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0일 의료봉사를
위해 아프간을 방문한 교인들이 납치되었다는 발표가 내외신을 통해 전세계에 보도되었으며, 25일에는 배형규 목사님이, 31일에는 심성민
형제님이 희생되었다는 발표가 있었을 때, 단순한 슬픔을 넘어서 하늘을 우러러 “그들이, 아니, 우리가 도대체 무슨 죽을 죄를
지었기에,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주님의 종이, 그리고 귀한 형제가 이국 땅에서 피를 흘려야 합니까” 하는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러는 사이에도 국내외에서는 ‘해외선교’라는 단어 앞에 ‘무리한’, ‘성과위주’, ‘교세과시’, ‘캠코더’ 등의 수식어를 붙여가며
온갖 기사와 댓글로 가득 찼습니다. 그들이 아프간으로 건너간 것은 교회에서 억지로 보낸 것도 아니며, 다녀 온다고 대단한 특혜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도무지 예상할 수 없는 지경의 고난이 이어지며 어려움을 당하기에 이르고, 주위를 돌아보아도 비난과 비판이 난무하면,
주님에 대한 믿음도 말씀도 우리 머리에서 떠나 어느새 주님을 원망하고 탄식하며 괴로움에 주체할 수 없게 되고 맙니다.
지난 31일자로 KBS 인터넷에는 다음과 같은 표제가 실렸습니다.
- “인질 모두 석방” 피랍 43일 종료. -
이 제목을 보는 순간 머리 속에 성경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출 12:41)
애굽을 탈출한 그들은 기쁨도 잠시였으며 이윽고 눈앞에 펼쳐진 홍해와 뒤쫓아오는 애굽 군대를 사이에 두고 실의에 빠지고는 또다시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 시점에 만약 손자나 제갈공명, 이순신 장군, 아이젠하워, 맥아더 장군과도 같은 뛰어난 전술가들이 한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무리 훌륭한 전술을 구사했다 하더라도 ‘유대인 100% 생존, 애굽 군대 100% 전멸’이라는 결과를 내놓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역사적 자료에 의하면 젊은 시절 모세는 바로의 군대를 이끌고 여러 국가를 점령했을 정도로 뛰어난 전술가요 용사였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나, 그가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택한 방법은 이 세상 모든 지혜를 다 버리고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주신 전술은 매우 명료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 14:14)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 다가올 때 이를 해결할 분은 오로지 하나님뿐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을 구원한 것은
인간들이 보기에 지혜롭게 여기는 전략전술이 아니라 믿지 않는 자들이 보기에 미련하기 짝이 없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였습니다.
유대인들이 400년 넘도록 애굽에 살면서 핍박을 받을 때, 애굽인들로부터 그들이 받은 모욕은 어떠했을까요.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너희 하나 구원하지 못하는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 하는 말들을 수도 없이 들었을 것입니다. 아프간에서 피랍생활을 하던
그들을 향해 이와 같은 댓글들은 인터넷에 넘쳐났으며, 그들이 이제 탈레반들로부터 석방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또 다른 비난들은
쏟아집니다. 마치 애굽을 탈출한 그들 앞에 펼쳐진 홍해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정말 무엇인지 알 수 없으며, 이 때문에 교회 내에서도 현재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나오고 있으나, 이번 일을 그저
어떤 한 교회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닌, 주님을 믿은 사람 모두에게 주어진 시련으로 받아들이고, 무엇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짧은 지혜나 판단력을 의지하기 보다는,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 아무리 미련한 방법일지 모르나 주님을 향한 기도로써 어려움
가운데에 역사하시는 주님을 의지할 때에 홍해를 가르고 애굽 군대를 물리치셨던 하나님의 능력이 꽃을 피울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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