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8회 구원의 약속 (1) - 이루리라선교회
2024년 6월 16일 설교

홍성필 목사
이루리라선교회
www.IRURIRA.com
mail@IRURIRA.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9절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マルコの福音書16章19節
“主イエスは彼らに語った後(あと)、天に上げられ、神の右の座に着か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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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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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복음서 강해 23번째 시간으로서 “구원의 약속” 救いの約束 그 첫번째 시간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번 내용은 좀 정보량이 많기 때문에 세 번으로 나누어서 이 “구원의 약속”에 대해서 살펴볼 예정입니다.

일단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오늘은 한 가지 확인부터 하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고는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 중에서도 확인해야 할 것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만, 우선 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것을 믿으시는 분은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예,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좀 이상한 질문, 아마도 이런 질문을 여러분께서는 받아 보신 적도 없고, 생각해보신 적도 없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좀 드릴까 해요.


자,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사실에 대해서 여러분께서는 몇 프로나 믿고 계십니까. 100프로요? 아, 예, 감사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행적을 중심으로 기록된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한 번 볼까요?

성경에는 네 복음서가 있지요? 마태, 마가, 누가, 그리고 요한복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점에 대해서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에서는 아예 언급이 없습니다.

우선 마태복음의 마지막 부분을 살펴볼까요?


마태복음 28장 18절~20절
“18.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18.イエスは近づいて来て、彼らにこう言われた。「わたしには天においても地においても、すべての権威が与えられています。
19.ですから、あなたがたは行って、あらゆる国の人々を弟子としなさい。父、子、聖霊の名において彼らにバプテスマを授け、
20.わたしがあなたがたに命じておいた、すべてのことを守るように教えなさい。見よ。わたしは世の終わりまで、いつもあなたがたとともにいます。」

마태복음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언급이 없어요.


다음으로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요한복음 21장 22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イエスはペテロに言われた。「わたしが来るときまで彼が生きるように、わたしが望んだとしても、あなたに何の関わりがありますか。あなたは、わたしに従いなさい。」

그러고는 역시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말씀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도 나머지 두 복음서,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나올 게 아니냐. 하시겠지요.

예,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어요.

일단 마가복음부터 볼까요?

오늘 본문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마가복음 16장 19절인데, 가지고 계신 성경을 자세히 보시면 마가복음 16장 9절부터 마지막 20절까지 괄호가 쳐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무엇을 뜻하냐 하면, 자,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성경은 원본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존재하는 성경은 아무리 오래된 자료라 하더라도 모두 다 사본이에요.

당시는 지금처럼 복사기나 카메라가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본이라고 하면 모두가 사람이 하나하나 손으로 베껴 쓴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그 과정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사본 제작에는 각별한 주의가 기울어져 있었다고는 합니다만, 그래도 사람이 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그것도 수 백 년, 수 천 년 동안 이어져 오는 과정이다 보니 아무래도 사본에 따라서는 그 내용이 조금씩 차이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가끔 괄호가 쳐져 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사본에 따라서 어떤 사본에는 적혀 있는데, 또 어떤 사본에는 안 적혀 있는 경우에는 괄호로 처리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포함된 마가복음 16장에 보시면 9절부터 20절까지 괄호가 쳐져 있지 않습니까.

이는 방금 말씀 드린 것처럼 사본에 따라서는 적혀 있는 경우도 있고 안 적혀 있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문제는 바로 이 부분에 예수님의 승천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는 것이지요.

다음으로 누가복음은 어떨까요.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의 승천에 대해서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을까요.

누가복음 24장 51절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そして、祝福しながら彼らから離れて行き、天に上げられた。

祝福しておられるうちに、彼らを離れて[天にあげられた。](口語訳)

아하, 여기에는 분명히 하늘로 올려지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확실하겠네요. 하지만 여기서 또 문제입니다. 이 부분을 자세히 보시면 핵심부분, [하늘로 올려지시니] [天にあげられた。]라는 부분이 개역한글과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또 괄호가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역시 사본에 따라서는 이 누가복음 24장 51절 후반부에 기록된 <하늘로 올려지시니>[天にあげられた。]라는 부분이 안 적혀 있는 것도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 이렇게 보시면 어떻습니까.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이렇게 네 개의 복음서 중에서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승천에 대해서 아예 언급이 없고, 그나마 있는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괄호가 쳐져 있어서, 이 부분에 대한 기록이 없는 사본도 있다는 것이잖아요.

이 점을 들어서 누구는 예수님의 승천은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점에 대해서 몇 프로나 믿으십니까.

이제 조금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사도행전을 보시겠습니다.

사도행전 1장 9절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こう言ってから、イエスは使徒たちが見ている間に上げられた。そして雲がイエスを包み、彼らの目には見えなくなった。

자, 여기에는 괄호도 없어요. 아주 선명하게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기록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성경은 여기저기 부분부분만 읽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전체를 다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는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것, 이는 100프로 사실이라는 점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지금부터 이 예수님의 승천에 대해서 잠시 살펴볼까 하는데, 오늘은 그 초점을 예수님이 아닌 그 제자들에게 맞추어 볼까 합니다.

사도행전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다음 장면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 10절~11절
“10.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イエスが上って行かれるとき、使徒たちは天を見つめていた。すると見よ、白い衣を着た二人の人が、彼らのそばに立っていた。
そしてこう言った。「ガリラヤの人たち、どうして天を見上げて立っているのですか。あなたがたを離れて天に上げられたこのイエスは、天に上って行くのをあなたがたが見たのと同じ有様で、またおいでになります。」

특히 여기서 오늘 주목하고자 하는 부분은,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제자들에 대해서입니다.


이 사도행전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이 올라가신 뒤에도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를 다른 말로 하자면 ‘긴장한 채로 열중해서’ 보고 있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께 또 한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께서 사도라고 해요. 그리고 바로 지금 이 순간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때 심정이 어떠셨을 것 같습니까.

하늘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나왔을 것 같습니까.

저는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어쩌면 저는 이런 생각을 했을 지도 몰라요.

“아니, 자기 혼자 올라가면, 이제부터 우리 더러 어쩌라는 건데……” 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럴 만도 하지 않겠어요? 지난 3년 동안 오로지 예수님만 바라보고 따라다녔는데, 이 분만 따라다니면 그래도 뭐라도 될 줄 알았는데, 갑자기 군인들한테 잡히고는 십자가에 달려서 죽고 말았어요. 그래서 크게 낙담 했었는데, 세상에, 다시 살아나셨어요. 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와, 이 분은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정말 하나님의 아들인가보다. 지금 보니까 이제 죽지도 않아. 완전 불사신이야. 이렇게 된다면 지금 이스라엘을 못살게 굴고 있는 로마를 물리치는 게 문제겠어? 세계정복도 꿈이 아니야. 그러면 내 장래는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솔직히 그런 꿈을 가질 수도 있는 상황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걸 어쩌면 좋습니까. “그럼 난 이제 갈게. 수고해” 마치 그러듯이 예수님은 또다시 그들 곁을 떠나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정말 난감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이 그럴 것이라는 사실을 아셨기 때문일까요? 그 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니다.


사도행전 1장 4절~5절
“4.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使徒たちと一緒にいるとき、イエスは彼らにこう命じられた。「エルサレムを離れないで、わたしから聞いた父の約束を待ちなさい。
ヨハネは水でバプテスマを授けましたが、あなたがたは間もなく、聖霊によるバプテスマを授けられるからです。」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른 데 가지 말고 성령을 주실 때까지 기다리라고 당부를 하십니다.

왜 이렇게까지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들에게는 이미 전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분명히 다시 살아나신다는 말씀을 몇 번이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죽으신 다음에 그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가만히 모여서 기도를 했나요?


요한복음 21장 2절~3절
“2.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シモン・ペテロ、デドモと呼ばれるトマス、ガリラヤのカナ出身のナタナエル、ゼベダイの子たち、そして、ほかに二人の弟子が同じところにいた。
シモン・ペテロが彼らに「私は漁に行く」と言った。すると、彼らは「私たちも一緒に行く」と言った。彼らは出て行って、小舟に乗り込んだが、その夜は何も捕れなかった。


그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그래요.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로 다음 구절, 요한복음 21장 4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夜が明け始めていたころ、イエスは岸辺に立たれた。けれども弟子たちには、イエスであることが分からなかった。


이제 예수님도 죽으시고 나도 뭘 해야 할지 모르니, 에라 원래 하던 고기잡이나 하자……하고 했더니만 그게 잘 되었다던가요? 아니요. 허탕만 쳤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딱 걸렸죠.

예수님이 말씀은 안 하셨지만, 속으로 뭐라고 그러셨겠어요.

“얘들아, 너네 지금 뭐하고 있니?” 라고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 그들은 또다시 세상으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다시 또 들키면 이제는 변명의 여지도 없잖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지 못하겠어요.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된다고 하는데, 아니, 지금까지 그런 걸 경험해본 적도 없고, 성령을 받는 사람을 보지도 못한 마당에 무엇을 믿고 기다리란 말이에요.

저 같았으면 참으로 답답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기다리라고 하니까 기다려야죠.

사도행전 1장 12절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そこで、使徒たちはオリーブという山からエルサレムに帰った。この山はエルサレムに近く、安息日に歩くことが許される道のりのところにあった。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는 모습을 보고는 감람원이라고 하는 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 기록을 근거로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곳이 감람원이라고 해서, 지금 이 감람원에는 예수승천기념교회가 있습니다.

이제 그들은 다락방(屋上の間)에 모여서 주님의 말씀대로 기다리게 됩니다.

사도행전 1장 15절 전반부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そのころ、百二十人ほどの人々が一つになって集まっていたが、

이 기록에 의하면 당시에 그 다락방에는 백이십 명 정도가 있었다고 하는데, 어떤 신학자는 처음부터 120명 정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본래는 더 많았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근거로 고린도전서 15장을 제시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절~8절
“3.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私があなたがたに最も大切なこととして伝えたのは、私も受けたことであって、次のことです。キリストは、聖書に書いてあるとおりに、私たちの罪のために死なれたこと、
また、葬られたこと、また、聖書に書いてあるとおりに、三日目によみがえられたこと、
また、ケファに現れ、それから十二弟子に現れたことです。
その後(のち)、キリストは五百人以上の兄弟たちに同時に現れました。その中にはすでに眠った人も何人かいますが、大多数は今なお生き残っています。
その後(のち)、キリストはヤコブに現れ、それからすべての使徒たちに現れました。
そして最後に、月足らずで生まれた者のような私にも現れてくださいました。

그러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은 500 여명에게 보이셨기 때문에 아마 이 때에도 처음에는 500 명 정도가 모였던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인원수가 점차 줄어서 120명 정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명확한 성경 기록이 없기 때문에 뭐라고 말씀을 드릴 수는 없겠습니다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말이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 여기서 또 한 가지 확인하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다음에 그들은 얼마 동안이나 함께 모여서 지냈을까요.

더 알기 쉽게 말씀 드리자면, 사도행전 2장에 보시면 얼마 후에는 정말로 성령님이 강림하시게 되잖아요.

그렇다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고는 얼마 후에 일어난 일일까요.

이는 성경 기록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 3절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イエスは苦しみを受けた後、数多くの確かな証拠をもって、ご自分が生きていることを使徒たちに示された。四十日にわたって彼らに現れ、神の国のことを語られた。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다음에도 제자들에게 보이셨는데 이 기록에 의하면 사십일 동안이라고 되어 있지요?

여기서 40일이라고 하는 날짜를 고난을 받으신 날, 그러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날부터 계산할 것인지, 아니면 부활하신 날부터 계산할 것인지에 대해서 주장이 갈리긴 합니다만, 문맥상으로 본다면 후자가 타당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신 것은 부활한 이후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죠.

이렇게 본다면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그 부활하신 날부터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셨기 때문에 십자가부터 계산하면 42일만에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언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까.

마가복음 14장 12절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種なしパンの祭りの最初の日、すなわち、過越の子羊を屠る日、弟子たちはイエスに言った。「過越の食事ができるように、私たちは、どこへ行って用意をしましょうか。」

본래 유월절에는 양을 먹게 되어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전날에 마지막 만찬을 하시고 그 다음 날에 십자가에 달리게 되셔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죽임을 당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사흘 만에 살아나시게 되었는데, 하늘로 올라가신 것은 부활하시고 40일 후, 십자가에 달리신 날부터는 42일 후라는 사실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성령강림사건이 일어난 것은 언제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사도행전 2장 1절~4절
“1.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五旬節(ごじゅんせつ)の日になって、皆が同じ場所に集まっていた。
すると天から突然、激しい風が吹いて来たような響きが起こり、彼らが座っていた家全体に響き渡った。
また、炎のような舌が分かれて現れ、一人ひとりの上にとどまった。
すると皆が聖霊に満たされ、御霊が語らせるままに、他国のいろいろなことばで話し始めた。


예, 바로 오순절날에 성령강림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오순절이라고 하는 것은 무교절 즉 유월절부터 계산해서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그러니까 여기까지 흐름을 정리하자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하늘로 오르시기까지 42일,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유월절부터 50일이 되는 날에 성령님이 오셨다고 한다면, 예수님께서 하늘로 오르시고는 며칠 후에 성령님이 오셨다는 계산이 됩니까.

그렇죠. 8일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고는 8일 만에 성령강림사건이 일어나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앞서 제자들에게 보이셨다고 하는 40일을 십자가에 달리신 날부터 계산을 한다고 해도 승천하신 날부터 성령강림까지 10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주님의 응답이 늦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당시에도 처음에는 500명이 모여 있었으나 점점 그 수가 줄어들어 마지막에는 120명까지 되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하지만 성경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언제 한 번이라도 약속을 어기신 적이 있으셨습니까. 아니요. 없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37절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もうしばらくすれば、来たるべき方が来られる。遅れることはない。

성령님이 오신다고 하면 오십니다. 그리고 주님이 오신다고 하면 오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기서 지체하지 않으신다고 하는 뜻은, 단순히 빨리 오신다는 뜻이 아니라, 오셔야 할 바로 그 때에 정확하게 오신다는 뜻인 것입니다.


へブル人への手紙
「もうしばらくすれば、来たるべき方が来られる。遅れることはない。

聖霊が授けられるとおっしゃったら、授けられます。そして、主が来られるとおっしゃったら、来られる方だということを信じる皆様であらんことをお祈りいたします。

ここで、遅れることはない、とおっしゃってるのは、ただ単に早く来られるということではなく、来られるべきその時に、間違いなく来られるという意味なのであります。

오늘은 <구원의 약속>에 대한 첫 시간입니다. 다음 주도 오늘에 이어서 구원의 약속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말씀을 나누어 보겠습니다만, 이 구원은 단순히 말씀만으로 하신 것이 아닌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보여주신 약속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주님이 우리에게 그 피값으로 주신 구원의 약속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낙심이나 좌절이나 절망이 아닌 도리어 소망을 가지고 주님과 동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今日は「救いの約束」に関する1回目の時間でありまして、来週も引き続き「救いの約束」についてもう少し深く掘り下げ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が、この「救い」というのは単に言葉だけで話されたのではなく、主が十字架に架けられることによって私たちに見せてくださった約束だということを信じる皆様であらんことをお祈りします。

これからは主が私たちに、その血の代価によって下された「救いの約束」を信じることによって、落胆や挫折や絶望ではなく、むしろ希望をもって主と共に歩まれる皆様であらんことをお祈りします。


 

Posted by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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