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6회 이루어지는 삶 - 이루리라선교회
2024년 6월 2일 설교

홍성필 목사
이루리라선교회
www.IRURIRA.com
mail@IRURIRA.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5절~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ヨハネの福音書15章7節
“あなたがたがわたしにとどまり、わたしのことばがあなたがたにとどまっているなら、何でも欲しいものを求めなさい。そうすれば、それはかなえられ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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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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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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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복음서 강해 21번째 시간으로서 “이루어지는 삶” かなえられる人生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 참 은혜롭지 않습니까. 사실 우리, 특히 성인이 되어서 믿음을 갖게 된다면 그 계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내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때문 아니겠습니까. 내 질병이 낫고 내가 경제적으로도 넉넉해지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게 나쁜 것인가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병이 낫기 원하는 것이 어떻게 나쁠 수가 있으며, 그리고 또한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어떻게 나쁠 수가 있겠습니까. 질병이 축복이 아니듯 가난도 역시 축복이 될 수 없습니다.

주님 안에 계시면 모든 질병이 치유 받고 가난과 궁핍에서 벗어나 넉넉함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런데 말이에요. 이를 믿기는 하는데, 실제로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맨날 교회에 다니고 기도도 하는데 여전히 질병은 그대로 있고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질 못해요.

오늘 말씀에 보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라고 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해요. 그런데 아무리 구해도 이루어지지 않아요.

그렇다면 성경은 틀린 것입니까. 아니면 성경이 쓰여진 2천년 전에는 그랬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입니까.

만약에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 두꺼운 성경을 읽을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믿음을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은 유일하고도 완전한 하나님 말씀이라는 사실, 지금도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어제와 오늘과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해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기도제목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에 분명히 이렇게 적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성경 말씀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느껴져요.


그렇다면 우리는 그럴 때 어떻게 합니까. 특별히 믿음이 좋은 분들은 어떻게 합니까.

일단 기도를 많이 하시게 되겠지요. 누구는 하루에 몇 시간이나 기도를 하신다고 하는데, 참 놀라울 따름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기도를 하실 수 있는지 참 대단하신 것 같아요.

예배도 많이 드립니다. 한국은 특히 교회에서 예배를 많이 드리지요? 주일예배는 물론이고 새벽예배 수요예배 철야예배 등 많은 예배가 있습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그래도 안 되면 금식을 하시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하루 금식, 사흘 금식, 또는 그 이상도 금식을 하는 경우도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 보면 40일 금식을 하셨다는 분들도 많이 계시다니 이 또한 참으로 놀라울 따름입니다.

저는 이 모든 것에 대해서 비판할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주님 앞에 기도하고 예배하고 그리고 금식을 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매달리는 것, 대단히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 내가 기도를 많이 했어요. 예배도 많이 드렸어요. 그리고 금식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예, 응답을 받지 못했어요.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기도가 부족해서? 예배가 부족해서? 아니면 금식이 부족해서입니까? 그러면 답은 쉽겠네요. 내 모든 생업, 학교도 직장도 가정도 모두 포기하고 기도원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예배하고 그리고 금식을 하면서 40일이든 50일이든 버티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일은 본인에게 한해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기도 해요.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 가난한 사람들을 보고 아, 저 사람들은 기도가 부족해서, 믿음이 부족해서, 아니면 금식을 안 해서 저렇다.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좀 해보신 분들은 이런 말씀, 자신이 누구한테서 직접 듣지는 않더라도 이런 말들을 사람들이 한다는 사실을 들으신 적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게 사실입니까.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의 기도가 부족해서? 믿음이 부족해서? 아니면 금식이 부족해서?

사실 이와 같은 말이, 무슨 신앙에 있어서 도움을 주는 귀한 충고처럼 여기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아닙니다. 오히려 이와 같은 말은 대부분이 상대방에게 적지 않은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상대방의 기도가 부족해서, 믿음이 부족해서, 아니면 금식이 부족해서 그 사람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진정으로 믿고 계시다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어요?

예, 그 사람을 위해서 내가 먼저 기도하고 내가 먼저 금식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실 그게 진정한 이웃 사랑 아니겠습니까. 상대방더러 기도해라 금식해라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기도가 부족하고 금식이 부족한 것이 정말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내가 금식하고 기도해주면 될 것 아니에요.

하지만 장담하건대 그와 같은 분들? 기도가 부족한 내 이웃을 위해서 금식까지 하면서 간절히 기도하는 분들?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40년 넘게 해왔는데 그런 분들은 한 번도 보지를 못했습니다.

반면에 상대방더러 당신은 기도가 부족해서 믿음이 부족해서 금식이 부족해서 응답을 못 받는다고 충고하는 말씀? 제 주위에서 수도 없이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기는 쉽지요. 하지만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겠습니다만, 상대방에게 기도해라 금식해라 하는 말씀은 이는 충고가 아니라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 그럼 처음으로 돌아와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왜 실제로는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일까요.

일본에 보면 경찰이 수사를 하는 데에 있어서 격언들이 몇몇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현장 백번”입니다. 이는 무엇을 말하냐 하면, 예를 들어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어요. 그런데 범인을 잡기 위해서 아무리 수사를 해도 단서를 찾을 수가 없어요.

그렇다면 그럴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면, 바로 범행현장으로 것입니다. 사건 해결을 위한 실마리는 반드시 사건 현장에 있다. 처음에는 그것을 놓칠 수도 있으니 100번이라도 현장을 찾게 된다면 반드시 사건의 실마리, 범인을 잡을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다는 의미의 격언입니다.

이를 우리 신앙에 적용해보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 신앙에 있어서의 100번이라도 더 찾아야 할 현장은 어디가 되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이 성경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해결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성경에는 분명히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면 이루어진다고 적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 현장을 100번이라도 찾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 그럼 그 말씀이 적혀 있는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15장 7절을 다시 한 번 봐야 하겠지요.

영화나 드라마 같은 데에서 경찰이나 탐정이 수사할 때 보면 돋보기 같은 것을 들고 보는 경우도 있잖아요? 자, 우리도 그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이 구절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あなたがたがわたしにとどまり、わたしのことばがあなたがたにとどまっているなら、何でも欲しいものを求めなさい。そうすれば、それはかなえられます。


이 말씀을 자세히 보시면 어떻습니까. 분명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면 이루리라” (何でも欲しいものを求めれば、かなえられます。) 라는 말씀은 있습니다만, 이것 만이 아니지요? 여기에는 분명히 조건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조건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이는 바로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된다면(あなたがたがわたしにとどまり、わたしのことばがあなたがたにとどまっているなら)……이라는 조건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우리가 원한다 하더라도 이 조건이 충족되어 있지 않다면 얼마나 우리가 간절히 원한다 하더라도 이루어지지는 않는다고 하는 것이지요.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해야 하고,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주님의 마음, 주님이 가장 원하시는 그 마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에요? 그것은 바로 주님의 말씀, 성경 말씀인 것입니다.

기도도 좋고 금식도 좋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주님의 말씀, 성경 말씀이 우리 안에 없다면 이는 말짱 헛것입니다. 그야말로 공허한 믿음, 자칫하면 미신이나 우상을 섬기는 것이나 다름 없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십자가나 세워놓고 거기에 대고 절하면서 기도한다면 그게 올바른 믿음입니까. 성경책을 읽지도 않으면서 그저 손에 들고 흔들면서 기도하면 응답 받는다고 믿는다고 한다면, 그것이 올바른 믿음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의 십자가나 성경을 우상으로 만들어버리는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자, 우리가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해요? 예, 물론 돈을 가져가야 하겠지요. 하지만 돈만 가져가면 됩니까.

어떤 사람이 배가 고파서 식당에 갔다고 해요. 돈도 넉넉하게 가져갔습니다. 이제 종업원이 메뉴를 가져 오면 주문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와요. 주위 사람들은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는데 내 테이블 위에는 물 한잔도 없습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오겠지 하고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더니 결국 가게 영업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뭐냐 하면 그 식당은 뷔페식이었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자기가 먹을 것을 가져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계속 기다리고 있기만 하니까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밥 한 숟가락 먹지도 못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요. 어쩌면 그저 웃자고 한 소리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 신앙에 있어서도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 이야기처럼 아무리 좋은 식당에 아무리 돈을 많이 가져갔다 하더라도 그 식당의 방식을 모르면 음식을 못 먹는 것처럼,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아무리 금식을 많이 했다 하더라도 우리 믿음의 방식, 다시 말해서 성경말씀을 모르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지금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깨닫고 이를 근거로 해서 기도를 해야 이루어지는 것이지, 성경도 모르고 밤낮 기도를 해봐야 우리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주님 안에 거하기 위해서 성경 구절 하나를 더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사야 60장 22절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最も小さい者も軍団となり、最も弱い者も強国となる。わたしは主。時が来れば、速やかにそれをする。」

이 말씀에서도 하나님께서 이루시겠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여기에 자세히 보시면 <때가 되면>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때가 되면>이라는 말씀은 신약 베드로전서에도 나옵니다.

베드로전서 5장 6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ですから、あなたがたは神の力強い御手の下にへりくだりなさい。神は、ちょうど良い時に、あなたがたを高く上げてくださいます。

일본어 성경에 보니까 베드로전서에서의 “때가 되면”이라는 말씀을 “가장 좋을 때” “가장 적절할 때”라고 번역이 되어 있었습니다.

자, 이는 무슨 말씀이겠습니까. 아니,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질문을 드릴까요? 이 ‘때’는 누가 정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정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정하시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많이 하면 바로 이 “때”를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정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이는 바로 대단히 힘들고 고단해지는 일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응답은 간혹 우리가 원하는 바와 다르게 나타날 때도 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모두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그 백성들 대부분이 포로로 끌려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기도제목이 무엇이겠습니까. 빨리 바벨론에서 풀려나서 내 나라로 돌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 기도제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응답하십니다.


예레미야 29장 4절~10절
“4.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5.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6.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7.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8.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중에 있는 선지자들에게와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꾼 꿈도 곧이 듣고 믿지 말라
9.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0.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エレミヤ書29章4節~10節
「イスラエルの神、万軍の主はこう言われる。『エルサレムからバビロンへわたしが引いて行かせたすべての捕囚の民に。
家を建てて住み、果樹園を造って、その実を食べよ。
妻を迎えて、息子、娘を生み、あなたがたの息子には妻を迎え、娘を嫁がせて、息子、娘を産ませ、そこで増えよ。減ってはならない。
わたしがあなたがたを引いて行かせた、その町の平安を求め、その町のために主に祈れ。その町の平安によって、あなたがたは平安を得ることになるのだから。』
まことに、イスラエルの神、万軍の主はこう言われる。『あなたがたのうちにいる預言者たちや、占い師たちにごまかされるな。また、あなたがたが見ている夢に聞き従ってはならない。
なぜなら、彼らはわたしの名を使って、偽りをあなたがたに預言しているからだ。わたしは彼らを遣わしていない──主のことば。』
まことに、主はこう言われる。『バビロンに七十年が満ちるころ、わたしはあなたがたを顧み、あなたがたにいつくしみの約束を果たして、あなたがたをこの場所に帰らせる。


이게 뭐예요? 기껏 내 나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그 응답이 뭐라고요? 예, 그냥 거기서 결혼하고 애 낳고 살라는 거예요.

다른 선지자들이나 점쟁이들이 아, 이제 곧 우리가 돌아갈 수 있다고 하면서 그런 말을 해도 믿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뭐라고 하세요? 예, 70년이 차면 너희를 돌려보내겠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때를 누가 정하셨죠? 예, 하나님께서 정하셨습니다. 결국 이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기도 응답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반해 우리의 고집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기도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알고 주님의 마음을 알았을 때, 그에 맞는 기도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려도, 어떤 분은 아, 주님의 뜻과 달리 내 기도로 응답을 받은 적이 았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자, 이런 경우를 한 번 생각해 보시겠습니다. 캄캄한 밤이에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아침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했어요. 주여, 어서 아침이 되게 하옵소서……. 속히 아침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도 아침이 안 돼요. 그래서 더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몇 시간이고 기도했습니다. 배가 고파도 금식하면서 열심히 기도했어요.

그러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점점 날이 밝아옵니다. 그리고 저 멀리 동쪽에서 환하게 아침 해가 떠오르지 않습니까.

이를 보고 그 사람은 큰 소리로 외칩니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제가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더니 주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간증을 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를 드렸더니 응답 받았다고 하면서. 응답을 받지 못한 사람은 기도를 열심히 안 해서라고, 자기처럼 기도를 열심히 하면 응답을 받는다고 장담합니다.

자, 이 사람의 주장,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현명한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이는 현명한 것이 아닌, 대단히 피곤한 신앙생활, 미련한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침이 밝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사람이 기도를 해서예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었기 때문에 아침이 밝은 것 아니겠습니까.

야고보서 5장 16절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ですから、あなたがたは癒やされるために、互いに罪を言い表し、互いのために祈りなさい。正しい人の祈りは、働くと大きな力があります。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기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기도를 주님께서 들으십니다. 그러나 막무가내로 기도하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모든 생활을 다 포기하고 기도만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의인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 주님의 말씀을 알고 주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물론 우리가 기도밖에 할 수 없을 때가 있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요나서 2장에서처럼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상황에서 기도 외에 달리 무엇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은 대단히 많습니다.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겨야 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의 마음을 배우고 알아가야 합니다.

호세아 6장 3절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私たちは知ろう。主を知ることを切に追い求めよう。主は暁のように確かに現れ、大雨のように私たちのところに来られる。地を潤す、後の雨のように。
しかし私たちがこの世で生きている間は、やるべきことがたくさんあります。主に仕え、隣人に仕えるためにやるべきことがどれほどたくさんあるでしょうか。

そして、なにより、主の心を学び、知ってい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


ホセア書6章3節
私たちは知ろう。主を知ることを切に追い求めよう。主は暁のように確かに現れ、大雨のように私たちのところに来られる。地を潤す、後の雨のように。



성경은 힘써 여호와를 알자, 힘써 주님을 알자고 기록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주님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 오류가 없이 완전하고도 유일하신 하나님 말씀이신 성경말씀을 힘써 알아가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聖書は主を知ることを切に追い求めいようと記されております。

それでは、どのようにすれば主を知ることができるのでしょうか。

それはまさしく私たちに下さった、誤りのない、完全でかつ、唯一の神様のみ言葉である聖書を知ることを切に追い求め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を信じる皆様であらんことをお祈りいたします。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알게 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주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 그렇다면 무엇을 알아야 한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성경 말씀을 알아야 하는 것이에요.

이제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함으로 말이암아, 우리가 주님께 무엇을 구하든지 이루어지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私たちが主を知ることができれば、主が私たちに最も望まれていることを知ることができます。そして主を知るためには、そうです、聖書を知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これからは、主の中にとどまり、主のみ言葉を正しく理解することによって、私たちが主に求めるとき、かなえられる人生となりますよう、主の御名においてお祈りいた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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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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