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회 하나님께 복 받을 자
2017년 1월 1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1절~46절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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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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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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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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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께 복 받을 자” 神様に祝福された人たち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제 2017년입니다. 새해를 맞이한다는 것은 한 살 덕 먹는다, 아 슬프다, 이런 게 아닙니다.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감사한 일입니다. 지난 한 해에도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2016년을 넘어 2017년을 웃는 얼굴로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이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송구영신, 옛 것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뜻입니다만, 지난 한 해는 여러분께 어떠셨습니까. 축복된 한 해요? 아니면 힘들었던 한 해요?
아무리 기쁘고 보람된 한 해였다고 생각하는 분도, 잘 생각해시면 힘들었던 일도, 슬펐던 일도 그리고 아쉬웠던 일도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힘들었던 한 해였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시겠지요. 아무리 힘들었다고 해도 설마 한 번도 웃는 일이 없었겠습니까. 잘 생각해보면 그 힘든 와중에도 조금은 기쁘기도 하고, 조금은 즐겁기도 하고, 그래도 몇 번은 웃기도 했을 것입니다.
일본 한자 능력 검정 협회에서는 매년 “올해의 한자”를 일반 사람들로부터 공모해서, 가장 수가 많은 한자를 12월에 쿄토 키요미즈데라에서 붓글씨로 써서 발표하는데, 올해 2016년의 한자로 꼽힌 글자는, 전체 15만 3562표 중에서 6655표를 차지한 <쇠 금> 자가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응모자들이 이 글자를 선택한 이유도 여러가지인데, 그 이유를 보면, 지난 여름에 열린 리우 올림픽에서의 금메달 러쉬가 기억에 남았다고도 하고, 전임 동경 도지사의 정치자금문제, 그리고 일본 최대 수산시장이죠? 츠키지 시장을 토요스로 이전하는 데에 따른 돈 문제, 마지막으로 2020년 동경올림픽 개최에 있어서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비용문제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고 합니다. 그 이외에도 재미있는 것으로는, 미국 대통령으로 새로 당선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의 금발이 인상적이라서 골랐다는 사람도 있고요, 또 무슨, 애플펜~ 이라는 단조로운 노래와 춤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피코타로의 금빛 의상도 이 ‘금’이라는 한자가 선정되는 데에 한몫 했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듣고, 저도 역시 나 자신에게 있어서 올해의 한자를 뽑으라고 하면 어떤 글자를 고를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만, 저 자신의 올해의 한자를 뽑는다고 한다면, 지난 한 해에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지, 내가 올 한해에 무슨 일들을 겪었는지를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검토를 해보아야 하는데, 문제는 이런 것들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1년이라고 하면 365일, 아니, 2016년은 윤년이었으니까 366일이었습니다. 다른 해보다도 하루가 많아요. 시간으로 해보면 366일 곱하기 하루 24시간…자는 시간을 넉넉잡아 8시간으로 잡고 24에서 8시간을 빼면 깨어있는 시간은 16시간. 그렇게 해서 366일 곱하기 16시간을 해보면 무려 5,856시간이 됩니다.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죠. 당연히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겠지요. 기쁜 일도 많았고 아쉬운 일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생각해내려 하니, 몇몇 기억밖에 떠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작년에 일어났던 일들을 여기 A4 용지에 나열해 보시라고 하면 몇 개나 적으실 수 있겠어요? 자기 생각이나 감상을 빼고 일어났던 일들만 적는다고 하면 이 종이에 빼곡히 적어넣으실 수 있으세요?

오늘 본문을 살펴보시겠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1절~33절입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人の子が、その栄光を帯びて、すべての御使いたちを伴って来 るとき、人の子はその栄光の位に着きます。そして、すべての国々の民が、その御前に集められます。彼は、羊飼いが羊と山羊(やぎ)とを分けるように、彼らをより分け、羊を自分の右に、山羊を左に置きます。

이것은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에 이 땅에 다시 오셨을 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처음 오셨을 때에는 매우 초라한 모습이셨습니다만, 심판을 위해서 오실 때에는 영광된 모습으로 오실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자, 이제 심판을 시작하십니다. 사람이 사람을 재판하는 경우에는 절차도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만, 하나님이 의인과 죄인을 구분하시는 속도는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처럼 하신다고 기록합니다. 우리 일반인들도 양과 염소를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는데, 가축들을 기르는 것이 직업인 목자들한테는 얼마나 쉬운 일이겠습니까.


먼저 그렇게 구분을 해 놓으시고, 이제 오른쪽에 있는 의로운 무리들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35절~36절입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あなたがたは、わたしが空腹であったとき、わたしに食べる物を与え、わたしが渇いていたとき、わたしに飲ませ、わたしが旅人であったとき、わたしに宿 を貸し、わたしが裸のとき、わたしに着る物を与え、わたしが病気をしたとき、わたしを見舞い、わたしが牢にいたとき、わたしをたずねてくれたからです。』


이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이 사람들이 뭐라고 해요? 아, 제가 착한 일 좀 했죠 뭐. 제가 상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랬어요? 이 사람들의 말을 좀 들어볼까요?

37절~39절입니다.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すると、その正しい人たちは、答えて言います。『主よ。いつ、私たちは、あなたが空腹なのを見て、食べる物を差し上げ、渇いておられるのを見て、飲ませてあげましたか。いつ、あなたが 旅をしておられるときに、泊まらせてあげ、裸なのを見て、着る物を差し上げましたか。また、いつ、私たちは、あなたのご病気やあなたが牢 におられるのを見て、おたずねしましたか。』

이 사람들이 지금 뭐래요? 예, 기억도 못합니다. 아니, 제가 언제 주님을 돌봐드렸어요? 저 그렇게 착한 일 한 적 없어요.


이 말을 들은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40절입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すると、王は彼らに答えて言います。『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告げます。あなたがたが、これらのわたしの兄弟たち、しかも最も小さい者たちのひとりにしたのは、わたしにしたのです。』

나한테 직접 하지 않았더라도 너희들이 지극히 작은 사람들한테 해줬잖아? 뭘 해줬어요? 배고픈 사람한테 음식을 대접해줬고, 목 마른 사람한테 물을 마시게 하고, 오갈 데 없어서 난처한 사람을 영접했고, 입을 게 없는 사람한테 옷을 입게 했고, 병 들었을 때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봐줬잖아. 그게 바로 나한테 한 거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지극히 작은 자라고 하는 게 누구를 뜻하는 것일까요? 누가복음을 함께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4장 12절~14절입니다.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また、イエスは、自分を招いてくれた人にも、こう話された。「昼食や夕食のふるまいをするなら、友人、兄弟、親族、近所 の金持ちなどを呼んではいけません。でないと、今度は彼らがあなたを招いて、お返しすることになるからです。祝宴を催すばあいには、むしろ、貧しい人、不具 の人、足なえ、盲人たちを招きなさい。その人たちはお返しができないので、あなたは幸いです。義人の復活のときお返しを受けるからです。」


요즘도 텔레비전을 보면 정부인사나 정치인들이 재벌들한테서 많게는 수십억, 수 백억 돈을 받아 챙깁니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하나같이 하는 말이 “대가성이 없다”고 주장을 하지요. 아니, 그 사람들이 대가성이 없이 그 많은 돈을 정치인들한테 갖다주겠어요? 그 사람들이 실성했습니까? 당연히 그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챙기기 위해서 그렇게 앞 다투면서 상납하는 것입니다. 일반인들도 뭐 그렇잖아요. 꼭 뭐 뇌물이 아니더라도, 예를 들어서 내가 이번에 밥을 샀으면, 다음에는 저 사람이 밥을 사겠지. 내가 이번에 저 사람한테 이런 선물을 했으니까 다음에는 저 사람이 나한테 이렇게 해주겠지.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세요? 괜한 흑심을 품거나 뭘 기대하지 말고, 오히려 전혀 대가를 못받을 사람들한테 베풀라는 것입니다. 왜요?

누가복음 14장 12절 후반부 말씀이 참 흥미롭죠?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でないと、今度は彼らがあなたを招いて、お返しすることになるからです。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어떻게 될까요? 부자들 불러다가 밥을 먹이고, 부자들한테 잘해주고 그러지 말아. 괜히 그랬다가 그 사람들이 갚으면 어떡하려고 해?

참 말씀이 흥미롭죠? 사람들은 오히려 갚아줄 것을 기대하고 부자들한테 돈도 갖다바치고 하는데, 주님은 오히려, 부자들이 갚아줄까봐 하지 말고, 오히려 절대로 너희들한테 갚을 확률이 거의 없어보이는 사람들,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해서 베풀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래도 사회가 그나마 좀 발전해서 몸이 불편하신 분들도 제한적이긴 하지만 사회활동도 할 수 있고 그렇습니다만, 과거에는 완전히 불가능하다시피 했거든요. 그런 분들한테는 아무리 내가 대접을 해도 절대로 되돌려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그런 분들한테 대접하라는 거예요. 왜요? 우리가 잘 되는게 싫어서요? 지금 무슨 사람 인내심 테스트 하시는 거예요? 아니요. 그러실 리가 있겠습니까.

누가복음 14장 14절을 보십시오.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その人たちはお返しができないので、あなたは幸いです。義人の復活のときお返しを受けるからです。」


주님 말씀은 이것입니다. 부자들한테 잘해줘서 그 사람이 갚아줘봐야 별 것 있겠냐. 차라리 절대로 못 갚을 사람한테 잘해줘. 그럼 내가 나중에 더 큰 걸로 갚아줄게……이것이 바로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갚아주시는 장면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들, 절대로 대가를 기대할 수 없는 사람들한테 이 사람들은 베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다시 한 번 살펴봅시다. 이 사람들이 한 게 뭐예요.

마태복음 25장 35절~36절을 다시 한 번 볼까요?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あなたがたは、わたしが空腹であったとき、わたしに食べる物を与え、わたしが渇いていたとき、わたしに飲ませ、わたしが旅人であったとき、わたしに宿 を貸し、わたしが裸のとき、わたしに着る物を与え、わたしが病気をしたとき、わたしを見舞い、わたしが牢にいたとき、わたしをたずねてくれたからです。』

즉, 지극히 작은 자한테 먹을 것을 주었답니다. 지극히 작은 자가 목마를 때 마시게 했다고 합니다. 지극히 작은 자가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영접했다>는 것은, 그렇다고 무슨 평생 먹여 살렸다는 것이 아니라, 잠시 유숙할 곳을 마련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헐벗은 사람한테 옷을 줬고, 병 들었거나 옥에 갇혔을 때, 그 뒷일을 다 돌바준 게 아니라, 그저 찾아가봐준 것 뿐입니다.
이웃을 돌 보거나, 이웃한테 좀 도움을 주라고 하면, 대뜸 하는 말이 뭐예요? “아이, 제가 좀 형편이 안 되어서요. 제코가 석지인데요…”
오늘 이 본문 말씀을 자세히 한 번 살펴보세요. 굶주린 사람한테 부페 대접하래요? 고급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 풀코스 사주라십니까? 아니에요. 한국 같으면 설렁탕 한 그릇, 일본이면 라면 한 그릇이라도 충분합니다. 목 마른 사람한테 물 한 잔 줘도 괜찮아요. 해는 저물고 바깥은 춥고 그런데, 당장 갈 곳이 없다고 나한테 왔어요. 잠깐만 눈붙일 곳만 있게 해달라고 해요. 그런데 그 사람을 내쳐요? 그냥 들어오라고 해서 아무 방이나 따뜻하게 해서 묵도록 했습니다. 그걸로 되는 것입니다. 헐벗은 사람한테 새옷을 사입혀야 해요? 아니에요. 지금 헐벗은 사람이 새옷 헌옷 가리게 생겼어요? 지금 나한테 있는 옷을 급한 대로 입게 하면 되는 거예요. 병들었거나 옥에 갇힌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처럼 찾아가서 돌봐줘야 해요? 아니요. 그냥 몇 번 찾아가서, 용기를 주고 기도해주고 그러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무슨 큰 돈 들어가는 것이 있어요? 넉넉잡아 일본돈 몇 천엔, 한국 돈 몇 만원만 있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돈도 없어요? 그렇다면 다른 구절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42절을 보겠습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わたしの弟子だというので、この小さい者たちのひとりに、水一杯でも飲ませるなら、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告げます。その人は決して報いに漏 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

어떠십니까. 내가 돈이 없더라도, 가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더라도 냉수 한 그릇은 대접해줄 수 있지 않겠어요?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해준 것? 글쎄요. 그런 일이 있었나? 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요? 하지만 기억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게 바로 누구세요? 예, 우리 주님은 그 모든 것을 기억하시는 분이십니다.

반대로 이제 왼편에 있는 사람들한테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5장 42절에서 45절입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おまえたちは、わたしが空腹であったとき、食べる物をくれず、渇いていたときにも飲ませず、わたしが旅人 であったときにも泊まらせず、裸であったときにも着る物をくれず、病気のときや牢にいたときにもたずねてくれなかった。』
そのとき、彼らも答えて言います。『主よ。いつ、私たちは、あなたが空腹であり、渇き、旅をし、裸であり、病気をし、牢 におられるのを見て、お世話をしなかったのでしょうか。』
すると、王は彼らに答えて言います。『まことに、おまえたちに告げます。おまえたちが、この最も小さい者たちのひとりにしなかったのは、わたしにしなかったのです。』

이번에는 지극히 작은 자들을 베풀지 않은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들도 역시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베풀지 않은 것? 글쎄요. 그런 일이 있었나? 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요? 하지만 역시 기억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게 바로 누구세요? 예,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은 그 모든 것을 기억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 모두, 자신들이 한 일을 잘 기억하지는 못했습니다. 서로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그 결과는 참으로 극명하게 갈립니다.

베풀었던 사람들이 받은 상은 34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そうして、王は、その右にいる者たちに言います。『さあ、わたしの父に祝福された人たち。世の初めから、あなたがたのために備えられた御国を継ぎなさい。

그리고 베풀지 않았던 사람이 받은 벌은 끔찍했습니다. 41절을 봅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それから、王はまた、その左にいる者たちに言います。『のろわれた者ども。わたしから離れて、悪魔とその使いたちのために用意された永遠の火に入れ。


이 얼마나 큰 차이입니까. 한 쪽은 하나님께 복 받을 자들이라 칭찬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창세로부터 예비된 천국까지도 상속받게 되었고, 다른 한 쪽은 예수님을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예비된 불구덩이 속으로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 판결을 들으시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너무 하다고 생각하세요? 이렇게까지 하는 건 너무나도 심하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그런데 알고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는 행동이 작아보여도 그 행동은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도 있고, 또한 절망을 가져다 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매주 주일 오후가 되면 전도지를 나누어주는 성도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날은 몸도 피곤하고 날씨도 비가 너무나도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날은 안 나가려고 했는데, 11살된 아들이, 오늘은 주일인데 엄마가 집에 있길래, 오늘은 왜 안 나가냐고 물어보니까, 몸도 너무 피곤하고 비도 많이 내리니까 안 나간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아들래미가 그럼 자기가 나가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아들한테 전도지를 맡깁니다.
억수같이 내리는 빗속을 우산을 쓰고 열심히 집집마다 전도지를 돌리는데, 마지막 한 장이 남았어요. 그래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어느 집 문을 두드립니다. 그러니까 어떤 아주머니가 나오십니다. 그래서 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전도지를 내밀며 말을 합니다.
“아줌마한테 이 전도지를 드리려 왔어요.”라고 말하고는 그리고 건내드리고 왔습니다. 그 아이가 한 건 그게 다예요. 아마도 그 아이는 이 아주머니의 얼굴도, 그리고 그 아주머니의 집도 자세히 기억을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다음 주 이 아주머니가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간증을 합니다.

“저는 남편과 아들을 잃어버렸습니다. 저는 그 날 너무도 고통스러워서 자살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비가 많이 오던 지난 주일 밤 목을 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기에 열어 보니 작은 천사가 서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저를 버리시지 않으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 아이의 전도지를 받고 읽으면서 자살을 포기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교회에 나왔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였습니다.”

이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베푸는 작은 손길, 어쩌면 우리는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막 접어든 2017년, 하지만 올해 이맘때도 아…지난 한해가 어떻게 지나갔을까…하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누구는 알고 계세요? 예, 주님은 알고 계십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을 살펴봅니다.

마태복음 23장 11절~12절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あなたがたのうちの一番偉大な者は、あなたがたに仕える人でなければなりません。だれでも、自分を高くする者は低くされ、自分を低くする者は高くされます。

로마서 12장 18절,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あなたがたは、自分に関する限り、すべての人と平和を保ちなさい。

우리가 작은 정성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길 때, 하나님은 큰 것으로 우리에게 갚아주십니다. 올 한 해, 하나님과 이웃을 마음을 다하여, 정성을 다 하여 섬김으로써 하나님께로부터 큰 복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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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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