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0회 낡은 부대를 새 부대로 (3)
2024년 2월 4일 설교

홍성필 목사
기린선교회 www.3927.kr
kirinmission@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9장 17절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マタイの福音書 9章 17節
“また、人は新しいぶどう酒を古い皮袋に入れたりはしません。そんなことをすれば皮袋は裂け、ぶどう酒が流れ出て、皮袋もだめになります。新しいぶどう酒は新しい皮袋に入れます。そうすれば両方とも保て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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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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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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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복음서 강해 5번째 시간으로서 “낡은 부대를 새 부대로(3)” 古い革袋を新しい革袋に(3)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시간에는 경건이라고 하는 낡은 부대에 알아보았고, 지난 주에는 십자가나 성경, 더 나아가 예수님 마저도 경우에 따라서는 우상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교회 내의 우상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세 번째 시간인 오늘은 바로 <열심(熱心さ)>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믿음생활에 있어서 <열심>이라고 한다면 어떤 생각을 갖게 되십니까. 이를 두고 나쁘다고 말씀하실 분들은 없으시겠지요.

열심히 기도도 하고 예배도 드리고 하는 것, 이는 나쁘기는 커녕 많은 분들이 본받아야 하는 자세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시 우리가 경계해야 할 낡은 부대 중에는 이 <열심>이라고 하는 덫이 얼마나 많이 깔려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은 이 <열심(熱心さ)>이라고 하는 낡은 부대를 버려버리고 새 부대에 주님의 말씀을 가득 담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전에 제가 잠시 알던 분이 계셨는데, 이 분의 어머님은 권사님이셨는데, 이 권사님은 강하게 주장하시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새벽기도는 반드시 드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벽 5시에 일어나면 자기 아들을 깨워요. 그리고 잠이 아직 덜 깬 아들과 함께 새벽기도를 드리고 옵니다.

그렇게 새벽에 예배를 다녀오면 졸릴 것 아니에요. 하지만 이 권사님의 주장은 또 뭐냐 하면 새벽기도에 다녀왔다고 해서 아무리 졸립다고 하더라도 낮에 자면 안 되고, 밤에는 항상 성경을 읽고는 12시에 잠을 자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어떠냐 하면 이 아드님은 밖에서 생활할 때 항상 시간만 나면 꾸벅꾸벅 졸아요.

그리고 이 권사님의 주장은 그것 만이 아닙니다. 기도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거예요. 기도를 하면 얼굴에서 환하게 빛이 나지만, 기도를 하지 않으면 얼굴이 아주 시커멓게 된다고 해요. 그래서 하루에 몇 시간이고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뭐,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만, 이것 만을 보시면 어떻습니까. 여러분께서는 공감이 가십니까. 그리고 이대로 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이렇게 믿고 있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금식을 얼마나 해야 하고 주일은 어떻게 해야 하고, 먹는 것 마시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고, 그리고 반대로 이것은 하면 안 되고 저것도 하면 안 되고…….

이런 사람들 주변에 있으면 어떨 것 같습니까. 믿음이 대단히 좋아질 것 같으신가요. 아니요. 제 솔직한 심정은 뭐냐 하면 대단히 피곤하다는 것입니다.

제가 잠시 이 아드님과 가까이 지낼 일이 있었습니다만, 얼마나 좀 측은하게 느껴졌는지 몰라요. 아니, 어머님은 연세도 있으시고 해서 수면시간이 짧아서 몇 시간 안 자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한테 이건 이렇게 해야 한다, 저건 저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를 하면 그 주변 사람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런 분들 밑에 있었다고 한다면, 교회고 신앙이고 뭐고 솔직히 지겨워서라도 다 때려 치고 싶어 지지 않겠습니까.

이 분만이 아니라 세상에 보면 이와 같은 분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병에 걸렸거나 문제가 있을 때 금식을 하기도 하고 기도원에 가기도 하잖아요. 그렇다면 금식은 며칠이나 하면 될 것 같습니까. 하루에 기도는 얼마나 하면 될 것 같습니까.

누구는 또 그런 말도 합니다. 마귀를 물리칠 때에는 그냥 “예수의 이름으로 물러가라” 라고 하면 안 된대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 하면, 좀 혀를 굴려서 “예슈의 이름으로 물러가라” 라고 해야 물러간다고 하는 말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마귀는 복음성가를 부르면 물러가지 않는데 찬송가를 부르면 물러간다나? 그런 말을 웃지도 않고 진지한 얼굴로 하시니, 듣는 사람 입장으로서는 참으로 난처하지요.

예전에 그런 말씀을 제가 드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교역자를 모집한다고 하기에 한 전도사님이 면접을 보았다고 하는데, 이 전도사님은 어머님께서 질병으로 일찍 돌아가셨다고 해요.

그런데 이를 두고 그 면접을 보는 담임목사라고 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 어머님께서 일찍 돌아가신 것은 전도사님의 기도가 부족해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잔인하고 사람 마음에 비수를 꽂는 말입니까.

그리고 이는 또 제가 30대 초반 때의 일입니다만, 무슨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일요일에 교회를 마치고 나가야 하는 시간에 일을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 사실을 교회에서 말을 하니까 그 구역 리더라고 하는 형제가 하는 말이, 자기도 주일에 일을 하게 될 뻔한 적도 있었는데, 믿음을 가지고 그 일을 그만 두니까 이런 저런 좋은 일들이 일어났다고 하면서 간증을 합니다.

그건 뭐예요? 제가 그 일 때문에 교회에 안 나오겠다는 것도 아니고, 교회를 마치고 일을 하러 간다고 하는데도 그것이 잘못됐다고 하면서, 당장 그만 두라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와 같은 주장들, 물론 그 사람들이 정말 나쁜 사람들이라서 그랬겠습니까. 그 진의는 제가 알지는 못하지만 저는 사실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좋은 의도를 가지고 말을 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을 이렇게 힘들게 하는 일이 발생하느냐 하는 것이지요.

오늘은 잠시 사사기 말씀부터 살펴볼까 합니다.


사사기 17장 1절~5절
“1.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더니
2.그의 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은 천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가졌나이다 하니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3.미가가 은 천백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매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기 위해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주리라
4.미가가 그 은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었으므로 어머니가 그 은 이백을 가져다 은장색에게 주어 한 신상을 새기고 한 신상을 부어 만들었더니 그 신상이 미가의 집에 있더라
5.그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그가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더라”


エフライムの山地の出で、その名をミカという人がいた。
彼は母に言った。「銀千百枚が盗まれたとき、あなたはのろいの誓いをされ、私の耳にもそのことを言われました。実は、その銀は私が持っています。私がそれを盗んだのです。」すると母は言った。「主が私の息子を祝福されますように。」
彼が母にその銀千百枚を返したとき、母は言った。「私は自分の手でその銀を聖別して、主に献げていました。自分の子のために、それで彫像(ちょうぞう)と鋳像(ちゅうぞう)を造ろうとしていたのです。今は、それをあなたに返します。」
彼が母にその銀を戻したので、母は銀二百枚を取って銀細工人(ぎんざいくにん)に与えた。銀細工人はそれで彫像と鋳像を造った。こうして、それはミカの家にあった。
このミカという人には神の宮があった。彼はエポデとテラフィムを作り、その息子の一人を任命して、自分の祭司としていた。


여기서 단어를 몇 가지 설명 드리겠습니다.

1절에서 <에브라임 산지(エフライムの山地)>라고 나오는데 이로 보아 이 미가와 그 가정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 중에서 에브라임 족속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5절에서 <에봇과 드라빔(エポデとテラフィム)>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에봇(エポデ)>은 당시 제사장이 입었던 옷을 말하는 것이고 <드라빔(テラフィム)>은 당시 이방인들이 섬겼던 우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사기 17장에서 18장에 있는 내용의 시작 부분입니다만,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에브라임 지파 가정에 미가라고 하는 아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은 천백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난리를 쳤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이 돈을 훔친 것이 그 아들이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어머니가 하도 속상해 하니까, 그 돈이 여기 있다고 하면서 이 아들이 자수를 했어요.

그러자 어머니의 화가 금방 풀려서 아들더러 여호와의 복 받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들이 어머니에게 자기가 훔친 은을 돌려주었더니, 어머니가 그걸로 우상을 만들어서는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겠다고 합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자기 아들 중에서 하나를 뽑아서 제사장을 삼았다는 것이 이 본문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 이 본문에서 이상한 점이 어디 있을까요. 사실 자세히 이 내용을 자세히 본다면, 문제가 있는 점이 한 둘이 아닙니다.

일단 이 어머니 입에서 <여호와>라고 하는 하나님의 성호가 나왔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는 분명 신앙이 있는 집안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일단 2절에 의하면 어떻습니까. 아들이 어머니의 돈을 훔쳤어요.

이 시점에서 본다면 아들은 이미 십계명 중에서 두 가지를 어겼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일단 자기 어머니의 돈을 훔쳤기 때문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あなたの父と母を敬え)> 라고 하는 제5계명을 어긴 것이 되겠지요.

뿐만 아니라 <도둑질하지 말라(盗んではならない。)> 라고 하는 제8계명도 어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어머니는 그 점에 대해서 전혀 지적을 하지 않고, 그저 아이구 이쁜 내 새끼……라고 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하겠다고 하냐 하면 우상을 만들겠다는 것이에요. 그 우상을 왜 만드냐 하면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기 위해서, 말하자면 하나님을 위해서 우상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이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あなたは自分のために偶像を造ってはならない。上の天にあるものでも、下の地にあるものでも、地の下の水の中にあるものでも、いかなる形をも造ってはならない。それらを拝んではならない。それらに仕えてはならない。)> 라고 하는 십계명 중에서 제2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다음으로 5절에 의하면 에봇과 드라빔(エポデとテラフィム)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입는 옷을 입고서는 드라빔이라고 하는 우상을 섬기도록 하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5절 끝부분에 보시면 자기 아들 중에서 하나를 세워 제사장을 삼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사장은 모세의 형인 아론의 후손 즉 레위 지파만 하게 되어 있었는데 이 가정은 에브라임 지파였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이 짧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로 문제가 많이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영적으로 보자면 그야말로 지저분하고 문제 투성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이 어머니에게 악의가 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니요. 이 어머니는 하나님을 위해서 이렇게 했다고 하잖아요.

자기는 잘 믿어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예, <열심히> 했습니다. 열심히 돈을 들여서 우상도 만들고, 열심히 제사장 옷도 만들고 열심히 자기 아들도 제사장으로 세워서 열심히 섬겨보려고 했던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그렇게 열심히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이는 오히려 하나님을 욕보이게 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결국 이들은 바로 다음 장인 18장에서 모든 것을 다 빼앗겨버리고 말지요.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항상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저 내 생각만 가지고 막무가내로 열심히 하기만 하면 승리할 수가 있습니까.

달리기 경주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냅다 뛰기만 하면 됩니까. 아닙니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서 출발해야 하고 정해진 코스를 달린 다음에, 역시 정해진 결승점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잖아요.

이 어머니는 좀 잘 믿어보려고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문제가 많은 행동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바로 <무지>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는 하나님께 순종했던 유다 제13대 왕이었던 히스기야 왕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만, 오늘은 역시 하나님께 순종했던 유다 제16대 왕인 요시야 왕에 대해서 잠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열왕기하 22장에 의하면 요시야 왕은 하나님의 성전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서 성전을 수리할 것을 명합니다. 그런데 그 때 성전에서 제사장 힐기야가 오래된 율법책이 하나 발견됩니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내용이 요시야 왕에게까지 보고가 되는데, 그 때 장면이 다음과 같습니다.


열왕기하 22장 8절~11절
“8.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힐기야가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
9.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돌아가서 보고하여 이르되 왕의 신복들이 성전에서 찾아낸 돈을 쏟아 여호와의 성전을 맡은 감독자의 손에 맡겼나이다 하고
10.또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사반이 왕의 앞에서 읽으매
11.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


そのとき、大祭司ヒルキヤは書記シャファンに、「主の宮で律法の書を見つけました」と言った。そしてヒルキヤがその書物をシャファンに渡したので、彼はそれを読んだ。
書記シャファンは王のもとに行って、王に報告した。「しもべたちは、神殿にあった金を取り出して、これを主の宮で工事している監督者たちの手に渡しました。」
さらに書記シャファンは王に告げた。「祭司ヒルキヤが私に一つの書物を渡してくれました。」シャファンは王の前でそれを読み上げた。
王は律法の書のことばを聞いたとき、自分の衣を引き裂いた。


하나님께 순종했던 요시야 왕은 이 율법책 내용을 듣더니 자기 옷을 찢었다고 합니다. 이는 대단히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진정한 율법, 하나님의 말씀을 지금까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 말하자면 지금까지 열심히 한다고 했었는데 그게 다 헛것이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요시야 왕은 이제 어떻게 했냐 하면 다음 장에 기록합니다.



열왕기하 23장 1절~3절
“1.왕이 보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자기에게로 모으고
2.이에 왕이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주민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노소를 막론하고 다 왕과 함께 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성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
3.왕이 단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께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따르기로 하니라”


王は使者を遣わして、ユダとエルサレムのすべての長老たちを彼のところに集めた。
王は、ユダのすべての人々、エルサレムのすべての住民、祭司と預言者、および下の者から上の者まで、すべての民とともに主の宮に上り、主の宮で見つかった契約の書のことばをすべて彼らに読み聞かせた。
それから王は柱のわきに立ち、主の前に契約を結び、主に従って歩み、心を尽くし、いのちを尽くして主の命令と証しと掟を守り、この書物に記されているこの契約のことばを実行することを誓った。民もみなこの契約に加わった。


여기서 요시야 왕이 하고자 했던 말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지금까지 자기들 생각대로 지켜왔던 것은 다 헛것이다. 이제 여기에 적힌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는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 말씀에 입각하지 않고 자기들 멋대로 해왔던 그런 낡은 부대들은 다 버려버리고, 이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새 부대에 믿음을 담아야 한다는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가 업무상 때로는 여러 변호사들 홈페이지에 들어가보곤 합니다만, 거기에 보면 자기들 소개가 있잖아요.

그럼 그 내용이 어떤 것으로 채워져 있겠습니까.

뭐, 기본적으로 몇 년에 어디 학교를 졸업하고, 언제 사법시험이나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는 내용이 있고, 그리고 그 외에는 대부분 자기 경력들이 나와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께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변호사님들의 소개 중에 “나는 법전을 몇 번 통독했습니다”라는 소개가 있을까요.

아니면 “나는 법정에서 재판장에게 몇 시간 동안 변론을 한 적이 있습니다”라는 소개가 있을까요?

지금 한국의 변호사 수가 대략 3만 4천명 정도라고 하는데, 제가 장담을 합니다만, 한국만이 아니라 전세계 어느 변호사라 하더라도 그와 같은 것을 자랑삼아 적어 놓은 변호사는 없을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법전을 몇 번 읽었냐 하는 것이나, 재판장에게 변론을 몇 시간 했느냐 하는 것이 변호사의 실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교회에 보시면 다양한 자랑거리가 있는데 그 중에는 자기가 성경을 몇 번 읽었다거나 기도를 몇 시간 한다거나, 내가 금식을 얼마나 했다는 것을 자주 말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리고 또 있는 것은 내가 교회에 몇 년 다녔다거나 내가 직분이 뭐라고 말하는 분들도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그 사람의 믿음을 간음할 수 있는 척도가 될 수 있을까요.

아니요. 오히려 그와 같은 말 중에 낡은 부대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은 아닌지 점검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변호사에게 있어서 법전을 몇 번 읽었는지, 변론을 몇시간 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단순하게 말해서 재판에서 이길 수 있느냐 여부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기는 것, 우리 삶에 있어서 승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교회에 오래 다니기만 하면 승리할 수 있습니까.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단순히 성경책만 많이 읽으면 승리할 수 있습니까. 기도나 금식을 오래 하기만 하면 승리할 수 있습니까.

그와 같은 막무가내식 열심은 오히려 승리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0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로마서 10장 2절~3절
“2.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私は、彼らが神に対して熱心であることを証ししますが、その熱心は知識に基づくものではありません。
彼らは神の義を知らずに、自らの義を立てようとして、神の義に従わなかったのです。


아무리 교회에 오래 다니고 아무리 열심히 믿는다고 하더라도 올바른 지식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내세우려고 하는 것이므로, 하나님께 순종하기는커녕 오히려 불순종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를 오래 하고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고, 아무리 금식을 오래 했다고 하더라도, 무슨 어려움이 닥치면 기다렸다는 듯이 낙심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포기하면서, 아이구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이럴 수 없어……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인생을 원망하게 된다면 그것이 어떻게 해서 승리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법전만 많이 읽고 재판에서 말도 많이 하는데 재판만 하면 지는 변호사와 다를 바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 변호사한테 누가 사건을 맡기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올바로 알고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다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오더라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좌절하지 않습니다.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神を愛する人たち、すなわち、神のご計画にしたがって召された人たちのためには、すべてのことがともに働いて益となることを、私たちは知っています。

지금 눈앞에 크고 작은 문제들이 나를 가로막고 있다 하더라도, 아브라함을 부르셨던 하나님, 모세를 이끄셨던 하나님, 그리고 다윗과 함께 싸우셨던 하나님께서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편 125편 1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主に信頼する人々はシオンの山のようだ。 揺るぐことなく とこしえにながらえる。


이제 내 생각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통해서, 나를 세우려는 낡은 부대를 버려버리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새로운 부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담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흔들리지 않고,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고 또 이기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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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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