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회 이 세상의 중심
2016년 9월 11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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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스바냐 3장 17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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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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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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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하늘에 있는 태양도 달도 별도 구름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모든 것들을 누가 만드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첫째 날에는 빛을 만드시고는 5일에 걸쳐 천지와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마지막 날에 우리 사람을 만드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시는 과정을 보면, 매우 특별하십니다.

창세기 1장 26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そして神は、「われわれに似るように、われわれのかたちに、人を造ろう。そして彼らに、海の魚、空の鳥、家畜、地のすべてのもの、地をはうすべてのものを支配させよう。」と仰せられた。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만드실 때의 특징을 3가지로 본다면, 첫째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셨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피조물을 만드실 때에도 그 형상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으셨지만, 특별히 사람을 만드실 때에는 하나님 본인의 형상에 따라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점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그 자녀들을, 동물이 자신의 새끼들을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자신과 형상이 닮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하나님 자신과 같은 모습으로 만드셨으니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겠습니까. 그리고 둘째를 보면, 단순히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시는 권세와 지혜를 주셨습니다.
세상에 있는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보면 간혹 예외는 있습니다만, 대체적으로 그 몸집과 힘은 비례를 합니다. 그리고 몸집이 작은 늑대가 몸집이 큰 황소 같은 짐승을 공략할 때를 보면 한 마리로 덤비는 것이 아니라 여러 마리가 힘을 합쳐야 사냥을 할 수가 있지요. 하지만 인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르실 권세와 지혜를 허락해주셨기 때문에 도구를 만들고 작전을 짜서 혼자서라도 능히 사냥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뿐입니까. 산을 깎아 길을 내기도 하고, 하늘을 나는 새들도 바다 속에 있는 물고기들도 잡을 수가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하나님은 참으로 놀라운 지혜와 권세를 우리 인간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특징은

창세기 2장 7절,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その後、神である主は、土地のちりで人を形造り、その鼻にいのちの息を吹き込まれた。そこで、人は、生きものとなった。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만드실 때에 친히 하나님의 손으로 지으시고 그 코에 영혼을 불어넣어주신 것 또한 우리 사람을 만드실 때만 해주신 일입니다. 즉, 우리 인간은 여타 다른 생물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이고, 하나님께서 특별히 구분해서 창조해주시고, 또한 그렇기 때문에 사랑해주신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견해는 제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볼 때 오래 전부터 있어온 생각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특별히 사랑하시고, 우리 사람이 사는 이 땅을 지으셨기 때문에 오랫동안 이 세상은 우주의 중심이라고 여겨져 왔습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천동설입니다.

천동설은 쉽게 말하자면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특별히 사랑하셨고, 또한 우리 사람들도 특별한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우주의 중심일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 우주의 중심에는 지구가 있고, 지구를 중심으로 이 우주는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사랑하십니까? 예, 사랑하십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특별하게 만드셨고, 특별한 권세를 주셨으며, 특별히 보살펴주십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우리의 죄를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다름 아닌 하나님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주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징계를 받으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채찍에 맞으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죽어주셨습니다. 여기까지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왕이든 대통령이든 그 누가 이를 아니라 한다 하더라도 이는 진실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 문제는 그 다음부터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바로 우주의 중심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이런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나요? 아니요, 없습니다.

성경 어디를 찾아보아도 지구는 가만히 있고 지구 주변을 태양이 돈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을 믿었던 과거의 사람들은 이 지구가 온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교만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먼저입니까. 사람의 생각이 먼저입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생각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생각에 맞추어서 사람의 생각을 바꾸어 가야 하는데, 이 교만이 심겨지게 되면 사람의 생각에 맞도록 하나님의 생각을 억지로 꿰어 맞추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과거에 이런 발상으로 인하여 카톨릭에서 행해진 종교재판을 통해 얼마나 많은 지식이 말살되고 진실이 왜곡되었는지 모릅니다. 단순이 이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어떤 일개 종교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당시에 주름잡고 있던 세상적 권력의 영향으로 인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지동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모욕을 주고, 진실을 왜곡하게 만들고, 그래도 끝까지 진실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화형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런 비극들이 일어났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생각을 모르고 사람의 생각을 고집하려 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기준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말씀에 비추어서,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발견하면……어느 쪽을 고쳐야겠어요?
내 생각은 가만히 놔두고 하나님 말씀을 고쳐요? 이건 마치 거울 속을 들여다보고 얼굴에 뭐가 묻었어요. 그럴 때 거울 탓을 하는 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 이마에 뭐가 묻었으면 어떻게 해요? 거울을 갈아야 해요? 아니요, 내 얼굴에 묻은 그걸 얼른 떼어내야죠.
문제는 하나님 생각이 아니라 바로 내 생각입니다. 내 생각을 고쳐야 합니다. 내 생각을 고치기 위해서 바로 성경을 읽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절대적인 기준은 내 생각이 아니요, 하나님 생각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얼마 전에 저희 부모님을 모시고 군마현에 있는 군마천문대를 방문했습니다. 제가 처음에 혼자서 방문했을 때에는 평일이라서 특별한 이벤트가 없었습니다만, 지난번에는 주말이라서 입체 영상도 보여주고 그랬습니다. 그걸 보니 예전에 학교 다닐 때의 기억이 나고 그랬는데, 그 입체영상은 지구에서 시작해서 여러 별들을 스크린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은 대략 1시간 정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만, 정말 그런 영상을 보면 생각의 스케일이 커집니다. 태양에서 시작해서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그 별들의 크기나 거리 같은 것을 설명해줍니다. 별들의 거리를 보면 일반적으로 우주에서는 광년이라는 단위를 씁니다만 이는 빛이 1년 동안 갈 수 있는 거리를 말합니다. 빛이 얼마나 빠릅니까. 초속 30만 킬로미터라고 해서, 둘레가 4만 킬로미터인 지구를 1초에 7바퀴 반 돌 수 있는 게 빛입니다. 그런데 이 빛이 1년 동안 날아가는 거리가 1광년입니다. 이걸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거리로 바꾸면 1광년은 무려9조 4,605억 3000km. 감이 오세요? 이 길이는 시속 300킬로인 고속철도로 무려 360만년이나 가야 하는 거리입니다. 그게 1광년입니다. 그런데 우주에서 보면 이 1광년이라고 하는 숫자는 매우 작은 단위입니다. 우주에 대한 책을 보다 보면 몇 백 광년, 몇 천 광년이라는 단위가 흔히 등장합니다. 지난 2011년 뉴스에 의하면 지구의 140조배에 해당하는 물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별이 발견되었는데 그 별은 지구에서 120억광년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합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생각하는 고민이나 안 좋은 일들 같은 것은 정말 너무나도 작은 문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자, 지금은 이제 천동설이 아닌 지동설, 그러니까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구만이 아니라 여러 별이 태양 주위를 돌고 있습니다. 태양계만을 보더라도 지구는 그 주인공이 아닙니다.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별들 중에서는 3번째에 있고, 크기도 매우 작은 편에 속합니다. 그리고 그 태양계는 은하계에 속해 있습니다.

이 은하계에는 별들이 대략 2000억 개 정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렇다면 이 은하계 중에서 태양계는 중심 쪽에 있을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은하계 중에서도 저기 저 끄트머리 쪽에 우리 이 태양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은하계가 곧 우주인가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은하계가 모여서 또 무엇이 되냐 하면 ‘은하군’입니다. 그리고 이 은하군들이 모인 것이 ‘은하단’이고, 그리고 이 ‘은하단’들이 모인 것이 ‘초은하단’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초은하단’이 모여서 비로소 우주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쉽게 말씀을 드리긴 했습니다만, 사실 이 상황까지 가면 거리나 숫자나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요. 글쎄요. 숫자로는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해를 할 수 있는 범위는 이미 벗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수 백억이나 수 천억이나 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런 정말 말만 들어도 까마득한 광대한 우주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의 몇 배, 태양의 몇 십배나 되는 별들이 사라져가고 또 새로 태어나고 있습니다. 그런 우주에서 본다면 이 지구는 언제 사라질지도 모르는, 그리고 언제 사라진다 하더라도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 작은 일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자 그렇다면 나라고 하는 존재는 어떨까요? 이 작은 지구에서만도 인구는 자그마치 74억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존재가치는 74억분의 1인가요?

이는 마치, 돈이 74억원 있는 사람이 1원짜리 생각하는 것처럼, 나에 대한 존재는 그 정도밖에 안 되나요?
어쩌면 이 말씀을 듣는 분들 중에는, “아아, 그랬구나. 그래서 내 기도를 하나님이 안 들어주시는구나. 내가 그래도 좀 가치가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보니 나는 그냥 있으나마나한 존재였구나.”
혹시 이렇게 생각하신 분이 있다면 그것은 지극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 인간과 이 세상을 하나님은 귀하게 여기셨기에, 그렇기 때문에 이 땅은 우주의 중심일 것이다……라고 하는 잘못된 생각처럼, 그 반대의 생각, 그러니까, 우리 세상은 저 드넓은 우주 중에서도 한 구석에 있고, 이 지구에서도 나는 이 구석에 존재하니까 나는 정말로 값어치가 없는 인간이다……라고 하는 생각도 철저하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것 또한 바로 사람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55장 8절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わたしの思いは、あなたがたの思いと異なり、わたしの道は、あなたがたの道と異なるからだ。―主の御告げ。―


이 모든 천하만물을 만드신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 작은 지구에 있는 우리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내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어느 다른 별 다른 생물체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보내셨나요? 아닙니다. 이 광대한 우주 속에서 이 작은 별 지구에 사는 우리들을 위해 오셨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 27절~30절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너희
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ゆりの花のことを考えてみなさい。どうして育つのか。紡(つむ)ぎもせず、織(お)りもしないのです。しかし、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栄華を窮めたソロモンでさえ、このような花の一つほどにも 着飾ってはいませんでした。しかし、きょうは野にあって、あすは炉 に投げ込まれる草をさえ、神はこのように装ってくださるのです。ましてあなたがたには、どんなによくしてくださることでしょう。ああ、信仰の薄い人たち。
何を食べたらよいか、何を飲んだらよいか、と捜し求めることをやめ、気をもむことをやめなさい。これらはみな、この世の異邦人たちが切に求めているものです。しかし、あなたがたの父は、それがあなたがたにも必要であることを知っておられます。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너무나도 훌륭한 존재입니다.

단순히 숫자상으로만 본다면 74억이 살고 있는 이 지구상에서 우리의 존재는 74억분의 1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거기에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예를 들어서 대통령이나 유명인사들은 나 같은 이름없는 사람들보다 가치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다. 어떤 영화를 만드는데, 등장인물이 10,000명이에요. 그렇다면 대단한 스케일이라고 할 수 있겠죠? 거기에는 주인공도 있고 조연배우도 있을 것이지만 대다수가 엑스트라일 것입니다. 설마 10,000명 중에서 1,000명이 주인공일 리가 있겠어요? 그래봤자 주목 받는 배우는 기껏해야 10명도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어떻습니까. 사람의 생각으로는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사람처럼 여기질지는 몰라도 우리 인생에서의 주연배우는 바로 우리, 나 자신입니다. 그렇다면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만약에 그렇다면 그건 나만의 의미없는 착각이겠지요. 하지만, 성경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에베소서 1장 4절~5절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すなわち、神は私たちを世界の基の置かれる前からキリストのうちに選び、御前で聖く、傷のない者にしようとされました。
神は、ただみこころのままに、私たちをイエス・キリストによってご自分の子にしようと、愛をもってあらかじめ定めておられたのです。


이 세상을 만드시기 전부터 나를 만드시고, 그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셨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스바냐 3장 17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あなたの神、主は、あなたのただ中におられる。救いの勇士だ。主は喜 びをもってあなたのことを楽しみ、その愛によって安らぎを与える。主は高らかに歌ってあなたのことを喜ばれる。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신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74억분의 1의 가치밖에 안 된다고 한다면 그 기쁨이 얼마나 되겠고 사랑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리고 전우주 차원으로 본다면 우리의 가치는 더욱 작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생각으로 보는 세상의 중심은 다른 그 어디도 아닌 바로 내가 이 세상의 중심인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육신의 생각으로는 우리가 티끌만큼 작은 존재처럼 보일지는 모르나, 하나님의 생각, 영적인 생각으로는 우리는 너무나도 귀한 존재입니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사람 생각이 중요합니까, 하나님 생각이 중요합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 생각입니다.
육신으로의 생각으로 본다면 우리가 사는 지구는 우주 한 구석 끄트머리에 있는, 지극히 작은 존재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의 생각, 영적인 생각으로는 그 광활하고 드넓은 우주의 한 가운데 중심에 서 있는 것이 바로 지구입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신으로 생각한다면 이 지구상에서도 작은 나라 일본에 살면서, 그것도 변두리 한켠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하나님의 생각, 영적인 생각으로는 우리는 주님 안에서 이 세상 중심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누가 우리더러 작은 존재라고 말한다 하더라도, 그리고 때로는 나 자신이 내가 너무나도 하찮은 존재처럼 여기질 지라도 그것은 지극히 못난 사람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계십니다.

누가복음 12장 7절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それどころか、あなたがたの頭の毛さえも、みな数えられています。恐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あなたがたは、たくさんの雀よりもすぐれた者です。

하나님이 왜 우리의 머리카락을 세시겠습니까. 심심해서요? 아니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고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어때요? 그 상대방의 그 사람이 입은 옷,머리스타일, 취향 등에 관심이 가지 않겠어요? 그건 당연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상대방 머리카락 수를 세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무리 그 사람을 좋아한다 하더라도 아마 그 정도로 상대방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본 분은 안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떻다고 하세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머리카락까지 세실 정도로 막대한 관심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누가복음 17장 20절~21절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さて、神の国はいつ来るのか、とパリサイ人たちに尋ねられたとき、イエスは答えて言われた。「神の国は、人の目で認められるようにして来 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
『そら、ここにある。』とか、『あそこにある。』とか言えるようなものではありません。いいですか。神の国は、あなたがたのただ中にあるのです。」

우리 안에 무엇이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 온 천하 만물 중에서 하나님 나라보다 더욱 값진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값진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있을 때에 우리가 이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마음 안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이 세상의 중심이 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 기쁨을 드리고, 그리고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주님께, 우리의 삶을 통해서 사랑으로 갚아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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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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