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2회 세례 요한 입문
2024년 2월 18일 설교

홍성필 목사
기린선교회 www.3927.kr
kirinmission@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9절~21절
“19.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20.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21.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ヨハネの福音書 1章 19節~21節
“19.さて、ヨハネの証しはこうである。ユダヤ人たちが、祭司たちとレビ人たちをエルサレムから遣わして、「あなたはどなたですか」と尋ねたとき、
20.ヨハネはためらうことなく告白し、「私はキリストではありません」と明言した。
21.彼らはヨハネに尋ねた。「それでは、何者なのですか。あなたはエリヤですか。」ヨハネは「違います」と言った。「では、あの預言者ですか。」ヨハネは「違います」と答え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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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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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복음서 강해 7번째 시간으로서 “세례 요한 입문” 洗礼者ヨハネ入門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부터 몇 회에 걸쳐 세례 요한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려고 하는데, 오늘은 우선 세례 요한이라고 하는 사람에 대해서부터 알아볼까 합니다.

세례 요한의 잉태에 대한 내용은 누가복음 1장에 등장합니다.

당시 제사장 중에 사가랴(ザカリ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나이가 많았지만 아이가 없었습니다.

누가복음 1장 13절에 보면 천사 가브리엘이 제사장 사가랴에게 나타나서 그의 아내 엘리사벳(エリサベツ)이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그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라면서 이름까지 지어줍니다.

그의 아내 엘리사벳도 역시 나이가 많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브리엘이 알려준 것처럼 정말로 아이를 갖게 되었어요.


누가복음 1장 26절 이후에 의하면 엘리사벳이 잉태된 후 5개월이 지나고는 6개월 째가 되는 달에 역시 천사 가브리엘이 요셉이라는 목수와 약혼한 마리아를 찾아가서 하나님의 아들 즉 예수님을 잉태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와 같은 기록에 의하면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이 땅에 오신 순서로만 본다면 세례 요한이 예수님보다 대략 5개월 정도 먼저 태어났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성경은 세례 요한에 대해서 많은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우선 마태복음 3장 3절을 보실까요.

마태복음 3장 3절
“3.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この人は、預言者イザヤによって「荒野で叫ぶ者の声がする。『主の道を用意せよ。主の通られる道をまっすぐにせよ』」と言われた人である。

이는 이사야서 기록을 인용한 것인데, 이는 다음 말씀입니다.


이사야 40장 3절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荒野で叫ぶ者の声がする。「主の道を用意せよ。荒れ地で私たちの神のために、大路(おおじ)をまっすぐにせよ。

이 점에 대해서는 세례 요한 스스로도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 23절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ヨハネは言った。「私は、預言者イザヤが言った、『主の道をまっすぐにせよ、と荒野で叫ぶ者の声』です。」

이와 같이 성경에 의하면 세례 요한은 주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미리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이 글을 보기만 하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겠습니다만, 알고 보면 이는 엄청난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어떤 인물이 태어나기 전에 이 세례 요한의 경우처럼 미리 이름을 정해준 경우가 있을까요. 예, 있습니다.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경우이겠지만, 이 외에도 창세기 16장 11절에서는 이스마엘의 이름을 지어 주셨고, 창세기 17장 19절에서는 이삭, 역대상 22장 9절에서는 솔로몬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시는 등 사실 출생하기 전에 이름을 붙여주는 경우는, 물론 그리 많지는 않지만 종종 있었던 일이긴 합니다.

그렇다면 출생에 있어서 다른 책에 예언되는 경우는 어떨까요. 태어나기 1년이나 그 정도 전에 네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식이 아니라, 아예 다른 책에 출생이 예언되는 경우는 누가 있었을 것 같습니까.

사실 알고 보면 그와 같은 인물은 예수님과 바로 이 세례 요한 밖에 없었다는 점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다윗이나 엘리야나 이사야 같은 선지자라 하더라도, 그리고 신약에 있어서는 베드로나 바울과 같은 위대한 사도라 하더라도 성경은 다른 책에서 그 출생을 예언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외에 이처럼 다른 책에서 그 출생이 미리 예언된 인물이 있었는데, 그 인물이 바로 세례 요한이었다는 것이지요.

이와 같은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성경 전체에서 차지하는 이 세례 요한의 비중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있어서 오해를 하시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세례 요한이 요단 강에서 세례를 주면서 회개와 천국을 선포합니다. 그러자 많은 백성들이 그에게로 모여오는데 여기서 긴장했던 이들이 있겠지요. 그것은 바로 당시 종교적인 지도자들, 그러니까 기득권자들이었지요. 그래서 그들은 도대체 세례 요한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알고 싶어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이 그것을 알고 싶어했겠습니까. 무슨 좋은 의도가 있었을까요? 아니요. 그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에서 였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 19절~21절
“19.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20.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21.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ヨハネの福音書 1章 19節~21節
“19.さて、ヨハネの証しはこうである。ユダヤ人たちが、祭司たちとレビ人たちをエルサレムから遣わして、「あなたはどなたですか」と尋ねたとき、
20.ヨハネはためらうことなく告白し、「私はキリストではありません」と明言した。
21.彼らはヨハネに尋ねた。「それでは、何者なのですか。あなたはエリヤですか。」ヨハネは「違います」と言った。「では、あの預言者ですか。」ヨハネは「違います」と答えた。”


그들은 세례 요한에게 세 가지 질문을 합니다. 너는 누구냐, 너는 엘리야냐, 마지막으로 너는 선지자냐 하는 질문을 하지요.

이 질문에 대해서 세례 요한은 모두 부인을 합니다. 그런데 조금 생각해보면 의문이 들 수도 있는 부분이 있어요.

우선 너는 누구냐에 대한 질문인데, 그 질문의 의도를 요한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네가 장차 오실 그리스도 메시야냐 하는 질문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앞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왔기 때문에, 자신은 그리스도 메시야가 아니라고 이를 부인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지요.

문제는 두 번째 질문과 세 번째 질문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장 21절 초반부
“21.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21.彼らはヨハネに尋ねた。「それでは、何者なのですか。あなたはエリヤですか。」ヨハネは「違います」と言った。


그들은 왜 이와 같은 질문을 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구약 마지막 장인 말라기에 다음과 같은 예언이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4장 5절~6절
“5.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見よ。わたしは、主の大いなる恐るべき日が来る前に、預言者エリヤをあなたがたに遣わす。
彼は、父の心を子に向けさせ、子の心をその父に向けさせる。それは、わたしが来て、この地を聖絶の物として打ち滅ぼすことのないようにするためである。」

구약의 마지막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두려운 날, 즉 하나님의 날이 이르기 전에 엘리야를 우리에게 먼저 보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점에 대해서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7장 10절~13절
“10.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1.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12.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13.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すると、弟子たちはイエスに尋ねた。「そうすると、まずエリヤが来るはずだと律法学者たちが言っているのは、どういうことなのですか。」
イエスは答えられた。「エリヤが来て、すべてを立て直します。
しかし、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エリヤはすでに来たのです。ところが人々はエリヤを認めず、彼に対して好き勝手なことをしました。同じように人の子も、人々から苦しみを受けることになります。」
そのとき弟子たちは、イエスが自分たちに言われたのは、バプテスマのヨハネのことだと気づいた。


구약에 있어서도 장차 메시야 구세주가 오신다는 말씀, 그리고 그 이전에 엘리야가 먼저 온다는 성경 말씀은, 서기관 정도 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가 다 알고 있었습니다.

이는 여담입니다만, 성경 기록에 의하면 당시 세례 요한의 차림새는 엘리야와 비슷한 점이 있었습니다.

열왕기하 1장 8절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彼らが「毛衣を着て、腰に革の帯を締めた人でした」と答えると、アハズヤは「それはティシュベ人エリヤだ」と言った。

마가복음 1장 6절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ヨハネはらくだの毛の衣を着て、腰に革の帯を締め、いなごと野蜜を食べていた。

엘리야는 몸에 털이 많다고는 하는데,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성경 번역본에 따라서 몸에 털이 많았다는 것인지, 머리 숱이 많은 것인지, 아니면 털이 많이 달린 옷을 입었다는 것이지에 대해서는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한편 세례 요한에 대해서 보자면, 메뚜기와 석정을 먹었다고 하는데, 여기서의 석청은 말하자면 야생 꿀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세례 요한은 허리에 가죽 띠를 띤 옷차림을 하고 있었고, 메뚜기와 야생 꿀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과연 어떤 외모였는지, 정확히 무엇을 먹었었는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천국 가서 직접 물어봐야 알 수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허리에 가죽 띠를 띤 차림으로 기록된 인물은 신구약을 통 틀어서 구약에서는 엘리야 뿐이고 신약에서는 세례 요한 뿐입니다.


어찌 되었든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미리 보내 주시겠다고 하신 말라기의 예언 대로 이 땅에 오신 인물이 바로 세례 요한이라고 하는 점을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례 요한은 이 점에 대해서 부인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례 요한은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아직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종교에 의하면 죽은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하는, 이른바 환생이라고 하는 개념이 있는 경우를 종종 볼 수가 있지요.

사람이 죽고 얼마가 지나면 그 영혼이 다른 사람이나 동물한테 들어가서 다시 태어나게 된다고 하기도 한다는데 성경에는 그와 같은 말씀이 없어요.

그리고 또한 죽은 사람의 영혼이 꿈에 나온다거나 아니면 그 죽은 곳에 계속 붙어 있다거나 하기도 합니다만, 역시 그와 같은 주장들도 모두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아니, 생각해보세요. 사람이 죽으면 그 장소에 영혼이 계속 있게 된다? 그렇다면 동서를 불문하고 지금도 사람들이 제일 많이 죽어 나가는 장소는 어디입니까.

바로 병원이잖아요. 그럼 대형병원은 귀신들의 소굴입니까. 귀신들이 아주 우글우글 하겠네요? 그럼 그거 무서워서 어떻게 갑니까.

성경에 의하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면 좀 이상한 말일지는 모르지만, 꿈에 나온다거나 환상으로 으흐흐흐 하면서 나올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そして、人間には、一度死ぬことと死後にさばきを受けることが定まっているように、

그리고 그 심판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2절~15절
“12.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また私は、死んだ人々が大きい者も小さい者も御座の前に立っているのを見た。数々の書物が開かれた。書物がもう一つ開かれたが、それはいのちの書であった。死んだ者たちは、これらの書物に書かれていることにしたがい、自分の行いに応じてさばかれた。
海はその中にいる死者を出した。死とよみも、その中にいる死者を出した。彼らはそれぞれ自分の行いに応じてさばかれた。
それから、死とよみは火の池に投げ込まれた。これが、すなわち火の池が、第二の死である。
いのちの書に記されていない者はみな、火の池に投げ込まれた。


생각해보세요. 이제부터 심판을 받아야 하는데, 언제 구천을 떠돌고 언제 꿈에 나타날 새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돌아가신 분이 꿈에 나타나는 경우는 무엇이냐고 할 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는 어쩌면 자신의 기억이나 희망사항이 꿈으로 보일 수도 있거나, 아니면 다른 요인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최소한 그 돌아가신 사람의 진짜 영이 직접 내 꿈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의하면 죽은 사람이 살아 있는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경우를 본다면 이는 이른바 변화산 사건 때 예수님과 함께 했던 모세와 엘리야 뿐입니다.

마태복음 17장 3절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そして、見よ、モーセとエリヤが彼らの前に現れて、イエスと語り合っていた。

마가복음 9장 4절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また、エリヤがモーセとともに彼らの前に現れ、イエスと語り合っていた。


누가복음 9장 30절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そして、見よ、二人の人がイエスと語り合っていた。それはモーセとエリヤで、

이 장면을 목격한 것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인데, 그리고 이 말씀으로 보아 알듯이 모세와 엘리야는 그들에게 말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말을 나누고 있다고 기록하지 않습니까.

또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구약에 등장하는 사무엘을 떠올리시는 분이 계실까봐 잠시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사무엘상 28장 5절~6절
“5.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의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6.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サウルはペリシテ人の陣営を見て恐れ、その心は激しく震えた。
サウルは主に伺ったが、主は、夢によっても、ウリムによっても、預言者によってもお答えにならなかった。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왕으로 세움을 받았지만, 그는 하나님을 높이는 대신 자기 스스로를 높이기에 바빴습니다. 사울의 거듭되는 불순종으로 인해서 결국 하나님은 그를 버리시게 되지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한 그는 이제 두려움에 시달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시고 그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사무엘은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어요.

그래서 그는 무당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그래서 죽은 사무엘을 불러내서는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어보겠다는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니까 죽은 사무엘을 불러내서 물어보려고 한다는데, 이게 얼마나 참 말이 안 되는 생각입니까.

하지만 이제 그에게는 이성적인 판단을 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는 신접한 무당(霊媒師)을 찾아가서 이미 세상을 떠난 사무엘의 영혼을 불러내라고 합니다.


사무엘상 28장 13절~19절
“13.왕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하니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영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하는지라
14.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그의 모양이 어떠하냐 하니 그가 이르되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하더라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 줄 알고 그의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니라
15.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불러 올려서 나를 성가시게 하느냐 하니 사울이 대답하되 나는 심히 다급하니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나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다시는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내게 대답하지 아니하시기로 내가 행할 일을 알아보려고 당신을 불러 올렸나이다 하더라
16.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 네 대적이 되셨거늘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17.여호와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네게 행하사 나라를 네 손에서 떼어 네 이웃 다윗에게 주셨느니라
18.네가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그의 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오늘 이 일을 네게 행하셨고
19.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라 하는지라”

王は彼女に言った。「恐れることはない。何を見たのか。」女はサウルに言った。「神々しい方が地から上って来るのを見ました。」
サウルは彼女に尋ねた。「どのような姿をしておられるか。」彼女は言った。「年老いた方が上って来られます。外套を着ておられます。」サウルは、その人がサムエルであることが分かって、地にひれ伏し、拝した。
サムエルはサウルに言った。「なぜ、私を呼び出して、私を煩わすのか。」サウルは言った。「私は困りきっています。ペリシテ人が私を攻めて来るのに、神は私から去っておられます。預言者によっても、夢によっても、もう私に答えてくださらないのです。それで、私がどうすればよいか教えていただくために、あなたをお呼びしました。」
サムエルは言った。「なぜ、私に尋ねるのか。主はあなたから去り、あなたの敵になられたのに。
主は、私を通して告げられたとおりのことをなさったのだ。主は、あなたの手から王位をはぎ取って、あなたの友ダビデに与えられた。
あなたが主の御声に聞き従わず、主の燃える御怒りをもってアマレクを罰しなかったからだ。それゆえ、主は今日(きょう)、このことをあなたにされたのだ。
主は、あなたと一緒にイスラエルをペリシテ人の手に渡される。明日、あなたもあなたの息子たちも、私と一緒になるだろう。主は、イスラエルの陣営をペリシテ人の手に渡されるのだ。」

이 기록을 보면 마치 사울 왕이 사무엘을 대면하고 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가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사울 왕 앞에 있는 사람은 무당이고, 무당이 말하기를 한 노인의 영이 올라온다고 하잖아요. 그렇다면 그 노인이 어떻게 생겼냐 하면 얼굴 생김새에 대한 정보는 없어요. 그저 겉옷을 입은 한 노인이 보인다는 것 뿐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무엇이 보이냐 하면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이고 자기가 듣고 싶어 하는 것만 들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사무엘을 만나고 싶어 하는데 무슨 겉옷을 입은 노인네가 보여요. 아니, 그것도 사울이 직접 본 게 아닙니다. 그저 무당이 보인다고 주장을 하고 있고, 사울은 눈앞에 있는 무당만 보고 있는 상황인 것이지요.

그리고 그 노인의 어디서 나타났대요? 예, 13절에 의하면 “땅에서 올라왔다(地から上って来る)”고 하잖아요.

백 보, 천 보를 양보해서 사무엘의 영이 나타났다고 하지요. 그러면 사무엘이 지옥에 있습니까. 아니요.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야말로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성전에 살면서 평생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충실하게 살아온 그의 영이 나타났다 하더라도, 그 영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면 또 모를까 어떻게 땅에서 올라올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무당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금하신 것인데, 하나님 나라에 있는 사무엘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무당이 부른다고 나타날 리가 있겠습니까.

그 뿐만이 아닙니다.

사무엘상 28장 19절
“19.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라 하는지라”

主は、あなたと一緒にイスラエルをペリシテ人の手に渡される。明日、あなたもあなたの息子たちも、私と一緒になるだろう。主は、イスラエルの陣営をペリシテ人の手に渡されるのだ。」

이 말은 하나님께서 내일 너와 네 아들, 그러니까 사울 왕과 그의 아들들이 블레셋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사울 왕과 사무엘이 내일 함께 있게 된다고 하잖아요. 이것도 말이 안 됩니다.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평생을 하나님께 순종한 사무엘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사울과 함께 있을 수는 있겠습니까. 만약 이 노인의 영이 말한 주장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사울은 죽은 후에 심판을 받아 지옥에 떨어질 것이 분명한데 그 곳에 함께 있겠다고 한다면 이 노인의 영은 틀림없이 마귀 사탄이라는 뜻이 된다는 것이지요.

귀신이 이 땅에 존재하나요? 예,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 악한 영으로서 등장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영은 눈으로 보이는 생김새가 어떤 생김새로 나타나든지 간에 그것은 바로 악한 영이 나타나는 것이지, 죽은 사람의 영이 직접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사람이 죽은 다음에 그 영혼이 다른 사람에게 들어가서 다시 태어난다거나 하는 것도 성경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에 세례 요한이 그들의 질문에 대해서 내가 엘리야다, 라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지극히 성경적이지 않은 환생을 인정한 것이 되기 때문에 요한은 이에 대해 분명히 아니라고 부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또한 예수님 말씀 대로 틀림없이 엘리야로서 이 땅에 왔습니다.

사가랴에게 세례 요한에 대해서 말씀을 전할 때에 천사 가브리엘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누가복음 1장 17절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彼はエリヤの霊と力で、主に先立って歩みます。父たちの心を子どもたちに向けさせ、不従順な者たちを義人の思いに立ち返らせて、主のために、整えられた民を用意します。」

그러니까 그는 그 구약 때의 엘리야의 영혼이 다시 자기 몸에 들어와서 환생을 했거나 한 것이 아니라, 우상들이 판을 치고 있던 시기에 우상들과 싸워서 물리치고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했던 엘리야와 같이, 세례 요한도 그와 같은 사명을 띠고 많은 백성들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며 주의 길을 곧게 하기 위해서 보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은 세례 요한더러 세 번째 질문을 던집니다.

요한복음 1장 21절 후반부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では、あの預言者ですか。」ヨハネは「違います」と答えた。”


그들은 세례 요한에게 당신이 선지자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이 질문에 대해서도 아니라고 답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1장 9절~11절
“9.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10.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11.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そうでなければ、何を見に行ったのですか。預言者ですか。そうです。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預言者よりもすぐれた者を見に行ったのです。
この人こそ、『見よ、わたしはわたしの使いをあなたの前に遣わす。彼は、あなたの前にあなたの道を備える』と書かれているその人です。
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女から生まれた者の中で、バプテスマのヨハネより偉大な者は現れませんでした。しかし、天の御国で一番小さい者でさえ、彼より偉大です。


이 말씀에서 주님은 세례 요한이 선지자, 아니, 다른 선지자들 보다도 훨씬 더 뛰어난 선지자이며, 예언의 말씀처럼 주님의 길을 준비하러 왔으며, 이 땅의 그 누구보다도 큰 인물이 바로 세례 요한이라고까지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세례 요한은 의심할 여지 없는 선지자 중의 선지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 요한은 왜 그들의 질문에 대해서 아니라고 부인을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들이 했던 질문을 자세히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21절 후반부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실까요.

요한복음 1장 21절 후반부
“21.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では、あの預言者ですか。」ヨハネは「違います」と答えた。”

만약에 그들이 묻기를 “네가 선지자냐”라고 했다면 요한은 어쩌면 그렇다 라고 대답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질문은 어떻습니까. 단순히 “네가 선지자냐”라고 한 것이 아니라 “네가 그 선지자냐”라고 했던 것이지요.


자, 구약에 보시면 장차 등장할 인물에 대한 예언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메시야, 그리스도이시요, 둘째가 엘리야가 다시 오겠다는 예언인데, 그 외에 나머지 하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말씀이 어디 있냐 하면 신명기에 있는 말씀입니다.

신명기 18장 15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あなたの神、主はあなたのうちから、あなたの同胞の中から、私のような一人の預言者をあなたのために起こされる。あなたがたはその人に聞き従わなければならない。

이는 모세가 한 말입니다만, 그러니까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 했던 질문은, 네가 장차 오실 메시야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야? 그럼 나머지 하나 남았네. 네가 그러면 신명기에 기록된, 하나님께서 장차 모세 다음으로 일으키시겠다는 바로 그 선지자야? 라고 물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 질문에도 세례 요한은 분명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이 신명기에 기록된 말씀 즉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일으키실 것이요 그 말을 들으라고 하신 그 인물은 다름 아닌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구약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명을 따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그 때까지 억압받던 애굽에서 끌어내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 가나안으로 인도한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그 때까지 죄악에 짓눌렸던 우리를 인도해 내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주시고 장차 거룩한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로 인도해주실 줄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旧約においてモーセは神様の命に従って神様の民であるイスラエルを、それまで苦しめられていたエジプトから率いて、神様がお与えになったカナンの地へと導いたように、イエス様はそれまで罪によって苦しめられていた私たちを率いて神様の民としてくださり、来るべき時に聖なる天の御国へと導いてくださるということを信じる皆様であらんことをお祈りします。




말하자면 네가 <그 선지자냐>라고 하는 질문은 마치 <네가 그리스도냐>라고 하는 질문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당시 그들은 이 둘이 별개인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세례 요한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한 것으로 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에 이어서 다음 주도 이 세례 요한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하는데, 우리는 분명 기억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시대도 역시 세례 요한과 똑 같은 시대라는 사실입니다.



세례 요한은 곧 이어 오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회개와 천국을 전파했다고 한다면, 우리도 역시 장차 다시 오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본다면 비록 세례 요한이 살고 있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이긴 합니다만, 당시 그 상황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와도 똑 같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 세례 요한에 대해서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또한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귀한 도구로 쓰임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これからこの洗礼者ヨハネをより深く理解していくことによって、主の道を備える尊い器として用いられる皆さまであらんことを主の御名においてお祈り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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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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