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복음서 강해 30번째 시간으로서 “초대와 초청” (招待と招へい)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세상에는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 차이를 잘 모를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좀 비교적 쉬운 예를 들어볼까요? 혁명과 쿠데타는 무엇이 다를까요.
좋은 것은 혁명이고 나쁜 것은 쿠데타다? 사실 그렇지는 않고 여기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지요. 그것은 바로 권력 외부에서 일어난
것은 혁명이고 권력 내부에서 일어난 것은 쿠데타라고 하는 것입니다.
쉬운 예로 한국에는 4.19 혁명이나 외국에 본다면 프랑스 혁명 같은 경우를 들 수 있겠지요. 이와 같은 혁명의 경우에는 권력
내부가 아니라 권력 외부에 있는 시민이 그 주체가 된 것이기 때문에 분명 혁명이 맞습니다.
반면에 쿠데타는 어떤 것을 들 수가 있겠습니까. 이는 쉬운 말로 군사 쿠데타를 들 수 있겠지요.
그 나라의 군은 권력 내부에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군의 최고통수권자가 누구인가 하면 그 나라에 있어서의 최고권력자에게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무슨 군사혁명이다 라고 하는 말은 사실 앞뒤가 안 맞는 모순이 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하자면 이른바 군사반란이라고 하는 것은, 권력 내부에 있는 군부에 의해 군 최고통수권자에 대한 하극상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혁명이 아닌 쿠데타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다음은 조금씩 어려워집니다.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범인이 자수하는 경우와 출두하는 경우는 무엇이 다를까요.
범인이 경찰에 자수했다. 범인이 경찰에 출두했다. 분명 뭔가 다를 것 같은데 정작 무엇이 다르냐고 하면 설명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졌느냐 하는 점입니다.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범인이 누구인지 몰라요. 그런데 어느 날 경찰서에 누군가가 나타나서 하는 말이, 사실 제가 그 사건의
범인입니다……라고 하게 된다면 범인이 ‘자수’를 했다는 것이 됩니다.
반면에 역시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범인이 이미 밝혀졌어요. 누구의 소행인지 증거도 있고 증인도 있어요. 다만 범인이 안
잡혔을 뿐이에요.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얼굴을 공개하고 전국에 지명수배를 하기도 하잖아요?
그렇게 하고 난 다음에 비로소 그 범인이 스스로 경찰서에 나타나는 경우는, 이는 자수가 아니라 출두라고 한다는 것이지요.
자, 그럼 난이도가 점점 올라갑니다. 여러분께서는 사임과 사퇴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무슨 장관이 사임했다. 무슨
장관이 사퇴를 했다. 여기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사실 이 점에 대해서는 요즘은 거의 비슷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본래는 그 뜻이 다르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본래 사임과 사퇴에는 무슨 차이가 있냐 하면, 우선 어떤 직책에서 물러나는 것, 말하자면 지금 장관이나 어떤 직책에 있는
사람이 그 자리를 그만 두는 것을 사임이라고 한다면, 사퇴는 아직 그 직책에 있지 않았어요.
다시 말해서 아직 후보자인 상태인데 그 상황에서 물러나는 것을 사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좀 알 것 같지 않으십니까.
자, 그렇다면 오늘의 본론입니다. 초대와 초청의 경우는 무엇이 다를까요.
사실 이 단어의 경우에도 사전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다.
국어사전에서 초대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나와 있어요.
1. 어떤 모임에 참가해 줄 것을 청함.
2. 사람을 불러 대접함.
그리고 초청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사람을 청하여 부름.
이렇게 본다면 서로 차이가 없는 것 같지 않으세요?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 이 초대와 초청은 큰 차이를 보입니다. 어떤 경우냐 하면 이 단어 뒤에 ‘장’이라는 글자를 하나 덧붙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 ‘초대장’과 ‘초청장’이 됩니다. 이제 좀 차이를 아실 것 같으신가요?
우선 ‘초대장’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 사용합니까. 예, 무슨 행사나 잔치 같은 경우에 사용하잖아요. 대표적인 것이 누구
결혼식이라든지 어떤 행사 같은 것이 있다면, 언제 어디서 이와 같은 행사를 하게 되었으니 와주십시오 라고 하는 것이 초대장
아니겠습니까.
반면에 ‘초청장’이 되면 어떨까요. 이를 극명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외국에 사는 사람이 한국에서 그
사람을 외국으로 불러 들이는 경우, 아니면 한국에 사는 사람이 외국에 사는 사람을 한국으로 불러 들이는 경우에 이 초청장이라는
서류가 꼭 필요하게 됩니다.
일단 한국에 사는 사람이 외국에 사는 외국인을 불러 들이는 경우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나라가 아닌 외국에 갈 때, 관광을 갈 경우에는 비자가 없이도 갈 수 있는 나라가 많다고 하지요?
한국 여권의 경우에는 비자가 없이 방문할 수 있는 나라가 190여개국이라고 합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잖아요. 한국여권을 가지고
있으면 90일 동안은 무비자로 체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 관광 같은 단기 방문일 경우이고, 관광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머물기 위해서는 어느 나라든지 반드시 그 목적에 따르는 비자를 취득해야 합니다.
비자에는 유학도 있고 취업비자도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종교비자로 체류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비자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유학이나 취업이나 종교비자 같은 경우에는 각각 그 비자 성격에 맞는 자격을 갖추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유학의 경우에는 입학할 학교가 있어야 하고, 취업비자도 직장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어요? 다닐 학교도 없고 일할 직장도
없는 상황이라면 누가 유학비자나 취업비자를 내주겠습니까.
이 밖에도 모든 비자는 다 그 비자에 맞는 자격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니까 그 자격이 갖추어 져 있지 않으면 비자를 받을 수도
없고, 그러면 당연히 그 나라에 체류할 수도 없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예외가 있습니다. 자격이 없더라도 그 나라에 입국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오랫동안 체류할 수 있는 길이 있어요.
그것은 바로 초청장이 있는 경우입니다.
그 나라 국민 또는 그 나라에서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초청을 받아서 인정을 받게 되면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게 되는 것이지요.
초대장과 초청장의 차이를 간단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기에 적힌 문구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초대장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조금 쑥스럽긴 합니다만 저희 결혼식 때 청첩장에 제가 쓴 문구는 이렇습니다.
“시절은 단풍을 지나 눈 내리는 겨울입니다.
하얗게 덮인 세상은 새롭게 채색할 준비를 합니다.
이제 저희들도 함께 하얗게 펼쳐진 도화지 위에 새로운 삶을 그려가려 합니다.
1월 27일
첫 물감을 드는 날입니다.
함께 자리해주신다면 기쁨으로 간직하겠습니다.”
예, 나름대로 꽤 머리를 쓰면서 짜낸 글귀이긴 한데, 지금 이렇게 읽으니까 참 낯간지럽기도 합니다만, 아무튼 이것이 저희 결혼식
때의 초대 문구였습니다.
반면에 초청장 문구는 어떨까요. 이는 한국에 머무는 사람이 외국에 있는 사람을 한국으로 초청할 때 사용하는 초청장 문구인데, 한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있는 공식 초청장 양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본인은 상기 피초청인을 초청함에 있어 피초청인이 대한민국에 체류하는 기간 중 제반법규를 준수하도록 함은 물론이며 소요되는
경비지불과 위법행위로 인하여 발생되는 모든 사항에 대하여 민·형사상의 책임을 지며, 정해진 기일 내에 출국시키겠사오니 귀 공관의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어떻습니까. 무슨 계절이 어떻고 기쁨이 어떻다는 내용이 전혀 없지요? 그 대신 어떤 내용입니까.
예, 이 사람이 한국에 들어오면 체류하는 동안에 한국 법규를 잘 지키도록 할 것이고, 체류할 때 필요한 모든 비용을 다 부담할
것이며, 만약 무슨 문제가 생기면 여기서 발생하는 민형사상의 모든 책임을 다 자기가 지겠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을 한국에
입국시켜주세요……말하자면 그런 내용 아닙니까.
이는 당연한 것이지요. 왜냐하면 본래 비자를 받으려면 경제적인 증명이다 자격이다 하고 까다로운 요건을 필요로 하는데, 여기에 대한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은 대신해서 다 내가 지겠으니까 입국을 허가해달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비교해보면 어떻습니까. 초대장과 초청장, 이 중에서 초대장은 무슨 책임을 진다는 것은 없습니다.
제가 결혼식날 하객분들을 초청한다는 것은 그저 오셔서 맛있게 음식을 드시고 그리고 저희들을 축하해주세요……라고 하는 것이지, 제가
무슨 그 분들에 대해서 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초청장은 다릅니다. 본래 입국할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입국을 허가하는 것이니만큼, 자신이 누군가를 초청한다는 것은, 만에
하나 그 사람이 무슨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면 모든 책임은 내가 대신 지겠다는 각서나 다름 없는 것이 바로 이 초청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시면, 여러분께서는 혹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초청장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십니까.
마태복음 14장 28절~29절
“28.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28.するとペテロが答えて、「主よ。あなたでしたら、私に命じて、水の上を歩いてあなたのところに行かせてください」と言った。
29.イエスは「来なさい」と言われた。そこでペテロは舟から出て、水の上を歩いてイエスの方に行った。
오늘 본문에 의하면 베드로는 좀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필요한 절차를 모두 밟았어요.
베드로는 자기 마음대로 물위에 뛰어는 게 아닙니다. 베드로가 뭐라고 했습니까.
예수님께 말씀 드리기를 나로 하여금 물위로 가게 해달라고 했잖아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오라”라고 하셨어요.
여기서 “오라”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내용대로라고 한다면 단순한 “초대”가 아닙니다.
“초대”라고 한다면 여기에는 책임이 발생하지 않아요.
“올라면 와라. 하지만 무슨 문제가 생겨도 나는 모른다.” 이게 초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분명 “초청”을 하셨습니다.
“와라. 내가 허락한다. 만약에 내 말대로 오다가 무슨 문제가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내가 다 책임진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와라.”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마태복음 14장 30절~32절
“30.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2.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0.ところが強風を見て怖くなり、沈みかけたので、「主よ、助けてください」と叫んだ。
31.イエスはすぐに手を伸ばし、彼をつかんで言われた。「信仰の薄い者よ、なぜ疑ったのか。」
32.そして二人が舟に乗り込むと、風はやんだ。”
예, 아니나 다를까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나서기 시작했다면 끝까지 주님을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평소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람을 보고 무서워
했더니만 글쎄 몸이 가라앉기 시작했다는 것이에요.
이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은 가만히 계셨어요? 아닙니다. 모든 책임을 다 지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은 즉시 손을 내밀어 베드로의
손을 붙잡아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즘 한국이나 일본을 보면 정말 참 책임을 지지 않는 사회가 된 것 같습니다.
사실 본인에게 직접 잘못이 없다 하더라도, 자기 밑에 있는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면 자기 자신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건 어떻게 된 게 본인이 분명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기는 책임을 지지 않고 자기 밑에 있는 사람한테 죄를
뒤집어쓰게 하는 경우를 참 많이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성경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리가 죄를 짓고 타락하게 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택하신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무참하게 대신 죽게 하셔서, 그 대가로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해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 힘이나 지혜로 예수님을 믿었습니까.
이사야 43장 1절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だが今、主はこう言われる。ヤコブよ、あなたを創造した方、イスラエルよ、あなたを形造った方が。「恐れるな。わたしがあなたを贖ったからだ。わたしはあなたの名を呼んだ。あなたは、わたしのもの。
요한복음 6장 44절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わたしを遣わされた父が引き寄せてくださらなければ、だれもわたしのもとに来ることはできません。わたしはその人を終わりの日によみがえらせます。
요한복음 15장 16절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あなたがたがわたしを選んだのではなく、わたしがあなたがたを選び、あなたがたを任命しました。それは、あなたがたが行って実を結び、その実が残るようになるため、また、あなたがたがわたしの名によって父に求めるものをすべて、父が与えてくださるようになるためです。
에베소서 1장 4절~6절
“4.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すなわち神は、世界の基が据えられる前から、この方にあって私たちを選び、御前に聖なる、傷のない者にしようとされたのです。
神は、みこころの良しとするところにしたがって、私たちをイエス・キリストによってご自分の子にしようと、愛をもってあらかじめ定めておられました。
それは、神がその愛する方にあって私たちに与えてくださった恵みの栄光が、ほめたたえられるためです。
요한1서 4장 19절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私たちは愛しています。神がまず私たちを愛してくださったからです。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계신 예수님을 찾아가서, 저……제가 오늘부터
당신을 믿을 테니까 잘 좀 부탁합니다……라고 해서 믿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 아직 우리가 예수님을 알지 못할 때에, 아니,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먼저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택하시고, 그리고 우리를 부르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단순한 초대가 아닙니다. 분명히 우리를 초청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습니까.
로마서 3장 23절~24절
“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すべての人は罪を犯して、神の栄光を受けることができず、
神の恵みにより、キリスト・イエスによる贖いを通して、価なしに義と認められるからです。
우리는 우리의 죄로 인하여 도저히 구원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민 · 형사상의 모든 책임을
지심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구원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로마서 8장 32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私たちすべてのために、ご自分の御子さえも惜しむことなく死に渡された神が、どうして、御子とともにすべてのものを、私たちに恵んでくださらないことがあるでしょうか。
여러분,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음까지 당하실 정도로 책임을 다 져 주셨는데, 더 이상 무슨 책임을 안
져 주시겠습니까.
불안하십니까. 걱정되십니까. 괜찮습니다. 우리가 바람을 보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고 앞으로 가기만 하면 됩니다.
시편 136편 12절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力強い御手と伸ばされた御腕をもって。 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이제 우리의 모든 책임을 져 주시고,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해주시는 주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눈앞을 가리는 크고 작은
바람들을 모두 물리치고, 주님만을 바라보며 힘 차게 나아갈 때, 마침내 크나큰 승리를 거두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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