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회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2016년 8월 14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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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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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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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益としてくださる神様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자기 나라가 아닌 외국에서 살면서 아쉬운 점을 든다면 어디 하나 둘 뿐이겠습니까마는, 그 중 요즘 올림픽처럼 큰 경기가 열릴 때면 더욱 그런 것을 느낍니다. 여기 일본에 살면 당연히 일본 선수들을 중심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저 같은 외국인인 경우에는, 물론 예를 들어서 일본 체조에서 우치무라 코헤이 선수가 올림픽 개인전 2연패, 2회 연속 금메달을 했고, 이는 일본 체조 역사에서 44년만에 있는 놀라운 기록이다……라는 뉴스를 들어도……음…대단하네…라는 감흥밖에는 들지 않습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인 2013년에 축구 한일전이 있었습니다. 그 때 한국에 계시던 일본인 선생님과, 일본 유학중인 한국 학생의 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가르치시던 일본인 선생님은 이렇게 썼습니다. 어제는 한국과 일본 축구시합이 있었습니다만, 가끔 한국 학생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先生はどちらを応援されるのですか?” 이 질문에 대한 이 일본인 선생님의 답은 무엇이었겠습니까. “日本に決まってるじゃないですか”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반면에, 일본 유학중인 한국 학생 글은 이랬습니다. “한국과 일본 축구가 있어서 보고 싶었다고 일본 친구들한테 말하니까, 친구들이 자기한테 “어? 너는 어느 쪽 응원하는데?” 라고 묻더랍니다. 여기에 대한 답. 너는 그럼 미국 가면 미국 응원하니? 당연히 한국이지.
둘 다 대단히 지당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기면 기쁘지만 지면 매우 안타깝고 속상하기까지 합니다. 누구 말에 의하면 축구 한일전에서 한국이 진 다음 날은 한국에서 운전할 때 조심하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화가 나서 운전을 난폭하게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ㅎㅎ이건 물론 농담이겠지만요. 이처럼 자기 나라를, 자기가 좋아하는 팀이나 선수를 열심히 응원하고 긴장하면서 시합을 보는 이유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기 때문이겠죠.
예전에 어떤 목사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삶은 이미 이겨놓은 축구경기를 보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대단히 인상적인 말씀입니다. 지금 축구를 생방송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반전에서 내가 응원하는 팀이 0-1로 지고 있습니다. 어서 빨리 하나라도 넣어야 하는데 전반전은 끝나고 맙니다. 이제 후반전이 시작했습니다. 자, 동점으로 가자 하나만 넣자……그런데 웬걸. 시작하자마자 한 골을 더 먹습니다. 하나를 넣어도 시원찮은 마당에 또 한 골을 먹고 맙니다. 이렇게 되면 정말 속상해하고 어떤 사람은 아예 텔레비전을 꺼버릴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게 생방송이 아니라 녹화방송이에요. 그리고 그 시합에서 내가 응원하는 팀이 비록 후반전 초까지는 0-2로 지고 있었지만 나중에는 3-2로 역전승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가슴 졸이지도 않고 속상해하지도 않을 것이고 매우 여유로운 마음으로 경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 지금은 지고 있지만 마지막에는 이긴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만약에 이미 이 경기의 결과를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녹화경기를 보면서 열을 내고 소리를 지르고 속상해하고……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들은 그 사람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시겠어요? 좀……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 안 하겠어요?
구약에서 보면 요셉이 얼마나 고생을 했습니까. 이복형제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결국은 아무 잘못 없이 노예로 팔려가고 맙니다. 그리고 이국 땅 애굽에서 보디발 장군 집에 있다가, 이제는 거기서 그것도 모자라서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쓰고는 옥에 갇히고 맙니다. 우리가 아무리 지금까지 여러 경우를 다 당해봤다고 하지만 이 요셉처럼 심한 꼴을 당해본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 시점까지만 본다면 세상에 이 요셉만큼 불행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 요셉 보다도 더 밑바닥에 내려갈 래야 내려갈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창세기 41장 38절~43절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
そこでパロは家臣たちに言った。「神の霊 の宿っているこのような人を、ほかに見つけることができようか。」パロはヨセフに言った。「神がこれらすべてのことをあなたに知らされたのであれば、あなたのように、さとくて知恵のある者はほかにいない。あなたは私の家を治めてくれ。私の民はみな、あなたの命令に従おう。私があなたにまさっているのは王位だけだ。」パロはなおヨセフに言った。「さあ、私はあなたにエジプト全土を支配させよう。」そこで、パロは自分の指輪を手からはずして、それをヨセフの手にはめ、亜麻布の衣服を着せ、その首に金の首飾りを掛けた。そして、自分の第二の車に彼を乗せた。そこで人々は彼の前で「ひざまずけ。」と 叫んだ。こうして彼にエジプト全土を支配させた。


그리고 그의 나이가 창세기 41장 46절에 의하면,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ヨセフがエジプトの王パロに仕えるようになったときは三十歳であった。
그의 나이 고작 서른 살 때에 당시 최고의 선진국인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이는 그의 힘으로 어떤 노력을 해서도 절대로 얻을 수 없는 결과이고, 나이 서른에 총리가 되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지만, 또한 그가 세상을 떠나는 110세 때까지 영화를 누렸다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모르고 성경을 읽었다면, 아이고……쯧쯧쯧…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아니, 요셉이 무슨 큰 잘못을 했다고 이렇게 벌을 받아? 그것도 축복을 약속하신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야곱의 아들 아냐? 하나님이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어? 말도 안 돼. 뭐 이러면서 성경을 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이 결말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이 젊었을 때 형들한테 미움을 받았다는 것도, 노예로 팔려갔다는 것도,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혔다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느낄 수가 있습니다. 왜요? 어차피 잘 될 건데. 어차피 나이 서른에 총리가 되어서 110세에 세상을 떠날 80년 동안 하나님 안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다는 걸 알고 있는데, 뭘 그게 대수야……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어요?
그렇다면 다윗은 또 어땠습니까. 사무엘상 16장에 보면 사무엘이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다윗의 아버지 이새를 찾아갑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테니 너의 아들을 다 부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의 아들 중 한 아이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말씀하셨는데, 일곱명 모두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인 이새한테 여기 있는 자들이 너의 아들 전부냐고 물으니까 막내가 하나 있는데 지금 양을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그 막내가 바로 다윗이었던 것입니다만, 이 다윗은 자기 아버지한테도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블레셋 간의 전투에서 아버지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갔다가 골라앗을 보고는 물맷돌로 쓰러뜨리고 난 다음 이스라엘의 영웅이 됩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이제 그를 죽이려는 사울 왕한테 쫓기면서 도피생활이 시작됩니다. 이 기간을 신학자들은 대략 10년에서 13년 정도로 잡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혹시 술래잡기 해보셨나요? 자기를 잡으려고 달려오는 술래를 뿌리치고 기를쓰도 도망칩니다. 잡히면 내가 술래가 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런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누가 내 생명을 노리고 좇아온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이게 얼마나 고달픈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누가 좇아와요? 어떤 개인도 아니고 왕입니다. 최고 권력자가 나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그것도 나를 죽이려고 찾아다닙니다. 이렇게 되면요, 정말 하루라도 마음 편히 잠을 잘 수도 없습니다. 언제 갑자기 그들이 닥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기간이 1주일이요? 한 달이요? 아니요, 1년도 아니고 10년 이상입니다. 그리고 그 도피 과정에서도 온갖 고초를 다 겪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떻게 되나요?

사무엘하 5장 3절~5절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 다윗이 나이가 삼십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 동안 다스렸으되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
イスラエルの全長老がヘブロンの王のもとに来たとき、ダビデ王は、ヘブロンで主の前に、彼らと契約を結び、彼らはダビデに油をそそいでイスラエルの王とした。
ダビデは三十歳で王となり、四十年間、王であった。
ヘブロンで七年六か月、ユダを治め、エルサレムで三十三年、全イスラエルとユダを治めた。

이제 다윗은 나이 서른에 총리도 아니고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나는 70세까지 무려 40년을 왕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어때요? 예전에 그렇게 고생을 한다 하더라도 어차피 잘 될 건데. 어차피 나이 서른에 왕이 되어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텐데, 그것 뿐이에요? 그리스도 메시아 예수님도 다윗의 뿌리에서 나실 건데. 그와 같은 놀라운 은혜를 받을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데.
이와 같은 마음이 바로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의 믿음입니다. 제가 한국에서 살고 있을 때 직장에서도 무슨 이런 작은 일 하나 가지고 서로 언쟁도 하고 속이 상하고 그랬던 적이 있습니다만, 그때 만약에, 에이, 어차피 얼마 있으면 일본에 가서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면서 살게 될걸, 괜히 거기서 사소한 걸 가지고 고집을 부리고 자존심을 세우고 그랬다……그런 마음이 듭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불평이나 불만이 있습니다. 물론 어떤 부당하거나 잘못된 것이 있다면 지적도 해야 하고 바로잡기도 해야겠지요. 하지만 너무 자기만 생각하고 자존심만 생각하고, 너무 자기 이득만 챙기려고 하고 고집만 부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우리 구주로 삼고 성령님과 동행하는 우리를 세상 사람들이 봤을 때, 아 과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다르구나,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정말 마음이 넓고 기쁨으로 충만하구나……이렇게 되어야 하는데, 한국에서 보면, 그런 말씀 들어본 적 있으시죠? 믿는 사람이 더해. 교회 다니는 사람이 더 난리라니까. 그런 말을 들으면 이건 전도는커녕 하나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神を愛する人々、すなわち、神のご計画に従って召された人々のためには、神がすべてのことを働かせて益としてくださることを、私たちは知っています。

우리는 항상 기뻐할 수가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왜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걸 쉽게 말하자면 “어차피 잘 될 거니까.” 입니다. 이미 우리는 다 이긴 축구시합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올림픽으로 본다면, 우리가 경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지고 있어요. 지금 내가 힘이 들어요. 그리고 지금 내가 어딜 다쳤어요. 지금 나한테 이런 저런 문제가 있어요. 하지만 괜찮아요. 왜요? 어차피 잘 될 거니까. 어차피 마지막에는 내가 금메달을 따게 되어 있으니까. 바로 이것입니다. 그것도 더욱 놀라운 것이,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내가 지고 있다는 것, 힘이 든다는 것, 어딜 다쳤다는 것, 내게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는 것, 이것은 모두 나한테는 마이너스, 안 좋은 것들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성경은 보여주고 계십니다.
생각해보세요. 요셉이 형들한테 미움을 받고, 노예로 팔리고,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고, 누명을 써서 옥에 갇히고…… 이 모든 것은 마이너스, 하나같이 안 좋은 요소들입니다. 그러나 이 중 하나라도 빠졌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요셉이 이복 형들한테 미움을 안 받았다면, 노예로 안 팔려갔다면,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안 했다면, 누명을 서서 옥에 갇히지 않았다면, 결국 요셉은 가나단 땅 광야에서 양이나 치면서 일생을 마쳤던 사람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이 모든 안 좋은 것들을 ‘때문에’가 아니라 ‘덕분에’로 바꾸어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이 이복 형들한테 미움을 받은 덕분에, 노예로 팔려간 덕분에, 보디발 집에서 종살이를 한 덕분에, 누명을 써서 옥에 갇힌 덕분에……그 결과가 어떻게 된다고요? 그렇죠. 나이 서른에 총리가 됩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셉은 그래도 아버지 야곱으로부터는 대단히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만, 다윗은 아버지한테서조차도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한 그저 막내아들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사울에게 쫓기는 10여년의 세월 동안 그는 시편을 기록했고 하나님과 함께 했으며 마침내 이스라엘 왕이 됩니다. 이 모든 안 좋은 일들이,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나쁜 요소들이 모두 다 좋은 일들로 바뀌어서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누가 내 것을 빼앗아 가려고 해요. 누가 나를 괴롭혀요.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죠? 그렇죠. 뭐가 어째고 어째? 누가 감이 나를 건드려? 라고 하면서 기를 쓰고 내 것을 챙기려고 해야겠죠. 하지만 그러려고 하니까 하루하루가 힘이 듭니다. 하지만 그것이 세상적인 방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해요?

마태복음 5장 38절~45절
“38.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43.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目には目で、歯には歯で。』と言われたのを、あなたがたは聞いています。しかし、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悪い者に手向かってはいけません。あなたの右の 頬を打つような者には、左の頬も向けなさい。あなたを告訴して下着を取ろうとする者には、上着 もやりなさい。あなたに一ミリオン行けと強いるような者とは、いっしょに二ミリオン行きなさい。求める者には与え、借りようとする者は断わらないようにしなさい。『自分の 隣人 を愛し、自分の敵を憎め。』と言われたのを、あなたがたは聞いています。しかし、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自分の敵を愛し、迫害する者のために祈りなさい。それでこそ、天におられるあなたがたの父の子どもになれるのです。天の父は、悪い人にも良い人にも太陽を上らせ、正しい人にも正しくない人にも雨を降らせてくださるからです。


예수님이 왜 우리한테 이러라고 말씀하시죠? 우리를 미워하시기 때문에요? 무슨 우리가 괴로워하는 걸 보고 즐거워하시려고요? 아니요. 예수님은 그런 이상한 분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뭐겠습니까?
그렇죠. 바로 “어차피 잘 될 거니까”입니다.
どうせうまくいくに決まっているから。
성경 개역개정에 보면 “노력”이라는 말은 딱 한 구절밖에 등장하지 않습니다만 “감사”라는 말은 무려 174번이나 등장합니다. 왜 감사해요?
“어차피 잘 될 거니까” 그렇습니다. 어차피 나는 잘 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神を愛する人々、すなわち、神のご計画に従って召された人々のためには、神がすべてのことを働かせて益としてくださることを、私たちは知っています。

누구든지 아무런 조건 없이 모두가 잘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조건이 무엇이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한테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계획 안에 들어 있는 사람들한테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렇습니다.

로마서 10장 9절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なぜなら、もしあなたの口でイエスを主と告白し、あなたの心で神はイエスを死者の中からよみがえらせてくださったと信じるなら、あなたは救われるからです。

요한복음 6장 44절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わたしを遣わした父が引き寄せられないかぎり、だれもわたしのところに来ることはできません。わたしは終わりの日にその人をよみがえらせます。

야고보서 1장 12절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試練に耐える人は幸いです。耐え抜いて良しと認められた人は、神を愛する者に約束された、いのちの冠を受けるからです。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하고 오늘 이 자리에 주님 앞으로 나아온 우리 모두는 이미 주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임을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모든 승부는 다 이겨놓은 상태입니다. 마지막에는 주님께서 주시는 금메달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복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마태복음 13장 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天の御国は、畑に隠された宝のようなものです。人はその宝を見つけると、それを隠しておいて、大喜びで帰り、持ち物を全部売り払ってその畑を買います。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기만 하면, 우리가 주님 안에 있기만 하면,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기만 하면, 우리가 온전히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인간적으로 보면 안 좋아보이는 그 모든 것들도 합력해서 오히려 선을 이룬다는 이 놀라운 말씀이야말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화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밭에 감추인 이 놀라운 보화를 얻기 위해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팝니다. 이는 꼭 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자존심도 팝니다. 내 불이익도 팝니다. 내 고집도 팔아서 없애버립니다. 그리고 얻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 밭에 감추인 놀라운 보화, 내게 있는 모든 안 좋은 일들도 주님 안에만 있으면 모두가 선을 이루게 된다는 이 놀라운 기적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 우리 한 번 가슴에 손을 얹고 큰 소리로 말해봅시다. “주님 안에만 있으면, 어차피, 난, 잘 될거야.” 다시 한 번요. “주님 안에만 있으면, 어차피, 난, 잘 될거야.” 아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30배 60배 100배, 300배, 600배, 1000배 축복의 열매를 거두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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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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