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에 유행했던
‘페르시아의 왕자’라는 컴퓨터 게임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에 비하면 성능도 떨어지고 화면의 화려함도 떨어졌으나 당시
기술로 보자면 제한된 사양 내에서도 비교적 정교하게 표현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게임 줄거리도 단순합니다. 미로를 헤치고 덫을 피하며 악당을 만나면 무찌르면서 납치당한 페르시아의 공주님을 구해내는 것이 목적인데
당시에는 대단한 인기를 누렸습니다.
타고난 운동신경 미숙, 반사신경 결여 때문에 저 자신은 제대로 즐기지 못했으나 이웃 형이 게임을 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본 적이
있는데, 마지막 판에서 숨겨진 비밀 중에 매우 인상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위로 올라가도 아래로 내려가 보아도 낭떠러지와 가로막힌
길밖에 없어 도저히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의 해법을 이미 알고 있는 형은 어느
절벽으로 가더니 “용기 있는 자만이 갈 수 있다”라며 무턱대고 절벽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지더군요. 캄캄한
허공 위로 발을 내디딜 때마다 길이 생겨나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여호수아 3장에 보면 40여 년에 걸친 오랜 광야생활을 마치고 이제 비로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모세로부터 지도자의 자리를 물려받은 여호수아는 다음과 같이 이스라엘 민족한테 지시합니다.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나니 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명을 택하라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수 3:11~13)
그 후의 일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수 3:15~17)
이 모습을 보면 광야생활 동안에 이스라엘 민족들의 믿음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명을 받아 바로왕한테 보인 수많은 이적들을 이스라엘 민족들도 분명 보고 알았을 터인데도 가로막힌 홍해를
앞에 두고는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출 14:11~12) 등등 자포자기를 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를 원망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만약 그 때도 여전히 믿음이 없었다면 똑 같은 불만이 여호수아 3장에도 들어갔어야 했겠으나
이스라엘 민족들은 그 말씀에 대해 불평을 토로했다는 기록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광야생활 40여 년을 거친 이스라엘 민족은 철저하게
순종하 는 것을 배웠다는 점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수많은 이스라엘 민족들이 아무런 장비도 없이 손쉽게 요단강을 건넜다는 보고를 받고 긴장한 나머지 여리고성은 성문을 굳게 닫고 지켰는데
여호수아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또다시 전합니다. 그 내용 역시 사람의 이성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순종합니다. 여호수아 6장을 자세히 보면 여리고성 공략을 위한 작전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기를 마치고 행동으로 옮기는
7절과 8절 사이에 민수기 14장 1~3절에 기록된 불만이 들어가기에 딱 좋습니다. 모세가 보낸 정탐꾼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 명의 정탐보고를 듣고는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라는 이스라엘 민족의 불만이 들어갈
수 있는 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없이 여호수아의 지시 그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말하자면 이 7절과 8절 사이에
있었을 7.5절이 빠지기 위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40여 년에 걸친 가혹한 광야생활을 겪었던 것이며, 이로 인해 최단시일 내에
성공적으로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을 성공적으로 공략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믿음이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지만 확고한 믿음은 눈에 보이는 여느 증거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주님을 믿는다는 것이 때로는 지루하고 돌아가는 것 같고, 가끔은 기도를 해도 공허하게 느껴져 정말 주님이 나한테 관심이 있는 것인지
아닌지도 의심이 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주님의 최대 관심사는 바로 우리이며 ‘나’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놓고 허송세월 하는 모습을 즐기지 않으시며 우리를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길”을 향해 가장 빠른 길로 인도하려 하십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아무리 눈앞이 캄캄하고 암담하거나 막혔다 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해답을 분명히 예수님은 가지고 계시며,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분 또한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찬양하며 언제나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낙심하지 않고 강하고 담대하게 발을 내디딜 때 눈앞에 펼쳐지는 주님께서
허락하신 믿음의 길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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