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삭개오가 버린 것과 얻은 것 ♬
2014년 11월 16일 글들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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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성가대를 섬길 당시 주보에 실었던 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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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만난 부자가 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삭개오였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실 때, 삭개오는 예수님이 어떤 사람인지 한 번 보기 위해 돌무화과나무(개역한글에서는 ‘뽕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삭개오를 보시고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집으로 가겠다고 하십니다. 삭개오는 이에 감격하여 나무에서 내려와 영접하고는,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눅 19:8)”고 고백하게 되고, 예수님은 삭개오를 축복하십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삭개오가 버린 것과 얻은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그는 첫째로 ‘명예’를 버렸습니다. 누가복음 19장 2절에 의하면 그는 세리 중에서도 우두머리인 세리장이었으며 부자였다고 합니다. 그에게는 로마 정부로부터 부여 받은 권력이 있었기에, 평소에 그는 위엄을 갖고 행동했을 것이며 항상 다른 이들로부터의 이목에도 신경을 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사는 여리고에 예수님이 오시던 바로 그 날, 삭개오는 모든 체면을 버리고 예수님을 갈망하는 마음에 나무 위로 오르게 됩니다.
다음으로 삭개오는 ‘부’를 버렸습니다. 당시에는 세리가 부과하는 세금은 곧 법이었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세리들은 로마가 요구하는 금액보다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여 그 차액으로 배를 불리고 있었으므로, 많은 이들로부터 미움을 받았던 존재였으나, 그가 가진 권력 때문에 반항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특권을 누렸던 그가 예수님을 영접하자 재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가난한 자들을 돕겠다고까지 하는 놀라운 고백을 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버린 것이 있습니다. 성경을 살펴 보면 다른 이들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와 삭개오의 경우를 비교해 보면 다소 어색함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올 때에는 이루고자 하는 것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삭개오는 성경 어디를 찾아보아도 예수님께 무엇 하나 구하는 장면이 없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 27:4). 그는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무에 올랐고, 예수님을 영접함으로써 마음에 기쁨이 충만했으며 그 외의 모든 ‘세상적인 욕심’ 또한 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명예와 부와 세상적인 욕심을 버린 그가 얻은 것은 다름 아닌 ‘구원’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과 영접하는 기쁨으로 충만해지자, 예수님이 그에게 단 한마디 권면 하시기도 전에 스스로 죄를 뉘우치고 선행을 다짐하게 됩니다. 이를 보시고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 19:9)라고 축복하십니다. 삭개오의 이와 같은 모습이 바로 구원을 얻은 자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중 ‘가시떨기에 뿌려진 씨’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마 13:22). 말씀을 막고 결실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세상적인 명예와 재물에 대한 집착과 욕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삭개오에게 이른 구원이 오늘 우리에게도 임하여, 말씀을 막고 있는 모든 것들을 물리치고 말씀에서 깨닫고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맺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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