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은혜롭게
찬양해야겠지?”
지난 주 주일날 어느 집사님께서 문득 제게 던지신 말씀입니다. 직접 언급은 안 하셨더라도 ‘그래도’ 앞에는 매우 많은 말들이 붙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잠시 몇 자 적어봅니다.
다니엘서에 기록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믿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자신의 금 신상을 향해 절을 안 하면
풀무불 가운데에 넣겠다고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이 건져내실 것이며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신상에 절을 하지 않겠다고 담대하게 말을
합니다. (단 3:14~18)
‘그리 아니하실찌라도’가 개정개역판에서는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로 되어 있으며, 위에서의 ‘그래도’는 ‘그리 하실찌라도’ 즉
‘그렇게 하실지라도’가 되겠습니다. 역접과 순접 차이는 있겠으나 이 또한 같은 믿음이 아닐까 합니다.
믿음생활을 하다 보면 교회 안과 밖에서 어려움이 따라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자신의 믿음을 자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이와
같은 일이 자주 벌어지곤 합니다. 간혹 성전 안에서 자신의 임의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사람의
방법으로 밀고 나가려는 경향이 보이기도 합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섬겼던 한 작은 교회에서는, 전체 성도가 50명 가량도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서 조금이라도 위에 오르기 위해 주도권다툼을 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50명 중에서
정상으로 가보아야 밑으로는 4,900명도 아니요 490명도 아닌 불과 49명밖에 안 되는데도 말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분명 성경에는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기록되어있는데도 (사 56:7)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 역설적이기도 하지만,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일곱 교회 중에서 칭찬을 받은 교회가 빌라델비아교회 한 곳이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5)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라”(살전 4:6)
또한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엡 1:22~23)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시며 교회는 곧 그의 몸이라고 기록합니다. 땅끝까지 감찰하시며 온 천하를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욥28:24),
교회를 도외시하실 리가 없으시겠지요.
오직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며 어떠한 어려움이 다가오더라도 그 어려움 앞에서 ‘그래도’, ‘그리 하실찌라도’ 하나님의 지체로서
우리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곧 승리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오늘도 역시 ‘그래도’ 은혜롭게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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