、王たち、イスラエルの子らの前に運ぶ、わたしの選びの器です。
이 사명은 바울 자신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3장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사도행전 13장 47절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主が私たちに、こう命じておられるからです。『わたしはあなたを異邦人の光とし、地の果てにまで救いをもたらす者とする。』」
이렇게 해서 이제 복음이 이스라엘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동안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지 않았던 복음이 왜 갑자기 이 시점에 전파되기 시작했던 것일까요. 왜 주님께서는 바로 지금 이
시기에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하고 계셨던 것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이제 신앙이 완성되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구약시대 때의 신앙은, 사람의 아기로 본다면 태어나기 전인 뱃속에 있는
아기입니다. 아기가 뱃속에 있다면 예정된 기일까지는 반드시 배 안에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너무 일찍 태어난다고 하면 이는 큰 일이
날 수가 있습니다. 아직 미완성인 상태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때가 차면 어떻습니까. 이제는 반대로 아이가 태어나야 할 날짜가 많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안 태어나요. 이것도 큰
문제이지요. 아이는 예정된 시기에 반드시 출산해야지만 산모도 아이도 건강을 유지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에 있어서는 언제가 완성일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의
모든 죄를 해결하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러면 이제 끝인가요? 아닙니다.
성령님이 오셔야 합니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제 성령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신앙은 비로소 완성되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인 성경도 완성 되었습니다. 어떤 악한 세력들, 또는 무지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들먹이며 예수님을 들먹이며, 선지자를
들먹이며 성경 외에 다른 복음을 말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거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7절~8절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ほかの福音といっても、もう一つ別に福音があるわけではありません。あなたがたを動揺させて、キリストの福音を変えてしまおうとする者たちがいるだけです。
しかし、私たちであれ天の御使いであれ、もし私たちがあなたがたに宣べ伝えた福音に反することを、福音として宣べ伝えるなら、そのような者はのろわれるべきです。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기를 무슨 하나님이 보낸 사도다 예수님이 보낸 사도다 라고 하면서 성경을 부정하고 자신의 생각을
주입시키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고린도후서 11장 13절~15절
“13.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こういう者たちは偽使徒、人を欺く働き人であり、キリストの使徒に変装しているのです。
しかし、驚くには及びません。サタンでさえ光の御使いに変装します。
ですから、サタンのしもべどもが義のしもべに変装したとしても、大したことではありません。彼らの最後は、その行いにふさわしいものとなるでしょう。
이미 우리가 받은 이 성경 외에 더 이상의 복음은 없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성경 말씀이 완전하고도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복음이신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께서 오심으로 인하여 이제 신앙은 완성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제 복음이
이스라엘을 넘어 이방인들에게로 전파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놀라운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마침내 21세기를 살아가는, 육신적으로는 이방인인 우리까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영접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일본의 어떤 텔레비전을 보면 한 연예인의 조상들을 하나하나 찾아나가면서 그 동안 본인도 몰랐던 자기 가문의 역사를 알게 되는 그런
방송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수 있게 된 그 믿음의 족보를 하나하나 거슬러
올라가면, 어쩌면 2천년 전 예수님의 제자 중 누군가, 또는 바울한테까지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말씀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여 이방인들에게 말씀이 전해지고 몇 천 년 뒤에 바로 우리한테까지 그 복음의 계보가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0년 전인 1969년 7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명언이 탄생됩니다. 그 말을 했던 주인공은 1969년 7월
20일, 세계에서 최초로 달 위에 발을 내딛는 닐 암스트롱이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 위에 발자국을 남긴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이다”
これは一人の人間にとっては小さな一歩だが、人類にとっては偉大な飛躍である。
우리에게 복음이 전달되기까지는 예수님 당시 누군가로부터 시작이 있었을 것입니다. 수 천년 동안 그 줄기는 위기를 만났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절망과 좌절을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족보는 몇 천년 동안 끊임없이 이어지고,
마침내 나한테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지금까지 수 천 년에 걸친 위대한
신앙의 발걸음이 이어져 왔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 이 신앙의 줄기를 우리 대에서 끊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는 계속 이어져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상상 속의 족보가 아니라 믿음의 핏줄, 신앙의 핏줄인 것입니다. 이것이 끊기는 순간, 우리는 우리 만이 아닌
우리를 통해서 복음을 전해 받았어야 할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모르는 채 살아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믿음의 발걸음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의 발걸음은
계속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긴장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 이제 다음 주부터 특별전도주간입니다. 다음 주일에는 반드시 한 사람당 두 사람
이상을 데리고 오시기 바랍니다……뭐 그런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아니에요. ㅎㅎ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여러 발걸음 중 하나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가 내딛는 발걸음은 어디로 향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全世界に出て行き、すべての造られた者に”,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エルサレム、ユダヤとサマリアの全土、さらに地の果てまで” 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온 천하는 어디고 땅 끝은 어디입니까. 지금 당장 전도지를 들고 나가서 무작정 복음을 전하고 그래야만 하는 것인가요?
온 천하에 다니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물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늘어나고 교회가 늘어나고 하는 것도 되겠지요. 하지만 그것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땅을 확장한다고 하면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단순히 마구잡이로 땅을 많이 산다면 그것만으로 확장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요. 일단 땅은 땅이라 하더라도 쓸모가 있는 땅이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아무리 넓은 땅이라고는 하나 쓸모가 없다면 이는 있으나
마나 일 것입니다.
쓸모 없는 땅, 예를 들어서 잡초로 우거져 있거나 돌밭 가시나무들로 가득 찬 땅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잡초를 뽑아내고 돌이나
가시나무들을 걷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흙을 갈아서 생산성 있는 땅으로 만드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어디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누가복음 17장 20절~21절
20.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パリサイ人たちが、神の国はいつ来るのかと尋ねたとき、イエスは彼らに答えられた。「神の国は、目に見える形で来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
『見よ、ここだ』とか、『あそこだ』とか言えるようなものではありません。見なさい。神の国はあなたがたのただ中にあるのです。」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 안에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제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잡초들, 큰 바위, 작은 돌멩이,
가시나무들을 모두 제거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황무지 땅, 아무도 돌보지 않았던 땅들을 주님을 위한 옥토로 가꾸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아까 말씀 드렸던 전도를 열심히 하면 되는 건가요?
한국 교회를 보면 전도를 열심히 해야 한다, 한 번 전도 해서 오지 않으면 몇 번씩 가서라도 꼭 교회에 데려와야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많이 데려오면 전도왕이 되어서 상도 준다……뭐 그런 말들을 합니다만, 솔직히 성경 어디를 보더라도 복음을 안 받아들이는
사람한테 몇 번씩이나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라는 기록이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기도 하고, 또는 개인한테 전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특히 개인한테
반복해서 억지로 전도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까운 사람이라면 한 두 번 말씀을 전하고, 그리고 우리 삶 속에서, 참된
신앙을 보여주는 것, 참된 믿음을 보여주는 것, 참된 행함을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전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참된 믿음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이를 위해서는 먼저 내 마음 속에 있는 땅 끝에 발을 내디뎌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별로 안 해보셨습니까. 기도생활을 시작해보십시오.
성경을 아직 제대로 읽어보지 않으셨습니까. 성경을 읽어보십시오.
지금까지 한 번도 전도지를 돌리거나 예수님을 전한 적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한 번 해보십시오.
물질이나 봉사로 교회를 위해 주님을 위해 섬겨본 적이 없으십니까. 이제 시작해 보십시오.
우리의 이웃을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해본 적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실천해 보십시오.
이것이야말로 믿음의 땅 끝으로 가는 첫 발걸음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넓히는 위대한 첫 발자국이 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전도를 해도 교회에 안 나와요. 그 이유가 뭐겠습니까. 그 사람이 아무리 나를 봐도 예수님을
믿고 싶어지지 않았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만약에 정말로 그렇다면 이는 나 스스로가 먼저 주님 앞에 반성하고 먼저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 발걸음이 믿음의 땅끝으로 향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 시작할 때, 내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내 주위가
달라집니다. 그러면 누가 먼저 알아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내 주위 사람들이 먼저 알아봅니다. 내 주위 사람들이 먼저 내 변화를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전도의 열매를 거둘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은 우리더러 땅 끝까지 가라고 말씀하실까요. 그 이유는 바로 그 곳에 주님이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축복이 바로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믿음의 한 발자국, 신앙의 위대한 발자국을, 땅 끝을 향해서 내디딤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주신
모든 축복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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