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사라지는 내 육신인가. 오사카에서의 일도 꿈 속의 꿈이로다”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비롯하여 호시탐탐 조선을 노리고 누차에 걸쳐 대대적인 군사침략을 감행했던 적장(敵將)이지만
일본에서는 전국시대를 평정시킨 영웅으로 추앙 받고 있는 인물이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입니다. 도중에는 다른 세력들의 위협을
받기는 하나 말년에는 후궁 200여명을 거느리며 모든 부귀와 영화를 누렸습니다.
오사카(大阪:원문에서는 옛 지명인 ‘難波’)는 그가 본거지로 삼았던 곳이었으며, 당시 오사카 성은 총면적이 100만평을 넘었고
기왓장이나 벽면도 금박을 아낌 없이 사용했던 그야말로 황금성이었습니다. 또한 ‘다실(茶室)’에는 천장, 벽, 기둥, 바닥, 그리고
다기(茶器)들까지도 모두 황금이었다고 합니다.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히데요시가 아끼던 학 한 마리가 사육을 맡고 있던 신하의 실수로 하늘 높이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사형을 각오하고 사죄하는
신하에게 그는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외국으로 날아갔느냐.”
“아니옵니다. 이 나라 밖으로는 절대 나가지 못할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걱정할 것 없다. 이 나라가 모두 내 마당이나 다름 없지 않느냐. 우리 안에 가둬둘 것도 없이 이 나라라는 마당에 풀어두면
된다.”
이토록 자신감에 넘치고 얻지 못한 것이 없었던 그가 임종 직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한 편의 시가 바로 서두에 적은 글입니다. 모든 것을
이루고, 모든 것을 누린 그가 마지막 자신의 일생을 뒤돌아보고 남긴 글은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성경 전도서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있습니다.
“아, 먹고 즐기는 일을 누가 나보다 더 해 보았으랴”(전 2:25)라던 솔로몬도 전도서 1장에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믿건 안 믿건, 사람은 어느 정도 철이 들면 누구나 ‘죽음’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노아 때의 홍수 이후 인간의 수명은
급격하게 짧아지기 시작했으며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시 90:10)일진데도 마치 자신한테는 죽음이 닥치지 않을 것인
양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만약 우리의 죽음이 내일 찾아온다면 오늘, 아니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할까요. 어느 철학자처럼 사과나무를 심을까요? 적어도 “내일
하루를 위해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어두자”는 생각은 안 할 것입니다.
이 세상 마지막 날이 언제인지는 예수님께서도 말씀해주시지 않으셨기에 알 수는 없지만,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고후 5:10) 받게 될 것이며, 다른 종교에도 사후의 심판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예언 중에서 이보다 더
확실하고 인간이 믿기 쉬운 예언은 없을 것입니다.
하루 하루를 값지게 살아가는 방법은 많이 있겠으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오늘 하루를 주신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일일
것입니다.
삼중고로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서도 훌륭하게 생을 살아간 헬렌 켈러가 쓴 자서전 ‘사흘만 볼 수 있다면’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내일 갑자기 소경이 될 사람처럼 여러분의 눈을 사용하세요. 내일 귀가 안 들리게 될 사람처럼 음악소리와 새의 지저귐과 오케스트라의
강렬한 연주를 들어보세요. 내일이면 촉각이 모두 마비될 사람처럼 그렇게 만지고 싶은 것들을 만져보세요. 내일이면 후각도 미각도 잃을
사람처럼 꽃 향기를 맡고, 맛있는 음식을 음미해 보세요.”
우리의 생은 우리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얻어진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언젠가는 다가올 주님께서 허락하신 ‘그
날’까지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마음을 다하여 생명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몸처럼 내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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