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회 하나님의 시선
2016년 9월 25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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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시편 31장 24절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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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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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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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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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시선’ 神様の視線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동경에 살 때에 보면, 그 때는 당연히 운전은 하지 않았습니다만, 버스를 타잖아요? 그럼 앞에 신호등이 있습니다. 파란 신호예요. 옆에 보면 보행자 신호는 이미 빨강입니다. 아저씨 조금만 밟으면 저 신호 통과할 수 있어요! 라고 마음 속으로 아주 있는 힘껏 파워를 보내봐도 소용없습니다. 정확히 40킬로로 달리다가 노란 신호로 바뀌면 딱 서요. 그러는 반면, 이 우리 서울 버스는 아닙니다. 정말 내 마음과 버스 기사님의 마음이 일심동체. 하나가 된 것 같아요. 저~기 파란 신호가 보입니다. 기사님~ 갈 수 있어요~ 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벌써 부웅~하고 가속하기 시작합니다. 뭐, 사고는 좀 더 날지 모르겠지만 일단 속은 시원해요. ㅎㅎ 오해하지 마세요. 물론 안전제일입니다.
그런데, 운전하시는 분이라면 이런 경험을 해보신 적이 있으실 지 모르겠어요. 아니, 뭐, 꼭 굳이 운전을 하지 않는 분이라 해도 이런 일을 겪으셨을 것입니다. 나는 지금 바빠서 빨리 가려고 하는데 앞차가 느릿느릿 가고 있어요. 그런 경험 있지 않으세요? 얼마 전에도 시간이 급해서 좀 빨리 가려고 했는데, 그 날이 토요일 아침입니다.

보통 토요일 아침에는 차들이 많지 않거든요. 그런데 제 앞에 차들이 주루룩 가고 있어요. 아무래도 차들이 많으니까 속도가 느려지겠죠. 그리고 맨 앞에는? 예, 딱 보기에도 느려보이는 고물 트럭 한 대가 가고 있습니다. 달리다보니까 저 앞에 신호가 있는데, 파란 불이 들어와 있어요. 조금 빨리 가면 지나갈 수 있을 텐데, 그 차가 느릿느릿 가는 바람에 멈춰서버리고 맙니다. 정말 마음 같아서는 당장 내려서, 신호등에 서 있는 차까지 가가지고는, 여보쇼, 내가 지금 시간이 없어서 그런데 좀 빨리 갈 수 없어요? 아니, 여기가 제한속도가 50킬로인데 40킬로로 가면 어쩌자는 거예요……뭐, 이렇게 따지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습니다만, 그래도 어디 그럴 수야 있나요. 아이구 주여……하고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일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꼭 급할 때, 정말 1분이 아쉬울 때에는 보면 제가 가는 길 앞에 큰 트럭이 나타나거나, 아니면 여유로움으로 충만하신 어르신이 운전하시거나 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 그럼 이 마음이 어떻겠어요? 부글부글 끓죠, 짜증나죠, 속 터지죠…….
그런데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면요,


마태복음 28장 20절을 봅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また、わたしがあなたがたに命じておいたすべてのことを守るように、彼らを教えなさい。見よ。わたしは、世の終わりまで、いつも、あなたがたとともにいます。」

참 은혜로운 말씀이죠? 예수님께서 우리와 언제까지 함께 계셔주신대요? 예, 세상 끝날까지 함께 계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시간이 촉박해서 조바심이 나는 그 순간에도 우리 주님께서 함께 해주신다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면 내가 지금 급한지 안 급한지 예수님께서 아실 것이고, 정말 지금 급한데 빨리 가야 한다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요? 그렇죠. 빨리 갈 수 있도록 길을 내주시겠죠. 생각해보세요. 길이 없다면 홍해 바다까지도 갈라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어떻게 알아요? 성경에 써 있죠?


요한1서 4장 16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私たちは、私たちに対する神の愛を知り、また信じています。神は愛です。愛のうちにいる者は神のうちにおり、神もその人のうちにおられます。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지금 이 순간에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내 생각대로 지금 되지 않는다고 답답해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실 필요가 있나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이 저부터도 쓸데없이 급한 성격 때문에 답답해하고 초조해하고 불안해하고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아, 물론 내가 게을러서 내 실수로,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반성을 해야 하겠지요. 그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내가 내 할 도리를 다 하고, 그랬는데도 일이 안 풀리고 꼬이고 하면, 오히려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예, 감사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19절~21절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詩と賛美と霊の歌とをもって、互いに語り、主に向かって、心から歌い、また賛美しなさい。
いつでも、すべてのことについて、私たちの主イエス・キリストの名によって父なる神に感謝しなさい。キリストを恐れ尊んで、互いに従いなさい。

지금으로부터 66년 전에 미국 중부 네브래스카에 있는 웨스트사이트 침례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1950년 3월 1일 수요일 저녁 7시 25분. 교회에서 갑자기 큰 폭발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폭발이었냐 하면 이 충격으로 근처에 있었던 라디오 방송국의 방송이 중단되었고, 주변 집들의 창문까지 깨졌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사고 원인은 당시 교회에 깔려 있던 천연가스가 파이프 사이로 새어와서는 그게 형광등하고 반응을 일으켜서 대폭발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사진이 바로 그 때의 교회 모습입니다.


평소 매주 수요일, 그 시간에는 담임목사님과 성가대원을 포함해서 모두 15명이 7시 30분부터 시작하는 성가대연습을 15분전부터 준비하고 있었고,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만큼 완전히 무너져내린 그 건물 잔해 밑에서는, 믿음 좋고 신실한 15명의 성가대원의 시신들이 발견되었습니다……아니, 발견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15명은 어디에 있었는가 하면 시신을 운반하기 위해 구조대원이 가지고 들어갔던 들것 위에 누워있었던 것이 아니라, 바로 무너진 교회 모습을 바깥에 서서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이건 무슨 공포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사연인가에 대해서 당시 1950년 3월호 미국 잡지 <라이프>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1950년 3월 1일, 미국 네브래스카 주에 있는 웨스트사이드 침례교회에서 저녁 7시 25분. 교회가 폭발하여 건물이 모두 무너졌다. 그러나 성가대 대원들은 전원이 지각하는 바람에 기적적으로 화를 면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성가대는 매주 저녁 7시 30분부터 연습이 있는 수요일에는, 평소 연습 시작 15분 전에는 모두 도착해서 연습을 준비할 정도로 시간에는 정확했다고 합니다. 더구나 성가대가 생기고 난 이래 그 날까지 단 한번도 지각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날은 어떻게 된 것이냐 하면,
이게 당시 그 내용을 전하는 기사입니다.


당시 여고생이었던 라도나 반더그리프트는, 수학 숙제를 마치고 성가대연습에 가려고 했었는데, 이상하게 수학 문제 하나가 그날따라 안 풀리더랍니다. 그래서 그 문제 하나를 풀고 가야지……하다가 그만 성가대연습에 지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역시 여고생이었던 루실 존스와 도로시 우드는 서로 이웃에 살고 있었는데, 왠지 그날 따라 루실 양이 7시부터 7시30분까지 하고 있던 라디오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듣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루실은 지각했고, 그리고 성가대 연습에 같이 가려고 이 루실을 기다리고 있던 도로시 우드도 덩달아 지각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성가대 반주자였던 마릴린은 본래 연습시작 30분 전인 7시까지 가려고 했었는데,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그만 깜빡 잠이 들어버렸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깨운 시간이 7시 15분이라서 모녀가 지각을 했고요,
선반기술자인 하버트 키프 씨는 중요한 편지를 쓰느라고 늦었다고 합니다.
기술자 하비 알 씨는 마침 그 때 부인이 외출한 상태여서, 두 아들을 성가대 연습에 데려갔어야 했는데, 아이들이 말을 안 들었기 때문에 지각.

속기사였던 조이스 블랙 씨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가려는데 갑자기 몸에 기운이 풀려서 잠시 앉아있다 나오느라고 지각.
담임목사님이신 월터 클램플 목사님은,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3월달이었기 때문에 일찍 교회에 가서 난로를 켜 놓고 다시 집으로 돌아 가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7시 10분까지 도착하려고 사모님과 딸과 함께 집을 나서려고 했는데, 마침 딸아이의 옷에 뭐가 묻은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걸 닦아 내고 다림질을 하는 걸 기다리는 바람에 늦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17세였던 로이나 에스테스 양과 14세인 여동생 사디에 양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자동차에 탔지만, 이상하게 엔진이 안 걸립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친구 라도나 반더그리프트한테 전화를 걸어서, 교회에 갈 때 자기들을 태워가달라고 부탁했습니다만, 분명히 부탁을 했는데, 라도나가 오질 않아요. 기억하세요? 라도나가 아까 뭘 하고 있었어요? 예, 수학 숙제를 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목사님을 포함해서 성가대원 15명 모두 지각하는 바람에 사고를 면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15명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모두 다른 이유로 지각을 할 확률을 누구는 10억분의 1, 또 누구는 100조분의 1이라고 합니다만, 이와 같은 일을 두고 확률을 따진다는 것부터가 벌써 넌센스죠.

이 기사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은 글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This is an act of God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역사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요한복음 14장 13절~14절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またわたしは、あなたがたがわたしの名によって求めることは何でも、それをしましょう。父が子によって栄光をお受けになるためです。あなたがたが、わたしの名によって何かをわたしに求めるなら、わたしはそれをしましょう。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랑하는 자기 자식인 안 되는 것을 보고 기뻐할 부모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계시고 우리가 구하는 것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神は、実に、そのひとり子をお与えになったほどに、世を愛された。それは御子を信じる者が、ひとりとして滅びることなく、永遠のいのちを持つためである。

로마서 8장 32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私たちすべてのために、ご自分の御子をさえ惜しまずに死に渡された方が、どうして、御子といっしょにすべてのものを、私たちに恵 んでくださらないことがありましょう。



로마서 5장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しかし私たちがまだ罪人であったとき、キリストが私たちのために死んでくださったことにより、神は私たちに対するご自身の愛を明らかにしておられます。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알지도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돈이요? 그렇죠. 그럼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다 되나요?

누가복음 12장 16절~21절에 보면,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ルカの福音書 12章 16節~21 節
それから人々にたとえを話された。「ある金持ちの畑が豊作であった。
そこで彼は、心の中でこう言いながら考えた。『どうしよう。作物をたくわえておく場所がない。』
そして言った。『こうしよう。あの倉を取 りこわして、もっと大きいのを建て、穀物や財産はみなそこにしまっておこう。そして、自分のたましいにこう言おう。「たましいよ。これから先何年分 もいっぱい物がためられた。さあ、安心して、食べて、飲んで、楽しめ。」』しかし神は彼に言われた。『愚か者。おまえのたましいは、今夜おまえから取 り去られる。そうしたら、おまえが用意した物は、いったいだれのものになるのか。』自分のためにたくわえても、神の前に富まない者はこのとおりです。」

결국 무슨 말씀이에요? 나한테 가장 필요한 것을 나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아세요? 그렇죠.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마태복음 6장 31절~32절을 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そういうわけだから、何を食べるか、何を飲むか、何を着るか、などと言って心配 するのはやめなさい。こういうものはみな、異邦人が切に求めているものなのです。しかし、あなたがたの天の父は、それがみなあなたがたに必要であることを知っておられます。

이 사실을 모르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을 보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예수님을 원망하고 부모를 원망하고 이웃을 원망하고 나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신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좋습니다. 하늘을 보세요. 하나님을 원망하려고 하늘을 보든 자기 팔자를 원망하려고 하늘을 보든, 어디 한 번 하늘을 봅시다. 그럼 거기에 뭐가 보이나요? 낮이라면 태양도 보이고 푸른 하늘도 보이지만 구름도 보입니다.

구름을 두 종류로 나눈다고 한다면 흰 구름과 먹구름으로 나눌 수 있겠지요. 하얀 구름은 참 아름답습니다. 하얗다는 것은 깨끗함을 상징하죠. 모양도 여러가지입니다. 계속 움직이고 모양도 바뀌지만 흰 구름은 참 예쁩니다. 그런데 먹구름은 어떻습니까. 물론 가뭄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먹구름은 비구름이니까 반가운 소식이겠으나, 일반적으로 본다면 조금 있으면 날씨가 궂어지는, 안 좋아지는 징조가 바로 이 먹구름입니다.
그런데 예전부터 그야말로 소박한 궁금증이었습니다만, 먹구름은 왜 저렇게 까말까. 아무래도 흰 구름과는 종류가 달라서 그럴까. 뭔가 대단히 큰 차이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얼마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인근의 군마천문대에 갔을 때, 거기서 안내해주시는 분한테 좀 다소 부끄러움을 감수하고 물어봤습니다.
“비구름은 왜 색이 검은 거죠? 뭔가 이유가 있나요?”
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좀 난해한 해설이라도 해줄 줄 알고 겁을 먹었는데, 그 분의 답은 간단했습니다.
“태양빛이 통과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더라구요. 그 말을 들으니까, 약간 허탈하기도 했습니다만, 아, 그렇구나. 빛을 통과하지 않기 때문에 어둡게 보이는구나…하고 이해가 됐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으니까 다시 또 궁금해지더라구요? 왜겠어요? 그래서 물어봤습니다.
“저…비구름은 왜 빛이 통과하지 않는데요?”
라고 질문을 했어요. 저는 좀 기대를 했어요. 예를 들어서, 비구름은 그 안에 수분이 가득 차서 그렇다는 둥, 아니면 이런 성분과 저런 성분이 이렇게 저렇게 결합돼서 어쩌구 저쩌구…뭐 이런 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비구름은 왜 빛이 통과하지 않느냐에 대한 답변 또한 매우 단순했습니다.
“구름이 두꺼워서 그래요.”
이게 제가 지식이 짧아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단순한 답변을 저는 두고두고 생각해봤습니다.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듣고 보니 꽤 많은 부분들이 납득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래에서 위를 보면 흰 구름도 있고 먹구름도 보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비행기 타보셨잖아요? 비행기 창문으로 보는 구름은 이렇게 내려다보게 됩니다만, 구름을 이렇게 내려다볼 때, 혹시 먹구름을 보신 적 있으세요? 만약에 있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왜냐하면, 아까 그 천문대에 계신 분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비구름이 검게 보이는 이유는 태양빛이 통과하지 않기 때문인데, 위에서 보면 태양빛이 내리쬐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구름이 하얗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기가 비행기를 타기 전에는 천국이 어떤 건지 전혀 몰랐는데, 비행기를 타고 구름을 보니까 정말 천국이 이렇게 아름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생각해보세요. 비행기를 타고 보는 구름은 우리가 있는 이 땅에서도 보이는 구름입니다. 그러나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어떤 구름은 아름다운 흰 구름이지만, 또 어떤 구름은 시커먼 먹구름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만, 오늘은 한 가지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것은 사람의 시선에서 보는 것입니다. 사람의 시선으로 이 세상을 보면, 누구는 예쁘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누구는 시커멓고 흉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면 어떻습니까.

시편 8편 6절~9절
“6.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7.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8.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9.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詩篇 8篇 6節~9節
あなたの御手の多くのわざを人に治めさせ、万物を彼の足の下に置かれました。
すべて、羊も牛も、また、野の獣も、空の鳥、海の魚、海路(うみじ)を通うものも。
私たちの主、主よ。あなたの御名は全地にわたり、なんと力強いことでしょう。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시선입니다.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내 앞에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이 있더라도 우리가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은 이 세상 온 천하의 주관자이신 주님께서 언제까지 함께 하신다고요? 그렇습니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십니다. 저기 저 꺼멓게 보이는 구름은 그냥 무늬가 검을 뿐입니다. 우리를 넘어지게 할 수도 우리를 절망에 몰아넣을 수도 없습니다. 왜요. 주님께서 함께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람의 눈으로,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이 세상을 바라본다면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고, 용납될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 내 생각으로는 지금 시간이 없어서 빨리 가야 하는데, 이게 이렇게 되어야 하는데, 왜 저렇게 저 차들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고, 또 어디 그것 뿐이에요? 왜 내인생의 앞길을 가로막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있습니까.

주님, 도대체 왜 나를 이렇게 괴롭힙니까. 하고 이렇게 원망이 될 때도 있겠습니다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국회의원도 아니고 대통령도 아니고 온 천하만물을 지으시고,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인데, 그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이번 주에도 이 구절을 말씀드립니다. 이번 주만이 아니라 매주라도 이 말씀은 우리가 단단히 기억하고 가슴에 담아두어야 합니다.

로마서 8장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神を愛する人々、すなわち、神のご計画に従って召された人々のためには、神がすべてのことを働かせて益としてくださることを、私たちは知っています。

그리고 오늘 말씀,

시편 31장 24절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雄々(おお)しくあれ。心(こころ)を強(つよ)くせよ。すべて主(しゅ)を待(ま)ち望(のぞ)む者(もの)よ。

우리 주님을 바라는 우리 모두가, 이 세상의 육적인 시선이 아니라 영적인 하나님의 시선, 먹구름이 아닌 흰구름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시선을 가지고,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붙잡고 강하고, 담대하게 세상에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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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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