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 사이 학원 이전이
있었습니다. 역에서부터의 거리는 도보 15분 정도이지만, 건물 내부 전체를 옮기는 것이기에 시간도 비용도 절차도 만만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몇 년에 걸쳐 세워진 건물은 디자인도 모양새도 흡족했습니다. 문제는 교실.
제 교실에 들어가보니 칠판은 출입문과 같은 면에 있어 좁아지고, 또한 천장에 달린 스크린 때문에 더욱 좁아졌습니다. 그 외에도 내부
구조나 디자인에 있어서 다소 불만인 점이 있어 이것저것을 지적하였으나, 변경 가능한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 이미 상황이 끝났기에 어떻게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나름대로 내장이 완성되기 전에 살펴보고 요청도 하였으나 반영이 된 점보다 불편한 점이 더욱 눈에 띄었습니다. 새 건물에 새 교실이라고
하여 기대도 컸으나, 너무 과한 기대 때문인지 생각보다 만족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잠시 주변을 살펴봅니다. 분명 이전 건물보다, 그리고 이전 교실보다 나아진 부분이 있었을 것이기에 오히려 좋아진 부분만을 찾기로
해보았습니다. 그러자 제법 괜찮은 부분이 눈에 띄게 됩니다.
사람은 만족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스올과 아바돈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잠 27:20)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시 37:8)
그러나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도 있습니다.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시 77:1)
불평이나 불만 없이 만족만 한다면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을 일도 없으며 그저 감사만 하라고 하셨을 텐데, 성경은 우리에게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불의한 재판장도 끈질긴 과부의청을 들어주었다고 기록합니다(눅 18:1~8).
우리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잠시 고민하던 중, 바울과 예레미야에 대한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바울은 자신의 가시를 떠나가게 하기 위해 간구하였으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는 말씀을 듣고 도리어 기뻐하였다고 전합니다(고후 12:7~10).
얼마 전 학생과 나눈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대학 입시 때 모든 교인들이 모여 자신 또는 자신의 가족의 대학 합격을 기도했다고 해도 정원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기에 붙는 학생도
있고 떨어지는 학생도 있다면 이상하지 않아요?”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기도의 핵심은 바로 예레미야 29장 13절에 있는 말씀이 아닐까 합니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기도는 단지 자신의 소원 성취를 위한 기복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을 묻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다시 성경을 살펴봅니다.
예레미야서에 의하면 죄악으로 물든 유대 땅을 멸하시려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을 세워 예루살렘을 침공하게 하고 수많은 포로들을 바벨론으로
끌고 갑니다. 당연히 백성들 모두는 하루 빨리 옛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였으나 예레미야서 29장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 29:10~14)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간구하기를 원하신다면 우리는 이를 기쁨으로 받아 들이며 감사해야 하리라 믿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간구하며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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