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지금이 순간에도 생이
시작하고 생이 끝나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각각의 생애를 우리가 모두 살펴볼 수는 없겠으나 축복받은 삶을 살다 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불행한 최후를 맞이하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인생이 희로애락의 반복이라는 것은 비단 훌륭한 인생 지침서가 아니라도 우리 자신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전도서에서는 ‘해 아래의 삶’이 새로울 것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늘 하루도 생을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인생의 힘겨움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고난과 역경을 겪었다는 기록이 수없이 나옵니다. 시편 23편에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라는 다윗의 고백은 우리도 역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녀야 하는 일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공의를 행하여 그의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하는도다 (사 58:2)
아무리 햇빛이 좋다고 하나 맑은 날만 이어지면 가뭄이 되며, 또한 물이 필요하나 비가 이어지면 홍수가 나고 맙니다. 인생의 우여곡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러브레터’라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상대에게 편지를 띄우는 이유는
다름 아닌 내 마음을 상대방이 알아주기를 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내 마음을 알아주기 원합니다’는 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원한 ‘러브레터’의 주제라고 한다면 성경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러브레터’ 다름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즉,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수많은 선지자를 보내시며 말씀하신 이유, 그리고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못 박히게 하신 이유도
결국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시기 위한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호 6:3)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비로소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믿고 의지한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울 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롬
8:28)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믿는 마음일 것입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벧후
3:18)
오늘 하루도 하나님을 알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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