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회 성령님과 악령
2016년 10월 30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6절~9절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한국어 동영상


일본어 동영상

 

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한 달에 1,000원>
<물 한 그릇 선교후원>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KB 국민은행
079-21-0736-251
홍성필



성경소설 <요셉의 재회> 다운로드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성령님과 악령’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한국에서 있을 때 보면, 글쎄요, 이건 다른 분들도 종종 겪는 일이라고는 합니다만, 특히 제가 많이 겪었던 일은 뭐냐 하면, 이상하게 유독 이상한 사이비 종교 분들이 다가옵니다.
예전에도 있었는데 요즘도 여전히 있는 일입니다만, 서울에서 시내를 걸어다닐 때 보면 가끔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혹시 도에 관심 없으세요?” 라고 말을 걸어옵니다. 그런데 요즘은 좀 바뀌어서 “참 인상이 좋으십니다.” 라는 말로 바뀌었더라구요. 그래서, 아니 뭐, 인상 좋다는데 기분 나빠할 사람 없잖아요? 그래서 무슨 소릴 하나 하고 가끔 들어봤습니다만, 듣고보니 결국 그 묘한 신흥종교와 같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가만히 있으면 자꾸 귀찮게 굽니다. 그래도 뭐 길을 걸어갈 때에 이런 말을 들으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면 됩니다. 하지만 하루는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는데 또 이런 말을 걸어오더군요. 저는 신호등을 건너야 하는데, 자꾸 옆에 서서 인상이 좋다고 해요. 그러면서 이런 말 저런 말을 걸어옵니다.
무슨 세일즈맨이나 영업을 하시는 분들은 직업상 하시는 일이니까, 말로 하면 어느 정도는 통합니다.

하지만 신흥종교, 쉬운 말로 하자면 사이비 종교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육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사람의 힘이 아니라 영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전도할 때는 어때요? 보통 저희 같은 정통 기독교 교회에서 전도할 때에는, 말 첫마디부터 전도지를 보이면서, 우리 같으면 이카호중앙교회에서 나왔습니다, 하고 먼저 밝힌 다음에 말씀을 시작합니다만.
그리고 전도할 때가 아니라 하더라도, 예를 들어서 내가 어딜 가서 어떤 말을 하는데, 누가 나한테, 어? 교회 나가세요? 라고 하면 어떤 마음이 들겠어요? 반갑죠. 안 그래요?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알아보겠어요? 나한테서 예수님의 향기가 난다는 건 아니에요? “예, 맞아요. 저 교회에 다녀요. 혹시 교회 다니세요?” 그리고 그 분이 다니시는 분이라면 반갑게 교재를 나눌 수도 있고, 안 다니는 분이라면 “같이 예수님을 믿어요. 너무 좋아요.” 이렇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 사람들은 가능하다면 자신들의 정체를 끝까지 숨기려고 합니다. 벌써 그것부터가 이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횡단보도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하도 옆에서 귀찮게 하기 때문에 제가 그 사람을 눈을 바라보고 말했습니다. 제가 그 사람의 종교단체를 말하면서, “당신 어디어디에서 나왔죠?” 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자신들의 정체를 말로 밝히니까 벌써 흠칫 놀랍니다. 당황을 해요. 그러면서 “예…….”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뭐라고 했겠어요? “예수 믿고 구원 받으세요” 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렇게 옆에서 귀찮게 했던 그 사람이 “수고하세요~” 하고 가버리더라구요. 글쎄요. 교회 다닌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더 뭐라고 해봐야 소용 없겠구나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속이 매우 시원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만,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점인데도 불구하고 요즘 교회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소홀히 하는 경우도 간혹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영적인 부분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니는 것을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세상적으로 본다면 ‘종교생활’을 한다고 하겠지요. 하지만 종교라는 것이 무엇이에요?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신이나 초자연적인 절대자 또는 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 체계.”
인간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한다는 것이 잘못된 설명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시작해서 그것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어떤 학문이나, 아니면 그저 취미생활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음의 평안을 얻어요? 아니면 무슨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되나요? 그것이 취미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그 앞에, 신이나 초자연적인 절대자요? 이른바 어떤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모두 좋은 것입니다. 어느 종교를 믿든지 열심히 믿기만 하면 복을 받습니다……이렇게 말을 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무엇이냐 하면, 이미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있고, 그리고 꽤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입니까.

역대하 6장14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천지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주의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イスラエルの神、主。天にも地にも、あなたのような神はほかにありません。あなたは、心を尽くして御前に歩むあなたのしもべたちに対し、契約と愛とを守られる方です。

하늘에도 땅에도 이 세상 어디에도 하나님은 오직 우리가 믿고 있는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삼위일체 하나님 외에는 안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것 저것 그것, 이렇게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10장 9절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なぜなら、もしあなたの口でイエスを主と告白し、あなたの心で神はイエスを死者の中からよみがえらせてくださったと信じるなら、あなたは救われるからです。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사해주신 것을 믿느냐, 아니면 멸망이냐 하는 그 선택 밖에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이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 어두운 경우가 있습니다만,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왜 심각하냐 하면, 그것은 바로 마귀의 밥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마귀가 하와한테 접근할 때,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전이었습니까, 듣고 난 다음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듣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이미 하와는 아담으로부터 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는 사실을 익히 듣고 알고 있었습니다. 말씀을 이미 받았다면 믿음이 오히려 강해져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 틈새가 있었습니다. 그 틈새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심겨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씨뿌리는 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씨를 뿌리는데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뿌려지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졌다고 하는데, 하와의 경우에는 길 가에 떨어졌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말씀을 내게 해주었는데, 그 말씀이 내게 심어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남의 나라 얘기였습니다. 아담이 말하기를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했다던데…? 그 정도입니다. 그 틈새를 사탄은 놓치지 않습니다. 아니야. 절대로 그렇지 않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입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이렇게 되어 있지? 아니야. 그게 아니야. 그러면서 말씀을 왜곡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난도질을 합니다. 이런 일에 대해서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잠언 30장 5절~6절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너는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


神のことばは、すべて純粋。神は拠り頼む者の盾。
神のことばにつけ足しをしてはならない。神が、あなたを責めないように、あなたがまやかし者とされないように。

요한계시록 22장 18절~19절,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私は、この書の預言のことばを聞くすべての者にあかしする。もし、これにつけ加える者があれば、神はこの書に書いてある災害をその人に加えられる。
また、この預言の書のことばを少しでも取り除く者があれば、神は、この書に書いてあるいのちの木と聖なる都から、その人の受ける分を取り除かれる。


성경에서 분명히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짜깁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더 나아가, 성경이 아닌 다른 책을 마음대로 써서 마치 성경처럼, 나아가 성경보다도 더 값어치가 있는 교리처럼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갈라디아서 1장 7절~8절,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ほかの福音といっても、もう一つ別に福音があるのではありません。あなたがたをかき乱す者たちがいて、キリストの福音を変えてしまおうとしているだけです。
しかし、私たちであろうと、天の御使いであろうと、もし私たちが宣べ伝えた福音に反することをあなたがたに宣べ伝えるなら、その者はのろわれるべきです。

이럴 수가 있을까요? 아니, 천사가 와서 우리한테 복음을 전한다 하더라도 성경 외의 복음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는다고까지 말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이 말씀을 듣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제가 구체적인 종교 이름을 이 자리에서 대지는 않겠습니다만, 성경 외의 어떤 교리를 믿는 종교에서는 실제로 어떤 예언자가 천사로부터 받은 책을 자신들의 교리로 삼고 있는 경우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미 이와 같은 일을 2천년 전에 예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절대로 그것을 믿지 말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는 이 성경만을 믿고 우리 죄를 대신 사해주신 예수님만을 구주로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이 영적인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간혹 오해를 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제사를 지냅니다. 차례도 지냅니다. 제사는 뭐고 차례는 뭐예요? 예. 제사는 고인이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것이고, 차례는 설날이나 추석 같은 날에 지내는 것이죠. 일본에는 불단 같은 것이 있어서 돌아가신 가족들을 가지 집에 모셔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몇 년에 한 번은 法事라고 해서 묘소에서 하는 행사를 치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그와 같은 것들을 하지 않습니다.

이를 두고 세상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조상님들을 공경하지 않는다는 둥 이런 말 저런 말을 합니다. 그게 사실인가요? 자기 부모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제사나 차례를 지내지 않아요. 그것은 그럼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자기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아서인가요? 이런 것이 바로 오해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살던 사람이 죽으면 저승에 갔다가, 달력보고 어? 오늘이 설날이네, 추석이네, 아니면 내가 죽은 날이네? 하고 그 영이 다시 이 땅에 내려오나요? 성경에는 어떻습니까.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자가 죽었는데 지옥불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래서 부자가 아브라함한테 부탁하는 장면입니다.


누가복음 16장 27절에서 31절까지를 봅니다.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彼は言った。『父よ。ではお願いです。ラザロを私の父の家に送ってください。私には兄弟が五人ありますが、彼らまでこんな苦しみの場所に来 ることのないように、よく言い聞かせてください。』しかしアブラハムは言った。『彼らには、モーセと預言者があります。その言うことを聞くべきです。』彼は言った。『いいえ、父アブラハム。
もし、だれかが死んだ者の中から彼らのところに行ってやったら、彼らは悔い改めるに違いありません。』 アブラハムは彼に言った。『もしモーセと預言者との教えに耳を傾けないのなら、たといだれかが死人の中から生き返っても、彼らは聞き入れはしない。』」
아브라함한테 간청을 합니다. 지금 나는 죽었지만, 내 형제가 아직 다섯이 있는데, 이렇게 내가 지옥에 있다. 이렇게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러니까 이 사실을 나사로를 통해서 알게 해달라. 이렇게 부탁을 합니다만, 아브라함은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뭐라고 하면서 거절해요? 그들에게는 이미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으면 된다. 여기서 “모세와 선지자들”이라고 하는 것이 뭐예요? 이것은 모세와 선지자들에 의해 기록된 것 바로 성경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미 그 사실.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성경을 안 믿어? 그렇다면 죽은 사람이 다시 가서 전한다 하더라도 안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을까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구약에서 한 번, 신약에서 한 번입니다. 신약에서 누가복음 9장 29절에서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중에 모습이 변화해서 광채가 났다고 하는데, 바로 그 때 그들 앞에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중에 예수님과 말씀을 나누었다고 기록합니다. 하지만 이 때에는 예수님과 말씀을 나누었을 뿐, 그 놀라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는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왜요? 나눌 필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바로 그 자리에 계시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바로 천국 복음을 말씀해주시기 위해서인데, 자신들이 예수님보다 높아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면 예수님이 말씀하실텐데, 예수님을 물리치고 자신이 말을 해요? 그것은 그야말로 월권행위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과 대화을 나누었을 뿐입니다.
이처럼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은 이 땅으로 다시 내려와서 우리와 교재를 하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왜요? 이미 그 영혼은 천국이나 지옥에 가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다시 돌아올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 보면 매우 특이한 경우가 있습니다. 어쩌면, 죽은 사람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근거로 삼을 만한 장면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무엘상 28장에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이스라엘의 첫 왕 사울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했습니다.

사무엘상 15장 26절에 보면,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すると、サムエルはサウルに言った。「私はあなたといっしょに帰りません。あなたが主のことばを退けたので、主もあなたをイスラエルの王位から退 けたからです。」

사울이 스스로의 힘으로 왕이 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사울을 택하셔서 왕으로 세우셨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보다도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려고만 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셨고, 그 왕위를 다윗에게 물려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 권력의 맛을 본 사람은 절대로 그것을 내려놓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은 사울왕은 이제 아무리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의지했던 사무엘조차도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왕이 되고 아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이 남았을 때, 무당들을 모두 없앴었습니다.

신명기 18장 10절~12절,
“그의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 이런 일을 행하는 모든 자를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

あなたのうちに自分の息子、娘に火の中を通らせる者があってはならない。占いをする者、卜者、まじない師、呪術者、
呪文を唱える者、霊媒をする者、口寄せ、死人に伺いを立てる者があってはならない。
これらのことを行なう者はみな、主が忌みきらわれるからである。これらの忌みきらうべきことのために、あなたの神、主は、あなたの前から、彼らを追い払われる。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자신이 금지시켰던 것을, 이제 하나님의 버림을 받게 되자 그것을 다시 찾아가는, 그야말로 사울 왕이 철저하게 타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무당을 찾아갔더니 그 무당이 사무엘을 불러냅니다. 그러면서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합니다.


사무엘상 28장 13절~19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됩니다.
“왕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하니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영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하는지라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그의 모양이 어떠하냐 하니 그가 이르되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하더라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 줄 알고 그의
v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니라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불러 올려서 나를 성가시게 하느냐 하니 사울이 대답하되 나는 심히 다급하니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나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다시는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내게 대답하지 아니하시기로 내가 행할
v일을 알아보려고 당신을 불러 올렸나이다 하더라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 네 대적이 되셨거늘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여호와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네게 행하사 나라를 네 손에서 떼어 네 이웃 다윗에게 주셨느니라 네가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그의
v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오늘 이 일을 네게 행하셨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라 하는지라”

王は彼女に言った。「恐れることはない。何が見えるのか。」この女はサウルに言った。「こうごうしい方が地から上って来られるのが見えます。」サウルは彼女 に尋ねた。「どんな様子をしておられるか。」彼女は言った。「年老 いた方が上って来られます。外套を着ておられます。」サウルは、その人がサムエルであることがわかって、
v地にひれ伏して、おじぎをした。サムエルはサウルに言った。「なぜ、私を呼び出して、私を煩わすのか。」サウルは言った。「私は困りきっています。ペリシテ人が私を攻めて 来るのに、神は私から去っておられます。預言者によっても、夢によっても、もう私に答えてくださらないのです。それで私がどうすればよいか
v教えていただくために、あなたをお呼びしました。」サムエルは言った。「なぜ、私に尋ねるのか。主はあなたから去り、あなたの敵になられたのに。主は、私を通して告げられたとおりのことをなさったのだ。主は、あなたの手から王位をはぎ 取って、あなたの友ダビデに与えられた。あなたは主の御声に聞き従わず、
v燃える御怒 りをもってアマレクを罰しなかったからだ。それゆえ、主はきょう、このことをあなたにされたのだ。主は、あなたといっしょにイスラエルをペリシテ人の手に渡される。あす、あなたも、あなたの息子たちも私といっしょになろう。そして主は、イスラエルの陣営をペリシテ人の手に渡される。」


사무엘이 나타나서 두 가지를 사울 왕한테 말을 합니다. 첫째는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왕위를 너한테서 빼앗아서 다윗에게 주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내일 전쟁에서 너와 네 아들들은 죽을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참으로 끔찍한 내용이지요.

죽은 사람이 다시 이 세상에 나타나서 살아있는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장면을 근거로 삼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것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사울은 사무엘을 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이 대화는 사무엘과 사울 왕과의 대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신접한 무당과 사울 왕과의 대화입니다. 13절에 보면, 어떤 영을 보았다고 하는데, 사울한테는 안 보입니다. 그래서 그 모양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두 가지를 말합니다. 하나는 노인이고 또 하나는 겉옷을 입었다고 합니다. 이걸 듣고 사울은 그가 사무엘인줄 알았다는 것일뿐, 신접한 무당이 보았다는 영도 자기가 스스로 사무엘이라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둘째, 13절에 의하면 그 영은 땅에서 올라왔다고 기록합니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영이 땅에서 올라왔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땅이라고 하는 것이 어디겠습니까. 그것이 천국이요? 아니요. 오히려 그곳은 지옥이라고 이해하는 편이 훨씬 더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도 거기서 노인의 영이 올라왔다고 합니다. 한평생을 하나님께 순종했던 사무엘이 지옥에 가 있나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셋째, 사울 왕과 그의 아들들의 멸망을 말하면서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라고 말합니다. 자신을 왕으로 세워주신 하나님을 버리고, 그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은 영혼이 갈 곳은 단 한 곳 밖에 없습니다. 지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은 그들이, 평생을 하나님께 순종했던 사무엘과 같이 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지옥에 있는 것은 단 두 종류 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죄인과, 또 하나는 무엇이에요? 그렇죠. 마귀입니다.
넷째, 아브라함은 나사로를 보내기를 거절했었습니다. 부자가 나사로를 나쁜 의도로 보내달라고 했던가요? 아니요, 지옥이라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달라고, 그래서 주님을 믿으라고, 말하자면 전도 목적으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아브라함은 이미 성경이 있고, 거기에 모든 것이 적혀 있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만, 이미 하나님께서 버린 사울 왕을 위해서 사무엘이 왔다? 그것은 납득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다섯째, 사무엘을 불러낸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렇죠. 무당입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스스로 금하신 무당을 써서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을 불러냈다는 것은 분명히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무당을 사용하셨던 것이 되는데, 하나님께서 금지해놓으시고, 스스로 금지한 것을 사용하신 역사가 없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이 사무엘상 28장에 나타난 사무엘은, 사무엘이 아니라 사무엘을 가장한 악령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결론적으로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영은, 두 가지 영 밖에는 없습니다. 무엇입니까. 그렇죠. 성령님과 악령입니다. 그렇다고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님과 악령이 똑 같은 힘을 가지고 있어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은 온 천하를 만드시고 지배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악령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천사가 타락한 마귀입니다.
예컨대 성경에는 대표적인 우상으로 바알이나 아세라 등이 나오지만, 실제로 바알이나 아세라라고 하는 영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모두가 사람이 우상을 세우고, 그것을 숭배한 결과 마귀 사탄이 역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악령이 없나요? 아니요, 있습니다.

성경에서 보면 오히려 사람들은 예수님을 못 알아보지만 악령들은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알아봅니다.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도 돌아가시면 묘를 만들지요. 그리고 묘를 찾아가서 하늘나라로 간 분에 대한 기억을 더듬고, 함께 간 사람들과 그 추억을 나누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음식을 차려놓고 그 사진을 갖다가 거기에 절을 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두 영 중 하나를 모시는 것이 됩니다. 두 영이 뭐라고 말씀드렸어요? 예, 성령 아니면 악령을 모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겠습니까. 이미 하늘나라에 간 분의 사진한테 절하는데, 성령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아니요. 그것은 성령님을 모시는 자리도 아니요, 이미 돌아가신 분을 모시는 자리도 아니요, 또다른 우상을 섬기는 자리, 엉뚱한 악령을 모시는 자리가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나 차례를 안 지내는 것이지, 우리의 조상들을 가벼히 여겨서가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10월 말이 되면, 이제 여기저기서 할로윈이라고 해서 마귀차림을 하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이 사탕을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해괴한 분장을 하고 좋다면서 돌아다녀요. 이것이 바로 영적인 무지에서 오는 것입니다. 악령이 흥미롭습니까? 그냥 재미로 해요?

이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악한 영들이 바라는 것은 우리의 타락입니다. 멸망입니다. 그래서 일반 교회에서는 할로윈인 날에는 주일학교에서 교회 행사를 갖습니다. 우리도 교회가 커지고 주일학교가 생기고 하면 그렇게 해야되겠지요.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아무리 천사처럼 가장하여 우리 앞에 나타난다 하더라도 성경과 다른 말씀을 전하게 되면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해도 우리가 우상을 섬기는 순간 우리는 영적인 올무에 걸리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영적으로 맑아야 합니다. 맑게 하기 위해서는 그럼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항상 찬양과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주님께 경배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온전한 예배를 통해서 주님과 항상 동행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また、わたしがあなたがたに命じておいたすべてのことを守るように、彼らを教えなさい。見よ。わたしは、世の終わりまで、いつも、あなたがたとともにいます。」

우리와 세상 끝날까지 함께 계시겠다고 하신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사라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50회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 →

← 제48회 던져진 나무 하나

 
이카호중앙교회
반응형
Posted by 홍성필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