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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0회 [면류관 강해 제1회] 믿음의 시작 - 이루리라선교회
 

홍성필 목사
이루리라선교회
www.이루리라.com
mail@IRURIRA.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8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설교 동영상

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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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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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이제 지난 주까지 이어온 복음서 강해는 44회로 일단 마무리를 하고, 오늘부터 저는 여러분과 함께 <면류관>을 주제로 해서 <지켜야 할 면류관>이라는 제목으로 새롭게 강해를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면류관 강해 그 첫 시간으로서 <믿음의 시작>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있어서 교회가 위기라고 합니다. 기독교 인구 수는 줄어가고 있으며, 반면에 이단이나 다른 종교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복음이 잘못되어서 그렇습니까. 성경이 잘못되어서 그렇습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구약 39권 신약 27권 총 66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유일하고도 완전한,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의 기독교는 왜 이렇게 쇠퇴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요리책이 있다고 해요. 그 요리책은 아주 유명한 요리사가 쓴 것인데, 그 요리사가 운영하는 식당은 대단히 놀라운 성장을 하고 있다고 해보죠.

그래서 나도 어디 한 번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보자 하는 마음에 그 책을 샀습니다. 그리고 요리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요리가 정말 맛이 없어요.

그렇다면 그 원인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요리책이 잘못 되어서요?


아니에요. 그 책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 의해 검증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만든 요리가 맛이 없게 되고 말았다는 경험이 있으시다는 분 많이 계시지 않을까 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요리책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 프라모델을 만들고 그럴 때 그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분명히 설명서대로 한다고 했는데, 아무리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해도 이상하게 작동이 안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 모든 원인이 다 요리책이나 아니면 프라모델 설명서에 있는 것입니까.

물론 간혹 가다가 그런 경우도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만, 대부분은 원인이 어디에 있는 경우가 많겠습니까.

그렇죠. 내가 무슨 실수를 한 것이죠.

분명히 넣어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안 넣었다든지, 아니면 넣지 말아야 할 것을 넣어버렸다든지, 또는 넣기는 넣었는데 그 분량을 잘못 넣었다든지 하는 그 원인이 있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프라모델도 그렇지요. 설명서대로 하지 않고 엉뚱한 부품을 가져다가 붙이려고 했다거나 아니면 다른 곳에 연결을 해버렸기 때문에 작동하지 않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내가 그 책이나 설명서를 보고 만들었다고 하는 그 요리나 프라모델이 이상한 이유는 그 책이나 설명서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한테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 교회가 쇠퇴하고 있는 이유도 그 원인이 복음이나 성경이나 하물며 예수님한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 나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잘못하고 있기에 지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있어서 교회가 이처럼 문제 투성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요리책이나 설명서 잘못이 아니라 요리책이나 설명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음식맛이 이상해 지는 것이요, 프라모델이 이상해지는 것인 것처럼, 성경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교회가 망가지고 복음이 오염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잘못 이해하는 것에 대해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베드로후서 3장 15절~16절
“15.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16.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여기에 등장하는 편지는 바울이 쓴 서한을 말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로마서나 고린도서, 데살로니가서나 갈라디아서 등의 성경은 모두가 다 바울이 쓴 편지입니다.


아직 신약성경이 없었던 당시에는 바울이 편지를 통해서 믿음을 심어주고 말씀을 풀어주고 그리고 행함을 인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간혹 그 내용을 본래 뜻이 아닌, 이상하게 풀어버리는 바람에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멸망에 이른다고 성경은 기록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오해한다고 하면 우리는 이단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대부분의 이단들은 어떻게 성경을 풀게 됩니까. 대표적인 예가 자신들의 교주는 재림 예수라고 하는 경우를 볼 수 있겠지요.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하는 말씀이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지요.

그런데 성경을 자기들 멋대로 해석해서 주입시키고는, 장차 다시 오실 예수님이 바로 자기라고 하면서 자기를 떠받들면 구원 받고, 자기 말을 안 들으면 멸망한다면서 결국은 자기한테 돈 갖다 바치고 재산 갖다 바치고 그리고 시간이나 몸까지도 갖다 바치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또 다른 대표적인 주장이 바로 시한부 종말론입니다.

성경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말씀들을 억지로 왜곡해서 끼어 맞추어 놓고는 몇 년 몇 월 몇 일에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거나, 아니면 이 세상이 멸망할 테니까……그러면서 역시 교주 말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는 것, 각 이단 사이비들 마다 앞에 붙은 문구들은 좀 다를지 모르지만, 그 목적은 대부분이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이와 같은 일은 한국만이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도 없이 있어 왔던 일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새롭다기보다는 식상하다는 말이 더 맞겠지요. 이러한 일들은 이후에도 또다시 반복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런데 말이에요. 이처럼 성경을 오해하거나 억지로 푸는 것이 과연 이단이나 사이비들만 그런가 하는 것이지요.

앞서 말씀 드렸듯이 성경을 올바로 받아들이고 이 말씀에 순종한다고 하면 교회는 나날이 부흥할 것이요,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반대로 교회는 나날이 쇠퇴하고 복음이 전파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여기에 대한 결론은 하나, 이단이나 사이비가 아닌 우리 스스로에 있어서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저는 몇 년 전부터 문제의식을 가져온 것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주장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지 그 동안 주저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목사 이전에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와 같은 부분에 대한 주장은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고, 그리고 이로 인해서 성경말씀이 올바로 우리 안에 심어지게 됨으로 말미암아 복음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된다고 한다면, 이는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주장은 무엇인가 하면, 바로 구원의 취소입니다.


일반적으로 ‘구원의 취소’라고 하는 개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한 번 구원 받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구원이 취소되어 멸망하는 경우가 있는가.

더 쉽게 말하자면 한 번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는데 나중에 그 구원이 취소 되어져서 지옥에 떨어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안에서 이른바 ‘구원’이라고 한다면, 이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동안에는 아직 천국 하나님 아버지 나라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입니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로마서 4장 3절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갈라디아서 3장 6절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야고보서 2장 23절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 말씀은 구약성경의 한 구절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창세기 15장 6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의로 여기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의로 여기셨다는 것은 것 비록 아직은 이 땅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당장 천국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장차 천국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로 여기셨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에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차 구원 받을 자격, 다시 말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무엇을 하였기에 의로 여겨졌다고 되어 있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무슨 이유로 아브라함에게 구원 받을 자격을 주셨습니까.

성경에는 이점에 대해서 “여호와를 믿으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아브라함은 무슨 선행을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었더니 그것으로 인하여 의로 여기심을 받았다, 즉 구원 받을 자격이 주어졌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겠지요.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어떤 행위를 했을 때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을 때 바로 구원이 약속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우리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구원이 약속되었습니다. 누구는 세례를 받아야지만 비로소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만, 이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세례라고 한다면 이는 신앙을 가졌다는 징표라고 할 수가 있겠지요. 세례를 받음으로써 정식교인이 된다고 할 수 있겠는데 이를 구약적으로 본다면 할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경우를 본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의로 여기신 그 시점이 할례를 받기 전이었을까요, 아니면 할례를 받은 다음이었을까요.

이는 성경을 보면 명확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그의 믿음을 보시고 의로 여기셨다고 하는 시점이 15장 6절이라고 한다면, 한편 할례는 언제 등장하는가 하면 창세기 17장 10절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아직 할례를 받지 않은 시점에서 의로 여기심을 받았다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있어서도 구원을 받을 자격이 주어진 시점과 세례는 무관하다고 할 것이고, 오로지 주님을 우리의 구주로 영접한 그 시점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의로 여기심을 받은 시점, 말하자면 구원을 약속 받은 시점이라고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의 약속을 받은 시점, 구체적으로 믿음의 시작을 어느 시점으로 보아야 하겠습니까.


요엘 2장 32절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로마서 10장 10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로마서 10장 13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이와 같은 성경말씀에 비추어 보아 우리가 믿음을 시작한 시점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신앙을 고백한 시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신앙고백이 있다고는 하지만 대표적으로 사도신경을 꼽을 수 있겠지요.

세례를 받거나 특별한 형식을 갖추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가 마음으로 사도신경에 담긴 내용을 믿고 입으로 “전능하사 전치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라는 신앙고백을 했을 때 우리의 믿음은 시작된다고 보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신앙고백을 하였을 때 우리의 신앙은 시작되고,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마지막 날에 구원에 이르는 자격, 하나님 나라 천국 백성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약속을 받았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이 놀랍고도 기쁨에 찬 구원의 약속은 과연 절대적인가 하는 점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8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마지막으로 남긴 서신이라고 합니다.

이제 주님 앞으로 나아갈 날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알았던 바울은 자신을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는 자신에게 만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 대해서도 이와 같다고 기록합니다.

우리가 신앙고백을 함으로써 주님을 우리의 구주로 영접하고 이제 믿음을 갖게 되고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서게 되는 그 날까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보내게 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요.

우리는 기쁨으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요, 마지막 그 날에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비록 우리가 주님을 믿고 주님을 우리의 구주로 영접함으로 인하여 구원의 약속을 받았는데, 남은 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버리고 믿음에서 벗어나 타락했을 때에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한번 구원의 약속을 받은 사람이 나중에 주님을 저버리고 신앙을 저버렸을 때에도 여전히 구원, 천국백성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구원의 약속은 취소가 되는 것인지 하는 문제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회개를 했다면 문제는 없습니다.

사도행전 3장 19절
“19.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에베소서 1장 7절
“7.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요한일서 1장 9절
“9.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예수님의 보혈에는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잘못을 주님 앞에 고백하고 주님께로 돌아온다면 어떠한 죄라 하더라도 주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아 천국백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치만 문제는 회개를 하지 않았을 때에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이지요.


한 번 하나님을 믿어서 구원이 약속되었는데 그 다음에 타락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회개를 하지 않더라도 구원의 약속이 취소되지는 않는 것인지, 아니면 아무리 한 번 구원의 약속을 받았으나 죄를 짓고 타락을 하게 되면 한 번 받았던 구원의 약속은 취소가 되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일반 성도님들과 전문적 신학지식이 있는 분들과의 사이에서 견해가 갈리지 않을까 합니다.

짐작하건대 일반 성도님들이 생각하기에는, 아무리 처음에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나중에 믿음을 버리게 된다면 구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처음에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믿음생활을 했었다고는 하지만, 나중에는 신앙을 버리고 다른 우상을 계속 섬기다가 죽었어요. 그렇다면 그 사람도 역시 처음에 구원의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천국에 간다?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기에 있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여기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런 의견을 가지고 있을까요. 만약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이번 주라도 교회에 가셨을 때 목사님께 한 번 여쭈어 보시기 바랍니다.


“한 번 받은 구원의 약속이 타락함으로 인하여 취소될 수 있습니까.”

그런 질문을 드리면 특히 장로교나 침례교의 대부분의 목사님들께서는 “한 번 받은 구원은 취소되지 않습니다”라는 놀라운 답변을 듣게 되실 것입니다.

아니, 그렇다고 이것이 이단이나 사이비라서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정통 복음주의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교회의 목사님이나 신학자 분들의 견해가 그렇다는 것이지요.

이와 같은 의견이 나오는 대표적인 견해는 장로회를 창시한 장 칼벵에서 볼 수 있습니다.


조금 어려운 말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장 칼벵의 5대교리라고 하는, 이를 영문 첫 글자를 따서 TULIP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이 중에서 마지막 다섯 번째의 교리가 이른바 ‘성도의 견인’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해석하는 데에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은 성도는 구원의 취소가 없다고 보는 것이지요.

여러분께서는 이 의견에 동의를 하십니까. 한 번 주어진 구원은 죄를 짓는다고 해서,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았는데도 단지 한 번 구원이 주어졌다고 해서 취소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에 동의가 되시나요?


어떤 분은 그럴 리가 있겠냐고 하실 지 모르지만, 그러나 이것이 장로교회 침례교에서 주장하는 엄연한 교리의 원칙입니다.

교회에 오래 다니셨던 어떤 분은 제가 예전에 이런 말씀을 드렸더니 너무나도 생소한 의견이라고 하면서 제 말을 반신반의 하더라고요. 그렇지만 이와 같은 견해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자료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는 좀 지난 기사이긴 합니다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독교 일간지 국민일보 2017년 2월 23일자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목회자 500명에게 물었더니, 절반 가까이 "구원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이 내용에 의하면, 총신대학교 실천목회연구과정에서 약 1년에 걸쳐서 초교파로 목회자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다고 하는데, 이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한번 받은 구원은 영원할까. 아니면 중간에 잃어버릴 수도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52.5%가 “구원은 그래도 영원하다”라고 답한 반면, 절반에 가까운 47.5%가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대답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조사는 오차범위가 ±5.75%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가’라고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오차범위 안에서 거의 절반이나 되는 목회자 분들이 “구원을 한 번 받았다 하더라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는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교리상으로 보면 구원은 취소가 없다고는 하기에 공식적으로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무래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계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오늘부터 시작한 이 면류관 설교에 대해서 이제 이와 관련된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신학자나 목회자에 의해 적혀진 종교서적이 아니고 당연히 성경을 바탕해서 진행될 것입니다.

이제 이 성경말씀이 우리 마음 안에 올바로 심겨짐으로 말미암아 30배 60배 100배, 300배 600배 1000배의 복음의 열매, 축복의 열매를 맺게 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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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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