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학생이 쉬는 시간에
문득 제게 묻습니다.
“선생님은 좌우명이 뭐예요?”
평소에 이런 질문에 대한 준비를 하고 살았다면 제법 괜찮은 말이라도 한 마디 해줄 수 있었겠지만, 막상 ‘내 좌우명’이라고 하니
그럴싸한 말들만이 머릿속을 맴돌 뿐, 순간적으로 구체적인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며칠 동안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 아는 분들을 만났을 때 놀라운 일을 들었습니다. 지인 중 두 사람은 구속되고 한
사람은 행방불명이라더군요. 물론 저도 그 분들을 잘 아는 사이였으므로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셋 모두 좋은 학교를 나와 어려운 시험에도
합격하여 모두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이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에 비해 나는 살아오면서 여러 일도 많았으나 구속도 되지 않고 남의 눈을 피하기 위해 여기저기 후미진 곳을
찾아 다닌 적도 없으니, 정말 감사함이 이를 데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다음과 같은 성경 말씀이 떠오릅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눅 18:10~14)”
많은 설교말씀과 더불어 ‘감사’는 하나님 안에서 최고의 덕목이라 여겨왔으며, 여기서도 바리새인은 분명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것으로 부족하다고 하십니다. 이는 여기서의 ‘감사’가 자신을 높이는 ‘교만에서 비롯된 감사’였기 때문이 아닌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 교만을 낮추게 하는 힘을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의하면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은 바로 ‘사랑’에 의한다고 기록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1~3)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전 13:8)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에서 비롯된 믿음’, ‘사랑에서 비롯된 소망’ 그리고 ‘사랑에서 비롯된 감사’야말로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며, 결국 ‘사랑’이 없다면 모든 것이 꽹과리가 되고 만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7)
하늘의 높은 보좌를 벌이시고 가장 낮은 곳에 오셔서 온갖 고초와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죄 많은 우리를 대속하여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오늘도 사랑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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